제가 느낀 익숙함의 정체는 제가 그리던 사람이었다.




보통 새벽에 깨는 일 없는 해원맥은 그날따라 눈이 떠졌다. 괜히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침대에 누워 눈을 꿈뻑이고 있자니 평소라면 보기싫은 귀신들이 돌아다녀야 할  방 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킨 해원맥은 조용하게 방을 나섰다. 평소와 다른 집안의 느낌에 해원맥은 주변을 살폈다. 밤이라면 귀신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가득했었는데 정말 쥐죽은 듯 조용했다. 질리도록 듣던 귀신들의 목소리 대신 할머니가 주무시는 방에서 차가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라고 하기엔 앳됐고, 엄마라고 하기엔 목소리가 틀렸다. 도둑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할머니 방 앞으로 가니 다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무언가 보였다.

그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싶어 해원맥은 문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곳엔 새까만 옷을 입은 남자 둘과 여자하나가 보였다. 세사람은 할머니의 곁에 가만히 서 있었고 셋 중 중간에 서있던 사람이 옆의 여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여자는 익숙하게 할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대체 누구기에 할머니를 부르는 건가 싶어서 조금 더 자세히 보려 몸을 문에 완전히 붙였더니 끼익, 문이 열리는소리가 고요함을 깼다. 할머니를 부르던 여자가 몸을 돌려 문 쪽을 보려고 할때 가운대에 서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냥 계속하자."

 그리고는 이름을 부르는 여자를 뒤로하고 문쪽으로 몸을 돌려 저와 눈을 맞췄다. 시리도록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 남자는 손가락을 들어 본인의 입술을 가리며 쉿, 하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리고 걸어와 문을 닫았다.


어젯밤 본 것이 저승사자였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잠결에 들린 부모님의 울음소리와 웃고 떠드는 귀신들의 말에 어제 할머니 방에 있던 이들이 할머니를 데려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해원맥은 아주 어렸을때부터 인간이 아닌 것들을 보고 자랐다. 태어나 눈을 뜨고,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을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은 침대에 눕혀진 아이가 허공을 보고 꺄르르 웃는 것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 사실을 알게된건 해원맥이 조금 더 자라 의사소통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할때였다. 유치원을 다녀온 해원맥이 문득 어머니의 손을 잡고 물었다.

"저 아저씨는 왜 저기 있어요?"

"아저씨라니?"

해원맥이 가리킨 곳은 거실의 한 쪽 구석이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거실 구석에는, 집안에는 본인과 해원맥 뿐이었다. 그런데 아저씨라니. 처음에는 아이가 잘못본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후로 계속 되는 것에 결국 어머니는 해원맥의 손을 잡고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그저 아무말 없이 해원맥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해원맥을 응시하고 있던 무당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복채는 받지 않을테니 돌아가세요."

"하지만 아이가..."

"걱정할 것 없어요. 귀안이 트이기는 했지만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던가 귀신이 씌인다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야 조금 불편하게 살겠지만."

무당은 제 말을 끝내고 해원맥과 그의 어미를 내보냈다. 저 아이를 감싸고 있는 기운은 염라대왕, 천륜지옥의 모래이니 어느 잡귀도, 신도 쉬이 탐을 내지 못할 것이었다. 

해원맥은 어미와 무당을 보고 온 이후 제가 어미에게 말 했던 것들이 함부로 말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귀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후로 어미는 안심이라도 한 듯 평소처럼 해원맥을 대했다. 

무당의 말이 진짜이기는 했는 듯 여전히 귀신들은 해원맥의 눈에 보였지만 다가오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인간들 사이에 섞여 저를 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말을 걸고 장난을 칠 뿐 정작 보고 들을 수 있는 해원맥에게는 무관심 했으니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다닐때쯤 해원맥은 두번째 저승차사를 만났다.  할머니의 방에서 만났던 이들과는 다른 것 같았지만 그 분위기가 같았다. 시선 끝에서 해원맥은 남자 둘과 여자 하나를 보았다. 아무 미동없이 그자리 그대로 서있는 이들을 버스정류장에 앉아 해원맥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들은 제가 그들을 본다는 것을 모를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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