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산타할아버지 잘 오실 수 있겠지?”
“그럼, 산타할아버진 우리 집 주소도 벌써 다 알고 계신 걸.”
“엄마엄마, 그럼 내가 뭘 받고 싶은 지도 다 알고 계시겠지?”
“당연하지. 걱정 말고 자자, 요한.”
“그럼 엄마 있잖아, 어, 창문 조금만 열어둘까? 혹시 못 들어오시면 어떡해?”
"감기 걸려서 안 돼, 그리고 산타할아버진 다 방법이 있으니까 충분히 들어오실 수 있어.“
“혹시 다른 아이 선물이랑 바뀌면 어떡하지? 그럼 안 되잖아! 그 애가 너무 속상할 거야...”
“그럴 리 없어, 요한아, 네가 자야 산타할아버지가 오실 수 있어! 이제 엄마 불 끌 거야.”



반짝이는 눈을 해선 꿈에 부풀어있는 6살짜리 꼬마, 요한이 잠기운이라곤 도통 없는 얼굴로 제 엄마를 쳐다보면서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걸, 요한의 엄마는 다정한 목소리로 상냥히 대꾸해주며 제 아들을 안심시켜 주었다.
요한은 입으로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이불을 턱밑까지 바짝 끌어당겨 덮었지만, 머리맡의 협탁 위에 쿠키와 조각 당근, 그리고 주스가 제대로 있는지, 그리고 창문이 혹시 너무 굳게 닫혀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느라 눈을 감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타이르자 요한은 하는 수 없이 억지로 눈을 꾹 감고 입을 다물었다. 억지로 감고 있는 눈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게 빤히 보였지만 저러다가 또 잠드는 게 아이들인 걸 알아, 엄마는 조용히 피식 웃고는 요한의 방 문을 닫고 나갔다. 문이 부드럽게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동안에도, 요한은 연신 산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산타가 우리 집을 무사히 찾아와 제가 원하는 선물을 주고 가길 간절히 기도했다. 





















덜그럭. 







“!”



멀리서 어렴풋이 들린 작은 소음에, 요한의 눈이 반짝 떠진다. 평소라면 항상 침대에서 비비적대며 눈을 뜨기 어려워하던 꼬마는 온데간데없이, 요한은 아직도 깜깜한 한밤중인 것과 협탁 옆의 산타와 루돌프를 위한 간식이 그대로 인 것을 확인하고는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헐렁한 파자마바지를 질질 끌며 요한이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도중에도, 밖에선 계속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역시! 내 말대로 간식을 거실에도 놔두길 잘 했어! 엄마는 요한의 방에만 간식을 놔두면 된다고 말했지만, 요한은 혹시 산타가 거실이나 현관으로 들어올 수도 있으니 꼭 거실에도 간식을 놔둬야 한다고 우겼다. 그리고 요한은 자신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기대하던 산타를 만날 생각에, 요한이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채 문을 조용히 열고 복도를 지나 난간을 잡고 조심스레 걷는다. 거실 한가운데에 놔둔 트리의 반짝이는 불빛이 보이고, 요한이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작은 테이블을 트리 옆으로 끌어다 간식을 올려둔 것도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댐잇, 제발, 좀, 가만히, 있어!!”



...... 산타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려울 것 같은, 키만 멀뚱하니 큰 남자가 백팩 안의 어떤 것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요한의 눈이 의아함으로 가늘어진다. ‘저건’ 산타할아버지가 아니잖아! 엄마가 읽어준 동화책에도, 시터누나가 틀어준 만화영화에도, 산타는 빨간 털모자와 털옷, 그리고 눈처럼 새하얀 수염과 앞뒤로 불룩한 군살의 푸짐한 몸매의 할아버지였는데. 지금 트리 옆에서 여태 실랑이를 하는 남자는 할아버지가 우선 아닌데다, 키가 크고 날씬했고, 희고 풍성한 수염은커녕 짙은 색 머리카락과 깎는 걸 까먹은 듯한 꺼칠한 수염만이 있었다. 그리고 저 시커먼 옷은 뭐야! 백팩도 그렇고! 요한은 저 아저씨가 산타가 아니라고 확신했고, 소리를 지를까, 아니면 울음을 터뜨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아저씨가 가방에서 대체 뭘 꺼내려고 하는 건지 너무나 궁금했고, 결국 요한은 숨죽여 계단을 내려와 거실에 들어섰다.



“젠장, 말썽꾸러기 같으니라고. 하, 포장도 다 풀어 뜯어먹었잖아! 대체 왜 강아지를 선물로 달라고 해선, 다른 애들처럼 인형이나 장난감 같은 거면 좋잖아ㅡ”
“강아지!!!”




아저씨가 결국 가방에서 쓱 꺼낸 건, 오, 다름 아니라 금색 털이 귀여운 어린 강아지였다! 그리고, 요한이 올해 산타에게 선물로 달라고 한 것도 바로 강아지였고. 아저씨의 커단 손에 뒷덜미를 잡힌 채 리본과 포장지를 우물대는 강아지를 보자마자, 요한이 나지막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강아지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요한의 등장에 깜짝 놀란 아저씨는 거의 1m쯤 뒤로 펄쩍 뛰어오를 기세였지만, 요한이 더 빨랐고, 요한은 아저씨가 강아지를 움켜쥔 채 뒤로 훌쩍 물러나기 전에 강아지를 받아들고는 껴안고 뽀뽀를 퍼부었다. 강아지는 좋다고 헥헥 대며 같이 혀를 내밀어 요한의 말랑한 볼을 핥아 올렸고 말이다. 



“댐잇! 꼬마야, 너 여기 있으면 안 돼, 가서 자야지.”
“저는 꼬마가 아니구요, 제 이름은ㅡ”
“알아, 알아, 요한 술루. 제발, 꼬마야, 자, 넌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어서 들어가서 좀 더 자지 않으련?”


내 이름을 알고 있어! 진짜 산타인가? 요한이 눈을 빛내며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강아지는 요한의 얼굴을 1초라도 더 핥으려고 버둥댔고, 아저씨는 요한과 강아지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고 커다란 백팩에서 이미 강아지가 갈기갈기 물어뜯은 포장지와 리본을 꺼냈다.



“망할, 강아지는 대체 어떻게 포장을 했어야 하는 거야? 선물은 꼭 포장해서 주라고 지침은 내려왔고, 안에서 이 녀석이 난동만 부리지 않았어도 후딱 꺼내놓고 갔으면 되는데...”
“강아지를 문이 있는 강아지집에 넣고 거기에에 리본을 묶으면 되잖아요?”
“............”
“............”
“똑똑해서 좋겠다, 꼬마야. 아, 그래그래, 요한. 댐잇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산타 아닌가보다. 요한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아저씨를 노려보았다. 요한의 얼굴을 핥을 만큼 핥은 강아지는 이제 요한의 품을 빠져나와 킁킁거리며 아저씨의 발 주변을 돌더니 이가 간지러운 듯 바짓단을 앙앙 물어댔다. 그리고 둘 사이엔 정적이 잠시 흘렀다....



“..... 아저씨 산타 맞아요?”
“그럼 내가 대체 왜 이 야밤에 강아지를 들고 와선 이 난리를 치고 있겠니?”



아저씨는 툴툴대며 발을 휘휘 저어 강아지를 쫓아내려 들었다. 하지만 강아지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고, 요한의 의심 또한 거둬질 리 없었다. “하지만 산타가 뭐 이래요? 할아버지도 아니고, 수염도 없고 옷도 까맣고.”



“...... 아 맞다.”



아, 하고 박터지는 소릴 내더니, 아저씨가 얼굴을 찌푸리고는 목 끝까지 채운 지퍼를 죽 내려 뒤집는데, 안에서 희고 풍성한 수염과 빨간 털옷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가 걸렸거나 고장이 났는지, 수염은 얼굴에 달라붙지 못한 채 아래로 축 늘어져 너덜거렸고, 빨간 털옷은 반만 나온 채 앞으로 불룩 불거져 나왔다. 아저씨는 낑낑대며 지퍼를 내리려고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고, 요한은 작은 입을 떡 벌린 채 눈앞의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충격적인 얼굴로 바라보았다. 산타가 고작 이런 거였어!?



“....... 아니, 이게 원래 지퍼가 딱 내려가면서 뒤로 확 펼쳐져서 수염이랑 모자까지 딱 씌어줘야 하는 건데...”



용을 쓰며 지퍼를 내리느라 빨개진 얼굴로 투덜대는데, 이미 요한의 환상과 기대는 박살이 나버린 참이었다. 



“......... 산타가 뭐 이래.”
“야, 너무 뭐라고 하지 마. 난 그냥 알바란 말이야.”
“알바가 뭔데요?”
“알...바? 알바는... 급전... .......돈을 벌기 위해 잠깐 임시로 하는 일을 말하는데....”
“우리 엄마는 선생님이에요. 이것도 알바에요?”
“엄... 아니, 내가 알기론 너희 어머닌 정직원이라.”
“정직원?”
“..... ......아 됐고! 꼬마야, 아니 요한아, 어쨌든 너는 지난 한 해 동안 착하고 귀여운 꼬마였고, 선물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니까, 이제 그만 강아지와 함께 방에 올라가서 자렴. 그리고 너 이거 다 꿈이다? 알겠지?”



아저씨는 결국 다시 지퍼를 올려 닫아 수염과 털옷을 싹 집어넣었고(그 불룩하고 푸짐한 수염과 털옷이 싹 사라지는 게 신기해 술루는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요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하던 그는 어느새 요한의 손에 들린 백팩을 보고 기가 막히다는 듯 앓는 소리와 함께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거 이제 줄래? 가봐야 한단 말이야.”
“안에 텅 비어있던데 우리 집이 마지막이었던 거예요?”
“...... .... 맞아, 꼬마야, 나는 아까 말했듯이 임시직이고, 너희 집이 마지막이었으며, 그 말은 이제 난 퇴근해서 늘어지게 잘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가방 얼른 내놔. 그거 뭐 특수한 어쩌고여서 비싸고, 내꺼도 아니란 말야, 퇴근할 때 놓고 가야 돼. 아니면 일당도 못 받고 오히려 더 물어내야 할 판이라고.”
“싫어요, 진짜 산타라면 루돌프랑 썰매는 어디 있어요?”
“너한테 니가 바라 마지않던 강아지를 준 걸로는 입증이 안 돼?”
“아직은 못 믿겠어요.”
“내가 6살짜리 애한테서 가방 하나 못 뺏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자 얼른ㅡ”
“내 몸에 손대면 소리 지를 거예요.”



뭐라고? 아저씨가 기가 막혀 얼굴을 구기는데, 요한이 정말 소리라도 지를 것처럼 하압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제기랄, 어른한테 들키는 건 얘기가 완전 다르다고! 결국 아저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쉿 하며 다급히 요한을 진정시키고는 물었다. 



“댐잇, 대체 원하는 게 뭔데?”












-










“나 이거 먹는다.”
“네 드세요.”



요한의 방으로 올라온 요한과 아저씨, 그리고 강아지는 어슴푸레한 수면등만 밝힌 채 어둔 방 안에 앉아 다소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아지는 한참을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졸음이 몰려왔는지 요한의 엉덩이 옆에 앉아 몸을 둥글게 말고 색색거리며 잠들었고, 그런 둘을 보다가 허기가 갑자기 몰려온 아저씨는 협탁의 쿠키를 가져다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빤히 보던 요한이 지저분하게 쿠키를 흘리고 먹는 아저씨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다.



“부스러기 흘리지 마세요.”
“어쩔 수 없어, 쿠키가 너무 바삭하다고. 뭘 넣은 거야, 땅콩? 이거 짐 녀석이 왔으면 알러지 돋아났다고 또 난리였겠구만ㅡ”
“짐이요?”
“그래, 원래 너희 집에 배정됐었던 산타. 담부턴 알러지 성분은 없는 걸로 준비해놔. 아무리 우리라도 탈나면 아픈 건 사실이니까.”
“우리요?”
“.... 그래, 나 같은 사람들.”
“무슨 말이에요?”
“야, 너 진짜 나를 아주 탈탈 털어낼 셈이야?”



아저씨가 앓는 소리를 내며 양반다리에 팔꿈치를 괸 채 손바닥에 턱을 기댔지만, 요한은 가방을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괜히 자세를 고쳐 앉으며 가방을 깔고 앉은 걸 과시한 후, 요한은 질문을 폭격기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름이 그럼 산타에요? 루돌프랑 썰매가 없으면 어떻게 오는 거예요? 산타가 하나가 아니라 더 있는 거예요?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우리 집엔 어떻게 들어왔어요? 산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갖고 싶은 건 뭐든 가질 수 있어요? 정말 착한 애한테만 선물을 주는 거예요?”
“............. 와, 너 정말 난 녀석이구나.”
“...난 녀석이라는 게 뭐예요?”
“하아, 이렇게 되어서까지 애들 뒤치다꺼리라니. 다신 이 짓 안 한다 내가 진짜.”
“이렇게 되었다는 건 뭐예요?”
“..... 너 날 보내줄 생각이 없지?”
“나중에 궁금한 게 해결되면요.”



요한은 이를 씩 드러내고 웃었다. 앞니 하나가 없는 어린애다운 미소에, 결국 아저씨는 한숨을 푸 내쉬고는 결국 요한의 질문에 답을 해줄 준비를 했다.



“좋아, 내 이름은 산타가 아니야, 그딴 웃긴 이름이 아니라고ㅡ 내 이름은 레너드야, 레너드 맥코이. 질문이 또 뭐가 있었더라... 그래, 산타는 한 명이 아니야. 말이 돼? 한 명이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게? 당연히 여러 명이고, 보통 산타노릇은 요원이 하는데 짐 그녀석이 말할 수 없는 이유로 펑크를 내서.... 댐잇 나는 그냥 내부지원팀이라고. 아직 안 자는 사람이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고 체크해주거나 위험요인이 있을 때 알려주거나 하는 건데, 심지어 이것도 이번에 짐 녀석이 꼬드겨서 임시로 하게 된 걸 갑자기 펑크가 나니까 혼자 산타 노릇 하느라 이런 맹랑한 꼬마한테 들키기나 하고 말이야.... 그리고 보자, 그래, 루돌프랑 썰매는 너무 눈에 띈다고 한 5년 전에 다른 방법을 도입했어, 트랜스포터라고, 순간이동처럼 보이는 광속에 근접한 아광속의 초고속 이동 같은 건데, 이걸로 전 세계 어디든 빠르게 오고갈 수 있는 거란다. 아 물론 넌 못 해. 나 같은 처지가 되어야 가능한 거라. 그러니까 꿈도 꾸지 마라. 그리고 일 년 동안 너네 꼬마들이 착하게 지냈는지, 아니면 나쁜 짓을 얼만큼 했는지, 그런 걸 다 조사하고 패턴을 분석해서 선물을 줄지 말지 데이터화 하는 부서가 또 있어요. 어디는 집의 구조랑 아이나 부모 성향 이런 걸 분석해서 몇 시 경에 어디를 통해 들어갈지 분석하고 또 그에 맞춰서 요원 훈련하고 배치하는... 꼬마야, 듣고 있니? 듣고 있지?”



6살이 알아듣기엔 어려울 만한 설명들이 레너드의 입에서 줄줄 나온다. 처음엔 요한도 멋지다면서 자기도 산타가 되고 싶다고 추임새를 넣었지만(레너드는 투덜대듯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중얼거렸다) 갈수록 요한의 말 수가 줄어들었다. 일부러 그런 것이긴 하지만, 요한은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레너드가 폭풍처럼 쏟아내는 과한 정보의 홍수에 그만 잠시 멍을 때리고 말았다. 바라던 대로 된 레너드가 흡족하게 웃으면서 이만하면 됐겠지, 하는 얼굴로 가방을 달라는 식으로 손을 뻗는데, 정신을 차린 요한이 눈을 깜빡이며 질문을 하나 더 던진다.



“그런데 아저씨 같은 처지는 뭔데요?”




그러자 이번에는 레너드의 입이 당밀을 크게 한 스푼 퍼먹기라도 한 듯 딱 다물린다. 요한은 궁금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재차 물었으나 레너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요한이 떠다 놓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펄프가 들어있는 건 자긴 벌로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말을 돌렸다. 하지만 요한은 이제껏 레너드가 한참 주절거린 그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그것 딱 한 가지만이 궁금한 듯 계속 레너드를 괴롭혀댔다. 결국, 요한은 그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해주면 가방을 돌려주겠다며 딜을 걸었고, 결국 레너드는 영 내키지 않는 다는 얼굴로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 .... 그러니까, 제기랄, ..... 나는.. 나 같은 처지는.... 댐잇, 그러니까.. 어........ 사람이 아니거든.”
“.......”
“..... 망할, 꼬마야, 왜 이런 얘기까지 하게 만드는 거야?”
“..... 그럼 아저씨는... 귀신이에요?"
"귀ㅅ....... 뭐... 그런 건가........"
"그럼 아저씨는 죽었어요?”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돈다. 레너드도, 요한도,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다가, 결국 레너드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한숨을 푸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좀 된 일이야.”
“어떻게 하다가요?”
“... 차 사고로. 저기, 꼬마야, 이런 거 궁금해 하지 마.”
“저도 죽는다는 게 뭔지 알아요.”



요한이 두 무릎을 세워 끌어안으며 소곤거렸다. 활기차던 꼬마의 목소리는 어느새 낮아졌고, 레너드는 그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 기분이 불편해진 레너드가 눈썹을 누그러뜨린 채 요한을 바라봤지만, 요한은 바닥만을 바라보며 계속 소곤댔다.



“우리 아빠도 죽었어요. 심장이 아파서요.”
“...... 알아.”
“..... 그리고 나도 죽을 거래요. 똑같이 심장이 아파서요.”



....... 그것도 알아. 하지만 레너드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레너드가 모를 리 없었다. 이 착하고 순수하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랑스런 꼬마에 관한 프로파일을 벌써 다 보고 왔으니까. 



“그럼 나도 죽으면 산타가 될 수 있어요?”
“..... 꼬마야,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런 말 하지 마.”
“아니에요, 엄마랑 의사선생님이 하는 말 다 들었어요. 심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당장 나타나지 않는 이상, 내가 더 이상 병원에서 지내는 게 의미가 없어서 차라리 마지막이라도 편하게 집에서 지내는 게 나을 수도 있다구요.”
“..........”
“그래서 이번에 산타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을 두 개 생각했는데, 하나는 저한테 심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는 거고, 하나는 제가 없더라도 엄마가 외롭지 않게 강아지를 달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아마 첫 번째 선물은 제가 받을 수 없는 거였나 봐요. 그래서 강아지가 왔겠죠?”



요한의 숨소리 가득 섞인 소곤거림에 물기가 어린다. 레너드는 이번에도 침묵을 지켰다. 아마 요한의 첫 번째 소원이 실현가능한 것이었다면, 크리스마스대책본부에서도 이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에게 허락된 시간은 사실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고, 요한의 몸에 맞는 심장은 없었을 뿐더러 요한의 순번은 한참 밀려있었다. 산 사람들과 다른 세계고 많은 것들이 가능한 세계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선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짐이 다른 아이들을 위한 선물과 함께 강아지를 받아왔더란다. 레너드는 짐이 강아지를 안고 온 날을 상기했다. 





귀여운 꼬마던데 안 됐어. 마음씨가 너무 예쁘지 않아? 혼자 남을 엄마를 위한 선물이라니.






살아생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해왔던 레너드는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아파 요한의 파일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아이가 앓는 병은... 레너드도 잘 아는 것이었다. 수술에 성공한 적도 있었고, 요한처럼 기증자를 찾지 못해 먼저 간 아이들을 보기도 했었다. 제기랄, 짐, 이런 애긴 없었잖아. 난 그냥 애들한테 선물을 주는 걸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레너드의 푸념에 짐이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덧붙였다. 이럴 줄 몰랐어, 미안해 본즈, 올해 내가 배정받은 아이 중에 이런 케이스가 있을 줄은.... 




“아저씨. 아니, 산타 할아버지... 산타 아저씨?”
“......... 왜.”
“내 소원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엄밀히 말하면 레너드는 그저 전달자에 불과했다. 이미 요한에게 말한 것처럼 임시직으로 오게 된 거고, 레너드가 해준 것도 없으며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조그마한 꼬마의 감사인사에 레너드는 구태여 팩트를 들이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레너드는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요한에게 손을 뻗어서 요한의 자그만 어깨를 쓰다듬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깬 강아지가 졸린 눈을 한 채,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요한의 솜털 보송한 뺨을 핥으려 낑낑댔다. 하지만 요한은 스스로 눈물을 닦았고, 눈가가 토끼처럼 새빨개진 채 앞니가 하나 빠진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레너드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어요?”
“...... 내가 산타노릇을 하고 있는데 선물은 무슨.”
“아니에요, 산타도 선물을 받고 싶을 수도 있죠.”
“그냥 퇴근하고 잠이나 자면 되지 뭐.”
“정말 그게 다예요? 와, 아저씨 진짜 이상하다. 원래 어른은 그렇게 재미가 없어요?”
“하.. 쪼만한 게 못하는 말이 없네.”
“아 빨리요.”
“............... 글쎄, 그냥.. 뭐. 좋은 와인 한 병이랑, 앤디 윌리엄스 크리스마스 LP판이면 될 거 같은데. 그리고 뭐 좋은 사람이랑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 그렇구나. 근데 앤디 윌리엄스가 누구에요?”
“너야 모르겠지. 있어. 목소리가 정말 좋아.”
“아하.”



그러면서 레너드가 나지막하게 앤디 윌리엄스의 목소리를 조금 흉내 내어 캐롤을 부른다. 하지만 어린 애가 듣기에도 뭔가 이상한 음색에, 요한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얼굴이 빨개진 레너드는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랑 아빠 같은 사이의 사람이요?”
“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
“아저씨는 여자 친구 없어요?”
“없어. 뭐, 우리 마누라는 아직... 여기 있어서, 새로운 남편이랑 잘 지내고 있더만.”
“아아.”
“.....제길, 별 얘길 다 하네.”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레너드는 영 기분이 가라앉고 말았고, 요한도 다소 침울해졌다. 
그러나 어쨌든, 내내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레너드는 요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방을 돌려달라는 뜻이었다. 요한은 가만히 레너드의 길쭉한 손을 바라보다가, 눈을 깜빡이고는 엉덩이 아래 깔고 앉은 가방을 건넸다. 레너드는 가방을 받아들었고, 일어나서 가방을 멨다. 



“..... 그냥 이대로 끝이에요?”
“... 뭐가?”
“나한테 원래 우리가 알면 안 되는 이야기 다 해준 거 아니에요? 그럼 내 기억을 지우거나..”
“... 자고 일어나면, 다 꿈인 줄 알 거야. 넌 고작 6살이고, 뭐 들킨 사람이 어른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내가 일어나서 다 기억해서 엄마한테 방금 있던 일을 다 얘기해버리면요?”
“솔직히 너희 엄마가 믿을까? 아마 상상력이 풍부하다거나 귀여운 헛소리라면서 그저 뽀뽀나 왕창 해주고 말 걸.”
“흐음.”



레너드의 말도 틀린 바가 없어서, 요한은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그리고 원래 어린애들은 잘 잊어. 아마... 너도 얼마 안 가 나를 잊게 될 거야. 그게 당연한 거고. 그게 이 세상에 아직 산타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지. 너같이 오진 꼬마애들한테 들킨 게 나뿐만이 아닐 텐데 말야, 안 그래? 그리고..너희 엄만 저 강아지를 보고도 자기가 어젯밤에 사온 줄 알 거야. 그것도 이 비즈니스가 유지되는 비결이거든.”



레너드가 한참을 궁시렁대는 동안 요한이 잠시 꼼지락대며 망설이다가, 레너드에게 천천히 다가와서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훤칠한 레너드의 무르팍에나 오는 키였기 때문에, 레너드는 다리 한참 아래쪽에 닿아오는 온기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요한의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레너드의 다리에 얼굴을 묻고, 요한이 작게 웅얼대기 시작했다.




“아저씨.”
“응.”
“아저씨가 내년에도 산타로 우리 집에 왔으면 좋겠어요.”
“.......”
“올 수 있죠?”
“..... 어.....”
“올 수 있죠?”



요한이 재차 힘주어 물었다. 또 그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어, 레너드도 코끝이 시큰해지려는 걸 참고, 노력해 볼게, 그때도 알바를 구한다고 하면, 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레너드는 요한의 크리스마스가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아마, 요한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둘 다 그것을 아는 티는 전혀 내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서있는 둘을 보고, 강아지가 졸졸 달려와 둘의 옆을 빙빙 돌았다. 요한은 레너드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채 눈물을 조금 문질러 닦으며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이 강아지의 이름은 앤디에요.”
“... 괜찮은 이름이네.”
“아저씨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부른 사람의 이름이 앤디랬죠? 이젠 기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
“..... 좋아, 요한, 그럼... 이제 정말 가야할 거 같아.”



목을 가다듬고 고개를 위로 들어 눈물의 흔적을 없앤 레너드가 부드럽게 요한의 몸을 밀어내 떼어낸다. 요한의 몸이 레너드의 다리에서 멀어졌고, 레너드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요한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었다. 자그마한 6살짜리 꼬마 요한의 통통한 뺨은 눈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가득했다. 레너드는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워, 그리고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엄지로 뺨을 문질러 닦아주고는 아이의 마른 몸을 꼭 안아 주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 특히 너처럼 행복할 권리가 있는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면 말이야. 레너드는 생각했다. 그런 레너드를, 요한도 마주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산타아저씨.”
“..... 고마워, 요한아.”







메리 크리스마스. 
요한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















“흐, 망할, 엄청 춥네.”



덥다고 풀어 헤쳤던 목도리를 다시 목에 두르면서, 레너드가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 추워, 오늘따라. 이 동네는 일 년 내내 겨울이니까 항상 춥긴 하지만. 레너드는 선택권이 있었을 때 윈터원더랜드를 고른 것을 간혹 후회하곤 했다. 더위를 워낙 탔기 때문에 더운 곳에 있느니 차라리 껴입어서 추운 게 낫겠지, 그리고 눈 오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기도 하고, 하는 마음에 선택했건만, 보다보면 결국 동화책 삽화 같은 풍경도 지겨워지기 마련이었다. 나중에 전출신청 해볼까, 관공서 인간들 태도가 별로 맘에 안 들어서 가기 싫은데. 



레너드는 목도리를 잘 여미고 삽을 들어다가 창고로 가져갔다. 벌써 눈 치우는 일을 하게 된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사실 죽은 마당에 시간을 세는 게 의미가 없어서 레너드도 세길 포기한지 오래지만 말이다. 산 사람들 세계랑 무척 비슷한 듯 다른 이 동네라 여기도 일이 돌아가기 위해선 뭔가 시간 단위 같은 게 필요해서 산 사람들의 것을 똑같이 가져다 쓰긴 하지만, 레너드는 그냥 눈 치우는 일을 하는 블루칼라였으므로 딱히 날짜가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냥 해가 지면 일하고, 해가 뜨면 퇴근하면 되었으므로.



레너드가 생전 가진 직업은, 이 동네에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간혹 아프기는 했지만, 심각하게 아픈 일도 사실 없었고, 또- 좀 뭣하게 들리긴 하지만, 이미 죽은 마당에 좀 아프다고 뭐 달라질 일도 없고 하니까. 그래서 레너드는 매일 눈 내리는 온도와 습도를 맞추기 위해 기상청에서도 일해보고, 친구가 도와달라 하여 크리스마스대책본부에서도 일해 봤지만, 결국 눈 치우는 일에 정착했다. 뭐 할만 했다. 의사치고도 피지컬이 좋고 힘도 셌던 그였으니까. 어찌 보면 단순해서 편했다. 맘 아픈 일도 볼 일 없고, 그로 인해 눈물 지을 일도 없었다. 그래서 레너드는 자신의 일에 꽤 만족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안 그래도 날짜 감각이 없어지는 이 동네에서- 정말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지나가게 되는 게 허다했다. 하지만, 이 조용하고 보이는 거라곤 흰 눈밖에 없는 동네에서도 생기가 돌고 시끌벅적해지는 시기가 있었다. 망할 크리스마스말야, 그래. 레너드가 괜히 입김을 후 하고 뱉으며 생각했다. 명절들 중에서 크리스마스는 이 동네 담당이니까. 괜히 반짝반짝하는 불빛이 더해지고 즐거운 노래들이 흘러나오니 마음이 들뜰 법도 한데,하지만 레너드는 크리스마스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의미로다 말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였다. 독신남인 레너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냥 술이나 좀 마시고 tv에서 해주는 특선영화나 몇 편 보다가 자고, 또 밤에 일어나서 눈이나 치우면 그만이겠지만. 친구랍시고 하나 있는 짐은 이런 날 더 바쁘고, 얼마 안 되는 인간관계의 사람들도 뭐 각자 바쁠 테니... 그래, 와인이나 한 병 사가자. 마시고, 실컷 잠이나 자지 뭐, 제기랄.




레너드는 새벽의 조용한 거리를 걸어 리큐어샵으로 향했다. 그러나... 망할! 내 근무시간을 생각을 못 했네.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리큐어샵을 보면서 레너드가 망연자실하게 하 하고 한숨을 뱉었다. 어제 미리 사두었어야 했는데. 편의점에 가면 맥주 따위야 살 수 있겠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슨데, 맥주는 좀. 결국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게 된 레너드는 내 팔자에 무슨, 잠이나 자자, 하면서 입맛을 쩝 다시고는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집 안은 온기 하나 없이 추워서, 레너드는 코를 훌쩍이며 벽난로에 불을 피웠다. 전통을 고수하는 이짝 동네라, 분명 살아생전엔 불 직접 피워야 하고 재 날리는 이것보단 편리한 뭔가 있었던 거 같은데, 어떤 것들은 끝까지 기억이 잘 남지만 어떤 것들은, 뭐 기억이 희미해져서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장작더미에 불이 잘 붙은 것을 보고, 레너드가 스토브에 물을 올려 끓인다. 차라도 한 잔 마실 셈이었다. 차를 한 잔 마시면 몸이 녹겠지, 그리고 데워진 물로 후딱 씻고, 자고 일어나면- 크리스마스도 끝나있겠지. 그거면 되는 거 아니겠어?















덜그럭. 






“!”



무슨 소리지? 레너드의 귀가 쫑긋해진다. 이 좁아터진 집에 저 말고 누가 또 있겠느냐만, 뜬금없이 들려오는 인기척에 레너드가 주방에서 나와 거실을 향한다. 여기야 워낙 선하게 살아온 사람들만 올 수 있는 곳이니까 별 나쁜 일이라곤 있기 어렵겠지만, 혹시 알아? 갈수록 세상에 흉흉해지니 여기도 결국은 변해버릴 지도 모른다고! 





..... 레너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나간 거실에는, 아니나 다를까, 대관절 어디에서 들어온 건지 모를 성인 남자 하나가 벽난로 앞에 서서 어깨와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있었다. 세상에, 진짜 이제 이 동네도 안전하지 않은 거야? 




“아.”



레너드가 뭐라도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하다못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옵션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두커니 선 레너드를 발견한 침입자가 아, 하며 레너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다. 레너드는 대체 저 시커먼 옷을 입고 선 날씬한 남자가 뭐하는 인간인지 몰라 벙찌고 서있는데, 이상하게도- 저 미소가 무척 낯이 익었다. 난생 처음 본 사람이지만, 무척 익숙하게 느껴지는 미소. 더 나이 들고, 성숙해졌고, 이번엔 치아도 모두 예쁘고 고르게 잘 나있지만, 이미 예전에 본 적 있는 그 미소.




“맞게 왔네요- 드디어 찾았다.”
“... .....누구..”
“나예요, 아저씨. 기억나요?”
“.......”




그렇게 말하고, 그는 뒤에 맨 백팩에서 질 좋아 보이는 와인 한 병과 납작한 무언가를 꺼냈다. 빛바랜 따스한 붉은 색 배경과 턱시도를 입은 푸른 눈의 고전적인 미남이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담긴 LP커버. 레너드 맥코이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 목소리와 노래를 떠올렸다. 자신이 정말 좋아했던, 크리스마스라면 항상 함께 했던 그 로맨틱한 노래들. 그리고 연달아 떠오르는 것은- 어쩐지, 발아래를 빙빙 도는 금색 강아지와 앞니 하나가 없던 미소를 짓던 작은 꼬마였다. 














“아저씨.”



키가 훌쩍 큰 어른이 되어버린 요한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착하고 귀여운 꼬마였었나요?”






레너드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리자, 요한도 마찬가지로 웃음을 터뜨리며 와인과 바이닐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레너드에게 다가왔다. 더 이상 꼬마가 아닌 요한은, 레너드의 무릎이 아닌 허리를 끌어안고, 레너드의 가슴에 뺨을 기대왔다. 잠시 놀란 기색을 보인 레너드는, 그러나 그런 요한을 마주 끌어안고 요한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고마워, 산타.”
“..... 고마워요, 아저씨.”







메리 크리스마스. 
아저씨도, 메리 크리스마스.
















-




예정되어있던 대로... 요한은 강아지 앤디를 선물 받은 크리스마스를 끝으로 꼬마천사가 되었고... 윈터원더랜드에서 어른의 모습으로 지낼 수 있도록 허락받은 때가 되자마자 정말 산타가 되어 이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할 수 있게 됨. 레너드의 말과 다르게, 레너드를 잊지 못한 요한은 바로 그 길로 레너드가 원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억해내 와인과 앤디 윌리엄스의 바이닐,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어 드디어 레너드의 앞에 나타남.






손목 안 시리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낼 수 있게 된 레너드 맥코이 축하합니다............




대사 직역이라 무진장 맘에 안 드는 거 있는데 나는 빡대가리기도 하고 그냥 무지렁이라 수정 없이 백업 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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