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보자.. 식료품은 다 산 것 같고. 세제, 다우니, 그 다음은.."

"다니엘, 그런데 침대는 어디서 사 ?"

"침대? 그건 장난감 코너에서."




장난감 코너?

의외의 대답에 성우가 뒷목을 긁었다. 침대를 사는데 왜 장난감 코너에서 사지. 시몬스 침대나 에이스 침대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 하고 물어봤더니 크캬캬 하고 웃더니 따라와보란다. 카트를 끌고 앞장서는 다니엘을 따라가면서 성우는 계속 두리번거렸다. 아니 얘는 오늘 처음 이 마트에 와봤을텐데 지리를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마트에 많이 가봤나? 조카 크리스마스 선물 사줄 때를 빼고는 장난감 코너에 와본 적이 없는 성우가 온갖 장난감에 (특히 건담 프라모델 PG급) 시선이 빼앗길 때쯤 갑자기 멈춰선 다니엘의 등에 쿵 하고 코를 박았다. 




"아얏, 다니엘, 말도 없이 서면 어떡해! ..어라?"

"여기, 여기서 고르면 돼."




성우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귀여운 토끼라든지, 고슴도치라든지, 고먐미라든지, 그런 주먹만한 인형들이 모여서 집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고 있는 장난감 세트였다. 여기서 잔다고?! 놀라 소리를 빽 지르는 성우에 어깨를 으쓱한 다니엘이 태연히 대답했다. 




"작은 상태로 자면 되지 뭐. 잘 때는 그게 편한데."

"그래서 여기서 잔다고? 이 작은 인형 침대에서?"

"뭐.. 너무 작아보이면 저 뒤에 미미공주 인형 침대도 있긴 한데.. 그건 내가 너무 남사스러워서"




그 소리에 고개를 휙 돌려 미미공주 바비인형 진열 코너를 바라본 성우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갔다. 그..그래 저렇게 침대 프레임은 연핑크  이불커버는 핫핑크 침대 프레임 한 가운데에는 하트 모양으로 보석이 박혀 있는 인형 침대는 매우.. 내 취향이 아니기는 하다. 빠르게 고개를 돌린 성우가 눈 앞에 펼쳐진 아기자기한 가구들의 향연에 입을 헤- 벌리고 쳐다봤다. 우와, 다니엘.. 종류 진짜 많다. 




"나는 이거면 돼. 이 침대. 딱 맞을 거 같은데"

"어어.. 이거 싱글용인거 같은데. 여기 부부용 침대 있네. 기왕 사는 거 좀 더 큰 거 사"

"뭐, 그러지. 여기 딸려오는 인형은 필요없는데."




자신이 몸을 누일 침대라서 그런지 심각한 표정으로 뚫어지게 박스를 바라보는 다니엘의 모습에 성우가 살풋 웃음이 샜다. 두 개의 박스를 들어 비교하면서 꼼꼼히 디테일을 따지는 (이건 이불이 면이네.. 이건 마무리가 레이스로 되어있고) 다니엘에게서 고개를 돌려 진열대를 바라본 성우는 곧 끝없이 이어지는 실바니안 패밀리의 세계관에 푹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이걸로 하자. 성우 나 다 골랐다. 성우..?"

"다니엘! 식탁은 안 필요해? 밥그릇은?  다기는 ? 책상은? 차는???"




박스 하나를 내려 놓고 야무지게 하나를 쥔 다니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일고여덟 개의 박스를 들고 눈을 빛내고 있는 성우였다. 다니엘, 여기 너에게 필요한 게 전부 다 있어!! 이걸 봐!! 딱 너 사이즈야!! 네가 이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 얼마나 귀여울지 진짜 상상도 안 된다! 이 세트는 주방 세트인데, 여기 접시랑, 포크랑 나이프랑 있어! 여기에 밥을 넣어서 먹는거야 ! 이거 사자, 사자, 다 사자!!!!!

이 인간.. 약간 또라이 기질이 있구만. 발걸음을 주춤하면서 잠시 뒤로 물러난 다니엘이 이내 한숨을 폭 쉬며 성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구요. 딱 잠 잘 것만 필요하답니다"

"히잉.. 그래도 이렇게 귀여운데.. 조금만 더 사면 안돼? 아! 너 욕조 필요하다고 했었잖아!"




앗차차.. 그런 말을 했었지. 그냥 나갈 핑계를 만들려고 한 말이었는데 언제 기억한건지 욕조를 찾아 눈을 빛내는 성우를 보면서 다니엘이 픽 웃었다. 뭐.. 날 위해 저렇게 해준다고 하니까 조금 기쁘기도 하고. 이내 욕조가 들어간 욕실세트를 집어들고 오오오 감탄을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는 푸하하 웃어버렸다. 아니 욕조 하나만 있으면 되지 변기라든지 세면대라든지 목욕 용품이라든지 그런건 필요 없거든요?! 아, 목욕 용품에는 오리도 있구나. 흠.. 이 세트는 조금 갖고싶기도.. 




"이거 사면 안 돼? 응? 이거 사자. 사자 다니엘~"

"아하핫, 알았어. 사주면 나야 고맙지."

"우와~ 다니엘, 이거 봐! 이거 이름은 '불이 들어오는 이층집' 이래!!!! 다니엘 집 갖고 싶지 않아? 너만의 집! 내 집 마련의 꿈!!!!!!! 이거 이렇게 문 닫으면 네가 여기 쏙 들어갈 수 있는거야! 이층집인데 계단도 있어!!!"

"아하핫, 이층집 필요없어요 ! 이거 얼마인지 안 보여요?"




디스플레이 용으로 진열된 이층집을 뜯어가기라도 하려는 건지 진열 박스에 바짝 붙어서는 눈을 빛내는 성우를 보면서 다니엘이 하핫, 웃고 있는 사이 옆에서도 종알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저거 봐. 장난 아니다. 사줄까?"

"됐어. 저거 말고 캠핑카 사줘."

"캠핑카.. 윽.. 돈 모아서 사줄게"




옆에서도 실바니안을 보고 있었는지 들려오는 소리에 시선을 그 쪽으로 둔 다니엘은 깜짝 놀라 순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의 어깨 즈음에 동동 떠있는 갈색 머리의 홍차왕자. 그 쪽에서도 다니엘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니엘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년은 다니엘의 시선이 정확하게 홍차왕자를 향하고 있는 것에 당황한 듯 했고, 홍차왕자는 여기에서 다니엘을 만날 줄 전혀 몰랐다는 듯 튀어나올 듯 댕그란 눈을 하고 있었다. 




"다니엘 ?!"

"지훈이?!"




성우가 리라고 프린스 배배 군의 홍차왕자, 지훈이를 마주친 순간이었다. 



불이 들어오는 이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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