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그의 목을 비트는 환상을 보았다. 그는 여전한 미소로 내가 하는 행동을 자애롭게 용서라도 하는 양 그렇게 그저 묵인했다. 목을 쥐는 감촉이 생생했다. 손가락 사이로 들러붙어 오는 살점이나 손바닥 아래에서 일렁이는 근육의 움직임 같은 것들. 올라가는 체온에서 떨어지는 체온까지. 총기 어렸던 눈동자가 예쁘게 감기고, 줄이 끊어진 인형마냥 축 늘어진 팔이나 머리가 내 움직임에 덜렁이는 모습까지도 방금 눈앞에서 본 것처럼 생생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안다. 감히 내가, 어찌 그에게 손을 대며 해를 가할 수 있을까.

 

01.

 확실한 것은 그것이다. 더 이상 밖으로 통할 길이 없다는 것. 완전히 갇혀버린 공간 안에 어른은 없었다.  다들 꼭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두운 하늘은 시간이 지나도 밝아질 줄을 몰랐다. 처음 잠시간은 소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저 조용했다. 적응이나 한 듯 교실의 불을 켜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그저 무엇인가를 기다리다 이내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들어 무리가 만들어졌다.

 좁은 교실에서는 먼저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 유리했다. 암묵적으로 그곳이 자리를 잡은 사람의 영역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질서가 없는 곳에서는 힘이 곧 법이었다.  덩치가 좋거나 평소 거칠게 행동하던 사람의 영역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커져갔다. 조용했지만 소란한 날들이었다.


 하늘이 밝아지는 법은 없었다. 시계바늘이 12라는 숫자를 몇 번이나 지나갔지만 하늘에 별무리는 여전했다. 며칠이 지나는 것으로 자연히 내부에서 살아가는 룰이 생겨났다.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선 몸을 따뜻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반마다 난로를 하나씩 설치하기 시작했다. 교실 정 중앙에 자리한 난로는 상당한 구식으로, 건물 내부의 난방장치가 고장 난 것이 확인된 지금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불을 피우는데 쓰일 재료가 남아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나서는 전등도 힘이 다 한 모양인지 더 이상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다시 창고를 뒤지는 수밖에 없었다. 준비라도 해 놓은 양 발견된 양초더미와 회중전등에 의해 어두웠던 교실들은 다시 밝아졌다. 전보다 어두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교실이 자리한 건물이 기숙사와 이어져있기는 했지만 기숙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적었다. 차라리 모두가 함께 모여 있는 이곳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인지도 몰랐다. 춥고 어두운 방에서 혼자, 혹은 소수의 인원이 있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사람이 아직은 많았던 탓이다. 어쩌면 벌써 게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02.

 그는 벌써 너 댓 명이 모인 그룹에 속해 있었다. 교실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친구들과 간간이 대화를 하거나 했다. 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일도 없었다. 이해한다. 내가 감히 그와 말을 섞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동떨어진 존재였다. 오직 나만이 그를 알고 그를 찬양해 마음에 품은 것뿐이었다. 그는, 나를 알지 못한다.

 

03.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 고갈되어 가는 그것. 빠져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면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은연중 깨달았다. 늦건 빠르건, 모두 그 사실을 알았다.

 

04.

 결여되어야 한다면 약한 것부터 사라져가는 것이 이치였다. 지능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처럼 꼭 내가 그러했다. 더 이상의 배급은 없었다. 줄일 수 있는 입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죽기를 바라는 간절한 눈빛에는 그저 견뎌내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었다. 아직 따뜻하고 밝은 공간 바깥으로 내쳐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다수 속에서 개인은 이토록 무력했다. 내 편이 전혀 없었다. 아니, 그 만은-. 아니. 그마저도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를 알 턱이 없었고 당연히도 내가 사라지는 편이 결과적으로 그가 살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결국 무리 짓게 되어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약하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못했지만, 결국 나를 포함한 도태되어버린 무리들이 그 나름대로 모이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약자의 입장에서 내세울 것이라곤 상냥함과 동질감밖에 없었던 그들은 나에게도 알량한 관심을 보이며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물론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연명시켜 줄 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장담 할 수 없었다.

 

05.

 결국 급박해지면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조용히 노려보기만 하는 것으론, 생존에 방해뿐인 눈에 거슬리는 무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가해지는 폭력은 전과 비슷한 것이기도 했고 그보다 더한 것이기도 했다. 그저 참으면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몸이 회복될 시간이 부족한 것은 문제였다. 폭력이 가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다시 개인이 되었다. 가만히 묵인하는 눈들은 타인일 뿐이다. 비슷한 자리에 있다 해도 누구 하나 폭행을 가하는 자들과 다른 심정일 리가 없었으므로 그들은 침묵으로 동의해 힘을 실어주는 것일 터였다. 집단 앞에 개인은 무력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는 다시 이를 악 물고 피를 내어주며 인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언젠가 끝날 것이란 걸 안다. 그래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다행스러운 점을 찾으라면, 그만은 집단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무관심한 눈동자들 중에 그의 총명한 눈동자는 없었다. 매번 그가 없는 곳에서만 폭행이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눈동자가 저 무리들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를 느낀다. 나에게는 이미 신앙과도 같은 그마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저 버티는 일 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의 목을 조르는 환상이 내려감은 눈꺼풀 뒤에 잔상처럼 잠시 자리했다 사라졌다.

 

 온 몸이 피곤해 눈꺼풀을 들어 올릴 힘도 없었지만 눈앞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주인은 확인해야 했다. 바로 코앞에 서 있는 사람이, 적어도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사람인 것인지 아니면 정의를 구현하고자 직접 더러운 일을 자처한 강자인지에 따라 하잘 것 없는 삶이 계속될 수 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힘겹게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올리면, 아.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홀로 그리워 마다않던 그는 꼭 천사처럼 그 곳에 서 있었다. 총기어린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밤하늘 아래에 그저 서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정말로 신성하게 보였다. 별빛에 반짝이는 윤기 좋은 머리칼이 환상의 잔재 속 그와 겹쳐보였다. 가정집 문지방 너머의 어둠 속에서 가만히 서 나를 올려보는 그의 입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한 손으로 인형 두 개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그가 상냥한 미소로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부유하는 시선이 기어코 맞부딪쳤다.

 

“괜찮아?”

 

 돌연 들려온 그의 목소리가 내 의식을 사로잡아 현실로 이끌어 내었다. 다정한 목소리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그의 입 꼬리가 환상 속 그처럼 동그랗게 말려 올라갔다. 나의 신. 나의 천사. 그저 혼자 찬양하던 존재가 자애로운 미소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손에 들려있는 음식물에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숭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앞에서 조금 더 조신하게 굴고 싶었지만 주린 배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받아 씹어 삼키는 모습까지도 그는 그저 지켜보아주며, 끝내는 다정하게 내 등을 토닥이거나 쓸어주었다. 그가 나에게 상처는 괜찮으냐 묻는 순간 나는 그 한마디로 구원받은 것 같았다. 그가 나의 편이라는 것을 확인 한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밝아지는 법을 잊어버린 밤하늘이 빛으로 충만한 환상까지 본다. 비로소 나는 처음으로 개인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는 다정했다. 살뜰히 내 상처를 하나하나 확인했고 내 손을 꼭 잡고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자상한 미소. 인자한 미소. 이런 것 밖에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고 하는 말에는 고개를 저어주고 싶었지만 긴장한 몸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도태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이유가 나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그에게 괜찮다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라면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얼굴에 만연한 미소. 나에게만 특별히 지어주는 상냥한 그 미소는 필시 그리도 동경하던 애정이 담뿍 들어있을게 분명했다. 나의 신이. 나를.

 

06.

더 이상의 폭력은 없었다. 찰나이거나, 영원이었다.

 

07.

 예쁜 노란색의 종이주머니에는 파란 리본도 달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선물포장이었다. 한쪽으로 치워져 있던 내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네 것이라 일러주었다.

 단번에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온전한 내 편. 오직 나만을 생각 해 내어주는 호의는 그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떠올릴 수 없었다. 가슴이 터질 것 만 같았다. 저 속에 무엇이 들어있던, 나는 그에게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것을 손에 쥐었을 때 말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종류의 괴롭힘은 이미 이곳에 갇힌 뒤로 지겨울 정도로 겪었다. 내 것을 가로채가는 무자비한 손길에 차마 저항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지능따위 없는 이 곳에서는 약한 것은 죄악이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나의 죄였다.

 다만, 그가 나에게 준 '무언가'라는 인식은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내 것’이라는 감정은 전에는 느껴 본 적 없는- 아니, 느껴 본 적 없을 터인 감정이었다. 때문에 온 몸을 강하게 휘어잡은 감정이 내 것을 지키려는 보호본능이나 소유욕 같은 것이란 걸 내가 알 턱이 없었다. 다만 그가 나에게 준 것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내 것을 앗아간 사람에게 손을 뻗었다.


 강한 힘은 아니었다. 그들이 내게 하는 것처럼 폭력을 행사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고 고작해야 그 사람의 손에 들려있는 것에 조금이라도 닿으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지만 평소와 다른 그 행동이 무언가의 도화선이 된 것은 확실했다.

 내 것이라 일러주었던 학생 하나가 나를 대신해 그것을 가로채 주었다. 유치하게 굴지 말라며 놈들에게 핀잔까지 주었다. 덕분에 노란 종이주머니는 나에게 돌아 올 수 있었다. 주머니를 쥔 손이 덜덜 떨렸다. 파란 리본을 끌러내는 찰나의 그 시간이 꼭 영겁처럼 길었다.

 

 안에서 나온 것은 파란색의 조그만 유리구슬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것이 내 손 위에 떨어지자마자 나는 눈을 깜박였다. 찰나의 시간이 마치 영겁처럼. 필름을 잘라낸 영화를 보듯 눈앞에서 재배열되는 장면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꼭 늪에 빠져드는 것처럼 무겁던 몸이 이내 중력을 거스르듯 붕 떠올랐다.

 기억의 편린을 본다. 보았다는 표현보다 느꼈다는 쪽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결여와 기이함을 인지하는 과정은 기억이 모여 떠오르는 것에서부터 일어났다. 아주 빠른 시간 안에, 흩어졌거나 파묻혀 사그라들던 기억들이 한데 뭉쳐 끊임없이 추가되기만 했다. 아주아주 불쾌한 작업이었다. 예정조화에서 벗어나려는 발악이라는 것을 얼핏 깨달았지만 연이어 그것이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떠올랐던 몸은 다시 땅을 딛는다. 손 위에 놓인 노란색의 종이주머니는 아직 완전히 열리기 직전이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이 유난히 거슬렸다. 그래도 기어코 삼켜내었다. 나를 도와줬던 학생의 얼굴을 한 번, 그리고 내 손 위에서 이제 리본이 전부 풀려 안쪽 내용물을 보이려하는 종이주머니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떠오른 건 그의 얼굴이라 이내 체념하는 것이다.


 파란색 유리구슬의 촉감이 손바닥에 느껴지자마자 그것은 제 형태를 산산조각 내며 폭발했다.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나 먹혀들 정도의 위력이니 내 앞의 학생은 휘말릴 리 없었다. 충격으로 밀린 몸이 툭 튀어나온 창틀에 부딪쳐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구슬 자체는 그럭저럭 견딜만한 충격이었지만 내 주변을 둘러싼 ‘단체’에 저항할만한 의욕은 없었다. 악의나 살의가 내 몸에 쏟아지는 것도 이제는 익숙했다. 그들도 벼랑 끝에 몰린 것일 터였다. 날아드는 구슬이나 의자, 책상 따위를 맞아 생기는 고통은 잠시로, 정신이 흐릿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사그라들었다. 어딘가 터졌는지 허공에 흩날리는 핏방울이나 충격에 흔들리는 내 몸뚱이도 꼭 다른 사람의 것 같았다.

 좁아지는 시야 속에서도 그의 얼굴을 보았다.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만은 내 편이라는 묘한 믿음이 있었다. 내 시야에서 잠시 스쳐지나갔을 뿐인 그 날부터 그랬다. 그리고 결국 그는 내 일방적인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닫힌 시야 사이로 네가 잠시 아른거리다 사라졌다. 어두운 시야 속 폭발음이나 구타하는 소리가 잠시간 들렸으나 이내 그것도 작아져 들리지 않게 된 이후 나는 내 끝을 실감했다. 멎어가는 숨을 느낀다. 그것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기만을 바랐다. 총기 어린 그 눈이 보고 싶었다.

 

*

 

 번쩍 뜨인 눈꺼풀에 한숨처럼 숨을 내쉬었다. 컴퓨터가 돌아가는 것 같은 소음을 내 머리에서 듣는다. 그것은 얼핏 들으면 기계음 같기도 했고 바닷가 모래사이로 파도가 스며드는 소리 같기도 했다. 뇌 속에서 침전물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소리가 잦아들면 그런 생각도 빠르게 침전되어 사라졌다. 불쾌한 꿈을 꾼 것 같았지만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환상을 본다. 그것은 형의 목을 조르는 내 모습이기도 했고 내 배를 가르는 형이기도 했다. 폭발음이나 구타하는 소리 같은 것이 희미하게 들려오기도 했지만 눈을 세 번째 깜박이고 나서는 그 마저도 산화되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희미해져버렸다.

 

 형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막 잠에서 깨어나 무거운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고는 형의 목소리를 따라 형을 찾아 나섰다. 적막한 어둠이나 침묵을 나 혼자 버텨내긴 힘들었다. 형이나 하다못해 인형이라도 곁에 두어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인형은 진즉에 형이 정리해갔으니 내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형이 전부였다. 혈연은 아니었지만, 이 집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내 편이었다.

 문지방을 지나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막 전화를 끊은 형은 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몸을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어둠 속에서도 총기 어린 눈동자가 선명했다. 꼭 스스로 빛을 내는 것 같은 두 개의 눈동자가 반쯤 휘어 들어가도록 접어내며 형은 예쁜 얼굴로 나에게 웃어보였다. 그리곤 이내 상체를 조금 수그려 나를 꼭 안아 등을 토닥이는 것이다. 나쁜 꿈을 꾸었냐고 묻는 목소리가 다정하고 상냥했다.

 

“걱정할 것 없어. 이번엔, 꼭 지켜줄게.”

 

 나를 꼭 껴안으며 형은 그렇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고 몇 번이나 되뇌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잠에 빠졌다.

 

“아무것도 걱정 할 것 없어.”



그는 그렇게 말 했다.

 

 

 



00-0.

 아이는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나 이외의 사람과 제대로 대화 해 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돌보던 당시에도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입을 꾹 다물던 아이였다.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도, 대화를 나눠줄 상대도 없었다.

 우리 가족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어린 것의 얼굴. 기억 속의 그것은 그런데도 나를 쫒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뢰를 담아 나와 눈을 맞추고는 했다. 아무도 없을 때에는 내 옷깃을 잡거나 직접 나를 불러 말을 하기도 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유아들이나 입에 올릴 문장구성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안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것들을 생각하고 느껴도 입으로 뱉어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그가 하는 말은 허락을 구하는 말이 잦았다. 먹어도 되느냐는 물음이나 방에서 나가도 괜찮으냐는, 겨우 그 정도의 물음이 그나마 신뢰 속에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의 전부였던 듯 했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아이였다. 가족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어린 얼굴. 그것을 볼 때마다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차마, 웃어 보이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 일그러트린 그 얼굴을 미소라고 부를 수 있다면.

 

 학교라는 단체 속에 들어와서 그가 도태되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억까지 희미한 그는 상당히 낯을 가렸다.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그렇게 겉돌았다. 폭력이 가해져도 반항할 줄을 몰랐다. 그저 당하고 있으면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몸이 익힌 것 같았다.

그를 집에서 보호하고 있던 그 때에도 그는 결코 반항하는 법을 몰랐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없던 일로 하자던 내 스스로의 다짐을 깨고 또다시 그를 도왔다. 그의 앞에 직접 나서서 그를 돕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고 긁어모은 용기로도 적극적으로 그를 돕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고작해야 그의 상처를 살피고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 외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길만 잡아주면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적당한 생각도 있었다. 언제든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했던 주제에 우습게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는 것은 불가능했다. 죄책감과 양심이 그를 그저 둘 수 없도록 나를 그렇게 괴롭혀대었다. 몇 번이나 그가 내 목을 조르는 꿈을 꾼다. 목에 닿는 손이 생생해 그때마다 나는 눈을 감은 그대로 그가 하고싶은 양 그저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라도 그가 구원받는다면, 차라리. 작고, 사랑스러운 그 아이가. 가엾은 어린 얼굴이. 진짜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가.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00-0.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양이라도 오듯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나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는 상냥한 의도에서였다면 아마도 나와 그 아이는 평범하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좋은 형제사이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보다 서 너 살이 어려보이는 아이였다. 작고 조그만 아이였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잘못된 방향으로 엇나갔을 뿐인 그 진의의 알맹이는 결국 애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만족이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일 뿐이라는 것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얼굴로 나를 형이라 부르는 그 조그만 아이의 몸에는 허울 좋은 여러 변명들이 담겨있었다. 그 죄악의 근원이 나라는 것 역시, 일부러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00-0

 세상에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들이 생겨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일부는 그것을 초능력을 지닌 수퍼히어로라고 불렀고 일부는 그것을 악마나 괴물이라고 불렀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없는 아주 특별한 힘이었다.

 큰 힘은 큰 위험을 동반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난세에나 나오는 영웅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모두 괴물이 되었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을 가진 소수의 아이들은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었고 그저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괴물에 불과했다.

 

 평온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괴물의 소거에 찬성한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울부짖었지만, 그들은 꼭 괴물들마냥 소수에 불과했다. 괴물의 제거는 막을 수 없었다.

 

00-0

 나라의 중요한 자리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나를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좌절했을지 충분히 상상 가능했다. 중력을 거스르며 허공을 헤매는 어린 나는 괴물 이외에 무엇도 아니었을 터다.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쓰지 않았다면. 그와 똑같은 얼굴로 그의 정과 유전자에 호소하지 않았다면.

 

 실력과 정보가 겸비된다면 대응은 의외로 간단했을 것이다. 거기에 발언권을 가질 힘까지 갖춰졌다면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개인으로서는 정점이었다. 나를 살리기 위한 삐뚤어진 길을 내딛는 첫 걸음이었다.

 

-아이들이 적당히 자랄 때까지 기다립시다. 머리는 덜 자랐지만 힘이 통제되는 그런 나이까지. 우리들이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되는 아주 간단하고 깔끔한 방법이지요. 그저 따로 격리시켜놓고 스스로 자멸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어려울 건 없습니다. 조금만 등을 밀어주면 알아서 뛰어내릴 겁니다.-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찬성했다. 그들은 아주 선량하고 매우 도덕적인 사람들의 집합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라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번 몇 년의 시간동안 아버지는 나를 세상에서 꼭꼭 숨겨놓고 어떤 기계의 연구개발에 몰두했다. 간단히 말하면 능력을 옮기는 기계였다. 인간의 껍데기 속 숨어있는 괴물을 끄집어 낸 뒤 그것을 다른 껍데기 속에 쑤셔 박는 그런 기계.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실험이 시간 안에 성공했다는 데에 있었다. 아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가엾이 여긴 신의 도움이었는지 저를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웃는 괴물의 도움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00-0

 내 대신 괴물을 뒤집어 쓴 아이는 예정된 날이 오기까지 연구실을 겸해 마련된 집에 감금당했다. 무료하게 부유하거나 시간에 맞춰 실험대에 오르는 일상이 그 아이의 전부였다. 이름조차 없는 아이. 그 날이 되면, 내 대신 괴물의 그릇이 되어 죽어버릴 아이. 나였던 괴물로 인해. 잠시 어린 얼굴을 차마 똑바로 마주 할 수 없었다.

 

00-0

 아버지 몰래 아이에게 인형을 가져다주었다. 그저 방에서 부유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보통의 아이처럼 놀았다. 인형에게 말을 하거나 인형을 흉내 내어 상상놀이를 했다. 아이는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일그러트린 얼굴을 미소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아이에게 미소 지어 보였다. 죄책감이 들 때마다 몇 번이고 인형을 가져다주었다.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 말고는 다른 속죄의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를 도망시킬 용기는 없었으므로 그저 살갑게 말을 걸거나 아이를 돌보아주었다. 나를 형이라 부르는 아이를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내가 여전히 괴물인 탓이었다. 정말로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00-0

 어떻게 속죄한다 한들, 네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00-0

 아이는 예정대로 내 대신 수거되었다. 사람들은 그 곳을 학교라고 불렀다. 동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세워진 단단한 건물이었다. 안에서 어떠한 일이 생겨도 바깥 쪽에 해가 가지 않도록 단단한 벽과 돔을 설치해두었다고 했다. 정해진 날이 오면 바깥과 차단시키고, 그저 사라지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었다. 한정된 식량만 놓고 보더라도 그 안이 어떤 아비규환이 될 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안타까워하거나 일말의 죄책감을 느낄 사람들을 위해 학교는 사람들이 사는 곳과 동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쉽게 잊을 수 있는 거리였다.

 

00-0

 아이가 찾아왔다. 어떻게 학교 밖으로 나왔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양 손을 피에 물들인 채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나를 노려보았다. 형이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내 목을 조르는 손에 차라리 구원을 느낀다. 아이를 보낸 이후로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위선이라 지적해도 차마 할 말이 없었다. 가족 중 누구와도 닮지 않은 이질적인 그 얼굴.

 

00-0

..꿈?

 

00-0

 방에서 부유하는 어린 아이가 어린 나를 향해 눈을 부볐다. 형아. 하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천진하기만 했다.


00-0

 부작용. 혹은 처음부터 내 안에는 두 마리의 괴물이 존재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괴물이다. 아이가 희생된 보람도 없이, 나는 아이와 똑같은 괴물이었다.

 

00-0

뫼비우스의 띠. 그렇다면 차라리, 너를.

 



방에서 부유하는 네가 세 번째로 눈을 떴다.



쓰고 싶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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