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ento. 

Opus 1. No. 2.













 김태형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전정국 교수와의 연결고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OT 전날까지 되감아 보아야 한다. 전정국 교수의 존재에 대해 김태형이 처음으로 알게된 날이 바로 OT 전날이기 때문이다. 


 막상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N대 피아노과 18학번' 이라는 제목의 단톡방에 초대받은 뒤에야 태형은 N대 피아노과 입학이 비로소 실감 났었다. 단톡방에 들어간 뒤로 전보다 훨씬 바빠진 태형의 휴대폰은, OT 전날에는 급기야 초당 3회씩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요란스러운 알림음을 내고 있었다. 

 

 "야, 김태형! 너 카톡 계속 오잖아. 무음으로 좀 돌려놓던가. 저렇게 열심히 울리는데 확인을 좀 하던가, 어? 형님이 독서중이신데 집중이 안되잖아."


 결국 태형의 옆에서 배를 깔고 만화책에 몰입해 있던 지민이 볼멘 소리를 한다.


 "아, 미안. 미안. 내일이 OT라서 이런가보다."

 "야. 나도 내일 OT거든. 니네 과는 뭔 말이 그렇게 많아."


 태형은 그제야 휴대폰을 확인한다. 아이콘 옆의 빨간 동그라미에 '54' 라는 숫자가 떠있다. 화면을 가득 덮은 메시지를 확인하려 태형은 분주히 스크롤을 내린다. 그리고, 읽지 않은 메시지 54개 중 51개는 대략, 이런 내용들이었다. 


 [내일 드디어 전정국 교수님 실물 영접하겠네요]

 [진짜 저 떨려서 잠도 못잠 저 2년전부터 전정국 교수님 팬이었어요]

 [전 5년이요]

 [사실 저 전교수님 때문에 N대 지망이었던건데.. 아직도 안믿겨요]


 전정국 교수라는 사람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술렁이는 N대 피아노과 18학번 그룹채팅방을 지켜보면서도 태형은, 그저 아, 그런 대단한 교수님이 있나보다, 정도로 생각을 갈무리했다. 뭔지 모르지만 대단하고, 왜인지 모르지만 이미 인기가 많은 어느 교수에 대한 정보 수집에까지 신경쓸 여유가, 태형에게는 없었다. 태형이 피아노를 계속 할 수 있는 가능성은 피아노를 그만두어야만 할 빼곡한 이유들에 비하면 너무도 희박했다. N 대학교 피아노학과 입학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태형은 피아노도, 대학 입학도, 상경도 반대하며 등록금을 단 한푼도 지원해주지 않은 부모님의 굳은 얼굴을 떠올리며, 자신이 여기에서 오로지 ‘살아남는’ 데에만 얼마나 집중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되새긴다. 그러니 아무리 모두의 입에 설렘으로 오르내리는 중인 본인의 과 교수라고 해도 태형에게는 그저, 앞으로 있을 4년간의 대학 생활에서 마주할, 자신과는 아마도 많이 다를 대부분의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피아노과를 포함한 N대 음악 대학의 총 7개 단과, 총 178명의 신입생들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출발하기 위해 N대 음대 건물 앞에 모였다. 처음 보는 얼굴들 사이에서 흐르는 어색함이 뽀얀 입김이 되어 아직 겨울 냄새가 남아있는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그래도 앞으로 같이 지내야 할 학우들이랍시고, 둘씩 짝을 지어 버스를 탈 때 쯤엔 먼저 말을 걸거나 서로 마주보며 웃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태형은 어쩐지 누구와도 어울리기가 불편해서, 혼자 버스의 맨 뒤쪽의 창가 자리로 분주히 걸음을 옮겨 얼른 두 귀에 이어폰을 끼워버렸다. 신입생들을 인솔하기 위해 함께 버스에 탄 선배들은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제법 그럴싸하게 사회자 흉내를 내며 자리에 앉은 신입생들에게 열심히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마이크를 넘기기도 했지만, 태형은 자신의 이름이 거듭 불리는 그 순간에도 모르는 척 입을 꾹 다물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캠퍼스에서 단체로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오리엔테이션 장소는 태형이 살면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의, 이름조차 생경한 어느 리조트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저 멀리 보이는 리조트의 전경은 왠지 한눈에도 고급스러워서 괜히 심장 한쪽이 간질거렸다. 드디어 나도 명문 N대 음대 소속이 되었다는 묘한 자부심에 여기까지 오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던 기억같은 것이 섞여, 그 자리의 신입생들은 초롱초롱하지만 어딘지 겁을 먹은 듯한, 누가봐도 저는 신입생이에요, 라고 쓰여있는 어수룩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거다. 김태형도 그 중 하나였다. 

 

 배정된 방에 짐을 풀고 학교 로고가 찍힌 단체 티로 갈아입은 학생들이 커다란 강당에 모였다. 무대 위에 걸린 ‘2018 N 대학교 음악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이라고 쓰여진 커다란 현수막이 신입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이 예닐곱명씩 조를 짜서 둥글게 바닥에 모여 앉자, OT의 사회를 맡은 피아노학과의 3학년 선배 한명이 마이크를 잡고 무대 위로 올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학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OT의 프로그램들이 준비된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동안, 태형은 이 분위기에 적응해 보려고 속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부유함이 새겼을 윤기로 빛나는 학우들의 모습을 마주하며 태형은 이 넓은 강당 안에서 어쩐지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민에게 연락을 해볼까 싶어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그만두었다. 아냐, 김태형. 기죽을 것 없어. 이제 시작인데 뭐. 잘 할 수 있어. 스스로를 응원하는 말을 속으로 주워삼키며 무대쪽을 응시하고 있는데, 사회자인 선배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자, 그럼 다음 순서는 피아노학과에서 특별히 준비한 깜짝 이벤트입니다. 올해도 역시 N대 음대의 명성을 빛내줄 신입생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들었는데요, 그 신입생 중 한 명이 나와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겠습니다.”


 선배의 그 멘트를 생각하지 못했던 건 태형 뿐만이 아니었나보다. 강당의 앞쪽에 자리잡은 피아노학과의 원들이 일제히 술렁였다. 뭐야, 깜짝 이벤트? 피아노 연주? 누가? 눈을 동그랗게 뜬 신입생들이 두리번거리며 서로를 살피는 가운데, 


 “깜짝 이벤트니까 지목도 랜덤으로 해야죠. 사실 같이 타고 오는 버스 안에서 계속 대답이 없길래 제가 너무 궁금해져서요. 김태형. 김태형군 여기 없나요? 있으면 손 번쩍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세요.”


 태형은 속으로 움찔 했다. 아니 속으로 움찔했다고 생각한건 태형 뿐이었나보다. 태형의 어깨가 위아래로 한번 들썩이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였는지, 같은 조 학우들의 시선이 태형에게 와서 꽂힌다. 아까 이름 김태형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얼른 일어나요, 옆에 앉은 학우가 태형의 귀에 속닥거렸다. 태형은 눈을 굴리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그렇게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던 김태형군이구나. 이야, 잘생겼다아! 자, 모두 박수 주세요. 우리 김태형군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줍시다!”


 마이크를 잡은 선배가 과장된 팔동작으로 태형을 가리키자, 사람들이 태형을 향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민망해서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고싶은 태형만큼이나 사람들도 어색한건지, 군데군데 빈 곳이 느껴지는 박수소리다.


 그래, 도망칠 수 없다면 맞서자. 하루에도 몇 시간씩 앞에 앉아있던 피아노다. 나 김태형이야. 나한테 피아노 빼면 남는게 뭐가 있어.

 태형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가 무대 위로 올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넓은 무대 한 가운데, 한눈에 보아도 이런 곳에 있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낡은 피아노를 보며 태형은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천천히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고, 가슴이 활짝 부풀도록 크게 한번 숨을 들이키고, 천천히 숨을 뱉으며 속으로 숫자를 5, 4, 3, 2, 1, 센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 태형의 버릇이다. 가장 좋아하는 곡을 치기로 했다. 쇼팽의 즉흥환상곡. 200번도 넘게 연습했던 곡이다.

 태형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흐르듯 움직이는 손가락,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운 선율. 이 멜로디가 흐르는 동안, 세상의 주인공은 김태형이 된다. 연주가 이어지는 내내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한 것 같다. 긴장은 했지만 실수는 없었다. 곡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태형은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의 빈틈도 없이 빼곡한 박수갈채가 강당을 메웠다. 박수 중간중간에 섞이는 휘파람 소리에 정신이 조금씩 현실로 돌아온다.


 “와, 역시 우리 피아노학과는 건재합니다. 신입생의 연주라기에는 너무 놀라운데요. 우리 김태형 학우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보내주세요!” 


 심지어 짓궂은 얼굴로 태형을 지목했던 사회자 선배의 얼굴마저도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다. 피아노에서 일어난 태형을 무대 중앙으로 인도하는 선배의 손길에 따라, 태형은 환호하는 청중이 된 학우들을 향해 깊숙히 허리를 숙였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박수소리가 참 포근하다. 무대에서 내려온 뒤에도 여전히 쿵쿵거리고 있는 심장을 꾹꾹 달래며 태형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와, 진짜 멋있었어요. 무슨 독주회 와있는 줄 알았네. 아, 아까 소개했지? 나는 조소진이라고 해. 태형아, 우리 이제 말 놓을까?”


 아까 귓속말로 태형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던 학우의 표정이 아까보다 훨씬 더 친근해진 것을 태형은 느낀다. 쑥스러운듯 웃으며 고개를 까딱, 하는 태형에게 주위에 앉은 모든 학우들의 시선이 다 쏠려있다. 그 순간 태형은, N대 음대의 스타였다.

 태형을 향한 놀라움의 시선들이 여전히 태형을 훑고 있는 동안, 어느새 술병과 1회용 잔들이 신입생들 앞에 놓여졌다. OT의 꽃, 술판이 시작된다. 태형이 속한 조의 술자리 화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김태형이었다. 


 “피아노 누구한테 배웠어? 장난 아니더라. 나 완전 깜짝 놀랐어.”

 “그치, 나도. 나도. 그정도면 거의 실기 탑으로 들어오지 않았을까?”

 “맞아, 아무튼 대단했어. 잘 부탁한다는 뜻에서 한잔 해!”


 다들 속으로는 진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화기애애한 관심에 태형은 이 곳에 와서 지금까지 느꼈던 막연한 불안함과 외로움을 잠시 옆으로 치워두었다. 학우가 정성껏 말아준 처음 마셔보는 소맥은 태형의 붕 뜬 기분만큼이나 달기만 했다. 오오, 생각보다 술도 잘 마셔, 태형이, 하는 추임새들을 들으며 태형은 잘도 꼴깍꼴깍 목으로 술을 넘겼다. 얼굴이 어쩐지 점점 뜨거워지고, 긴장은 어느새 사라졌다. 태형은 제법 편안해진 기분으로 오늘 처음 만난 학우들에게 방실방실 웃음을 흘렸다.


 "우리 태형이 웃으니까 더 잘생겼네, 그치?"


 술기운에 풀어져 샐샐 웃는 태형의 어깨 위에, 자신을 정승철이라고 소개한, 아까 사회를 보던 선배가 팔을 둘렀다. 그때 저쪽에서부터 누군가가 태형이 앉아있는 무리의 원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말끔하게 걸친 재킷이 참 잘 어울리는, 하얀 얼굴에서 어쩐지 빛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의 남자였다. 남자의 얼굴에 태형의 시선이 잠깐 머무는데, 태형의 옆에 앉아있던 사회자 선배가 태형의 어깨에 둘렀던 팔을 풀고 자리에서 튀어오르듯 일어섰다. 


 “전교수님!"


 ..교수님?


 태형이 상상하던 교수님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그 남자를 향해, 승철 선배는 참 공손하면서도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디 계시다가 이제 오셨어요. 이쪽으로 잠깐 앉으세요. 제 잔 한잔 받으셔야죠. 여러분, 인사해. 이 분이 바로 그 유명한 전정국 교수님이셔.”


 태형은 마치 상상 속의 동물을 처음 마주한 것 같은 기분으로 전정국 교수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태형이 앉아있는 곳에서 겨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전정국 교수의 모습은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전정국 교수구나. 

 김태형을 제외한 단톡방의 모든 학우들이 저마다 질세라 한마디씩 얹어대던 기대와 찬사의 주인공. 왜 다들 그렇게 난리였는지 태형은 그제야 좀 알 것 같았다. 되게 멋있네. 전정국 교수님. 


 “아아, 반가워요 다들. 재밌게들 놀아요. 같이 한잔 하고 싶지만 난 학장님이 잠깐 보자고 하셔서. 승철군, 나중에 한잔 하지.”


 머리 위에 자체 조명이라도 달린 것 같은 저 교수님은 심지어 목소리도 나긋하고 감미로웠다. 하얗게 웃는 전정국 교수의 부드러운 인사를 듣는 주변 학우들의 얼굴은 함께 환해지거나, 혹은 설렘으로 수줍게 물들었다.

 자신에게 고정된 이런 시선들이 익숙한 듯 전정국 교수는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혹은 현실감이 없는 저 전정국 교수의 갑작스런 등장 때문인지, 태형이 여전히 조금은 경이로운 기분으로 전정국 교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 때, 전정국 교수의 시선이 갑자기 태형을 향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전정국 교수의 눈이 갑자기 차갑게 얼어붙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매서운 표정이 태형을 할퀸다. 태형은 술이 다 깨는 기분이었다. 시선이 얽혀있던 시간은 몹시도 짧았을텐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기분에 눈을 감고 고개를 한번 탈탈 흔든 태형이 다시 전정국 교수를 바라보았을 때, 전정국 교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가득 띄운 채 다른 조의 학생들에게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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