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여기 공방이 있었네?”

“거 왜 있긴 있었지. 올 때마다 문 잠겨 있더니. 오늘은 문 열어 놨네? 장사 하나 봐”

 

“들어 가 볼까?”

“뭐하러?”

 

“아니 그냥 구경이나 하게. 저기 예쁜 도자기들 많네”

 

우떠 공방에 큰 변화가 생겼다. 원래 우떠 공방은 주변 상인들에게도 미스터리한 대상이었다. 가게 자리를 비우지 않는 걸로 봐선 분명히 장사를 하긴 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공방 사장이라는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보통 상인들이 장사를 하는 낮과 저녁 시간에는 우떠 공방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대부분의 상인들이 자기 가게들의 문을 닫고 퇴근한 이후에야 문이 열리는 걸, 드물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 내막도, 사장의 얼굴도 모른다.

 

그런 우떠 공방이 요즘은 아침에 문을 열고 심지어 저녁까지 문을 닫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는 길에 우연히 시선이 끌려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계세요?”

“아, 안녕하세요”

 

“어머, 사장님이세요?”

“네”

 

“세상에 이렇게 잘생긴 분이 사장님이라니!”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번 들러 본 사람들은 공방 주인의 얼굴을 보고는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요즘 우떠 공방이 이 근방에서 새삼 핫플이 된 이유 중 하나다.

 

“아 여기가 거기구나! 소문만 들었는데 와 보니 알겠네!”

“왜? 무슨 소문?”

 

“아니 왜, 이 근처에 엄청 잘생긴 사장님이 운영하는 공방 있다고 소문 쫙 났었잖아. 못 들어 봤어?”

“아! 거기?”

 

“여기가 거기네!”

 

그렇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 석진만큼 잘생긴 사람을 보고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은 드물다. 꼭 한 번은 고개를 더 돌리거나 발길을 멈추게 되어 있다.

 

석진이 그동안의 신조를 무너뜨리고 남들과 비슷한 시간에 공방 문을 여는 이유는 따로 있다. 태형 때문이다. 석진은 그동안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늦은 밤에만 나와서 작업을 하고 들어 갔었다. 그리고 철저히 온라인 판매 위주로만 공방을 운영했었다. 그런데 태형과 함께 보낼 시간을 계산하다 보니 밤에 일을 해서는 도무지 틈이 나지 않았다. 태형은 주로 6시 이후에 퇴근을 한다. 석진이 있는 곳에 도착하면 그럭저럭 7시 정도가 된다. 저녁을 함께 먹고 데이트를 하다 보면 10시, 혹은 11시가 훌쩍 넘어 간다.

그러면 태형은 석진의 집에서 자고 가는 일이 잦다. 어차피 다음 날 아침에 바로 출근을 해야 하니 한 시가 아쉽고, 이곳이 본가보다는 태형의 직장과 거리가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형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면 석진은 부득이 자신의 일을 낮 동안에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석진은 자신이 태형을 위해 희생하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태형에게 받는 사랑이 석진의 삶을, 그리고 생각을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사장님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네, 편하게 구경하세요”

 

“아유 예쁘게 잘 만들었네. 사장님이 직접 만드시는 거예요?”

“네. 제가 직접 만듭니다”

 

“솜씨 좋으시다”

 

지금 가게 안에 들어 온 사람은 대략 오십 대로 보이는 중년 부부다. 석진은 요즘 이런 낯선 손님들의 방문을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낯선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태형과 함께 지내면서 느꼈다. 낯선 이들과 대화 몇 번 나누는 것으로 내 인생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태형과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되었으니까 말이다.

 

 

“사장님, 혹시 도자기에 사진 같은 것도 넣을 수 있어요?”

“네 가능합니다”

 

“어 진짜요? 여보 그러면 우리 사진 하나 넣어서 만들어 달라고 할까?”

“무슨 사진?”

 

“가족 사진. 얼마 전에 찍은 거”

“아, 애들이랑 찍은 거?”

 

“응. 애들도 하나씩 다 주고 우리도 하나 갖고”

“뭘로 하게? 컵?”

 

“컵 괜찮겠다 컵”

 

그리고 사람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에게 물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이유에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진심’이 내포되어 있었다. 쉽게 만들어 팔리는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누군가의 손을 거친 물건을 원한다는 건, 그만한 정성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거나 마음 깊이 새기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이 부부도 그렇다. 아마 자식들과 얼마 전에 가족 사진을 찍은 것 같고, 그 추억을 사진 외의 다른 물건으로도 간직하고 싶어서 이런 생각을 떠올린 것 같다.

 

 

“사장님 그러면 컵 10개 정도 만들어 주실 수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냥 일반 물컵 말씀하시는 거죠?“

 

“네네”

“언제까지 되겠어요?”

 

“음... 한 5일 정도면 가능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의 추억은 무엇으로 남기고 기념할 수 있을까? 석진은 문득 태형과 하루 하루 쌓여가는 소중한 기억들을 어떤 것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것이 물건의 형태든 무엇이든 간에, 한 번 흘러가 버리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붙잡아 남기고 싶어졌다.

 

 

 

 

 

 

 

 

“떨려요?”

“아니요”

 

“미리 말해 뒀어요. 조심 좀 해 달라고”

“이번에는 안 그럴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못 하겠으면 말해요”

“괜찮은데 진짜”

 

 

오늘은 미뤄 두었던 검사를 받는 날이다.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긴장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검사가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또 사고를 저지를까봐 두렵다. 태형을 따라 처음 ISCA에 왔던 날, 석진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한 사람을 다치게 했었다. 그때 다쳤던 직원은 무사히 회복했다곤 하지만 석진에게는 그것이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된 셈이다.

그러나 태형이 곁에만 있으면 트라우마는 더 이상 트라우마로서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에게는 신비한 초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 될 정도다.

 

 

“가만 있어 보자 오늘 검사 뭐뭐 있지....”

 

 

오늘은 그동안 못다 한 검사를 완료할 작정이기 때문에 꽤 시간이 오래 소요될 예정이다. 태형은 걱정스럽다는 듯 자꾸만 석진을 쳐다본다. 태형에게 석진은 다른 사람들 앞에 내어 놓기 소중한 보석처럼 여겨진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이 닿으면, 말이 닿으면 때라도 탈까봐 걱정되는 것 같다.

 

“근데 저번에 혈액 검사한 거요”

“응? 왜요?”

 

“그건 결과 따로 안 나왔어요?”

“아뇨. 나왔어요. 근데 별 이상 없으면 혈액 검사 결과는 따로 얘기해 주진 않더라구요”

 

“아아....”

“알아 봐 줄까요?”

 

“아뇨. 별 이상 없으니까 아무 말 안 했겠죠”

“나중에 한 번 물어 봐야겠다. 나도 깜빡하고 있었네”

 

이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석진은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다. ISCA라는 조직이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명망 있고 대단한 일을 하는 곳인지는 들어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조직의 일원으로 (물론 직원은 아니지만) 편입된다는 건 또 다른 의미다. 석진은 어떤 조직의 구성원이 되어 본 적이 없다. 물론 크게 봐서는 석진 또한 이 사회, 이 국가의 일원이기는 하나 그렇게 치밀한 소속감이나 속박에 놓였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진은 태형이 더욱 대단한 사람으로 보인다. 늘 회피하고 밀어 낼 궁리만 했던 자신과 달리 그는 훌륭히 이 조직의 일원이 되어 있다. 능력도 인정받아 최연소 부장 진급이라는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경외감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석진 자신에게는 없는 장점들을 태형은 많이 갖고 있다. 우선 모두에게 친절하고 유하다. 태형은 자신을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석진이 보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태형을 좋아하는 것 같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부장님 되시고는 처음 뵙네요”

“아이 거 참...”

 

“어디 가세요?”

“연구동이요”

 

“아 이 분이 혹시....”

“네 맞아요. 제 애인이기도 하구요”

 

“꺅!! 진짜 좋으시겠다!!”

“잘 어울려요?”

 

“완전요!”

 

석진은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태형과는 꽤 안면이 친숙한 사람인 것 같다. 석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태형은 이제 스스럼없이 석진을 자신의 연인이라고 소개하고 다닌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석진도 별반 부담감이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밝힌다고 해서 자신과 태형이 연인 관계가 아닌 건 아니다.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다.

태형은 이렇게 조금씩 자신의 세상을 석진에게 드러내 보인다. 석진은 이런 식으로 태형을 둘러 싼 세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태형이 석진을 세상 밖으로 훌륭히 인도해 낸 방법이고, 또한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게 하는 효율적인 방책이다.

 

 

“누구에요?”

“아, 지민이 부서에 있는 대리님이요. 이건 비밀인데. 사실 지민이랑 옛날에 썸 타다가 깨졌어요”

 

“.......... 그거 함부로 나한테 말 해도 돼요?”

“응. 말 해도 돼요. 나중에 지민이 만나면 좀 놀려 줘요. 얄미운 올빼미 자식 복수할 거야”

 

“지민 씨가 왜요?”

“걘 나 놀리는 재미로 산단 말이에요. 나도 놀릴 거리가 좀 있어야지 공평하죠”

 

“지민 씨 안 그럴 것 같던데. 되게 예의 바르고 착하고....”

“예의 바르고 착하긴 한데 나한테는 안 그런?”

 

“하찮은 고양이....?”

“그 말... 누구한테 들었어요. 혹시 박지민?!”

 

“앗 들켰네”

“박지민 죽인다 진짜....”

 

하찮은 고양이란 지민이 태형을 놀릴 때 으레 감탄사처럼 꺼내는 말이다. 하지만 태형은 석진에게서 듣는 그 ‘하찮은 고양이’라는 별명이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은근한 밀어처럼 들리는 건 그 말을 뱉은 사람이 지민이 아닌 석진이기 때문일까.

어느새 두 사람은 검사실 앞에 이르렀다. 석진은 오늘 여러 가지 검사를 하게 될 것이다. 지난번에 난리 법석을 떠느라 완료하지 못한 검사부터 시작할 것이고, 그 외 여러 가지 검사들을 다 끝내야만 오늘 일과가 끝난다. 검사실 앞에 이르니 오히려 태형의 얼굴이 더 어둡다.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석진은 태형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안심시킨다. 어째 입장이 뒤바뀐 것 같다.

 

 

“얼굴 펴요”

“폈어요”

 

“하나도 안 펴졌어요”

“흠....”

 

“진짜 잘 할 수 있다니까요. 어린애 취급 하지 마요”

“발목에 붙이는 거 내가 붙여 줄게요. 그럼 되죠?”

 

“............ 꼭 그렇게까지나”

“아니야. 내가 할 거야”

 

아무래도 본인의 손으로 직접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다. 검사실 문이 열리고 안에서 연구원이 나와 두 사람을 맞는다. 태형은 석진만 들여 보내지 않고 기어코 그 뒤를 따르고야 만다. 연구원이 뒤따라 들어오는 태형을 힐끔 쳐다 보자, 태형은 자신이 꼭 따라가야 한다며 어깃장을 놓는다. 어 곤란한데요 - 말을 얼버무리는 연구원을 향해 태형은 쐐기를 박는다.

 

“제 껀데 남의 손 타는 게 싫어서요”

 

태형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면 어쩌나 싶어, 태형의 돌발적인 발언에 석진은 깜짝 놀랐으나 이내 연구원이 껄껄거리며 웃는 걸 보고 알았다. 그는 태형과 무척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아 예 부장님 마음대로 하십쇼 -

 

 

 

 

 




 

“응. 오늘 많이 늦을 수도 있어요”

 

[그럼 먼저 자도 돼요?]

 

 

“먼저.. 어.. 자야겠구나”

 

[사실 먼저 자는 게 싫은 거죠?]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잠 오면 당연히 먼저 자야지!”

 

[술 많이 마실 거예요?]

 

 

“멀쩡한 정신으로 들어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요. 잠 오면 먼저 자구요. 사랑해요”

 

[알겠어요]

 

 

“뭐야. 대답이 그게 다에요?”

 

[왜요?]


“진짜 너무한다. 사랑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태형의 승진 기념 회식이 있는 날이다. 물론 승진을 한 지는 꽤 많은 시일이 지났지만 그동안 내부의 여러 사정들로 인해 회식은 한참 뒤로 미뤄졌었다. 마음 같아선 회식이고 나발이고 간에 당장 때려 치우고 퇴근하고 싶지만, 자신의 승진을 기념하는 자리이니 주인공이 빠지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태형은 결국 쓴 침을 삼키며 회식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

석진에게 미리 말은 해 두었었지만 그래도 본격적인 회식이 시작되기 전, 전화를 하는 걸 잊지 않는다. 석진에게서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자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물론 이것 또한 석진이 일부러 태형을 애타게 하려는 전략이지만, 태형은 모른다.

 

“아 진짜 사랑한다고 안 해 줄 거예요?!”

 

[들어 오면 해 줄게요]

 

 

“아아아아”

 

[사람들 기다리겠어요. 얼른 가요]

 

 

“피이....”

 

결국 싱겁게 통화는 끝날 것 같다. 태형은 전화 너머의 석진이 웃음을 겨우 참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석진은 대단히 감정적인 타입은 아니어서 태형은 이따금 자신이 석진을 더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그 감정이 태형의 마음을 대단히 서글프게 한다거나, 혹은 지금의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하는 건 아니다. 석진은 석진대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석진이 최근에 보인 여러가지 생활의 변화들이 그것에 대한 증거다. 태형이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칠 만큼 생각이 어리지는 않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태형은 충분하다. 석진은 지금 피 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서. 꽁꽁 걸어 두었던 빗장을 풀고 생전 맡아 보지 못한 바깥 공기를 쐰다는 건 석진에게 꽤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 마디 없이 자신의 뜻을 따라 주는 석진이 고맙다.

 

 

“김 부장, 안 들어 가?”

“어? 네 국장님. 들어 가겠습니다”

 

“얼른 들어 와!”

“넵! 하... 나 들어 갈게요. 쉬고 있어요. 보고싶어도 좀만 참구요”

 

사실 석진과 헤어져 있는 하루의 시간은 태형에게 너무나도 길고 지루하다. 마음 같아서는 회사를 때려 치우고 석진과 붙어 있기만 하고 싶다. 그러나 생활인으로서의 김태형은 그럴 수가 없다. 오히려 석진과의 미래를 꿈꾸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태형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안으로 들어간다.

주인공의 등장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태형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느라 쫄쫄 배를 곯고 있다. 태형이 들어서자 장난 섞인 야유가 이어진다. 태형이 무엇 때문에 길게 통화를 하고 들어 온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부장님! 그냥 퇴근하세요 여기 계산만 해 주시고!”

 

“아유 좋겠다. 나도 저랬었는데”

 

“부장님은 결혼하고도 저러실까?”

 

“그러면 병 아닌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장난과 조롱에 태형은 멋쩍게 목을 긁으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오늘의 회식 메뉴는 갈비. 벌써 후끈하게 달아 오른 불판에 고기만 올리면 되게끔 모든 준비는 끝나 있다. 태형이 자리에 앉자 가장 윗자리에 앉은 국장이 잔을 든다. 태형은 자신의 술잔이 이미 채워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얼른 잔을 손에 든다.

 

“자, 오늘은 특별히 지부장님께서 우리 관리국 회식비를 지원해 주시기로 했으니까 드시고 싶은 만큼 많이 시켜 드시면 됩니다”

 

“국장님, 혹시 특수 부위 시켜도 되나요?!”

“오케이!!”

 

“우와아아아!!!”

 

태형이 석진을 데리고 온 이후로 수인 보호 관리국의 위상도 덩달아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오늘 회식만 해도 그렇다. 보통 부서 회식은 상위 부서에서 지원금이 따로 나오는 경우가 없다. 그런데 오늘 회식에 소용되는 돈은 모두 지부장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라 한다. 과연 이 모든 것이 태형 덕분이라고, 간만에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직원들의 표정이 밝다.

 

태형은 아직도 가끔은 이런 면이 얼떨떨하다. 내가 해 낸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석진의 노력을 따져 보자면 확실히 대단한 일은 대단한 일이다 싶기도 하다.

 

“오늘 주인공은 김태형 부장인데, 김 부장 인사 한 마디 해야지?”

“어... 그... 제가 능력도 안 되고 뭣도 안 되는데... 이렇게 부장이 되어버려서....”


“에이 그런 말은 하지 말고. 능력 안 되는데 부장까지나 시켜 줄 바보가 어딨어?”

“그래도....”

 

“얼른 인사나 해”

“어쨌든 모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잔과 잔이 부딪히는 명쾌한 소리. 모두의 목구멍을 시원하게 훑고 내려가는 달콤 쌉싸름한 술. 그리고 눈앞에서 오감을 한껏 자극하며 탐스럽게 익어가는 갈빗살. 태형은 자신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한 술을 말끔히 털어 넣는다. 빈 속에 술을 부으니 짜릿하게 속을 핥고 가는 느낌이 꽤나 자극적이다. 태형의 잔이 빈 것을 보고 국장이 냉큼 태형의 잔을 채우기 위해 술병을 기울인다. 태형은 얼른 국장 쪽으로 술잔을 두 손으로 받쳐 내민다.

 

 

“그래서 아까 사랑한다는 말은 들었어?”

“네? 무슨...?”

 

“아까 통화할 때. 왜 사랑한다는 말 안 해 주냐고 그러더니”

“들으...셨어요?”

 

“내가 일부러 들은 거 아니야. 절대! 지나가다가 그냥 우연히!”

“................”

 

“괜찮아. 한창 좋을 때잖아. 다 이해해 이 사람아”

 

 

하필 그때 뒤를 스쳐 지나간 사람이 국장일 건 뭐람. 빈 속에 들이 부은 술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러움 때문인지 태형의 얼굴이 지나치게 붉다.

 

“김 부장이 석진 씨를 엄청 좋아하나봐?”

“하하하, 네....”

 

“잘 됐어. 오랫동안 연애 안 했잖아. 이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해야지. 그럴 나이 됐어. 부모님은 결혼 말씀 안 하시나 아직?”

 

 

결혼?

 

국장의 말 중 ‘결혼’이라는 단어가 오늘따라 유난히 귀에 선명히 박힌다. 부모님은 한 번도 태형에게 결혼을 강요한 적이 없다. 태형이 누군가를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도 하고, 또한 그들은 어느 때든 태형의 선택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태형은 아직까지 결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가끔 회사 동료들이나 선후배들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가 있긴 하지만, 대개 뷔페가 얼마나 맛이 있는지 등을 더 궁금해 하는 편이라 태형에게는 와닿는 주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결혼? 태형은 한 번 더 그 단어 뒤에 물음표를 달아 본다. 만일 결혼을 하게 된다면 석진과 해야 하지 않을까? 석진과 전혀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지만 태형은 어느새 자신의 결혼 상대를 석진으로 점 찍어 두고 있는 것이다.

 

“승진도 했겠다. 부모님도 건재하시겠다. 올해 말이나 내년 쯤에 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김 부장은”

 

“어... 아직 생각을....”

“왜, 석진 씨가 싫대?”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직 부장님 저희 사귄 지가 두 달....”

“아차차차... 미안, 내가 괜히 오지랖을 부렸네. 아이고 고작 두 달 된 사람들한테 결혼 얘기라니”

 

결혼? 그러니까 지금 태형의 머릿속에는 터무니 없는 상상들이 오가고 있다. 나와 석진 씨가 결혼을 하면 어떨까? 우리는 세상의 다른 어느 부부보다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국장의 말대로 이제 사귄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연인이 나눌 이야기는 아닌 듯하지만, 태형은 이미 그 ‘결혼’이라는 단어에 깊이 침잠되어 있다.

 

“근데 어쩌다가 눈이 맞은 거야? 아니 일 하라고 보냈더니 대뜸 연애를 해”

“하하하 그게 어쩌다 보니까요...”

 

“참 대단한 사람이야. 일도 잡고 사랑도 잡고”

“아이 참 뭘요”

 

“아 그리고 방송국이랑 언론들이 난리인데. 이거 어떻게 하지?”

“갑자기 웬 방송국이랑 언론이요?”

 

“슬슬 냄새를 맡기 시작했나봐. 뭐 하긴 우리가 작정하고 숨긴 것도 없으니 당연한 말이지만”

“석진 씨... 일이요?”

 

“응. 아마 좀 피곤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회사 차원에서 공식적인 발표를 안 한 상태라 대표님이 많이 신경을 쓰시는 것 같아”

 

“아아....”

 

“괜히 남의 입살에 오르내리는 거 싫어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해 두는 거야. 혹시 누가 찾아 오고 하더라도 절대 응해 주지 말라구. 석진 씨한테 그렇게 전해 줘”

 

“네 알겠습니다”

 

 

석진의 존재는 ISCA뿐만 아니라 각종 방송과 언론 매체가 눈독 들일 만한 화제다. 하지만 태형은 석진이 그런 일들을 극도로 거부할 것을 잘 알고 있다. 석진에게는 지금의 개방된 삶만으로도 벅차다. 석진이 스스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겠다고 말했을 때 태형이 걱정하던 일들 중 하나가 또한 이런 것들이다. 아직은 넘어 가야 할 산들이 많이 남았다. 물론 언제 어디서든 태형은 석진의 손을 함께 쥐고 있을 것이다.

 

근데 완벽히 그를 보호하기 위해선 결혼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태형은 두 화두 사이에 전혀 논리적인 개연성이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자꾸만 놓질 못한다. 그 문제의 한 단어를.

 

 

 

 

 

 


 

“헉!!”

 

쪼개지는 듯한 두통보다, 누군가 짖궂게 갈퀴고 간 것처럼 쓰린 속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태형은 문득 자신을 덮쳐드는 불길한 예감에 서둘러 잠을 깼다. 깨지 않는 의식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건 참 고욕이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다. 근래에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 적이 있나 싶도록 많이 마셨다. 태형이 주인공이었던 회식인만큼 태형은 쉽게 그 자리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사실 태형은 자신이 어제 몇 시에 들어 왔는지, 또 어떻게 석진의 집을 찾아 왔는지 등등을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분명한 것은 눈을 떠 보니 석진의 침대라는 것. 그리고 의식을 깨우자마자 덤벼드는 숙취가 대단하다는 것. 그리고 지각이 틀림없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다. 태형은 부리나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방문을 연다. 품 속에 석진이 없었기 때문에 석진을 찾을 겸, 시간도 확인할 겸. 그렇게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을 때 태형은 어떤 광경과 마주하고 우뚝 걸음을 멈춘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흔히 있는 일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태형 역시 부모님에게서 자주 보았단 장면이기 때문에 별 감흥 없이 지나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유달리 눈에 선명하게 박히는 건 무슨 이유일까. 어제 국장에게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똑똑히 떠오른다.

 

“......... 속 괜찮아요?”

 

지금 태형의 눈에 보이는 장면은 이렇다. 석진이 주방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아마 자신을 위해서 아침밥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것은 해장국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말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다. 석진은 태형이 방문을 열고 나온 것을 보고 뒤돌아 보며 묻는다. 그 눈빛이나 표정도 특별할 것이 없다. 그저 평소의 석진이다. 화려하게 치장을 하거나 대단히 좋은 옷을 입은 것도 아니다. 석진 역시 잠옷 차림이다. 얼마 전 태형과 함께 맞춘 커플 잠옷.

 

 

“정신 차려요!”

“................. 지금.. 몇 시에요?”

 

“여섯시 반이요”

“나... 어제 몇 시에 들어 왔어요?”

 

“...... 기억 안 나요?”

“전혀...”

 

“술 조금만 마실 거라면서요!”

“.............”

 

“와, 진짜 기억 안 나는 모양이네”

“....... 늦게 들어 왔어요? 나 혼자 왔어요? 누가 날 데리고 왔어요?”

 

“못 살아 진짜. 한 시 반에요. 혼자 걸어 들어 왔어요. 어떻게 집을 찾아는 왔나 몰라...”

 

석진의 투덜거리는 소리까지도 오늘은 너무나도 특별하게 들리는 아침. 태형은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얼른 욕실로 향한다.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 보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머리칼은 까치집을 한껏 높이 지어 올렸고 얼굴이며 눈은 퉁퉁 부었다. 도무지 봐 줄 만한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는, 아니 오히려 신기하고 흉측해서 봐 줄 만한 몰골이다. 석진에게 이 모습을 고스란히 보였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해진다.

얼른 칫솔부터 입에 문다. 역시 석진의 칫솔과 나란히 꽂혀 있는 커플 칫솔. 그 동안에 커플 아이템이 꽤나 많이 생겼다는 걸 새삼 느낀다.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그리고 머리를 감는 동안 주방에서는 석진의 손이 바쁘다. 석진은 태형이 일어나기 한 시간 전에 잠을 깼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 것은 석진 쪽도 마찬가지다. 태형을 기다리느라 한 시까지 잠들지 못했었고, 겨우 잠이 들락말락한 무렵 태형이 도착했다.

거의 인사불성에 가까운 태형을 침대에 끌고 와 눕히고, 옷을 벗기고 잠옷으로 갈아 입히는 것까지.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석진은 세 시간을 채 못 잔 셈이다. 눈은 뻑뻑하고 머리가 아프지만 태형이 원망스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태형은 어젯밤 집에 돌아 와서 ‘사랑한다’는 말을 스무 번은 넘게 읊조렸기 때문이다.

 

사랑해요.

 

내가 진짜 사랑한다니까.

 

아니 내가 어떻게 석진 씨를 안 사랑할 수가 이쒀!?

 

석진 씨 사랑해... 진짜 평생 사랑할 거야....

 

 

대체 집은 어떻게 찾아 왔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도 그에 걸맞은 대답 대신 사랑한다는 말만 수십 번 늘어 놓았다. 처음에는 회식 자리에서 무슨 속상한 일이 있나 싶었다. 그러나 태형의 기분은 의외로 좋아 보였다. 실없이 웃기도 하고 석진의 얼굴을 만져 보기도 하고, 만취한 사람치고는 자신의 본분이 무엇인지 잊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석진은 일찍 일어났다. 해장국이라도 끓여 먹이지 않으면 하루 종일 마음이 쓰일 것 같았다. 해장국이래봐야 특별할 것은 없다. 콩나물을 듬뿍 넣고 끓인 김칫국과 밥이 전부다. 잠을 자지 못해 뻑뻑한 눈을 부비면서 그럭저럭 아침 준비를 끝내어 가고 있다. 그때, 뒤에서 석진의 허리를 따뜻하게 휘감는 커다란 품. 씻는 일을 마친 태형이 걸어 와 석진의 뒤에서 포옹을 한 것이다.

 

“나 주려고 끓인 거예요?”

“아뇨. 나 먹으려구요”

 

“피”

“건드리지마요. 나 먹을 거니까. 태형 씨 줄 거 없어요”

 

“아”

“줄 거 없다니까요”

 

“튕기기는”

“아니 대체 무슨 술을 그렇게나 많이?”

 

“............... 모르겠어요. 내가 주인공이라고 자꾸 주니까....”

“주인공이라고 추켜세우면 독약도 받아 마시겠네”

 

“그건 안 되죠. 이렇게 예쁜 애인을 두고 어떻게 죽어 내가”

“술도 어제처럼 그렇게 마시면 죽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말은”

 

결혼을 하면 이것이 나의 일상이 되는 걸까? 태형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 단어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태형에게는 지금 이 순간 다른 어떤 것도 범접하지 않는다. 일과 관련된 생각이라든지, 혹은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생각 같은 것들은 감히 이 행복의 테두리를 뚫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지금 태형에게 보이는 건 오로지 김석진이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주인공 또한 김석진이다.

 

 

“오늘 안 힘들겠어요? 그냥 하루 연차 내면 안 되나....”

“나도 그러고 싶은데... 눈치 보여서...”

 

“힘들어 죽겠다고 해요”

“내가 연차 내면. 나랑 하루 종일 뭐할 거예요?”

 

“왜 내가 하루 종일 태형 씨랑 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나 오늘 바쁜데”

“에? 왜?”

 

“왜라뇨. 말했잖아요. 내일까지 끝내야 할 거 있다고요”

“........... 아 맞다”

 

정말 회사를 째버릴까 진지하게 몇 초 간 고민했다. 만약 석진에게 다른 일이 없었다면, 태형은 과감하게 회사에 연락해서 오늘 하루 연차를 냈을지도 모른다. 태형에게는 무척 새로운 감정을 선사하는 행복이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행복한 순간이 아주 없었던 건 분명 아니다. 태형은 석진보다는 평탄하고 나은 삶을 살아 왔다. 객관적으로 볼 땐 그랬다. 그러니 만족스러운 순간도 기쁜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은 없다.

지금의 기쁨은 태형이 스스로의 삶을 완벽하다고 느끼게 할 만큼 신비로운 감정이다. 태형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이 완벽 그 자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석진과 함께 있으면 다르다. 모든 것이 충족된 완벽한 상태. 그것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 신비로운 묘약이다. 모든 가치관과 경험을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는다. 태형뿐만이 아니라 석진에게도 그렇지만.

 

 

“석진 씨”

“네?”

 

“나 소원이 하나 생겼는데”

“뭘요?”

 

“들어 줄 거예요?”

“아, 나한테 소원이 생긴 거라구요?”

 

“응”

“들어 보고 결정할게요”

 

“하여튼 만만하지 않아”

“뭔데요?”

 

“.............음......”

“뭔데 말을 못 해요?”

 

지금이 이 말을 할 타이밍인가? 사실 태형은 확신할 수 없다. 자신의 이런 감정이 매우 충동적인 것일 수도 있다. 석진을 만나기 전에도 몇 사람과 사귀어 봤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처음이니까. 하지만 태형은 이 말을 뱉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다. 속이 울렁거린다. 어지럽다. 숙취 때문은 분명히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동요다.

따뜻한 물 위에 드러누워 평온한 햇살을 받으며 떠다니는 것 같다. 이러다가 어느 안락한 섬에 닿겠지. 그 섬에 닿으면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거기에는 당신과 내가 영원히 퍼 마셔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아무리 따다 먹어도 계속 열려 있을 나무 열매들이 많을 거야. 거기에 우리는 다른 누구도 들어 올 수 없는 우리만의 집을 짓고, 어쩌면 아이가 태어날지도 모르고. 그러면 우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행복할 수도 있고...

 

 

“우리, 결혼할래요?”

 

태형은 결국 참지 못했다. 석진은 여전히 태형의 품 안에 가둬져 있다.

 

 

 

 

밥-뷔진-잠-뷔진-일-뷔진-밥-뷔진... 뷔진 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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