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울리다 못해 머리를 찢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왔다. 사람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양손을 들어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강렬한 소음으로 인해 마비된 인파를 뚫고 당황한 남성이 어디론가 달려나가고 있었다.


“이게……. 왜!”


어째서! 마치 이 사이렌의 존재 자체가 당황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그는 나이가 퍽 든 중년과 노년 사이의 건장한 근육질의 남성이었으며, 검은 제복의 가슴팍에는 수많은 훈장이 달려있었다. 자세히 보면 훈장 몇 줄은 뜯어낸 건지 바느질한 자국도 보였다.

거의 날듯이 달리던 발자국을 따라 사이렌이 울리는 지하로 거침없이 내려간다. 지문이며, 홍채며, 채혈하건 다가오는 문을 빠르게 거치고 마지막이라 할 굳은 철제문을 뜯어내듯 열어젖히면 붉게 점멸하는 화면을 바라보던 또 다른 남자가 자신을 바라봤다. 얼굴에 눈물로 만든 길이 선명히 남은 남자는 애써 괜찮은 듯 입술을 깨물고 평안한 듯 얼굴을 꾸민 모양새였다.


“어서 와, 카멜도.”

“어서 와, 라니. 무슨 소리인가? 진즉에 폐기처분당한 에너지환원기가 왜 멀쩡히 존재해선 지금 작동하고 있나, 당장 끄지 못해!”

“중단 버튼은 시작도 하기 전에 연결을 끊어버렸다네, 아예 소각시켰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는 곧바로 달려가 중단 버튼이 있던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팔을 붙드는 손에 생긴 어떤 문장이 그의 힘을 막는 듯 보였다.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내니 그 상대가 입을 열었다.


“어떤 죽음으로 몰아넣어도 곧바로 다시 살아남는 어떤 자를 위해 만든 술식이라네.”

“자네…….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 겐가, 왜 이런 선택을 한 거야!”


무고한 사람들까지 엮어서? 카멜도가 외쳤지만 남자는 도리어 감정을 주체 못 하는 듯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그를 바라봤다. 그 얼굴에 사이렌 소리가 멀게 느껴져 왔다.


“자네가 칠백하고도 서른한 번째 죽음을 맞이했을 때 결정했지. 자네를 위해서 말이야.”

“뭐?”

“소년병일 시절에서부터 봤으니까 자네가 맞이한 죽음이 이거보다 더 많다는 걸 알았고, 자네도 그걸 개의치 않아 했지만 이건 분명 미친 짓이네. 자네도, 자네를 죽이려는 자들도 말이지.”


이곳은 자네의 온정을 받아주지 못해. 폐허 위 선봉에 선 시체 하나가 일어나 깃대를 잡고 나아가는 모습이 남자의 눈에 그려졌다. 그다음은 종전선언식 구석에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협정식에서는 독으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행사를 진행하던 그 얼굴도. 감내하고 있던 모든 고통을 그가 바라보고 있었다.


“카멜도, 자네는 언젠가 이들이 자네를 죽이는 비효율적인 행위를 그만둘 거라 하지 않았나. 그날을 기대한다 그랬지만 난 그들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자네를 노릴 줄 몰랐네. 수 없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말이지.”

“조금만 더 기다릴 수는 없는 건가, 주기는 점점 늘어지고 있었잖나.”

“아니, 당신을 적대하는 자들의 후세대가 3대째 여전히 당신을 노리고 있지. 이젠 그들의 아이들마저 당신이 언제 포기할지 기대하고 있어.”


조금, 조금만 더 참아줘. 그런 말을 해야 하는데. 화면에 크게 뜬,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그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작용 중인 상태를 막아보려고 해도 그가 팔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난 퍽 자네를 좋아했다네. 다만 세상이 잘못됐어. 각 의회는 당신을 주축으로 이뤘던 평화협정을 깨고 전쟁을 원한다네. 그 미친 상황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당신의 애정을 받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낫겠지.”


이 땅은 잘못 끼운 단추이니. 그 말에 카멜도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상대방도 퍽 나이가 든 중년이었다. 제한시간이 끝나 장치가 작동되면 저 에너지환원기는 주변이 모든 구성체를 집어삼키고 에너지로 환원해 그것을 시간가속술과 함께 주변의 항성들에 보낼 터였다.


“다음 생에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미친놈 사랑은 받지 말고.”


남자는 팔을 잡은 타인의 몸을 꾹 끌어안았다. 빛이 그 둘에게 침범하는 새에 그 사람이 중얼거렸지만 카멜도는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정확히는 읽어내지 않았다.

 

먼 곳의 물웅덩이가 검어진 건 그 땅이 사라졌을 때와 일치했다.

 

그것은 몸을 일으킬 땅이 없으면 시체가 있었던 땅과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몸을 일으키곤 했다. 진흙탕 위에서 일어난 자는 얼핏 희푸른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진 나신이었다.

이 땅에 숨어들기에 알맞은 몸이 맞는지, 주변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이번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처음 보는 외관으로 보이는데 이름은 뭐로 지을지, 이 행성은 어떤 사회 체계고 교육과 의학, 경제 상황이나 우주급 교류는 어떻게 됐는지……. 이런 고민을 해야 했는데 입 밖으로는 다른 문장이 튀어나왔다.


“내가 뭐라고…….”


목소리도 예상보단 높은 톤이었다. 고개를 들자 은하단 하나의 멸망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 맑은 밤하늘에 수 놓인 별이 빛나고 옅은 초록 위성이 반쯤 먹혀 하늘을 돌고 있었다. 지키려 했던 땅의 평화는 그 단 한 번의 선택에 없던 일이 됐다.

그 옅은 초록의 위성을 보며 그 사람은 이번 이름은 륀Lune으로 할까, 란 생각이 닿았다. 회색 천을 만들어 두른 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막지 못한 자신마저 미친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상반기 예산안에 대해 의견은 없나?”

“난방지원에 대해, 센터스령 동쪽의 늪지대 쪽에 발견된 이탄 경매를 지원해보시는 게 어떨까 의견 드립니다.”


역청탄 생산이 조금 어려워진 상황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부자로 보이는 남성 둘이 그린 듯한 성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밖에는 돈을 들여 잘 손질한 정원에 각 지역에서 애지중지 모셔왔을 꽃들이 한데 모여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나무는 싱그럽고, 분수는 반짝이는 보석처럼 물을 내보냈다.


“그래, 그 의견이 나올 줄 알았다. 다만 나는 이번 황실의 협정 기념회에 갈 일이 있으니 경매에 가기엔 힘들어 보이는데, 네가 가 볼 테냐?”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래. 가벼운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론필드의 영지민을 위한 행위라 생각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황실의 협정 기념회라, 생명의 고리를 양분하여 땅을 차지한 두 나라가 길게 이어온 전쟁을 마무리하고 평화를 약속한 날을 기념하여 만든 무장해제구역과 그 일대에서 벌이는 귀족들의 파티였다. 작긴 해도 작위를 가진 사람들은 모여서 가야 하니, 가주인 그가 가는 것은 당연한 행위였다.

다만 남자의 심사는 좋지 않았다. 후계자로 지목된 지가 얼마인데 자꾸만 자신을 숨기는 듯한 가주의 행위에 자동으로 마음이 꼬일 대로 꼬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숨기고 집무실 문을 열자 가주가 무언가 생각난다는 듯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센터스령에 기이한 요리사가 있다 들었는데, 한번 보고 올 테냐?”

“네?”

“이름은 모르겠는데, 경매장 가는 길에 있다 그랬으니 만날 수도 있겠구나.”


길에서 태어났는데 답지 않게 반반한 미모라 했으니 구분은 될 게다. 그러며 노인은 두꺼운 시가를 입에 물었다. 물지 않은 반대편 끝을 엄지로 비벼내어 불을 내니 그 연기가 자욱하게 자신에게 밀려들어 왔다. 앞의 건 연막이고 진짜 목적은 이거란 뜻이렷다. 남자는 연기가 싫다고 얼굴을 찡그려 자신의 감정을 대신 꺼내놓았다.

귀족은 귀족이라고, 세상의 모든 음식은 맛보고 즐겨봤다. 그건 자신의 부모도 마찬가지일 텐데 고작 센터스와 그론필드 사이에나 이름 좀 오른 요리사 하나 보겠다고 자기 아들을 보내는 행위가 맞을까 모르겠다만, 작위고 후계자 소개도 받지 못한 남자는 찍소리 못하고 그저 명에 따라 일정에 맞춰 령을 떠나갔다.


그 요리사란 사람을 이리 처음 만날 줄은 몰랐다만.

호위와 경매에 필요한 인력을 구해 이웃령인 센터스령에 도달하자마자 습격을 당할 줄은 몰랐다. 마차를 보니 꽤나 있는 집 자제라거나, 호위의 옷차림이 꽤나 멀끔하게 입힌 게 문제였을까? 자신을 향해 날을 들이미는 도적에게 몸이 굳어 아무런 행위도 하지 못할 때 그 섬광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희푸른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측면에서 나타난 그 사람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꽃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먹듯 감싸며 도적의 몸 위에 착지한다. 곧이어 달려오는 그 일행에게 몸에 두른 망토를 벗어 시야에 혼동을 주고 발로 그들의 배와 턱, 국부를 걷어차거나 밀쳐냈다. 그 난전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기절만 시켜내는 모습이 전투에 꽤 익숙한 모습이다.

그들의 아래에 문을 열어 어디론가 보내버리고 흙먼지가 묻은 망토를 대충 털어내 어깨에 걸친 그 사람은 후드를 눌러쓰고 아무런 말 없이 그들의 앞을 떠나려 했다. 전장에 있는 천사가 저런 모습일까, 홀린 듯 쳐다보던 남자는 문득 정신을 차려 고개를 돌린 희푸른 머리를 향해 외치듯 물었다.


“이름, 자네 이름이 뭔가! 보, 보상하겠네!”

“제가 저들과 같은 편이라 생각하면 어쩌시려고. 됐습니다. 전 갑니다.”

“어디 그론필드 백작의 후계자인 케드릭 그론필드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하…….”


그를 보좌하던 하인의 목소리에 이골이 난다는 듯 낮게 한숨을 푹 쉬었다. 그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손을 들어 대충 홱홱 인사를 던지고선 자기 갈 길을 떠났다. 아무리 따라가려 해도 그림자 사이로 사라져선 얼굴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 케드릭이 괴인을 다시 만난 건 센터스령에 있던 민박에서였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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