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한 소릴내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봐도 투명유리창 밖으로 엄청스레 쏟아지는 빗방울들이 확연히 보여졌고, 기상캐스터는 그 탓에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서 당분간 호우주의보로 주의바란 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며 마무리인사를 하고서 끝나게 된 뉴스에 재환 또한 티브이를 끄고서 출근을 위해 우산을 집어들고 집을 나섰다.


때마침 꼭대기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 다급하게 다가가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서 점퍼 주머니에 손을 쑥 비집어 넣은채 한층한층 내려오는 다이얼숫자만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런 그때 한동안 비워졌던 옆집의 새입주자가 또한 출근을 위해 집을 나오려는듯 꽤 어수선한 소리들이 재환의 등뒤로 들려왔는데, 그런 그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던듯 그저 멍하지 내려가고만있는 숫자만 쳐다볼뿐이었다.


하지만 문득 얼굴 확인이라도 하면 좋지않을까 싶은 생각에 고개를 돌린 재환이 인사나 하려 집에서 나오는 그를 쳐다보는데,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전혀 뜬금없는, 상상조차도 해 본적 없는 곳에서의 만남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심지어 잘 아는 사람이었는데. 하지만 처음엔 그저 닮은 사람이라고만 생각이 들었다. 정말 뜬금없는 만남이라.  그래서 그렇게 긴가민가한 채로 서로의 시선이 그저 공중에 머물러있을뿐, 엘리베이터가 띵- 소릴내며 멈출때까지도 미동조차 하지 못했는데.. 



" 안 타, 재환아? "




익숙한 목소리에 저의 이름이 섞여나오자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든 김재환이었다.




" 도대체 형이 왜 여기있어? "








* * *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비가 오는 날엔 유달리 재수가없었던 김재환은 그날도 역시나 소형태풍이 북상하여 비를 한바가지를 쏟아내며 한반도에서 기승을 부렸던 1년전의 어느 여름 날이었다. 안그래도 푹푹찌는 더위로 불쾌지수는 가득했고, 요 며칠간 계속된 장마전선에 그것으로도 모자랐던것인지 태풍까지 연달아 이어져 습하긴 또 얼마나 습했던것인지 물 속에 들어와 사는 기분이 들었었다.

그리고 거기에... 6년을 넘게 사귄 나름의 애인이라는 작자가 일. 그놈의 일때문에 연락도 빈번히 쌩까, 약속도 밥먹듯 파토내.

그래도 참자, 참자. 그동안 ' 행복한 일이 더 많았잖아! ' 하며 속으로 삭히고만 있는데, 비가와서. 그래서 재수가 없어서.




[ 형, 곧 일곱신데 ]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 재환은 홀로 지워지지않는 1을 바라보며 형을 비련하게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고 하니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이거 한두번도 아니고... 


  차창밖으론 비가 후두둑 쏟아지고 있고, 유리창엔 물방울이 송글송글 붙어있어.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주문했던 자몽에이드는 벌써 말끔히 비워낼 시간이라, 비워진 빈 잔에도 물기가 송글송글 붙어 또록 흘러만 내리고 있다. 

무심하게도 하염없이 잘만 흘러가는 시간에 조금 민폐인가 싶었을 재환이 이쯤되면 한잔 더 시켜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 조금 고민할 쯤, 그저 형은 언제오려나, 카페걱정도 한 번 하다 멍 하니 창밖만 바라보며 지나가는 차,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이나 하고있는데 별안간 누군가 어깨를 가볍게 터치해옴에 조금 날라며 재환이 고개를 돌렸다.

혹시 형일까 조금 기대했지만, 전혀 다른 외형의 사람에 조금 실망하며 무슨 용건이있는건가 싶어 네? 하고서 대답하는데,     





" 너무 제 취향이셔서요, 번호좀 주실래요? "




" 아, 저 애인있는데.. 지금 기다리고 있는거거든요 "




" 꽤 혼자 계속 여기서 기다리셨던거 같은데. 저 엄청 괜찮은 사람이에요 "




" 조금 늦는다고.. 연락와서 기다리고 있는거거든요.. "




" 에이, 거짓말하지 말고요 "




" 사귀는 사람 있는거 맞다니까요..? "





꽤나 웃는게 예쁜 호감형의 얼굴을 한 사람이 다짜고짜 지켜봤다며 연락처를 물어오는것에 대해 당황한 재환은 최대한 정중하게 애인있어요-를 외치며 거절을 한다. 하지만 굴하지않는 그는 재환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것일까 좀처럼 자신의 의사를 굽힐생각은 없어 보였는데, 축 쳐진 눈꼬리가 연일 계속되는 치근덕 거림에 조금 날이서자, 그제서야 아차싶어 조금 물러서는 그는 그래요, 알겠어요. 하며 제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하지만 몇 테이블 지나지않아 자리에 앉은 그는 김재환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가 애인이 없다는사실을 반쯤은 확신한듯 다리를 꼬고 앉아 그의 애인이 올때까지, 황민현이 정말 올때까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때까지 있으려는듯 해 보인다. 그런 그에 김재환은 아까 늦는다고 연락왔다며 어물쩡 말하긴 했어도 정말 형이 올지도 미지수일만큼 근래 자주 약속을 파토냈던 형이라 약간 초조해하며 슬쩍 카톡을 열어 형의 대화방에 다시금 들어갔지만, 아직도 사라지지않은 1에 자존심은 자존심대로 뭉개져선 속으로 욕지기를 뱉었다. 업무중엔 전화거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하는 민현탓에 문자만 겨우 몇 번 보내는데도 그조차도 확인하지않으니, 뭐 어쩌란건지 싶어 계속 기다리면 되나 하며 초조하게 창밖이나 쳐다보고 있는데, 이십분쯤 더 지나서야 미안, 오늘 못만날것같아. 내일 만나자, 라며 뒤늦게 답장을 보내오는 형이더라.

뭐 약속깬게 하루 이틀이냐, 그런것에 대해서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는 김재환이지만 지금 굉장히 열이받아 조금 손이 떨리는것에는




" 것봐요. 애인없잖아요 "




계속 번호 좀 달라며 치근덕거리는 이 자식이 이제는 아예 잔뜩 기고만장해져선 콧대가 있는대로 올라가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 * *





   동네 친구녀석들이랑 오랜만에 만나 이래저래 바쁘게 지온 일상 얘기들도 하고, 요즘 통 열받게만 하는 황민현에 대한 대한 얘기도 조금 하면서, 부어라 마셔라! 조금 꽉 막혔던 마음들, 친구들과 술로 인해 조금 풀어내던 중, 연신 시끄럽게 울려대며 저를 찾는 민현의 연락에 김재환의 친구들은 그의 속사정은 잘 알다만은 그래도 받으라며 김재환을 타이른다. 하지만 김재환은 요 며칠전 일만 생각하면 울컥해버려선 싫어! 절대 안받아! 소리치며 민현의 연락을 필사적으로 무시했었다.


그렇게 1차, 2차... 그리고 3차까지 달리고서 조금 있으면 해가 뜰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만큼 늦은 새벽이 찾아오니, 그제서야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서 바스러져가는 정신줄 겨우 붙잡으며 호엥호엥 이상한 소리나 내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는데, 잔뜩 화난 표정을 하고서 지금까지도 자지않고서 김재환을 기다리고 있던 황민현은 이제서야 등장한 만취남을 보며, 지금 몇시야? 조금 날선 목소리로 물어온다.





" 전화는 왜 다 무시해? "



" 형도 내 연락 다 씹잖아~ "



" 바쁘니까 어쩔 수 없어서 그랬던거지 "



" 아~ 예~ 마니 바쁘시겠조~ "



" 그래서 누구랑 만났는데? "



" 나~도~ 모르겠는데~ "



" 똑바로 대답 안할래? 누구랑 마셨어 "




꼴에 또 질투심은 많아가지고선 제때 연락 안닿으면 눈에 아주 쌍심지를 켜고서 물어오는데 참 어이도 없고 우스워 재환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어차피 만나는 놈들이 누구 탓에 다 거기서 거기였고, 심지어 형도 얼굴 다 기억하는 놈들인데.. 잘 알면서도 부러 매번 궁금하다고 저렇게 귀찮게 물어오는게 너무 어이가없었다.

그럼 뻔한 대답이라도 해주자고 ' 동네 친구들~ '하며 형이 원하는 최고의 대답을 해줄법 하지만, 그래도 심술이나선 말 안해! 하며 입 꾹 닫고 있는 김재환은 술이 조금씩 깨고 있긴 했지만 계속 만취남인 채로 있는게 숙편할것같아 그의 말을 대놓고 씹고선 침대위로 첨벙- 엎어져 푸으으 소릴내며 침대시트에 얼굴을 묻고서 비비적 거렸다.




" 대답 안해? "



" .... 잘꺼야 ~ "



" 김재환 "



" ..커어어..  "



" 너 나 말고 만나는 사람 있지 "



" 씹, 뭐래 "




자는 척 하다말고 그제서야 돌아본 김재환이 잔뜩 화가 난 표정을 하고서 황민현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어이가 없어서, 거의 용수철처럼 튕겨져 일어난 김재환이 미간을 잔뜩 힘줘 주름진 채로 민현의 황당한 질문에 대해 무슨 근거로? 하며 묻는데, 황민현은 짧둥한 손가락으로 재환의 이마빡에 딱 소릴 내며 딱밤을 한대 놓더니,  아야! 하며 이마를 문지르는 김재환, 끌어당겨선 입술을 포개어 쪽- 소릴 내며 입맞춰온다.

꾹 누르듯 포개어진 민현에 엉거주춤 하는 재환이었는데, 민현의 팔을 잡고서 겨우 중심을 잡아 버텨내지. 그러다 이내 떨어져나간 민현이 술냄새- 하며 고약하다는듯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있는데, 머쓱해진채로 모, 뭐 술마셨으니 당연한거지 하며 얼렁뚱땅 대답하는 김재환이다.

그럼 그런 황민현은 이내 뾰루퉁해진 김재환 다시금 끌어당겨안으며 기분좋게 뒷통수를 살살 쓰다듬어 주는데, 사실 김재환이 생전 연락 안씹다 오늘 거차게 자신의 연락을 모조리 다 무시한 이유를 어느정도 알고있어서.. 괜시리 미안해 사과하려 줄곧 자지도 못하고서 재환을 기다렸던 민현이라 미안해- 약속 자꾸 미루고, 깨버려서. 하며 사과하는 황민현인데, 그러면 김재환 좀 전 까지만해도 술자리서 씩씩거리며 민현이형 욕 할거 다 해놓고서도 저렇게 예뻐해준다고 좀 누그러져가지고선 고개 천천히 끄덕이며 아라써. 하며 잘도 대답한다.

그러며 이 분위기면, 이 다음엔 섹슨가 싶어가지곤 화해의 섹스 좋지- 하며 김재환은 흐흥 웃기까지 하는데, 그런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산통을 깨는 황민현은 " 그래서 나 몰래 만나는 사람 없지? " 하며 자꾸 물어본다.



" 아, 짜증나, 나 잘래. 나가 "



뭔 말도안되는 소리를 자꾸만 하고있어







* * *






  전혀 잘 맞지않을것 같던 둘의 연애의 시작에 많은 주변인들은 금방 그들이 헤어질것임을 확신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순탄한 연애를 하는 둘에, 주변은 엄청 의아해하면서도 반면 그런그들의 연애를 축복해주기도 했었다. 

한 놈은 질투, 집착 뭐 이런 꽉 막힌것들로 똘똘 뭉쳐 있는 녀석이었고, 남은 한 놈은 그와 정 반대로 자유롭기로, 엉덩이 가볍기로 이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녀석이었던탓에 모두가 그 둘의 만남에 대하여 시트콤이냐 코미디냐 하는 말들이 정말 많았었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평탄한 그들의 연애사에, 한달을 버티지 못할것이라며 거둬들였던 많은 베팅액은 황민현의 오랜 친구인 옹성우가 호기롭게 1년 이상! 을 외치며 쓸어담게 되었었고, 그 다음 해  올해 봄에 꼭 깨진다며 신년 새해를 보며 소원을 빌듯 다시금 건 베팅액에는, 정 반대로 3년 이상! 을 또 한 번 외친 성우의 손에 한 번 더 쓸어담기게 되었었다. 

그렇게 몇 푼 안되는 푼돈이긴 했지만, 말도안되는 그들의 장기간 지속된 연애에 다들 짜고치는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으로 여럿 말들이 많이 나돌았었긴 했는데, 하지만 그러건 말건 정 반대의 황민현과 김재환은 이렇게나 당당하게 6년째 무탈히 연애를 하는것에 성공을 했다.


여튼, 그런 황민현과 김재환의 꽤 오랜 연애생활로 다들 처음엔 의아해하면서도 이젠 역시 사람일은 모르는거구나 하며 주변의 응원과 사랑까지 받는 둘이 되어버렸는데, 몇 년을 사귄 연인사이, 볼것도 다 보고 할것도 다 해본 진득하게 사랑해온 연인사이, 틀어지는건 정말 한 순간이었다고.





   옛날엔 정말 많이 붙어다녔었다. 대학생때부터 사귀었으니까 같은 캠퍼스를 거닐며 끝내주는 비밀연애도 했고, 그들끼리만 모였을때에도 정말 끝내주는 찐한 사랑도 하고 뭐 그랬었다. 물론  지금도 별 다를것없이 서로를 보면 아직도 설레고, 두근거리고 여전히 사랑하기만해서,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게 꺼져가는게 아니라 더욱 크게, 크게 번져가기만 하니까. 내일은 오늘보다 더 사랑하고, 그 다음날엔 더, 더 사랑할 수 있을것 같기만해서 예전보다 더욱 커다란 감정을 갖고있다 자부할 수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따금 예전으로 돌아가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올해 들어 형이 너무 바빠서 일지도 모르겠을 김재환이었다.



지금도 꼬박 보름만에서야 겨우 만나보는 잘난 얼굴이었는데, 뭔 장거리 연애를 하는것도 아니고 같은 서울시 내, 번스타고도 삼십분 좀 안되는 거리임에도 볼구하고 좀 처럼 바빠 만나기 힘든 황민현이었지. 여튼 그런 민현은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되면 꼬박꼬박 이렇게 재환의 집에 불쑥불쑥 나타나긴하는데, 바빠서 저를 잘 만나주지 않는 민현에게 조금 툴툴거릴 김재환이긴 했지만 그런 그가 잘 없는 쉬는 날엔 푹 쉴법도 하지만 부지런하게 저를 찾아오는 그 갸륵한 정성에는 그래도 조금 그의 얼굴을 보면 화가 풀리기도 하는 김재환이었다.




" 그 날, 많이 기다렸었어? "



카페에서 기다리던 그 때를 말하는건가. 기억을 떠올린 재환이 그래, 한시간 정도를 기다렸었지! 하며 지난 일을 곱씹어 떠올리는데, 그 날 함께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 치근덕 거리던 이의 뻔뻔한 낯짝이 자꾸만 떠올라 부아가 확 치며 그래! 한시간 넘게 기다렸다! 혼자! 뻘쭘하게! 하고서 화를 내려다가도.. 속으로 다시 한 번 삭히며, " 아니이.. 그냥 한 삼십분...? " 하고서 대답하고 만다.



그럼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민현은 재환을 뒤에서 끌어안은채로 그의 등에 얼굴을 폭 눌러 눈을 감은채로 잔뜩 졸려 잠긴 목소릴 하고서 미안 하고서 사과하는데, 뭐 그렇게 까지 사과 할 일은 아니궁.. 어쩔 수 없지 싶은 재환이 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괜찮스~ 하고 만다. 그러며 잔뜩 졸려운듯 힘이 쭉 빠진듯한 민현에 " 졸리면 자. " 하고서 옆의 베개를 팡팡치며 뒤로 던져주는데 그건 또 싫은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황민현이지.

그러자 머리카락이 등에 쓸려 간지러운 김재환이 으악 소리를 내며 그로부터 탈출하려 발버둥 치는데, 황민현은 그저 웃으며 안놔주고서 더 해 부비적 거리며 간지럼을 태워온다.




" 재환아 "




" 왜? 아 좀 떨어져바, 나 간지러! 좁아 터진 침대 위에서 뭐하는거야 "




" 재환아 "




" 왜, 왜 "




" 너는 옛날이 안 그리워? "




" 갑자기 그건 왜 ? "




" 그냥 "




" 참 나 "




뜬금없는 형의 질문에 문득 말문이 막힌 재환이 무슨 의도일까 머리를 굴려 추론해내지만 딱히 드는 생각은 없어, 그저 장난식으로 던진 말일까 싶어 음- 고민하던 재환이 이내 그립지- 하며 대답해준다.



" 그땐 나 인기 엄청 많았었는데. 물론 지금도 많긴 한데 "



흐흥 웃으며 짓궂게 대답한 재환에 민현은 웃어 넘길법도 하지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다 욱했던것인지 재환의 어깨를 살살 이로 확 물어버린다. 그럼 악! 소릴내며 화들짝 놀라는 재환인데, 민현의 팔 안에 갇혀서는 그의 품을 달아나진 못한다.




" 죽을래? "



" 그게 무슨 형한테 하는 말 버릇이야. 조금 상처받았어, 재환아 "



" 놔봐 이거. 나도 깨물어 버리게 "




작은 아랫 송곳니가 잔뜩 날이 세워져있는게 눈에 보인다. 딱딱- 이를 부딪히며 복수를 다짐하는 재환의 살기어린 목소리를 들으니 혹시 저가 세게 깨물었나 싶어 그 여린 살결을 훑지만 그의 등 뒤로 난 자국들이라곤 지난 밤 정사를 치뤘던 흔적들 뿐이었지, 장난식으로 깨문것임에 틀림없었던 민현의 장난에는 가벼운 잇자국 조차 나 있지 않아 조금 다행이라 생각된 민현이었다. 그러며 엄살대마왕이라 낮게 쭝얼거리면서, 방방 날뛰는 재환이 조금 무서워 쫄린 민현은 더욱 세게 그를 팔 안에 가둬놓고선 풀어주지 않았다.




여튼, 그렇게 한참 바즈락거리다 제풀에 지친 재환이 조금 잠잠해져선 혼자 궁시렁거리고만 있는데, 민현이 우리 예전엔엄청 붙어다녔었지- 하며 추억을 회상하게 만든다. 그럼 이내 그가 말한 대학시절을 떠올려낸 재환은 그랬었지- 하며 같은 학교였기도 했으니까, 데이트도 매일 하고, 지겹도록 얼굴 볼 수 있어서 좋기도 했고. 이런저런 추억들을 떠올려내는데, 막상 떠올려내니 행복했던 기억들로 넘실거리기만 해져선, 그땐 그랬고 저땐 저랬고, 한참을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웃으며 떠드는데, 재환은 추억을 꺼내어 말을 하던 중 은연중 지금은 바빠서 데이트도 잘 못하네. 하며 무언가 서운함이 밀려온것인지 행복했던 옛과 달리 지금은.. 하는 생각까지 뻗치게 되어 입을 꾹 다물게 되었는데, 그래도 이내 정신차리고서 지금도 예전만큼이나 행복하지! 하며 다시금 웃지만, 형은 조금 잠긴 목소리로 "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 하며 말을 한다.



그제서야 형이 이런 질문을 뜬금없이 내던진 이유를 어느정도 눈치채게된 재환이, 그런 축 쳐진 민현에게 " 형, 일이 많이 힘들어? " 하고서 물어온다.




아닌것은 아니었던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민현이 등 뒤로 느껴지자 재환 또한 착잡해졌다. 형이 꽤 공들여 다니던 회사가 좋지 않는 상황의 연속으로 휘청거릴 위기에 처하고 있음을 재환 또한 오며가며 라디오로, 뉴스헤드라인 소식으로 여러번 접해 진작 알고있었다. 

그런 재환은 한참 침묵을 유지하다 어떻게 형을 위로해야할지, 어떻게 해야만할지 잠시간 고민하다 저를 붙잡고 있던 형의 느슨해진 팔을 풀어내어 자세를 돌려 마주 앉았다.



" 나는 형이 조금만 덜 열심히였으면 좋겠어 "



" ... "




" 형이 얼마나 그 회사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만, 형이 너무 힘들다면 조금 쉬어가도 되지 않을까 "




" ... "




" 막말로 형 정도면 더 좋은 회가 찾아갈 수도 있는거고, 정 힘들면 그냥 나한테 의지 해! 내가 형 먹여 살릴게! "





그제서야 하하 웃는 민현이어서 조금 다행이긴 했을 재환이지만, 그래도 민현이 이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렇게 힘들어 하면서도 일을 그만 둘 일은 절대 없어 보였다. 그 부분에 대해선 재환도 진작 알고있었던 형의 성격이라 어쩔 수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형이 조금만 덜 힘들었으면 좋겠는데 싶어, 그저 그런 그를 끌어 안아 위로해 주는 재환이지.




" 재환아 "



" 응 "



" 나는 언제나 너한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




재환이 그 말을 듣고서 푸흐흐 웃었다. 매일 같이 재환에게 하는 민현의 반장난과도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입으론 웃고있지만은 진심을 다해 웃지는 못했다. 어쩌면 나머지반은 정말 진심과도 같을 말이라.

그래서 그것이 아마 그가 일을 쉬이 놓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그것이 그의 과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버릇같은거라 정말 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많이 착잡했다.



" 형은 충분히 멋있는데 "




그래서 그런 재환은 매번 그에게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답을 해주지만, 민현은 그런 재환의 말을 들으며 기뻐하면서도 언제든 절박하게만 살아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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