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나요. 아이들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깊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드린 우카이의 눈빛이 근중했다.


“그리 나쁘진 않더군. 각자 개성도 독특하고 강해.”

“다행이네요.”


타케다가 흐뭇하게 미소 짓자 우카이가 입을 쩝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서툴러. 완전. 갈 길이 태산이야.”

“그렇겠죠…….”


그의 단호한 음성에 타케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갔다. 우카이다 담배를 입에다 가져가다 다시 내려 놓으며 그를 향해 물었다.


“그 녀석. 도대체 뭐야.”

“누구요?”


타케다가 갸웃 하며 그가 말한 그 녀석에 대해 생각했다. 늦게 들어온 아사히를 말하는 건가.


“카게야마.”


우카이의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딱딱해져 있었다.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미간이 곧게 뻗어 움직이지 않았다.


“신입이에요. 다른 신입보다 3주정도 일찍 들어왔죠.”

“흐음.”


걷고 있던 걸음이 멈춰지고 타케다가 뒤로 돌아섰다. 우카이가 다시 담배를 빨아들이고 한숨처럼 깊게 내뱉었다.


“그 녀석은 천재야.”


오기 전에 봤던 데이터가 솔직히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내가 가볍게 여긴 걸지도 모른다. 단순한 공기, 그저 수비력에 뛰어난 것이라고 말이다. 안일하게. 거기다


“망설임 없는 일보. 그리고 그 꼬맹이에게 완벽히 맞춰준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런 카게야마라는 존재를 믿고 능력을 꺼낸 히나타. 라는 그 꼬맹이도 만만치는 않지만.


“괴짜들이더군.”


스가와라가 왜 카게야마와 떨어져서 다른 팀에 섰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 그 건방진 신입 녀석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면 스가와라에겐 많은 연습과 쌓아온 시간, 안정과 신뢰가 있어. 이것은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 질만한 게 아니야.


“꽤 괜찮잖아. 지금의 카라스노. 좀 빨리 부르지 그랬어.”

“몇 번이고 말했거든요.”


타케다가 삐뚤게 떨어져 내린 안경을 쓸어 올리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둘.”

“설마 괴짜라 했던 히나타랑 카게야마요?”“그래. 원래 알던 사인가?”

“아뇨, 같은 신입이에요. 만난 지 석 달도 채 안됐네요.”


매일 마다 티격태격하는 히나타와 카게야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타케다가 가볍게 웃었다. 그의 말에 우카이가 담배 끝을 비비고는 케이스 안에 탁 집어넣었다.


“보통 아니네.”

“네?”

“아냐. 됐어. 이만 가지.”


우카이가 멈췄던 발을 다시 들어올렸다. 올라가는 내내도 그의 입에서 담배향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생각할 것이 끊임없이 차오르고 있어서겠지.


단순하게 군대의 일원으로 있을 땐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임무가 생기면 그 일을 해결하는 것에만 열중했었다. 하지만 반대 입장은 아무런 생각 없이 있을 수가 없다. 그만큼 전장의 중심은 무겁다는 것이겠지. 그것이 짧던 길던 중심에 있는 한.


“우리도 돌아가자.” 


멀리서 흩어져 있는 그들을 향해 소리친 다이치가 희소하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터벅터벅 걸어오기도 하고 올망졸망 걸어오기도 한 녀석들이 어느 새 11명. 기척 없이 위에서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엔노시타까지. 모두 모였다.


“가기 전에 다들 모여봐.”


개구진 표정을 지으며 손짓하는 다이치에 다들 갸웃하며 모이자 그들의 몸이 밑으로 푹 숙여졌다.


“이게 뭐에요……”

“왜 좋구만!”


입이 삐죽 나온 츠키시마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반대편에 있는 타나카가 대성하며 기분 좋은 듯 웃어댔다. 우르르 동그랗게 모인 채 어깨동무를 한 그들 사이. 다이치가 다시 한 번 강렬하고 강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카라스노.”


그의 목소리에 입고 있는 저지가 펄럭인다.


“파이”

“팅!”


광활한 필드 안으로 그들의 목소리가 꽉 메워진다. 물 위로 검은 무언가가 지나간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천장에는 스가와라가 만들어 낸 검은 새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우와”


히나타가 눈을 반짝이며 검지만 조금은 투명한 새들을 바라보았다. 날아갈 때마다 검은 깃털이 물 위로 내려앉아 사라진다. 기려한 품이 아름답다.


모두의 시선이 날아가는 새에게 닿고 있다. 가슴 한편이 울렁거리고 찌릿하다. 날아가는 저 열한마리의

 새처럼 우리도 날아오를 것이다. 분명히.


*


오랜만에 모두가 방에서 잠드는 밤은 아주 조용하고 고요했다. 시계의 초침소리만이 낮게 울리는 거실 복도 위로 처음 비치는 그림자가 천천히 지나갔다.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방 앞으로 그의 인영이 비쳤다.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던 그가 옅은 숨을 내뱉고서 안경을 벗어 내렸다. 책상 위로 안경이 올라가자 곧


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가 문틈에서 흘러들어왔다. 방문 너머로 어디에선가 맡아본 바다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부드러운 고동색 눈동자와 검고 푸른 눈동자가 처음 제대로 마주하였다. 바다 냄새는 역시 이 사람의 것이었다.


“안 자고 있을 것 같았어.”


아사히가 싱긋 웃으며 카게야마를 바라보았고 그는 말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생각해 봤는데 역시 이건 내 것이 아니야”


그가 카게야마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주먹 쥔 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날개를 감춘 새였다.


“그게 무슨”


카게야마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자 아사히가 가볍게 함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잘은 모르겠어. 하지만 이게 내 것이 아니란 건 알아.”


본인도 잘 모르는 감정인 듯 했다. 아사히가 카게야마의 손 위에 새를 올려두었다. 낡고 낡은 구. 방울처럼 고운 소리를 낼 것 같은 모양새였다.


“아마 네가 지키려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그런가봐.”


멋쩍은 미소 뒤로 아까의 일이 회상되었다. 골에게로 달려가던 그가 한 순간에 새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에게로 방향을 틀었었다. 아마 직감이라는 것이겠지. 이것이 가진 무게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겠지.


“감사합니다.”


카게야마가 새를 받아들었다. 사용할 수 있는 용도도 아니고 도움이 되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서도 아사히는 그에게 건네었고 그는 그 물건을 받아드렸다.


아사히가 곧 뒤로 돌아 걸어갔고 잠시나마 열렸던 그의 방문도 굳게 닫혔다. 카게야마가 안으로 들어서서 달빛에 빛나는 구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창문에서 들어오는 달빛은 그와 새를 모두 비추고 있었다. 날개를 꺼내면 새가 되는 이것은 정말로 이상한 구였다.


살며시 구를 쥐어낸 카게야마가 천천히 손가락을 폈다. 구가 맑은 소리를 내면서 가볍게 떠올랐다. 양옆으로 작게 펼쳐지는 날개는 달빛을 받아서인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투영했다. 카게야마가 천천히 그것을 들어 올리며 새를 바라보다 이내 손을 쥐어내려 움직이자 알 수 없는 파동이 새에게서 밀려나왔다.


카게야마의 미간이 묘하게 일그러졌고 그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그의 손이 움직일수록 밝게 빛나며 튀어 오르는 푸른빛은 강렬하게 반짝거렸다. 그렇다. 이건 새도, 구도, 그 무엇도 아니다. 언젠가 주인의 손에 들어가길 기다린 누군가의 물건이다. 그가 손을 완전히 쥐어내자 곧 터지는 소리와 함께 구가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손 위로 새로운 무언가가 떠올랐다.


“…….”


푸른빛이 사라지고 무언가도 그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작고 기다란 원통형. 그리고 그 바깥쪽으로 튀어나온 사각형의 돌기와 그와 같은 모양새의 구멍들. 말없이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주먹을 꽉 쥐어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의 반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이것은 그런 것이었다. 카게야마가 다시 의자에 앉고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달빛이 비친 천장이 다른 날보다도 더 푸르게 느껴졌다.




*



“아, 우카이 군”

“왜, 선생”


방 문틈을 살며시 열고 머리를 빼꼼히 내민 타케다가 막 자려는 우카이를 깨워 섰다.


“깜빡하고 말 못했어요.”

“뭐를”


우카이가 귀찮다는 듯 크게 하품했다. 긴 걸음을 오가고 시합을 바라보며 증축된 피곤이 그의 온몸을 지배했다. 그의 눈가는 이미 닫힌 지 오래였다.


“곧 도착할거에요.”

“누가.”

“누구긴요.” 


그의 말에 닫혔던 우카이의 눈이 슬그머니 열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저러는 건지.


“네코마죠.”


노란 두 눈이 태양처럼 거대하게 커졌다. 떠지지 않을 눈동자가 말이다. 그가 입을 바닥에 닿을 만큼까지 벌리며 온갖 곳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뭐?”


그의 반응이 이상했는지 타케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라고? 네코마?”

“네. 오기 전에 말씀드렸는데”

“그런 걸 기억할까보냐”


억지로 온데다 갖은 정보가 들어오는 바람에 머리 빠개지는 줄 알았다만. 우카이가 미간을 찌푸리고 이를 갈며 머리를 헤집었다. 그러보니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래서 내가 여기를 기어서 온 거지.


그 쓰레기장 결전을 두 눈으로 봐보려고. 그 영감이 복귀했다는 소식도 들었겠다. 잘됐네. 아쉽겠어, 영감탱이. 결전을 내가 먼저 보게 생겼으니. 일그러졌던 미간이 어느새 빳빳이 펴진 채 날카롭게 뻗어있었다.


“그렇다면 빈손으로 반길 수는 없지.”


우카이가 진하게 미소 지으며 침대위에 걸터앉았다. 달라진 그의 표정에 타케다가 여전히 갸웃했지만 이내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얼마만의 결전인데.”


저 멀리 떠오른 달 위로 까마귀 떼가 날아갔다. 자유로운 하늘의 밑 지평선 아래로는 날아가는 까마귀를 보던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의 극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깃털이 각기 다른 고양이 털 위로 내려앉자 하얀 고양이 위로 앉은 검은 색 깃털을 그와 닮은 하얀 손가락이 천천히 잡아냈다.


얌전했던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다시금 울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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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가 늦었습니다 ㅠㅠ

사진의 출저는 해리포터 시리즈 마법사의 돌 캡쳐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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