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카타 죠스케, 니지무라 오쿠야스.

 

왕성한 십 대 남학생의 식욕처럼 놀라운 금액의 영수증만을 남기고 쌩하니 도망갔지만.

 

쿠죠 죠타로는 적어도 둘이 그 비싼 밥값의 역할은 톡톡히 해 주고 갔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식으로도 되는군.”

 

죠타로는 제 눈앞에 ‘멀쩡히’ 있는 네 명을 바라보았다.

 

우쭐한 표정을 하고 있는 ‘만화가’ 한 명과.

 

신기하다는 얼굴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소녀’ 한 명과.

 

아주 익숙하다 못해 속으로 작별인사니 뭐니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우게 했던 ‘친구’ 두 명. 물론 한쪽은 조금 부정하고 싶은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의 눈앞에는 익숙한 네 명이 함께 서 있었다. 로한, 레이미, 그리고…… 카쿄인과 디오.

 

물론 언제나처럼과 같은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팔랑, 죠타로는 종이처럼 일어난 제 팔을 꾹 누르며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이곳은 골목길 밖이다.

 

골목길 밖부터는 본격적으로 ‘골목’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장소이다.

 

골목에 매인 존재인 스기모토 레이미 또한 골목을 한 번 벗어나면 바로 앞 입구에서 몇 걸음 옮기지를 못한다.

 

사실 골목길 바깥으로 걸음하는 것도 꽤 힘을 사용하는 일이라고 한다.

 

예전 그녀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 다른 사람들에게 키라의 악행을 알리며 도움을 청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매일 같이 나가 있으면 누군가 보고 이야기를 들어 주었겠지만, 유령인 그녀로서는 그것조차 상당히 힘든 일이었던 모양이다.

 

정확하게 ‘골목’을 통째로 자신의 장소로 하고 있는 스기모토 레이미조차 힘들어하는 일이다. 그 골목 밖에서 다른 유령의 모습을 보는 건 언뜻 듣기에 불가능한 일처럼 들렸다.

 

한번 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죠타로는 동시에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시도라도 해 보자고 생각하게 된 건 다른 방법이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그 어린아이 같은 아이디어를 든 채로 죠타로는 로한의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없는 척하던 로한은 죠타로가 스타 플라티나를 불러 문짝을 뜯어 버리기 직전에야 문을 걷어차듯 쾅 열고 집 밖으로 모습을 보였다.

 

숨기지 못한 떨떠름한 표정이 그를 결코 반기지 않는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뚱한 얼굴로 택배 배달원인 줄로만 알았다고 내미는 변명은 그를 아는 누구라도 거짓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했지만 죠타로는 일부러 탓하지 않았다.

 

뭐, ‘디오’와 ‘카쿄인’의 존재를 인식한 로한이 골목을 뻔질나게 들락날락하기 시작하고, 그래도 둘에 관한 조금의 힌트도 얻지 못해 죠타로를 따라다니기 시작하고, 알려 주지 않자 틈만 나면 호텔에 숨어들어 ‘헤븐즈 도어’로 머릿속을 열어 보려는 도전을 시작하고……. 지난 몇 주간의 실랑이가 있었는데 그전처럼 좋게 좋게 마주하기는 영 힘든 일이었다.

 

10여 년간 사용한 적이 손에 꼽힐 정도인 스타 플라티나의 ‘시간 정지’ 능력을 로한에게만 두 번이나 사용했던 해프닝을 떠올리자면 죠타로 또한 영 입이 썼다. 만화가의 리얼리티를 향한 집념이 이토록 크고 굳건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 와중에 꿋꿋하게 둘의 정체를 이야기하지 않은 레이미에게는 감탄이 밀려올 정도다.

 

로한은 그동안 골목길에 드나들며 레이미에게 둘의 정체를 무수하게 캐물었지만 레이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그를 향해 떠넘기기만 했다. 글쎄, 죠타로 씨가 알지 않을까? 하고.

 

로한의 스탠드 능력으로 볼 수 있는 건 레이미의 죽음까지다. 그 이후 유령으로서 골목에서 생활하던 시간은 죽은 후의 일이기에 조금도 기록되지 않는다. 로한이 둘에 관해 알아내는 방법은 죠타로를 통한 것뿐이었고, 죠타로는 나중에 거의 협박에 가까운 으름장까지 늘어놓고 나서야 로한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렇게 떨쳐낸 녀석을 제 발로 다시 찾아오게 될 줄이야.

 

지난번 레이미라는 이름에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던 키시베 로한은 이번에야말로 더없이 하기 싫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죠타로는 로한을 끌어낼 미끼가 있었다. 잘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시도라도 해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알려야 할 사실.

 

죠타로는 선심 쓰는 척 로한에게 말했다. 그 둘의 정체를 알려 주겠다고.

 

의심쩍은 시선으로도 솔깃한 기색을 지우지 못한 로한은 부탁이 있다는 말에야 등가교환의 제안이었다는 걸 납득하고 골목으로 따라나섰다.

 

다만, 지난번 스기모토 레이미의 책을 열었던 것과는 달랐다.

 

이번에 열게 된 건 ‘카쿄인 노리아키’와 ‘디오 브란도’, 그 두 사람의 책은 아니었다.

 

레이미의 일과 비슷한 방식이었지만, 죠타로가 생각한 건 조금 달랐다.

 

지난번처럼 목적을 다시 쓰는 일이냐고 물어보는 로한을 달고 골목으로 돌아오는 도중 죠타로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

 

레이미가 기운을 잃고 사라지게 될 뻔한 건 그녀의 목적을 전부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그 목적은 그녀가 죽는 그 순간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기에 유령이 된 후는 볼 수 없는 로한의 스탠드로도 레이미의 마지막 장을 열고 거기에 목적을 추가로 더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마지막 순간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유령은 죽은 후의 존재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죽는 순간’에서 멈추어 있는 존재였다. 유령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후로 승천하는 상황까지 존재했기 때문이다. 레이미 또한 목적을 다 이룬 후 처음에는 승천해 돌아가려고 했다. 따지자면, 그렇게까지 마쳐야 진정으로 ‘죽음 후’가 찾아오는 것이다.

 

로한의 스탠드로도 죽은 사람 자체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레이미에게 헤븐즈 도어를 사용해 ‘죽지 않았다’고 아무리 덧붙여도 레이미가 산 사람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기에 살아 있을 때의 기록만을 보여 주는 스탠드 능력은 유령의 책을 죽음 이후로는 보지도 쓰지도 못하게 한다. 레이미가 골목길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낸 것도 헤븐즈 도어로 읽을 수 없었다.

 

유령이 된 후의 레이미에게는 스탠드가 통하긴 했지만, 적거나 볼 수 있는 건 딱 ‘살아 있던 순간의 마지막’까지만이었다. 유령이 된 후엔 불가능하단 거다.

 

죠스케의 스탠드처럼 죽은 사람에겐 통하지 않는 능력이다.

 

과연 두 사람이라고 다를까.

 

골목길에서만 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유령 기준이다.

 

그들에게 헤븐즈 도어를 사용해 적어 봤자 ‘삶이 기록되었던 부분’ 위에 적히는 것이다. 유령이 되어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지금에까지 통할지는 기약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죠타로는 헤븐즈 도어가 카쿄인에게 분명 통할 거라는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과 별개로 디오에게 통할지는 영 자신이 없었다…… 지금에야 카쿄인과 이러니저러니 대화하지만, 어디까지나 죽은 후 함께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친해지게 된 것뿐. 생전에는 만화책을 팔랑 넘기는 취미 대신 사람 목을 잘라 넘기는 취미가 있을 것 같던 느낌적인 느낌이…… 음.

 

죠타로는 재단에선 일선의 스탠드사였지만, 다르게는 연구자였다. 분석하고 하나하나 뜯어 파악하고 본질을 찾는 일에 더없이 익숙했다.

 

골목까지 걸어오는 길은 생각을 다듬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그런 만큼 유령과 인간과 스탠드 능력의 특성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던 죠타로가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로한에게 다짜고짜 통보한 건 이상하지 않았다.

 

“키시베 로한. 헤븐즈 도어를 사용할 쪽은 그쪽이 아니다. 둘을 향해서라면 아마, 소용없을 테니까.”

 

“무슨 소리입니까?”

 

“네 스탠드를 내게 써라. 그리고 그 위로 적을 건…….”

 

‘항상 유령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간략한 문장 하나.

 

무슨 소리를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로한은 그의 말을 빠르게 이해했다. 재미있다는 듯한 흥미 어린 미소가 새겨지는 것과 동시에 죠타로는 이때다 싶어 냉큼 말하는 로한의 목소리를 들었다. 헤븐즈 도어!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득한 시야에 미간을 왈칵 찌푸리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로한이 완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막 그의 팔을 ‘넘겨 보려’고 하는 중이었다.

 

팔은 얇디얇은 종이처럼 일어난 채 우르르 바닥에 쏟아져 있었다. 팔뿐만이 아니라 몸의 다른 곳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기분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니, 로한의 스탠드 능력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참 신기했다.

 

종이로 변한 팔의 위의 글자를 쳐다보는 로한은 아주 흥미롭고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얻은 것 같았다.

 

쓰라고 했더니 이번 기회를 틈타 그를 전부 읽어 볼 기세였다.

 

로한이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기엔 놀랍게도 로한뿐만이 아니라 예상외의 사람…… 아니, 유령들도 덕지덕지 합류해 있었다.

 

당하기만 했지 눈앞에서는 스탠드 능력을 처음 보는 레이미라거나, 로한보다 먼저 온통 집중해 들여다보고 읽고 있는 카쿄인과 디오라거나…….

 

죠타로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두 명을 쳐다보았다. 저 녀석들까지 이때다 싶어 달라붙을 줄은 몰랐다.

 

디오는 그렇다 쳐도 카쿄인, 네 녀석은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넌 내 친구라며, 이 자식아.

 

말리지 않는 걸 넘어 카쿄인은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새 홀라당 다 읽었는지 옆의 로한을 쿡쿡 찌르며 오히려 재촉하고 있었다. 빨리 읽고 다음 장 넘겨봐요.

 

……죠타로는 순간 고민했다. 저 녀석들을 항상 옆에서 보게 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물론 그런 고민은 잠시뿐이었다.

 

기절하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눈앞에서 멋대로 자신의 머릿속을 읽게끔 놓아둘 생각은 없었다.

 

죠타로는 그들에게 잡힌 팔을, 정확히 말해 팔에서부터 흘러내린 종이뭉치를 힘껏 잡아당겼다.

 

사르르 당겨지는 종이를 따라 고개를 돌린 로한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기절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로한을 보며 죠타로는 경고하듯이 슬쩍 웃었다.

 

로한이 끼적끼적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죠타로는 사실 이것만으로 이번 일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로한의 스탠드 능력이 만능처럼 보여도 정말 만능은 아니다. 보이지 않던 유령이 ‘이제부터 보인다’라고 적는다고 보이게 될 리는 없는 것이다…….

 

……라는 생각은 레이미를 따라 골목 밖으로 나갔을 때 철회되었다.

 

열 몇 살의 쿠죠 죠타로가 있을 거라고 평생 생각하지 못했던 스탠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스물 몇 살의 쿠죠 죠타로가 있을 거라고 평생 생각하지 못했던 유령을 모리오쵸에서 만나게 된 것처럼.

 

가끔 어떤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일은 그런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풀리기도 했다.

 

죠타로는 골목 밖까지 줄레줄레 그를 따라나선 ‘두 유령’들을 보면서 드물게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뭐야, 이거. 정말 보이잖아.

 

골목 밖임에도 불구하고, 죠타로는 카쿄인도 디오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제껏 골목 밖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부터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었던 것과 다르게 골목 밖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모습은 골목 안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명했다.

 

이런 장난 같은 일로 해결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무리 고민을 하긴 했어도 정말 적는 것만으로도 볼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이런 식으로도 되는군.

 

기쁜 마음보다 떨떠름한 심정이 앞서게 되는 건, 아무래도 그 열흘간의 고민과 노력이 허망하게 흘러간 듯한 기분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 쉽게 될 거 내가 왜 그딴 고민을…….

 

“와아, 죠타로. 정말 내가 보여요? 응?”

 

눈을 휘둥그레 뜬 카쿄인이 디오의 옆에서부터 눈앞으로 종종 걸어와 손을 흔들어 댔다. ‘유령’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볼 수 있게 되니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골목길 밖에서 보는 ‘카쿄인’이라니. 새삼스럽다 못해 이상한 기분이 든다.

 

10여 년 전의 전투는 죠타로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가장 큰 건 허무함이다.

 

허무함은 동료를 잃었다는 것에서뿐만 비롯되는 게 아니었다.

 

죠타로는 디오의 시체를 눈앞에 두었을 때도 같은 허무함을 느꼈다.

 

친구들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떠밀어 주었다. 그 길의 인도에 따라 치열한 접전 끝에 디오를 쓰러뜨렸다.

 

하지만 쓰러뜨려도, 무언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스름한 태양 빛에 따라 시체는 검은 재로 변해 흩어져 갔다.

 

잃은 모두는 돌아오지 않는다. 동료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쓰러뜨렸던 디오조차도.

 

죠타로는 점점 더 밝아지는 이집트의 아침에 서서 그때를 마지막으로 제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을 떠나보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가를 잃는 걸 알아 간다는 것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골목 안에서는 밖으로 벗어나면 만날 수 없는 ‘순간’이란 느낌이었다.

 

바깥에서 보게 되니 정말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 새삼스러운 감상에 빠져 잠시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카쿄인은 금방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안 보이나 봐.”

 

빠르게 포기하고 물러서는 모습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보였다.

 

내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듯한 태도였다.

 

죠타로는 디오에게 쪼르르 걸어가는 카쿄인을 보며 저도 모르게 불러세웠다.

 

“카, 카쿄인. 잠깐만.”

 

얼결에 뱉은 부름일 뿐인데도 카쿄인은 멈추어 섰다. 뒤를 홱 돌아보는 두 눈이 커다래져 있었다.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며 카쿄인은 소리 없이 입을 뻥긋거렸다. 지금 나 부른 거야? 더없이 놀란 얼굴이었다.

 

조금 전 더없이 익숙하게 보였던 태도와 다르게 더없이 놀란 반응을 보자 왠지 목이 막혔다.

 

죠타로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잠시 자리에 굳어 있던 카쿄인은 순식간에 그의 앞까지 ‘날아왔다’.

 

발이 땅에서 떨어진 채라는 상황에 기겁하기도 전, 그의 앞까지 폴짝 날아온 카쿄인이 목을 홱 휘감고 매달렸다.

 

매달린 몸에서 무게는커녕 아무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서야 놀람이 가셨다.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항상 이런 식으로 붙어 있었지만, 그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뿐.

 

하지만 이제 볼 수 있어.

 

더없이 잘됐다는 느낌으로 웃어 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죠타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순간들…….

 

바람에 따라 흘려보냈던 그때의 시간을 돌려받는 느낌이 들었다.

 

 

 

*

 

 

 

“그러니까 당신의 과거는 정말이지 뻔하디뻔하기 짝이 없단 거군요. 집이 더 좋았다라, 이걸 자랑스럽게 말할 줄이야.”

 

카쿄인 노리아키는 인내심이 짧지 않은 남자였다.

 

의지력도 강했고 참을성도 있었다.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힌트 하나를 건네고자 했던 걸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죠타로는 아까와 다른 느낌으로 새삼스런 감상이 들었다.

 

카쿄인 녀석도 이런 식으로 화를 낼 수가 있다니.

 

“그러니까 요새 말로 하자면 히키…….”

 

“아니라고!”

 

카쿄인은 잔뜩 열이 받아 로한을 향해 주먹을 홱 휘둘렀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은 골목 밖이었다. 즉,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느 정도 물리적 특성을 띠게 되는 골목 안과 다르게 골목 밖의 그들은 그저 보이기만 하는 ‘유령’ 그 자체였다.

 

심지어 보이는 것도 로한의 스탠드 능력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고. 헤븐즈 도어로 유령을 볼 수 있다고 쓰인 로한과 죠타로만이 둘을 볼 수 있는 산 사람이었다.

 

카쿄인의 주먹은 그대로 로한을 통과했다.

 

“큽…….”

 

“웃지 마!”

 

옆에서 디오가 간신히 소리를 삼켰다.

 

디오는 죽은 몸인데도 또 죽어 가고 있었다…… 웃느라고.

 

죠타로는 제게 바짝 달라붙어 있는 디오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카쿄인 녀석이 붙어 댄다고 뭐라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디오도 그의 주변에서 별반 움직일 곳이 없는 건 똑같은 상황인 셈이다.

 

디오는 그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간신히 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이것도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은 더 파고들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로한은 정말 호기심이 무궁무진했다.

 

유령인 레이미와, 이제 ‘볼 수 있게’ 된 죠타로와 다르게 그는 골목 밖에서 둘을 도무지 볼 수 없었다. 스탠드로 유령을 볼 수 있도록 쓴 건 어디까지나 죠타로뿐이었으니까.

 

레이미와 죠타로가 번갈아 ‘허공’에 말을 거는 모습을 흥미 깊게 보던 로한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스탠드를 사용했다.

 

똑같은 말을 써넣고서 마찬가지로 둘을 ‘볼 수 있게’ 된 로한까지 대화에 끼어들고 나서야 죠타로는 벅차던 감정을 간신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정말 ‘유령’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자마자 로한은 궁금한 내색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를 수첩을 들고 무지막지한 질문을 퍼부었다. 당신은 누구인지, 죠타로 씨와 무슨 관계인지, 어쩌다가 유령이 된 건지, 같은 유령으로서 레이미와 차이점이 얼마나 있는 건지 하는 질문들 따위였다.

 

우다다 쏟아내는 말들에 기겁해 제일 먼저 몸을 뺀 디오와 다르게 카쿄인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감격에 젖은 채 로한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죠타로는 카쿄인이 예민할 수 있는 부분까지 덥썩 덥썩 대답하는 걸 들으면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긴 시간 동안 단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있으면 그런 건 사소한 점이 된다는 디오의 말을 들으면서 죠타로는 둘이 친해지게 된 심정적 맥락을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로한에게 아주 잘 협조해 주던 건 오래가지 않았다.

 

로한은 상대의 기분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포착할 줄 아는 예리함과 뛰어난 관찰력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격이 그닥 좋지는 않았다.

 

평소 질답 대신 스탠드 사용하기를 즐겨 했던 로한은 소위 말하는 인터뷰 스킬이 뛰어나지 않았다.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닌, 그저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잔혹하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로한과의 대화 속에서 카쿄인은 그 진중하던 인내심을 잃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엔 지금처럼 팔팔 성질까지 내고 있게 된 것이다.

 

디오는 카쿄인이 로한에게 일방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댈 때부터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가 카쿄인을 더욱 자극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저 녀석은 언제까지 로한과 실랑이할 건지…… 너도 그만 좀 웃어라, 디-”

 

한 대 때려 주고자 든 손이 그대로 디오를 통과했다.

 

“…….”

 

죠타로는 드물게 멈칫해서 눈을 깜작거렸다. 아, 맞아. 안 통했지.

 

잠깐 뭘 했나 눈을 마주 깜박이던 디오는 멈추었던 웃음을 다시 터뜨렸다.

 

“……이봐, 웃지 마.”

 

드물게 민망해졌다. 목덜미가 다 화끈거렸다. 웃음소리가 민망한 감정을 부추겼다.

 

어디에라도 화풀이하고 싶은 기분이랄까. 도무지 가라앉힐 기세가 안 나는 카쿄인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죠타로는 웃느라 정신없는 디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손으로 녀석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유령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단 소리는 아니었다.

 

“……스타 플라티나.”

 

디오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스타 플라티나가 그의 입을 콱 틀어막았다. 유령에게 스탠드가 통한다는 걸 이 순간만큼 다행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디오는 스타 플라티나에게 잡힌 채 그를 마구 노려보았다.

 

왠지 이긴 것 같은 기분에 한 켠이 우쭐해졌다.

 

시간을 돌려받은 느낌처럼, 그때의 성격도 일부 돌려받은 기분이다.

 

죠타로는 디오를 질질 끌고 둘에게로 다가갔다.

 

약이 잔뜩 올라 있는 카쿄인과 비꼬듯 빈정거리고 있는 로한의 모습을 번갈아 보자니 한숨이 났다. 그만 좀 해라, 그만 좀 해.

 

말리는 게 좋을 것 같은 쪽은 아무래도 카쿄인이었지만, 죠타로는 카쿄인 대신 로한의 목덜미를 잡고 홱 잡아당겼다.

 

“윽?!”

 

뭐, 유령은 손에 안 잡히니 어쩔 수 없지. 아까와 같은 실수를 할 생각은 없었다.

 

막 입을 열려던 로한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틈을 타 아예 카쿄인과 로한의 사이를 막듯 끼어들었다.

 

순간 당겨졌던 목에 켁켁대던 로한이 그를 불만스럽게 쳐다보았다.

 

“뭡니까, 쿠죠 죠타로 씨.”

 

“죠타로, 비켜욧!”

 

“이거야 원.”

 

나란히 반발이 심한 걸 보니 놓아두면 한참은 더 이럴 것 같다.

 

다행인 건, 카쿄인이 ‘그에게 붙어 있는’ 유령이란 점이다.

 

죠타로는 가타부타 말하는 대신 그냥 사이를 빠져나와 한쪽으로 쭉 걸었다.

 

일정 거리가 벌어진 순간부터 카쿄인은 질질 끌려오듯이 했다. 강제로 뒤로 떠 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일정 거리 이상으로 떨어지지 못한다더니 이렇게 눈으로 보니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스타 플라티나의 사정거리보다 조금 더 여유가 있나. 3~4m쯤의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보면서 죠타로는 카쿄인이 로한에게서 어느 정도 떨어질 때까지 그냥 더 걸었다.

 

자연스럽게 다투던 대화가 끊어졌다.

 

죠타로가 걸음을 멈추었을 땐 배신이라도 당한 듯한 표정의 카쿄인과 상황이 신기하단 얼굴의 로한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그의 뒤편에서는 여전히 스타 플라티나를 못 벗어난 디오도 노려보고 있었고…… 이래저래 얼굴이 뚫릴 것 같았다.

 

죠타로는 그제야 조용해진 둘을 번갈아 보았다.

 

“후우, 적당히 해라.”

 

“하지만 죠타로. 로한이.”

 

이젠 키시베 씨도 아니고 그냥 로한이다…….

 

불만스러운 카쿄인의 목소리에 죠타로는 로한을 쳐다보았다.

 

로한은 오히려 흥 코웃음 치며 고개를 비꼈다.

 

“쿠죠 죠타로 씨. 제가 도와드린 건 사실 아닙니까? 인터뷰하는 것뿐입니다, 인터뷰. 강제로 스탠드를 쓰는 것도 아니고. 보아하니 당신이 버티면 쓸 기회도 없을 것 같은데.”

 

“도움받은 건 사실이니 그걸 뭐라고 할 생각은 아니다만…… 얘 성질 좀 돋우지 마라, 로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죠타로!”

 

“그리고 네가 더 흥미로워할 만한 인터뷰 상대는 이쪽이다. 뭐, 이제 보니 말하는 것도 잘 통할 것 같고.”

 

죠타로는 디오를 흘깃 가리켰다.

 

이번엔 디오가 어처구니없는 얼굴을 했다.

 

“언제부터 이 디오가 마음대로 넘겨버릴 상대가 됐는지, 괘씸하군, 쿠죠 죠타로.”

 

“그런 내게 져서 이 꼴이 되었다는 건 지난 10년간 잊었나 보군, 디오. 패자 주제에 승자의 말을 따르는 건 당연지사겠지.”

 

“카쿄인 노리아키, 저 자식이 그렇다는데.”

 

“씨…….”

 

“……이런, 미안. 카쿄인. 그런 뜻은 아니었어.”

 

잠시 쩔쩔매며 사과하는 사이에 로한의 관심은 정말로 디오에게 돌아갔다.

 

디오는 카쿄인보다 요령이 좋다. 이렇게까지 시끄럽게 굴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강제로 함께 들어야 하는 입장에선 조금 전처럼 싸워 대면 죽을 것 같았다…….

 

“뭐,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죠. 카쿄인 씨에게.”

 

죠타로는 순간 ‘아직도 남았냐’고 한마디 할 뻔한 걸 간신히 눌러삼켰다. 로한이 정말로 흥미 없는 기색을 하고 있던 게 아니었더라면 진짜 덧붙였을 것이다.

 

로한은 펜을 빙글 돌리더니 시큰둥한 목소리로 툭 물었다. 정말 마지막 질문인 것처럼.

 

“레이미가 그랬듯이 유령들은 목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럼 당신이 죠타로 씨에게 붙어 있는 목적은 뭡니까?”

 

죠타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건 죠타로도 아직 듣지 못한 부분이었다.

 

지난번 둘에게 물어본 적은 있었지만, 딱히 확실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레이미의 목적은 키라를 막는 것이었다. 이 마을에 있을 키라를 찾고자 하는 목적 때문에 그녀는 이 마을 골목에 붙은 유령이 되어 떠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붙어 있다. 그들의 목적은 자신과 관련이 있는 것이겠지.

 

목적을 달성하면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지게 되는 상황.

 

애써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은 실수로라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죠타로는 카쿄인이 할 대답에 온통 집중했다.

 

카쿄인은 쾌활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야 당연하죠! 전 죠타로의 친구니까, 죠타로가 오래 살아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뭐야, 뻔하긴. 무슨 초등학생인가.”

 

“아니거든?!”

 

하지만 이건 지난번에 들은 적이 있는 답이었다. 빤히 보이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디오가 핀잔을 줬던 말.

 

카쿄인은 그때 거짓말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았다.

 

죠타로는 저도 모르게 디오를 쳐다보았다.

 

디오의 시선은 카쿄인에게 정확하게 박혀 있었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 말이 거짓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가라앉은 눈길로.

 

거짓말이 맞느냐고 디오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디오 또한 제 목적을 말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게다가 둘은, 서로가 서로의 목적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네가 오래 살아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네놈이 비참하게 죽어 버렸으면 좋겠군.’

 

그건 정말 거짓말일까?

 

정말 거짓말이라면…….

 

이제 둘을 항상 볼 수 있다는 안정감이 치밀고 나서야 죠타로는 처음으로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왜 자신에게 붙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

 

 

 

로한을 질색하는 건 죠타로뿐만이 아니었다.

 

‘목적? 아주 간단히 알아낼 방법이 있죠. 바로 헤븐즈 도어로-’

 

‘키시베 로한!’

 

‘지금 장난하나?’

 

‘……아무래도 그건 좀.’

 

고민하는 기색을 눈치채고 물어본 로한에게 답해 주자마자 돌아온 소위 그 ‘해결 방안’ 한 마디로 셋은 한꺼번에 초토화됐다.

 

죠타로는 양옆에서 그렇게 했다간 가만 안 둘 거라는 매서운 눈길을 받으며 로한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뒤로 몇 걸음 물러나야 했다.

 

대놓고 텄다는 얼굴을 하는 걸 보니 로한은 정말 실천하려던 의지가 만만했던 모양이었다.

 

솔직히 목적이 궁금했지만, 그렇게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

 

죠타로는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로한의 모습에 물러난 곳으로부터 뒤로 몇 걸음 더 물러났다. 물론 이번에는 성화가 아닌 그의 의지로.

 

흥미를 잃은 기색의 로한이 혀를 차며 뒤돌아섰다.

 

멀어지는 로한의 뒤로 쾌활한 레이미가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죠타로는 로한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둘을 돌아보았다.

 

둘은 대놓고 안심한 얼굴이었다.

 

스탠드를 사용해 알아낼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을 보니 정말 궁금해졌다.

 

그들은 왜 자신에게 붙어 있게 된 걸까.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

 

 

 

-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달칵, 전화를 끊고 죠타로는 퀭한 눈을 비볐다.

 

조금 전 건 전화는 재단으로 건 전화였다.

 

오늘이 바로 약속했던 열흘째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쿠죠 죠타로의 외유는 길었다. 지난번 전화에서 벼르고 있던 것처럼 재단 측에서는 그가 하루라도 빠르게 미국으로 돌아오길 원했다. 전화를 하자마자 웬일로 먼저 연락을 주었냐 허겁지겁 반기는 목소리가 높았다.

 

심지어 비행기 표까지 먼저 끊어 놨다. 출발 시각은 오늘의 늦은 오후다.

 

죠타로가 모리오쵸에서 할 일은 전부 끝이 났다.

 

죠스케도 만났고 키라도 잡았다. 레이미의 새로운 목적은 그가 아니어도 도와줄 사람이 있었고 어차피 급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가장 고민하던 유령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로한의 도움으로 찾게 된 후였다. 누가 봐도 머뭇거릴 이유라고는 없었다. 그러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너무 간단하게 잘 풀린다 싶었더니……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하나의 문제가 따라 왔다.

 

그렇다, 쿠죠 죠타로는 유령을 볼 수 있게 된 지 사흘 동안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렸다.

 

“후우.”

 

죠타로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먼저 전화하자마자 놀라던 목소리가 생생했다. 평소 그렇게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특히 모리오쵸의 최근에서는 더더욱 하지 않았다. 둘을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일부러 연락을 미적거리게 했다.

 

그러나 이번은 먼저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잠을 온통 설쳐서 정신을 돌릴 다른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잠을 설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죠타로는 눈을 꾹꾹 누르다가 고개를 들어 허공을 쳐다보았다.

 

허공에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자색 눈과 딱 마주쳤다.

 

“헤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날름 웃어 버린 카쿄인은 허공을 팔랑 날았다.

 

디오의 뒤로 모습을 냉큼 숨기고 고개를 쏙 내미는 모습을 보니 어처구니없었다

 

너, 너, 너…… 지금 웃음이 나오냐, 카쿄인 노리아키……!

 

죠타로는 카쿄인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카쿄인을 흘긋 쳐다본 디오가 들어가라는 듯 카쿄인의 머리를 꾹꾹 눌러 아예 제 뒤로 감추고 있었다. 물론 조금도 고맙지 않았다. 그가 원망하는 대상에는 카쿄인뿐만이 아니라 디오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쿠죠 죠타로는 몰랐다.

 

‘항상’ 그의 옆을 따라다니는 존재라는 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처음, 로한의 도움으로 유령을 볼 수 있게 되자 죠타로는 마음이 가뿐해졌다.

 

그들의 목적은 어차피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10여 년간 이루어지지 못했던 목적이었다.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당장 바뀔 리 없다.

 

게다가 이제 시간이 많았다. 천천히 이야기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

 

이제 마음 놓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제일 먼저의 문제는 그날 밤에 찾아왔다.

 

자기 위해서 침대에 누워 막 스탠드 불을 끄려고 하던 순간 죠타로는 멈칫했다.

 

침대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둘과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깜박거리는 두 쌍의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엄청 부담스러웠다.

 

“뭐, 뭐냐…….”

 

죠타로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 드물게 더듬거렸다.

 

대답이 없던 둘은 죠타로가 연신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을 때야 비로소 그를 인식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늦게 아차 싶은 얼굴의 카쿄인이 뺨을 긁적이며 웃었다.

 

“아, 맞아. 이제 죠타로도 우릴 볼 수 있죠?”

 

“그, 그렇긴 한데…… 왜 그렇게 갑자기 뚫어져라 보는 거지?”

 

“갑자기가 아닌데요. 어차피 네가 잠들면 심심하고 할 일도 없어서, 매일 이렇게 봤는걸.”

 

매일.

 

“…….”

 

그의 주변에서부터 약 3m. 현실 물건에 손도 대지 못하는 유령이란 허상.

 

죠타로는 간신히 납득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의 주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녀석들이기에 쫓아낼 수도 없었다. 죠타로는 구경거리가 된 사이에서 간신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찌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져서 잠이 오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죠타로는 웅크리고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니 딱 졸려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됐다.

 

졸린 눈을 몇 번이나 비비는 그를 보며 카쿄인이 참견했다. 죠타로, 잘 잤어? 졸리나요? 못 잤나요? 그래도 식사는 빼먹지 마세요. 몸을 우선으로 챙겨야죠!

 

정이 가득한 목소리에 애써 웃어 주며 커피를 내려 식탁에 앉은 죠타로는 디오가 커피잔에 손가락을 넣고 빙빙 휘젓는 시늉을 하는 걸 보자마자 커피를 전부 싱크대에 쏟아 버렸다.

 

카페인의 힘도 빌릴 수 없는 하루는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죠타로는 더욱 끔찍한 사실을 오후에 또 알게 되었다.

 

골목에서 재단의 일을 두 녀석에게 도움받으니 시간이 많이 비었다. 덕분에 꼬박꼬박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했다. 밤을 새우곤 하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오늘은 그래서인지 유독 잠이 깨지 않았다.

 

아무래도 샤워라도 하는 게 좋을 듯했다. 찬물을 뒤집어쓰면 그래도 잠이 어느 정도 깨겠지.

 

눈을 비비다가 일어난 뒤를 둘이 졸레졸레 따라왔다. 따라오는지 딸려오는지 졸려서 멍한 머리로는 도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얼른 잠부터 깨야겠군.

 

막 욕실 문을 열고 들어서려고 했을 때 뒤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디오가 그를 말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붙잡고 있었다.

 

“쿠죠 죠타로. 이 디오가 관대히 말해 주고 싶은 게 있는데.”

 

“뭐냐, 디오.”

 

“이 디오가 지내던 예전 성에 비해선 형편없지만, 그래도 네놈은 머무는 곳에 신경 쓰더군. 이 방의 욕실은 넓은 편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디오.”

 

“그 빈약하기 짝이 없는 몸이나 감상하는 건 이 디오에게도 고된 일이라는 거다.”

 

“멋대로 평가하지 말라고, 미친노…….”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퉁명스레 대꾸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디오가 정말 핀잔을 주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단 걸 한 박자 늦게 눈치챘다. 그러니까…… 디오는 그답지 않게 돌려 말해 준 것이었다.

 

넓은 욕실에선, 어쩔 수 없이 씻는 모습까지 볼 수밖에 없다고.

 

……죠타로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디오가 변명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았다.

 

“뭐, 저놈은 보기 좋다고 구경했지만.”

 

“구, 구, 구경은 무슨……! 그냥 조금 감상한 것뿐이거든?”

 

“카쿄인…….”

 

죠타로는 흐린 눈으로 카쿄인을 쳐다보았다. 카쿄인은 지레 찔리는 것처럼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디오의 목을 와락 끌어안고 매달렸다. 너 진짜 구경했냐…… 죠타로는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 왁왁대며 싸우는 모습을 보니 이쪽에는 한동안 신경을 끌 것 같았지만 그런 말을 듣고서도 태연하게 몸을 씻긴 아무래도 힘들었다. 알몸을 다 보는 걸로도 모자라 구경까지 한다는 앞에서 태연자약하게 있을 수 있는 건 관음을 좋아하는 이상 취향의 환자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죠타로는 그런 이상 취향이 조금도 없었다.

 

죠타로는 욕실로 들어가는 대신 발을 질질 끌고 소파로 향하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싸워 대는 소리가 마치 배경 음악 같았다.

 

귓가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죠타로는 소파에 고개를 묻고 꾸벅꾸벅 졸았다.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진 저녁이었지만 불편한 자세와 불필요한 소음 때문에 머리는 좀체 개운해지지 않았다.

 

밥그릇 위에 팔을 괴는 디오를 억지로 못 본 척 무시하며 가까스로 저녁 식사를 마친 죠타로는 한 시간 후 드물게 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도대체 이게 뭐람…….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속이 불편하고 얹히는 건 영락없는 사실이었다.

 

죠타로는 처음으로 약국에서 소화제를 샀다. 소화제 근처에서 소리 높여 복용시 주의 사항을 읽어 주는 카쿄인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억지로 넘겼다.

 

그 소화제는 소용이 없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죠타로는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 때문이었단 사실을 알아차렸으니까. 빤히 쳐다보는 시선 아래에서 뭔가 먹는 건 물 한 잔이라도 체할 것 같았다.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도 하루 전과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두 명의 자리는 침대가였고, 그를 뚫을 듯 구경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오늘도 자지 못할 것 같다는 직감이 죠타로를 덮쳤다.

 

그러니까 심심하다고 했지. 죠타로는 이를 악물고 텔레비전을 켰다.

 

“와아, 심야 영화다!”

 

반색을 한 카쿄인이 쪼르르 달려가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카쿄인은 드라마에도 환장을 하더니 영화도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디오는 드라마 따위보다 죠타로에게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인지 여전히 그의 옆을 떠나지 않았지만.

 

“디오, 빨리 너도 와.”

 

“싫다니깐, 망할 자식아.”

 

“안 돼. 그래야 다 보고 같이 이야기하잖아. 너 아니면 말할 사람도 없단 말야, 어차피.”

 

영화의 타이틀을 본 카쿄인이 쪼르르 달려와 디오를 질질 끌고 갔다. 디오는 마구 짜증을 냈지만 이번만큼은 카쿄인이 완강했다. 강제적 운명 공동체인 건가…….

 

나란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뒷모습을 보고서야 죠타로는 이제 잘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간신히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감았는데…….

 

이번엔 텔레비전 소리가 시끄러웠다. 평소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잠들곤 했기에 텔레비전을 켜 놓은 게 낯설었다.

 

심지어 죠타로는 영화도 별로 즐겨 보지 않았다. 오랜만에 듣는 영화의 대사가 오늘따라 귓가에 콕콕 잘 들어왔다.

 

거기에 디오 이 개자식은 억지로 끌려가 놓고 무엇보다 감상에 진심이었다. 장면 장면마다 카쿄인과 토론하고 있는 걸 듣고 있자니 신경 쓰여 죽을 것 같았다.

 

귀를 틀어막아 보기도 하고 이불을 뒤집어써 보기도 했다.

 

심지어 입을 강제로 틀어막을 생각으로 스타 플라티나까지 꺼내 보았지만 둘까지의 거리는 스타 플라티나의 사정거리보다 아주 조금 더 멀어 그럴 수도 없었다.

 

죠타로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둘 사이에 끼어 같이 영화를 보았다. 적어도 이 영화가 끝나면 텔레비전을 끌 수 있겠지. 그쯤 되면 너무 졸려서 둘이 쳐다보든 이야기하든 관계없이 무시하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영화가 끝났을 때.

 

죠타로는 화면에 떠오르는 ‘특집 무비 올 나잇!-3편 연속 상영-’의 문구를 보고 텔레비전을 부숴 버릴 뻔했다.

 

영화 세 편이 다 끝났을 때 날은 밝아 있었다.

 

죠타로는 아침을 알리는 밝은 창밖을 보며 눈을 비볐다.

 

째깍거리는 시계의 바늘이 하루가 시작할 때라는 걸 알리고 있었다.

 

세수해도 도무지 가뿐해지지 않는 머릿속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가까스로 오늘이 열흘째 약속한 날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뭐라도 하면 잠이 깰 것 같다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어 통화까지 마치고 난 후에 긴 한숨이 흘러나오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사람에게 붙어 있는 유령을 악령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됐다.

 

잠시 시선을 내리깔고 가만히 있으려니 두 명이 그의 주변에 매달려 왔다.

 

이쪽에서 무슨 일이냐고 묻고 저쪽에서 고소하다고 웃는 소리를 번갈아 듣다가 죠타로는 이마를 꾹 눌렀다.

 

둘을 볼 수 있게 된 건 좋았지만, 그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리오쵸를 떠나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중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방법을 찾지 못하면 말처럼 ‘악령’에게 시달리다 죽는 꼴이 될 거야.

 

죠타로는 결심을 다지며 주먹을 힘껏 말아쥐었다.

 

 

 

*

 

 

 

“세상에, 죠타로 씨! 무슨 일 있으세요?”

 

모리오쵸를 떠난다는 이야기는 일전 열흘을 약속했을 때 레이미에게 말한 바 있었다.

 

요 며칠 골목에 들리지 않았는데도 날짜를 세고 있었는지 레이미는 떠날 날이냐며 아쉬움 섞인 목소리로 맞아 주었다.

 

그것도 잠시,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솔직히 빈말로도 괜찮다고 할 수 없었다. 죠타로는 정말 괜찮지 않았으니까.

 

“이 자식은 우리가 제법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만, 아무래도.”

 

까탈스러운 녀석. 디오가 대신 레이미에게 대답해 주며 어깨를 으쓱였다.

 

죠타로는 디오를 거세게 노려보았다. 솔직히 죠타로는 예민한 편이 아니었다. 웬만한 건 모르는 척 넘겨 버릴 만큼의 신경줄은 갖고 있었다. 제가 까탈스러운 게 아니라 누구나 이 상황에선 자신처럼 아니, 자신보다 더욱 심하게 반응할 것이다.

 

노려보는 것도 잠시, 고작 그것만 했는데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죠타로는 끙 낮게 신음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낑, 낑. 걱정스러운 듯 낑낑거리는 아놀드가 자리에 쪼그려 앉은 죠타로를 할짝거렸다.

 

걱정스러운 얼굴의 레이미도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이러다간 죠타로 씨가 먼저 변질될 거예요. 악령의 승리가 된달까.”

 

“후후. 듣기 좋은 이야기로군.”

 

“……아놀드, 물어.”

 

멍멍! 제 이름이 불리자 신이 난 아놀드가 꼬리를 쳤다. 물론 꼬리만 치고 꼼짝은 안 했지만.

 

레이미가 그의 손을 꼭 말아쥐었다.

 

“정말 피곤하신가 봐요.”

 

……죠타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어’를 ‘이리 와’ 정도로 착각하는 듯한 개 한 마리는 디오를 물기는커녕 죠타로의 주변만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피곤했고, 정신도 좀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비행기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세 시간 후에 출발해야 했다.

 

세 시간. 벌써부터 한숨이 푹 나올 만큼 짧은 시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죠타로가 이 이 일을 여기에서 해결하길 바랄 정도로까지는 아니란 점일까.

 

죠타로도 단번에 착착 해결되길 바랄 정도로 양심이 없지 않았다.

 

그들은 10년 동안 그의 옆에 있어서 익숙해졌고, 죠타로는 해 봤자 볼 수 있게 된 지 열흘은커녕 3일째였다. 10년과 3일의 간극을 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사실 정도는 예상했다.

 

거기에 정확히 말해서 ‘해결 방법’이라고 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유령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게 제 피곤에 가장 좋겠지만, 죠타로는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간신히 볼 수 있게 된 녀석들이다. 고작 며칠 동안 피곤했다는 이유로 떠나보내다니 말도 안 된다.

 

유령이란 것들을 처음 보게 된 곳이 그저 이곳 모리오쵸였다.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유령을 둘씩이나 보았고, 그중 하나가 아직 승천하지 않은 채 눈앞에 있다.

 

솔직히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자, 산 사람인 그가 유령의 사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을 사람을 어디 가서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레이미에게 조금 도움을 구하려는 것뿐이다.

 

레이미가 얼마든지 도와주겠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죠타로 씨, 그럼…… 그럼!”

 

“그럼?”

 

“로한을 챙겨 가는 건 어때요?”

 

“……아니, 그건 좀.”

 

그전에 거기에 로한의 의사가 반영되긴 한 건지.

 

얼토당토 않은 제안이었지만, 죠타로는 순간 조금 혹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내저었지만. 피곤하긴 정말 피곤하구나.

 

“그래도 엄청난 아이디어였어요, 레이미 씨. 정말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생각인걸요,”

 

“정말요?”

 

칭찬인지 아닌지 애매한 말도 카쿄인이 웃으면서 말하니 칭찬처럼 들렸다.

 

레이미는 카쿄인의 칭찬에 안색을 활짝 펴고 까르르 웃었다.

 

디오가 팔짱을 낀 채 한심한 시선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동감이었다. 그래, 당연히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아이디어겠지…….

 

레이미는 호응에 신이 났는지 지저귀는 새처럼 이런저런 제안을 건넸다.

 

대부분은 엄청나다 못해 경악할 만한 아이디어였다.

 

처음엔 흥미 있게 귀를 기울였지만, 죠타로는 들으면 들을수록 찜찜해졌다. 레이미의 이야기를 더 듣느니 남은 시간 동안 모리오쵸를 돌며 잘 있으라는 인사를 건네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혼자 긴 시간을 보내온 유령의 상상력은 정말이지 굉장했다, 여러 의미로.

 

죠타로가 들은 체 만 체를 시작하고 카쿄인이 아놀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눈을 팔기 시작했을 쯤이었다.

 

“어쩌면 그런 건 어때요?”

 

이제까지 늘어놓았던 많은 이야기처럼, 레이미는 또 한 가지의 아이디어를 꺼냈다.

 

“두 분이 지금 죠타로 씨에게 너무 붙어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피곤하신 거잖아요? 그리고 그건 두 분 모두 마지막 순간에 생각했던 ‘목적’과 관련이 있는 거고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건 이번은 정말 그럴듯하게 들렸다는 점이다.

 

유령들에게 ‘목적’이 있는 건 공통된 부분이었다. 마지막 염원 같은 소원이 없다면, 승천하지 않고 유령으로 남아 있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둘 또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죠타로는 그걸 듣지 못했지만.

 

“로한이 도와줘서 제가 목적을 다시 쓸 수 있던 것처럼, 두 분도 그러시면 어떤가요? 죠타로 씨의 곁에서 조금 떨어져 있을 수 있게 수정하면 될 것 같은데.”

 

죠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터무니없는 방법만 늘어놓던 것에 비해 이번 말은 상당히 일리 있었다.

 

‘목적’은 죽어서까지 이루고 싶었던 마지막 염원이다.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그 자체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다.

 

그걸 통째로 바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로한의 스탠드는 본래 적힌 위에 한두 줄의 문장을 더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바꾼다. 시름시름 기운을 잃고 사라져 가던 레이미가 빠르게 기운을 되찾은 것처럼, 사이의 거리도 벌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걸 크게 손상시킬 생각 없이 그냥 거리만 조금 둘 수 있었으면 싶었다.

 

지금은 3m인지 4m인지 기겁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도무지 일상생활을 존중받을 수가 없다.

 

거리가 딱 두 배만큼만 늘어나도 죠타로는 편히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기에 심심해하는 두 녀석에게도 이득이었다. 그러면 주변을 조금 더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을 테니까. 텔레비전이든 라디오든 실컷 보고 들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거리가 더 많이 벌어진다면 둘이서 나란히 밤산책이라도 다녀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

 

로한이 대놓고 귀찮아하며 짜증을 내긴 하겠다만, 어차피 죠타로는 모리오쵸에 오늘까지만 머문다.

 

멱살이라도 쥐고 협박처럼 말하면 이를 갈면서도 들어주리란 확신이 있었다.

 

뭐, 레이미의 말처럼 아예 챙겨 가려고 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괜찮은 결정인 게 아닐까.

 

생각 정도야 읽히지 않도록 자신이 보고 있으면 되겠지.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죠타로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둘에게 시선을 주었다.

 

“카쿄인, 디오. 지금 레이미의 말…….”

 

……들었지. 말끝을 맺지 못하고 흐린 건 눈에 들어온 그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죠타로.”

 

조금 전까지 레이미를 향해 부드럽게 웃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카쿄인은 날이 선 어조로 속삭였다.

 

“절대 저 말을 듣지 말아요.”

 

카쿄인은 옆에서 말리는 손길만 없었더라면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은 기세를 띠고 있었다.

 

그런 카쿄인을 말리는 것처럼 붙잡고 있는 건 디오였다.

 

디오는 카쿄인처럼 레이미를 적대하진 않았지만, 그조차도 방금 말은 썩 내키지 않아 하는 게 뻔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죠타로는 둘이 지난번 로한의 스탠드 이야기에도 제법 예민하게 반응했던 걸 떠올렸다.

 

제 기억과 생각을 읽히는 건 썩 좋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꼭 알려져선 안 될 게 있을 것 같은 반응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이번과 같이, ‘목적’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목적’은 유령의, 산 사람으로 치환해 보았을 때의 ‘삶의 목표’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그건 일반적으로 말하는 삶의 목표보다 더 강렬한 부분이 있었다.

 

레이미의 경우처럼 유령으로 남아서까지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 염원이었다. 말처럼, 죽는 그 마지막 순간에 강렬하게 머리에 남아 품었던 바람.

 

단순하고 본능에 가까우며, 그만큼 강렬하다.

 

이루고자 하는 거라면 남들에게 알리는 게 좋다.

 

끊임없이 모리오쵸의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노력했던 레이미와 같이.

 

죠타로는 둘의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살아 있는’ 만큼 목적이고 바람이고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였다. 이젠 모습도 볼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으니 문제될 게 없을 텐데도.

 

그 일에 더없이 방어적인 기색을 보이는 이유라곤 하나뿐이다.

 

그것이, 남에게 알려지면 더없이 곤란한 목적이라는 것.

 

으르릉, 레이미를 향한 적대감에 끼어든 아놀드가 이빨을 드러냈다.

 

‘원래 유령은 사람에게 붙지 않거든요.’

 

그들의 존재를 처음 알려 주던 레이미가 조심스럽게 알려 주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그때 분명 그 사실도 함께 말해 주었다.

 

변질되기 쉽기에, 악령이라고 불린다고.

 

카쿄인 노리아키, 디오 브란도. 너희들은 도대체…….

 

피곤으로 멍했던 머리가 깨이는 느낌이 들었다.

 

 

 

*

 

 

 

카쿄인은 죠타로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목적이란 이야기가 나온 이후부터였다.

 

말이 나왔을 때 둘의 심상치 않은 반응과 지금 보이는 태도에서부터,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걸 모를 수 없었다.

 

평소 카쿄인이 하는 일에 한 마디씩 얹고는 했던 디오도 지금만큼은 그의 행동을 거들듯 침묵하고 있었다.

 

딱 보아도 협조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모습.

 

유령은 본디 사람에게 붙지 않는다.

 

사람에게 붙어 십여 년 동안 변질되지 않았다는 점이 그들의 의지력을 증명해 주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들은 그러는 동안 목적 달성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 또한 되었다.

 

목적을 이룬 레이미가 오래 버티지 못했을 뻔했다는 걸 고려하면 틀림없었다.

 

죠타로는 가라앉은 시선으로 둘을 보았다.

 

둘의 목적을 억지로 알아내는 건 사실 간단하다.

 

그들은 죠타로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유령이었다.

 

스타 플라티나의 시간 정지 능력으로 로한과 협조하면 어렵지 않게 붙잡아 책으로 열어 보는 일은 간단하다.

 

하지만 죠타로는 그렇게 억지로 알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가 설령 생전에는 원수나 다름없었던 디오라도 마찬가지였다.

 

죠타로는 둘 모두 내심으로는 함께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이미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굳이 모리오쵸를 벗어나서도 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할 필요가 없었다.

 

한순간만 잠시 있고 싶다는 게 아니라, 계속 함께 있을 것을 염두에 둔 상황.

 

로한의 스탠드로 들여다본 일 자체를 잊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잊히더라도 한 번 신뢰가 깨졌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유령이 둘이나 붙어 있는 상황, 조금 더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죠타로에겐 그것만으로도 이미 달갑지 않다.

 

문제가 되는 건 카쿄인 노리아키다. 죠타로는 예리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디오는 껄끄러운 기색은 있지만 카쿄인처럼 꺼리지는 않았다.

 

카쿄인은 꺼리다 못해 아예 그가 쳐다볼 때마다 디오의 뒤에까지 몸을 숨기려 들었다.

 

아마 디오는 그의 목적을 알고 있겠지.

 

카쿄인 또한 디오의 목적을 아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10년의 시간은 절대 친해지지 못할 것 같았던 둘을 친구로 만들어 놓기까지 했으니까.

 

죠타로는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않는 카쿄인을 불렀다.

 

“카쿄인.”

 

“……죠타로.”

 

카쿄인은 디오의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팔짱을 낀 디오가 카쿄인에게 흘긋 시선을 주었다.

 

시선이 잠시 마주했다.

 

카쿄인의 시선은 굳셌다. 여전히 아까처럼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 경계심은 명백히 죠타로 자신을 향해 있었다. ‘목적’을 알아내면 금방이라도 죠타로가 그를 뜯어 던져 버릴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한 표정.

 

죠타로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카쿄인의 ‘목적’은, 제게 호의적인 것이 아닐 거라고.

 

일본에서부터 이집트로 향하는 여정.

 

기나긴 시간 속에서 카쿄인은 죠타로의 손을 처음 잡아 준 친구였다.

 

첫 친구도, 유일한 친구도 아니지만 죠타로는 10년이 흐를 때까지 ‘친구’ 하면 스러져 간 시간 속의 카쿄인 노리아키를 제일 먼저 떠올리곤 했다.

 

그런 카쿄인의 목적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건 더없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러나 죠타로는 제 판단을 신뢰했다.

 

카쿄인은 죽었다.

 

그가 죽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산 사람인 죠타로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죠타로. 유령의 목적을 강화시키면 힘이 더 강해져요. 네가 조금 더 불편해질 수 있을 거란 이야기야.”

 

쳐다보는 시선을 돌리지 않자 점점 더 안절부절못하던 카쿄인은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려고 애를 쓰는 말이었지만, 죠타로는 딱히 귀담아듣지 않았다.

 

빤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디오 또한 말을 보탰다.

 

“네놈도 꽤 불편했을 테니, 최대한 조용히 있어 주지.”

 

“너도 ‘목적’이 알려지는 건 바라지 않는 모양이군.”

 

“부정하지 않지.”

 

역시 그런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디오가 말을 덧붙였다.

 

“다만 이 녀석처럼 멍청한 이유 때문은 아냐. 그냥 내 생각이 네놈에게 알려지는 게 불쾌할 뿐이다.”

 

“디오!”

 

목소리를 높이는 카쿄인에게, 디오의 서늘한 시선이 향했다. 온기가 없는 붉은 눈이 카쿄인을 노려보았다.

 

“카쿄인 노리아키. 이건 어디까지나 네놈 문제다.”

 

디오는 서늘한 목소리로 카쿄인의 말을 잘랐다.

 

“그러니까 이 디오를 끌어들이지 마.”

 

“읏.”

 

말했던 대로 거리낌이 없는 목소리. 카쿄인은 디오를 매섭게 쏘아보았지만 대꾸하지 못했다. 디오의 목적 또한 모르지만 그 모습으로 짐작할 수는 있었다. 내보이더라도 거리낌이 없을 만한 거겠지. 적어도 카쿄인보다는.

 

디오는 정말로 더 이상 상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외면하는 모습이 역력해 치고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 카쿄인 또한 그렇게 느낀 모양이었다. 디오의 뒤에 더 이상 숨으려고 하지 않는 걸 보니.

 

그러나 그들 사이의 거리는 충분하지 않았다. 거기에 카쿄인은 어디까지나 쿠죠 죠타로에게 붙어 있는 유령이기에 딱히 갈 만한 곳도 없었다.

 

힘껏 피한다고 해 봤자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거리의 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뿐이었고, 죠타로는 그 정도야 얼마든지 끌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카쿄인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두어 걸음 걸어간 것뿐인데도 위협처럼 느낀 건지, 카쿄인은 움찔하곤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을 수 있는데.”

 

“글쎄, 그러면 너도 불편할 텐데.”

 

“치, 친구를 위해서 참아볼 테니까!”

 

시큰둥한 기색만 살짝 띄웠을 뿐인데 말이 마구 늘었다. 카쿄인은 횡설수설에 가까울 정도로 목소리를 쏟아냈다.

 

사생활 침해의 반경이 늘 거라든가, 통제가 힘들 거라든가, 화가 날 거라든가…… 실망하게 될 거라든가, 그밖의 이런저런 것들.

 

이유 전부에 하나하나 다 반박할 수 있었지만 죠타로는 침묵했다.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돌리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카쿄인은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죠타로.”

 

결국 설득이 통 먹히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는지 카쿄인은 애원하듯이 입을 열었다.

 

“우린 친구잖아요, 그쵸? 친구 사이에 비밀 정도는 있을 수 있으니까…….”

 

카쿄인은 활발하고 씩씩한 녀석이었다. 여정 중에 줄곧 보아 왔던 모습처럼. 힘든 일 앞에서 괴로워할지언정 좌절하지 않았고 쓰러져도 끝끝내 다시 일어나 웃어 주던 그런 동료였다. 심지어 카쿄인은 죠타로를 다짜고짜 공격했던 첫 만남 앞에서도 오래 시무룩해 있지 않았다! 멋대로 세뇌한 디오가 나쁜 놈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태연자약 인사하니 아무래도 초면인 입장에서는 좀 떨떠름했었지.

 

그랬기에 쿠죠 죠타로는 이런 모습의 카쿄인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애원하듯 부탁하는 와중에서도 약점을 끌어안은 것처럼 경계하는 모습이라니. 처음에 다짜고짜 공격을 퍼부을 때조차 오히려 당당했었지 경계는 안 했었는데.

 

으음, 그러게. 아무리 세뇌당했다지만 공격하러 왔으면서 그렇게 당당하다니…… 죠타로는 뒤늦게 다시 떨떠름해졌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던 카쿄인이었기에, 죠타로는 ‘목적’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 새삼 실감했다.

 

불안하지는 않았다. 카쿄인은 분명 소중한 친구다. 처음 보는 모습으로 경계하고 있을지언정, 언젠가 제게 반드시 말해 줄 것이다. 그 사실에 죠타로는 스타 플라티나와 죠셉 죠스타까지 걸 수 있었다.

 

유령의 세계는 좁고, 오래 함께 있었다고는 해도 직접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뿐이다.

 

그러나 죠타로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모리오쵸를 떠나기까지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지금의 불편한 상황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아니, 그대로 둘 수는 있었지만 서로 힘들기 짝이 없을 게 분명하다. 이래서야 카쿄인과 디오가 아니라 쿠죠 죠타로 쪽이 악령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시 보이지 않게 돌려놓는 방법뿐이다. 로한에게 부탁하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죠타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간신히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친구인데. 거기에 자신을 차치하더라도, 카쿄인을 다시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죽은 자들의 세계로 떠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시간이 없군. 죠타로는 마음을 다잡았다.

 

쿠죠 죠타로는 한 번 결심하면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결심한 이상 카쿄인을 그대로 놓아둘 생각이 없었다.

 

시선을 마주한 순간 카쿄인 또한 직감한 모양이다. 자색 눈이 엉망으로 떨렸다.

 

카쿄인은 죠타로가 걸어오는 몇 걸음만큼 물러섰다. 그러나 자신에게 유령이 보이고, 유령인 그가 일정 반경 이상으로 못 벗어나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피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언뜻 옆에서 지겨운 표정을 하고 있는 디오까지 보면…… 예상외로 결판이 빨리 날 수도.

 

이 사실을 카쿄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죠타로는 재촉하는 말을 입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만큼 스스로의 입으로 말해 주었으면 한다.

 

시선 안으로 그런 마음이 전해졌을까.

 

“……분명 날 싫어하게 될 거야.”

 

“무슨 근거지?”

 

“우린 아직 친구지만…… ‘그걸’ 알게 되면 그렇지 않게 될걸.”

 

죠타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거기에 죠타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마저 있었다. 곁눈짓으로 걸리는 디오의 모습이 영 시큰둥했다. 정말 그렇게까지 최악인 상황이라면 적어도 저런 반응은 아니었을 거다. 심각하고 나쁘긴 해도, 아마 카쿄인의 ‘주관적’인 기준에서 벗어나면 감안할 소지가 있는 거겠지. 뭐…… 자신에게만 온통 신경이 쏠린 카쿄인 녀석은 모르는 것 같지만.

 

머뭇거리던 카쿄인이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온통 카쿄인의 말에 신경이 쏠렸다.

 

“나, 난……. 너, 너무 외로워서…….”

 

네가 빨리 죽었으면 했어.

 

 

 

*

 

 

 

카쿄인 노리아키는 스탠드사지만, 그 이전에 평범한 고등학교 남학생이었다. 선천적 스탠드의 존재로 어린 시절이 힘들었어도 정신적인 무력감일 뿐이다. 내장이 짓이겨지는 순간 몰려들어오던 지독한 고통은 멀쩡히 견딜 수 없다. 수어 초 정도 의식이 유지되고 있던 건 메시지를 건네받은 일행들에겐 다행일지 몰라도 카쿄인 노리아키 스스로에겐 더없는 불운이었다. 그건 끔찍할 정도로 아프고 힘들고 고통뿐인 시간이었기에.

 

위험한 여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죽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청소년기 특유의 낙관적인 생각은 위험을 앞에 두고도 용기를 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죽음을 직접 겪는 순간에 깨달았다. 겨우 이해해 주는 친구를 사귀었는데, 또다시 혼자가 되었잖아?

 

길어지는 주마등만큼 고통 또한 길어졌다.

 

뒤늦게 깨달은 외로움 또한 같이 길어졌다.

 

평생 혼자였는데 죽음의 순간까지 혼자라는 게, 이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게 지금 자신 혼자라는 게, 카쿄인 노리아키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고 속상하고 분해서…….

 

지독한 고통 속에서 자신이 더 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은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죽는 게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우와, 그거 엄청 악령 같은 목적- 앗, 죄송해요.”

 

아차, 웃어 버린 레이미가 제 입을 손으로 막았다. 카쿄인이 뾰족하게 노려보고 있었지만 레이미에게 뭐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죠타로 또한 듣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더불어 디오가 왜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디오는 원래 흡혈귀로 살아 있을 때조차 쿠죠 죠타로와는 숙적이었다. 그 녀석 입장에서 보기에는 별반 새삼스러운 이유도 아닌 것이다.

 

“애초에 살아 있을 때도 시도해 본 적 있는 일이지 않나?”

 

“야, 그건 네 세뇌 때문이잖아!”

 

카쿄인은 억울한 목소리를 빽 높였다. 그때의 태연자약한 모습을 떠올리곤 죠타로 또한 내심 동의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큼 우리가 친해졌다는 거겠지.

 

죽는 순간이나마 그런 생각을 해 버렸다는 것만으로도 계속 자책할 만큼. 태연자약하던 이전과는 다르다. 카쿄인은 아까부터 시선을 전혀 마주치지 못했다. 말을 꺼낸 이후부터다. 죠타로가 몇 번을 쳐다봐도 푹 숙인 고개가 들린 적이 없다.

 

어쨌건 확신은 들어맞았다. 죠타로는 ‘목적’을 듣게 되었어도 카쿄인이 싫어지지 않았다. 뭐, 죽기 전에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해 봤을 뿐인데 그걸 탓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카쿄인의 불운이라면 유령이 되는 바람에 아주 잠깐이던 죽음의 순간이 영원으로 박제되어 버린 거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죠타로는 디오를 쳐다보았다.

 

카쿄인의 목적을 듣고 나자 디오에게로 신경이 갔다. 어차피 남은 건 디오 하나뿐이기도 했으니.

 

머리를 스치는 건 이전 짧게나마 있었던 둘 사이의 말다툼이었다. 서로 바라는 걸 말해 놓고 거짓말이라고 싸우던 때가 있었지. 카쿄인은 그때 했던 말과 정반대의 걸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디오가 말했던 목적이랑 같은 걸…… 그럼 설마 디오는?

 

설마는 설마로 끝나지 않았다. 시선을 눈치챘는지 디오가 혀를 찼다.

 

“눈치가 빠르군, 쿠죠 죠타로.”

 

“아니, 어쩌다가?”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제야 고개를 드는 카쿄인의 시선이 황당했다. 그의 ‘목적’은 그러려니 넘겼으면서 디오에게는 되물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정말 궁금했다.

 

카쿄인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죠타로 자신도 그때 그곳에서 그를 잃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에. 그러나 디오의 심정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싸웠던 최후를 아무리 돌이켜 봐도…….

 

“딱히 좋은 기억이…….”

 

“하, 이 디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러니 어쩌다가.”

 

“에이, 원래 친한 친구니까 그랬던 거겠죠!”

 

“죠, 죠타로…… 전…… 읏, 미안해요.”

 

디오하고는 딱히 친하지는……. 그러나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레이미의 착각을 풀긴 늦은 감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보다 카쿄인이 레이미의 말에 격침당한 게 우선이었다.

 

디오는 카쿄인을 힐끔 쳐다보더니 떨떠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카쿄인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시간이란 게 뭔지. 미운 정이라는 모습을 새삼 실감할 것 같다.

 

디오가 제 입으로 털어놓은 ‘목적’은 역시.

 

“네 녀석이 오래 사는 거지, 이왕이면.”

 

죠타로의 회상은 틀리지 않았다. 서로를 죽이고자 했던 싸움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니 뭐니 하는 기분이라곤 피어날 길이 없다. 쿠죠 죠타로와 디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적이었다.

 

그랬기에 디오는 머리끝까지 열이 받았다. 이 디오가 평범한 인간 따위에게 패배하다니! 디오는 조금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패배도 죽음도 명백한 것이라 돌아올 수 없다. 하지만 그 패배를 적당히 합리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를 쓰러뜨린 상대가 ‘평범한 인간 따위’가 아니게 되면 되는 것이다.

 

쿠죠 죠타로는 아주 평범한 인간이 아닌, 꽤 인정할 만한 녀석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죠타로가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고 아주아주아주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인간들의 위에 설 정도는 되어야, 인간치고 강했다고 인정해 줄 수 있기에.

 

디오는 아주 예전 인간이었을 적부터 자기중심적이었다. 흡혈귀로 만났을 때도 아주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리고 그건…….

 

‘……죽어서도 딱히 달라지는 건 없군.’

 

더없이 이기적이고 오만한 이유지만, 어쨌건 결론만 보면 제게는 이득이다. 디오 역시 그런 점이 불쾌한 건지 내내 눈가를 찌푸리고 있었다.

 

죠타로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냥 흘려넘길 수 있는 가벼운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 이야기만으로 결정할 생각은 없다.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다. 이들의 ‘목적’이 원래의 관계와는 다른 이면에서 비롯되었듯이.

 

‘목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죠타로는 전화기를 들었다.

 

 

 

*

 

 

 

유령의 목적이란 건 무엇일까.

 

골목의 유령 소녀 스기모토 레이미는 그에 대해 알려준 바가 있다.

 

유령들이 살아가는 최종 목표라고.

 

사람으로 비춘다면 삶의 의미 비슷한 게 되겠지만, 그거보다 더욱더 강렬한 유인과 집착이 묻어 있는 것이다.

 

살아서 육체를 가지고 숨을 쉰다는 건 대단하다.

 

사실 사람은 목표 같은 게 없어도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만든다.

 

그러나 그 ‘살아 있는’ 육신이 없는 유령들의 입장은 다르다.

 

유령은 정신력보다는 의지와 원념으로 존재하는 것에 가깝다.

 

목적이라는 확연한 목표가 존재해야만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랬기에 악령이든 악령이 아니든 모든 유령은 존재하는 이상 목적을 갖고 있다. 지극하게 변질되어 존재감이 흐려지더라도 목적은 존재한다. 없으면 그 존재 자체가 남아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따지자면 목적은 유령들에게 산 사람과 비추어 봤을 때 최종 목표보다는 육체 그 자체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육체에 상처를 입는 걸 기피한다. 피를 많이 흘리거나 부상이 심한 등 육신의 손상이 많이 되면 사망까지도 간다. 유령 또한 다를 바 없다.

 

그들 또한 목적에 상처를 입는 걸 기피한다. 그건 목적을 가진 존재로서의 본능적인 행동과 마찬가지였다.

 

카쿄인과 디오 또한 유령의 근본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죠타로가 알지 못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노력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애매하게 갖게 된 목적이지만,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디오는 죠타로가 끔찍하게 싫고 짜증 났지만, 그가 가진 목적은 ‘죠타로가 오래 사는 것’. 그에 대한 위협이 딸려 오면 반사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카쿄인은 죠타로를 친애하고 존경했지만, 역시 반대로 목적은 ‘죠타로가 빨리 죽는 것’. 우호적인 상황이 닥치면 자기도 모르게 저지하려는 행동부터 했다.

 

둘이 친해질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외로웠기 때문인 게 전부만은 아니었다.

 

서로 목적이 정반대인 상황. 그들은 쿠죠 죠타로를 둘러싼 창과 방패 같은 실정이었다. 한쪽이 한쪽을 막고 또 막아서는 일이 반복되니 자연스럽게 얽혀들었다.

 

그런 와중에 또 생각하고 있는 건 목적과 다른 심정이다. 카쿄인은 원하지 않는 스스로의 목적에 디오를 응원하게 됐고, 디오 또한 죠타로를 죽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카쿄인의 목적에 친근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정 목적을 위해 행동하면서도 막상 그 누구도 자신의 목적이 진심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지 않는 상황. 그 와중에서 서로가 서로의 목적을 막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니.

 

그렇게 10년을 지냈다는데 이래서야 친해지지 않기가 더욱 어렵지 않을까…….

 

자신에게 붙어 있는 유령들답게 그들의 목적은 좋으나 나쁘나 정말 ‘자신’이었다.

 

지금 자신과 같은 상황에서는 서로 정반대 성향의 둘인 게 애매한 시너지가 된 것 같긴 하지만.

 

뭐, 그런 그들이 죠타로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건 목적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제까지는 물리력까진 휘두를 수 없는 힘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 움직일 수 없는 유령이 죽이니 살리니 해 봤자 말보다 못하다. 심지어 죠타로는 강인한 편이었다. 유령과 붙어 있으면 흔하디흔하게 겪는 악몽이나 가위눌림도 그의 사전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물리력을 갖게 된다면…… 확실히 이야기가 달라지려나.

 

“흐음, 이거 참 재밌군.”

 

흥미를 가득 담은 로한의 목소리가 죠타로의 생각을 긍정했다.

 

처음 불려 왔을 때만 해도 대놓고 말을 들어주기 싫어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로한은 척 보기에도 지금 상황에 엄청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죠타로만 해도 이 복잡하게 꼬인 상황이 황당하다 못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세상만사에 호기심을 보이는 만화가가 귀를 기울이기엔 더없이 적절했다.

 

더없는 원수를 보호하게 되어 버린 남자와 절친한 친구를 죽이고 싶어 하게 된 남자.

 

흥미를 보이다 못해 로한의 시선은 둘에게서 아예 떨어지지 않았다. 쿠죠 죠타로라는 존재는 어느새 그의 안중에도 없는 채였다.

 

“목적을 잃으면 유령의 모습을 잃게 된다고 했는데, 당신들이 10년 간 ‘유령’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걸 봐서는 그동안 쿠죠 죠타로를 계속-”

 

“조용히 해요.”

 

“그 말은 당신들이 ‘유령’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쿠죠 죠타로를 앞으로도 계속-”

 

“조용히 하라고, 좀!”

 

죠타로는 살아 있기에 유령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자신뿐만이 아닌 친구를 위해서도 겉보기만으로 짐작했다가 피치 못할 상황이 발생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조금은 더 깊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애초에 반강제로 다그치게 된 것도 출국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머지 생각을 로한 앞에서 이어 하게 된 게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거기에 솔직히 말해 이 상황에서 민망한 건 죠타로가 아니다.

 

죠타로는 우정도 인연도 소중히 여기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애초에 유령인데 좀 민망하다고 죽지야 않겠지.

 

“카쿄인 노리아키 씨라고 했나? 쿠죠 죠타로 씨가 곧 미국으로 가게 되는 일만 아니었더라면 당신을 도와주고 싶었는데.”

 

“뭐, 뭘 도와주는데요!”

 

“언뜻 보니까 그쪽이 불리한 거 같아서.”

 

“야, 안 불리하거든?!”

 

“아니, 결과적으로 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안 불리하다는 건지? 딱 봐도 죠타로 씨, 잘 살아 있는데? 그럼 저쪽이 이기고 있는 게 아닌가?”

 

“후후. 제법 보는 눈이 있는데. 그런 네 녀석의 만화라면 재미있을 것 같군.”

 

“하, 그런 당연한 말씀을…….”

 

뭐…… 로한이 과할 정도로 보이는 흥미에 상황의 심각도가 점점 더 내려가는 것도 딱히 놀라운 일이 아니겠지.

 

로한은 둘에게 이것저것 캐묻고 있었다. 인정사정 보지 않는 태도다. 죄책감으로 쩔쩔매던 카쿄인은 어느새 로한에게 휘말려 주먹을 아득바득 말아쥐고 있었다. 혼자 여유로운 웃음의 디오를 보니 로한의 성격이 어느 쪽이랑 더 잘 맞는지도 알 것 같다.

 

대놓고 흥미 어린 기색을 한다 싶더니 ‘헤븐즈 도어’ 대신 수첩과 펜을 꽉 쥐고 집중하는 모습이라니. 너무 대놓고 자료 조사잖나. 스탠드를 사용한다고 설치는 것보단 적어도 지금 모습이 더 조사에 걸맞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죠타로는 머리를 눌렀다.

 

예상외의 목적엔 놀라기는 했지만…….

 

로한이 말하고 있는 대로였다. 놀란 것과 위협받는 건 전혀 다르다. 죠타로는 위험을 그렇게 실감하진 않았다.

 

목적을 따라 존재하는 유령인 만큼 그들은 지금껏 자신들의 목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어쨌건 그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었더라면, 지금까지 멀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쿠죠 죠타로’는 완전 멀쩡했다.

 

멀쩡한 걸 넘어 이제껏 그들의 존재를 조금도 느꼈던 적이 없다.

 

레이미가 말해 주지 않았으면 아마 앞으로도 영영 몰랐을 것이다.

 

조금도 위험을 못 느껴 봤는데 위험할 거라니 뭐니 말해 봤자…….

 

“…….”

 

이제까지 별일이 없었는데 앞으로 별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각자의 목적이 바뀐 상황에도 서로 품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뭔가 정말로 각자의 ‘노오오력’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것조차 조금도 몰랐던 입장에서 화가 나지도 않았다. ‘노력이 쓸모없어서 안타깝게 됐군’하는 생각이라면 모를까. 물론 입 밖으로 꺼낼 생각은 없다. 카쿄인 녀석은 화낼 것 같지, 음…….

 

그들을 볼 수 있게 된 상황에서도 죠타로는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 말고 별반 나쁜 일이 없었다. 어떻게 해결을 해 보겠다 하는 마음을 먹었던 것도 잠을 못 자거나 쳐다보는 시선이 너무 신경 쓰인다는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된 것뿐이었다.

 

내가 모르는 이면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물론 떨떠름한 구석이 없진 않았다.

 

친한 친구인 카쿄인이 그를 죽이고 싶어 아등바등한다는 것도 영 그랬고 전혀 안 친하고 싶은 디오가 그를 보호하고 싶어 애를 쓴다는 건 더 싫었다.

 

하지만 고작 그 떨떠름함으로 원래의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다.

 

잠시 고민을 더 해 보기는 했지만, 죠타로는 역시나 제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거듭 깨달았다.

 

여전히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그들이 설령 그런 목적을 가졌더라도.

 

역시 본심은 그래도 같이 있는 시간이 즐겁다는 쪽이다.

 

해가 되지 않는 일에 제 생각이 바뀔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정말 해가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해가 될 수 있는 존재일수록 눈에서 떨어뜨려 놓지 않고 제대로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계속 볼 수 있는 곳에 두고 끊임없이 살펴보는 게 맞겠지.

 

머리로 하나하나 따져 보다가 죠타로는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고집 같은 건 많이 꺾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처럼 제 일에 걸려 있는 건 또 아닌 모양이다.

 

냉철한 척 따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모든 게 핑계에 불과했다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쿠죠 죠타로는 이제껏 험한 일을 많이 겪었다. 이런 사소한 일로 애써 만나게 된 둘을 잃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배신감이니 뭐니 이런저런 말을 해 댈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의 의지보다 상황에 떠밀리듯 한 게 분명한 둘에게 그런 감정이 들 리가 없다.

 

오히려 이제껏 원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지내야만 했다고 안쓰러운 기분이 들면 들었지.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한 켠의 소란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 요란스러움과 시끄러움은 지난 시간이 짧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둘이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간단히 머릿속을 정리하고, 죠타로는 소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카쿄인은 로한과 언성을 높여 대고 있었다. 빈정거리는 듯한 미소가 심기를 단단히 건든 모양이다.

 

처음 억지로 끌어낼 때와 다르게 로한 또한 지금 상황이 즐거워 보였다…… 의외로 사람 놀리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군.

 

카쿄인은 로한에게 정신이 홀딱 팔려 옆에서 디오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알면 더욱 화를 낼 모양새였지만.

 

죠타로는 유령임에도 불구하고 생기 있어 보이는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사이에 덥석 끼어들었다.

 

“사소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 아, 죠타로?”

 

“뭐냐, 한창 재밌는데.”

 

대놓고 구경하던 걸 숨기지 않고 디오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던 카쿄인이 이내 목표를 바꾸어 디오를 노려보았다.

 

죠타로는 카쿄인과 디오의 사이를 슬쩍 갈라놓으며 로한을 붙잡았다.

 

그가 잡아 오자 로한은 돌아보았다. 끌고 나올 때의 짜증은 어느새 가신 모양이었지만, 대신 얼굴에 뻔하다는 말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한은 팔짱을 낀 채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 죠타로 씨. 아무래도 나름의 고민은 끝난 모양이군.”

 

“진작 나 있던 결론이다. 잠시 시간을 둔 것뿐이야.”

 

“뭐, 묻지 않아도 이런 상황이라면 결정은 알만하지.”

 

로한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앞에 손을 들어 올렸다.

 

유령이 보이게 되었단 사실만으로도 엄청나게 신경이 쓰일 상황. 거기에다 그 유령들이 썩 순수한 목적으로 붙어 있는 게 아니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녀석들이 멀쩡히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쿠죠 죠타로’는 당연과는 거리가 먼 남자였다.

 

목적을 들었어도 역시 결심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얼른 처리해 버려야겠다는 결심만 단단해질 뿐.

 

뻔히 짐작했을 로한은 놀리듯 손을 까딱대고 있었다.

 

죠타로는 로한의 손목을 잡아 ‘제대로’ 두 녀석을 향해 틀어주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뭐, 너희들의 그 ‘망할’ 목적은 잘 알았지만.”

 

“알았지만?”

 

“고작 그런 걸로 이 쿠죠 죠타로를 어떻게 해 볼 수는 없지.”

 

죠타로는 둘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솔직히 그동안 조금도 몰랐으니 별로 고려할 사항도 못 되는군. 오히려 네 녀석들이 자는 동안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게 더 심각해. 잠을 못 자니 졸리다 못해 머리가 다 아프다. 그러니, 순순히 협조하도록.”

 

로한은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정도는 순순히 협조해 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제 저 두 녀석들만 가까이 오면-

 

-그러나 둘은 여전히 기껍다기보다는 내키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 완전 찬성하고 납득한 것도 아닌 듯한 표정이라니. 또 뭔데, 이 자식들아.

 

어정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는 둘을 보면서 죠타로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말은 그렇게 하고 결론도 그렇게 냈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을 하기까지가 가벼웠던 건 아니다.

 

나름 애써 한 결심을 거부하는 것 같아서 희미하게 성질이 치켜 올랐다.

 

“이번엔 또 뭐지?”

 

바짝 신경질이 났다. 정말 시간 없거든, 이 망할 녀석들아.

 

빨리 말하라는 심정을 담아 두 녀석을 노려보았다.

 

둘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계속 입 밖에 꺼내길 거부하던 목적까지 꺼내게 된 상황이다.

 

그토록 말하기 싫어했던 것까지 이야기했다. 한 번 열린 입은 더욱더 쉽게 느껴지기 마련이었고.

 

카쿄인은 반쯤 포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비죽이는 입술에는 역시 그의 고집을 이길 수는 없다는 새치름함이 녹아 있었다.

 

“죠타로, 레이미 씨는 목적을 더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존재할 수 있게 됐죠. 그것처럼 목적은 유령…… 그러니까 우리들에게 힘을 더해 주는 거예요. 네 주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우리 힘이 여기까지뿐이라는 거고.”

 

“네놈이 하려는 건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넓히려는 거겠지. 잠 좀 자고 싶다는 뭐, 하잘것없는 이유긴 하지만 납득은 간다. 다만 그 범위가 넓어진다는 건…….”

 

디오는 붉은 눈을 깜박이더니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만큼 힘이 늘어나게 된다는 거다. ‘유령’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는 거니까. 지금이야 그냥 잠을 설치는 정도로 장난 같지만 그렇게 되면.”

 

툭 끊긴 디오의 다음 말을 생각해 보기도 전에, 어느새 눈앞에 카쿄인이 불쑥 다가와 있었다.

 

유령의 두 손이 그의 목 위에 얹혔다.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움찔했지만 영향을 주기는커녕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꼭 경고라도 하듯 카쿄인이 두 눈을 가늘게 접었다.

 

“유령은 변질돼. 어쩌면…… 나도. 사실 저는 그게 무서운 건지도 몰라요.”

 

미안한 듯 속삭이는 자색 눈에는 걱정이 가득 어려 있었다.

 

 

 

*

 

 

 

그저 목표라고 생각했던 유령들의 목적을, 두 명의 입에서 듣고 나서야 조금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목적을 바꾸고 더해 쓴다는 게 생각보다 상당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 또한 알았고.

 

그 목적 자체가 유령들의 힘이 된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죠타로는 자신이 레이미의 목적을 다시 썼던 게 하마터면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렇다고 레이미에게 안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둘을 제외하면 유령이라곤 레이미뿐이었고, 어쩌면 경험치로는 제일가는 베테랑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그녀는 오직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 남아 있길 선택했던 숭고한 혼령. 바뀐 목적까지 여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여 있다.

 

그런 만큼 ‘누구 하나’를 목적으로 둔 쓸데없는 녀석들보다 사실 이 상황에서는 훨씬 믿을 만하다.

 

“변질된다는 건, 나빠진다는 건가?”

 

“그걸 물어보신다는 이야기는…….”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레이미는 이미 짐작한 눈치였다. 죠타로는 그 말이 맞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녀의 짐작처럼 죠타로는 그들의 목적을 수정할 생각을 여전히 바꾸지 않았다.

 

이런저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금 물어보는 건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들에 대해 조금 더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물리력을 갖고 있는 것과 갖지 못한 것의 위험성 차이는 죠타로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다. 이제까지처럼 주먹구구식으로는 자칫하다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위험해지는 수가 있는 것이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섭진 않지만.

 

가끔 어떤 결과는 쓰디쓰다.

 

그들로 인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이상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상처받고 영향받는 건 그 녀석들이었다.

 

육신의 상처는 치유되더라도 가슴속 상처는 끈질기게 남아 있다.

 

지금 그들을 다시 만났음에도 죠타로가 10여 년 전 그때의 그 순간을 여전히 선명하게 상처로 기억하는 것처럼.

 

레이미는 이제까지와 다르게 고민에 빠진 눈치였다. 뭐랄까,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걸 되새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죠타로는 이유도 언뜻 짐작할 수 있었다. 레이미는 선량한 영혼이었기에, ‘변질된다’는 행위와 거리가 정말 멀었던 것이다.

 

“으음, 확실히 좀 위험할 수도. 조금 복잡하지만, 간단하게는 죠타로 씨의 말이 맞아요.”

 

“얼마나 위험하지?”

 

“글쎄요…….”

 

레이미는 턱을 괴고 끙끙 고민에 잠겼다. 놀아주려는 행동으로 알았는지 아놀드가 깡깡 짖을 때야 두 손을 마주쳤다.

 

“음, 일단 그러니까 힘을 가지게 된 악령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레이미는 주변을 슬쩍 돌아보았다. 죠타로는 레이미를 따라 주변을 둘러보다가 금방 깨달았다.

 

레이미의 시선은 골목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골목은……

 

“이곳은 ‘뒤돌아보면 안 되는 골목’이잖아요? 뒤를 돌아보는 순간 힘을 가진 유령들에게 끌려가게 되거든요. 그리고 그건 좀 일방적이죠.”

 

‘힘’을 가진다는 건 다른 것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그것만으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상호 작용’을 한다.

 

‘일방적’으로 작용하는 유령과 다르게.

 

힘을 가진 유령은 일방적이다. 유령이 사람을 만질 수 있어도 사람이 유령을 만질 수 없다. 일방적인 힘은 권력과 억압이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자신들의 규칙과 독선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령이 힘을 가진다는 건 그런 거예요.”

 

레이미는 조금 쓸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전까지 목적을 다시 쓸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더라도 지금은 얼마든지 덧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로한은 레이미에게 호감이 있었다. 살펴본다는 핑계를 대고 죠타로가 없는 시간에도 놀러 오곤 했다. 그녀가 부탁만 했더라면 로한의 스탠드로 목적을 조금 더 확장하여 또다시 덧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골목에 머무르며 도와달라고 남의 힘을 빌리는 대신, 직접 해결하러 나설 수 있을지도 몰랐고.

 

하지만 레이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령이 힘을 가지게 된다는 건 위험하다.

 

육신이 없이 목적에 의지하는 만큼 유령은 무엇보다 변하기 쉬운 존재다. 귀신이니 뭐니 하는 녀석들이 온갖 매체에서 그렇게 집착적으로 그려지는 이유가 달리 있지 않았다.

 

힘을 얻게 된 유령은 물리력을 가진다. 물리력이 있으면 주변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고. 영향을 끼친다는 건 바꾼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자신이 변질될 것을, 스기모토 레이미는 본능적으로 염려할 뿐이었다.

 

“죠타로 씨. 왜 사람에게 붙은 유령만을 악령이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생각해 본 적이 없군.”

 

“왜냐면, 사람이 쉽게 변하는 존재라서 그런 거예요.”

 

목적에 의지하는 만큼 그 ‘목적’의 변화에 따라 유령들도 바뀐다..

 

힘을 가지게 된 유령이 위험하다는 건 그것 때문이다. 힘이 생겨 물리력을 행사하게 되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에.

 

원래라면 변하지 않는 ‘장소’ 또한 부수거나 깨뜨리는 등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유령들은 악령이 되는 셈이다.

 

그런 일은 특정 장소에 붙어 있는 유령들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키시베 로한 같은 특이한 스탠드사를 만나지 않는 이상.

 

하지만 장소의 변화가 비교적 드문 것과 다르게 사람은 시시각각 변하는 존재다. 같은 사람이라도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그런 만큼 그에 의지하는 유령들도 시시각각 변하게 된다.

 

카쿄인 노리아키와 디오 브란도는 굉장한 특이 케이스였다.

 

사람에게 붙어 있지만, 1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도 거의 예전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죠타로가 그들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도 레이미는 둘을 관찰하듯 살펴보고 있었다. 죠타로가 말해 준 둘의 모습은 레이미가 보았던 둘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랬기에 그렇게 예전 일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상당한 걸 넘어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유령이 뭐니뭐니해도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곳은 붙어 있는 상대다.

 

대상에 의지하는 유령들이 딱히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둘이 붙어 있는 대상인 ‘쿠죠 죠타로’가 10여 년간 굉장히 일관성 있고 굳건한 사람이었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죠타로가 그만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어도 그건 이제까지의 일일뿐이다.

 

주변을 내내 돌아다니던 유령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하나만으로 그는 벌써 얼굴에 가득 비칠 정도의 피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당신 옆의 둘도 마찬가지로 각자 대단했겠죠?”

 

그들은 유령인 주제에 자존심도 높았고 필요 이상의 감정에 잠식되지도 않았다. 아옹다옹 다퉈 가면서도 긴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건 그들 자체 또한 보통 의지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있다.

 

그런 대단한 상대에게 ‘힘’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위험한 결과가 도출될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레이미는 카쿄인의 우려를 이해했다.

 

죠타로는 레이미의 말에 둘에게 시선을 주었다.

 

정작 시선을 마주한 디오가 뻔뻔하게 턱만 까딱이는 대신 카쿄인이 엄청나게 찔리는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래, 네 녀석은 좀 찔려 봐라.

 

이거야 원, 죠타로는 가볍게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들여다본 손목시계의 바늘은 점점 더 줄어드는 시간을 확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오래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모리오쵸가 아닌 다른 곳에서 레이미 같은 유령이나 로한 같은 스탠드사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터무니없었다.

 

결정은 그가 하는 거라고 하면서도 레이미는 반대하는 눈치였다.

 

카쿄인도 디오도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같은 유령인 이상 레이미가 언급해 준 부분을 본능적으로 아는 모양이다. 레이미의 말처럼 그들은 자존심이 높았다.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죠타로는 피식 가벼운 미소를 뗬다.

 

더 이상 고민할 만한 게 아니었다. 이미 전에 정했던 마음처럼.

 

“로한.”

 

로한은 그가 가볍게 부른 목소리에 바로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긴, 당신이 그런 일로 물러서는 건 안 어울리지.”

 

옆에서 레이미가 흘겨보고 있는 건 모르는지, 로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저기, 죠타로…… 정말 괜찮나요? 내가 어쩌면 너를-”

 

결정을 기다리듯 빤히 쳐다보던 카쿄인이 불쑥 다가왔다. 걱정스러운 얼굴은 레이미와 마찬가지로 결정을 말리고 있었다. 정말 자신이 친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게 걱정스러운 것이다.

 

죠타로가 카쿄인의 걱정에 대답해 주기도 전이었다.

 

“아얏!”

 

훅 다가온 디오에게 세게 머리를 쥐어박히고 카쿄인은 새된 비명을 질렀다. 끙끙거리며 머리를 부여잡고 홱 노려보는 시선이 제법 매서웠다.

 

그 매서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디오는 오히려 시큰둥한 얼굴을 했다.

 

“다른 놈도 아니고 저놈이 네게 당한다는 생각을 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러는 너도 안 내켜 했잖아.”

 

“네 녀석이 뭔가 행동을 하면 이 디오가 막게 되니까 그게 싫은 거다, 멍청하긴.”

 

애초에 쿠죠 죠타로씩이나 되는 놈이 네 녀석에게 해코지당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디오는 아주 당연한 말을 늘어놓듯 카쿄인에게 핀잔을 주었다.

 

“카쿄인, 너는 이 디오에게 죽었지. 그리고 이 디오는 죠타로 녀석에게 패배했고. 제일 약자인 네 녀석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지.”

 

“말이 되는군…….”

 

“죠, 죠타로……! 너무해요! 거기서 고개를 끄덕이면 어떻게 해!”

 

디오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카쿄인이 배신이라도 당한 듯한 얼굴로 노려보았다.

 

그런 실랑이는 잠시뿐이었다.

 

씩씩거리던 카쿄인도 카쿄인을 내키는 대로 약 올리던 디오도.

 

곧 시선이 나란히 죠타로를 향했다.

 

죠타로는 둘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넘겼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말 괜찮은가 물어보는 듯한 얼굴이라니.

 

한 명은 예전에 그의 손에 죽은 원수고, 한 명은 죽이겠다는 목적을 가진 녀석이면서도.

 

흘러간 10년의 세월은 정말이지 모르는 사이에도 정이란 걸 많이 붙여 놓은 모양이었다.

 

일방적인 건 사양이다. 저쪽에서 이쪽을 10년간 보고 놀고 있었다면, 이쪽도 마찬가지로 10년쯤은 봐 줘야겠다. 죠타로는 시원스러운 미소와 함께 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하지.”

 

“……죠타로 너는 매번 이렇게 거절할 수 없게 하네요.”

 

샐쭉한 표정의 카쿄인이 손을 답삭 움켜잡았다. 밖에서는 닿지 않던 게 골목 안이라 그런지 실감 났다. 이제 곧 밖에서도 이 실감 나는 느낌을 느낄 수 있겠군.

 

“누가 보면 내 스탠드가 아니라 당신 건 줄 알겠네.”

 

로한이 얼른 끝내고 싶다는 듯 틱틱거렸다.

 

옆에서 디오가 ‘가지가지 해라’하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빈손을 잡을 생각도 안 하는 디오의 멱살을 와락 끌어당기는 것과 동시에 조금은 귀찮은 듯한 로한의 목소리가 울렸다. -헤븐즈 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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