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남수]One's youth

W. 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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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 기간이라 쉬는 시간까지 조용한 학교가 점심 시간이 되자 급식실 문 밖에 길게 늘어서 있는 줄까지 시끄러웠다. 이지훈은 4교시 내내 잠을 자더니 몸이 찌뿌듯한지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하며 팔을 높이 뻗었다가 구부려 뒤로 돌려 가슴을 넓게 폈다. 오늘 점심 뭐라고 했지? 이지훈이 묻자 김선민이 핸드폰을 내려보며 식단을 읊었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 내게 말했다. 강세야, 네 순대볶음 나 먹는다? 난 톡톡 화면을 누르며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헐, 야, 나도. 김선민의 말에 이지훈이 놉. 단박에 거절했다.

 "어, 남수야. 너 순대볶음 안 먹어?"

 "응."

 텅 빈 좌측상단의 동그란 반찬 칸. 남수의 맞은편에 앉은 정다운이 젓가락을 짚어 식판에 균형을 맞추다 눈을 떠올렸다. 그러자 그 옆에 있는 김선민과 이지훈도 남수의 식판을 보았다. 그러고는 눈썹을 들어올리며 시선을 올려 남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이지훈이 먼저였다.

 "아니, 남수야. 그렇다고 안 받아오면 어떡하니. 받아와서 날 줘야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남수가 할 말을 찾는지 입을 살짝 벌리는데 김선민이 인상을 쓰며 이지훈을 흘겼다. 아, 이 돼지 새끼. 넌 강세 것도 먹으면서 뭘 더 먹으려 그래. 그러자 이지훈이 영문 모를 소리라는 양 두 눈을 동그랗게 떠 고개를 뒤로 빼며 입꼬리를 내리고 두 손바닥을 위로 해 어깨를 들어올렸다. 돼지는 너 아니야? 김선민의 표정이 삽시간에 싸늘하게 굳었고 김경민은 앞에서 시끄럽게 굴든 때리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카톡만 빠르게 보내고 된장국을 한 입 떠먹었다. 아.. 결국 김선민과 순대를 반절씩 나눠먹기로 한 이지훈이 맞은 어깨를 문지르며 목소리를 내었다. 아무튼 남수야, 다음엔 받아 와. 꼭. 남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안 먹는 거야? 알러지 있어서 그래?"

 "아니. 그냥.. 비리고 물컹거리고 그런 걸 안 좋아해서.."

 "아.. 그럼 회나 초밥도 안 먹어?"

 "응."

 정다운이 이제 알았다는 듯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너희는 겁나 붙어다니면서 식성도 어째 그렇게 똑같냐. 이지훈이 밥을 우물거리고는 말했다. 아니야. 남수는 매운 거 못 먹어. 자판을 누르며 툭 말하자 아, 그래?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며 다시 밥을 떠먹었다. 어쩌다보니 호불호 음식으로 이야기가 번지고 편식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떠들게 되었다. 다들 식판을 거의 다 비워갈 쯤엔 어느 때와 같이 왜 자꾸 급식에 오징어 볶음과 오리 주물럭이 나오는가, 진짜로 학교에서 옥상에는 대왕 오징어를, 지하에서는 오리를 키우는 건가, 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진행되었고. 남수와 함께 진작에 숟가락을 내려놓은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 핸드폰을 만지며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지훈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까졌네, 우리 강세. 입학한지 얼마나 됐다고 여친이야."

 "여친 아니거든."

 안 사귈 거야? 그 말에 말 없이 시선을 올리자 태연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이지훈이 보였다. 곧 눈을 얇게 떠 은근히 바라보며 실실 입꼬리를 올렸다. 아닌 척 하기는. 피식 웃으며 내 식판 쪽으로 젓가락을 내밀었다.

 "선민아, 너 먹어." 

 정면에 있는 김선민에게 가까이 댔다. 오. 김선민이 신나하며 자기 식판에 다 옮겨갔고 이지훈이 어이 없고 망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댈 때부터 알아봤어. 넌 정도를 몰라. 김선민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입을 벌려 먹었고 김경민도 고개를 끄덕여 그 의견에 동조했다. …와. 너무해. 치사해. 이지훈은 말을 끝내고도 입을 벌린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먹을 걸로 이러기 있냐. 좀 놀렸다고 줬다 뺏는 게 어딨어. 정말 실망이다, 강세야. 삐친 척 징징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남수의 어깨를 툭 치고 고갯짓을 했다.

 3주 째. 연락은 계속 이어져왔다. 낮과 밤에 두 번 정도. 대화는 금방 끊겼지만 뭘 하는지, 뭘 먹는지, 언제 자는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어갔다. 당장 다음 주가 시험이라 대부분의 이야기는 공부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주말에는 학원에 왔는데 너무 졸립다는 말에 물어서 학원 앞으로 가 초콜렛 하나를 건넸다. 이유정은 얼굴을 붉히며 …너도 시험 잘 봐. 라고 말했다.

 "…너 여친 생겨..?"

 매점에 와 빵과 초코 우유를 두 개씩 사 남수에게 하나 씩을 나눠주는데 받아들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지훈이 떠들어댄 걸 떠올리며 하-. 한숨을 내쉬었다가 테이블 밑에서 의자를 빼내 털썩 옆에 앉았다. 아마. 빨대를 꽂자 폭. 소리가 났다. 옆에서 어떠한 반응도 소리도 나지 않아 슬쩍 쳐다보니 남수는 테이블에 빵과 우유를 올려놓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빵 봉지 중앙을 잡고 트득- 뜯었다. 잘 되면 사귀는 거고, 못 되면 끝인 거지. 무심하게 말하는데 남수는 여전히 테이블만 내려볼 뿐이었다.

 "왜."

 몸을 돌려 남수 앞에 빵을 내밀었다. 남수는 내 시선을 피해 왼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팔을 까닥여 다시 얼굴 앞에서 흔들어도 아랫입술만 비죽이듯 움찔이기만 했다. 테이블에 빵을 내려놓고 몸을 가까이 앞으로 기울였다. 왜 그러는데. 말해 봐. 왜 이렇게 시무룩해. 남수의 오른팔을 끌어와 손을 두 손으로 꼬옥 감싸쥐자 내 손 안에서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남수 미간에 잠시 힘이 실리더니 이내 침을 한 번 삼키며 표정을 다시 풀었다. 말할 듯 말 듯 갈등하는 입에 응? 얼굴이 더 잘 보이게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덮고 있던 손을 풀어 두 엄지로 손바닥을 안마하는 것처럼 아프지 않게 매만졌다. 남수는 얼마간 더 나를 힐끔 보았다가 테이블을 보았다가 시선을 움직이며 입을 조물거리다 조그맣에 목을 틔웠다.

 "…너 때문 아니야."

 "그러니까. 말해 봐."

 남수는 우물쭈물 입술을 꾹 오므리며 왼손 검지로 빵 봉지를 슬쩍 긁었다. 시끄러운 매점 안,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다시 힐끗 눈꼬리로 눈치를 보았다가 내가 말할 때까지 이러고 있을 거란 걸 느꼈는지 결국 속을 꺼냈다.

 "…그냥.. 나만 모르니까.. 왜.. 나한테만 안 알려줬나.. 해서.."

 "…그래서, 소외되는 것 같았어?"

 남수는 창피한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느리게 종알거렸다. 수많은 말들이 섞여 떠돌고 있었지만 내 귀엔 그 어떤 소음보다도 집중적으로 들려왔다. 이지훈.. 속으로 한 번 긁고 다시 부드럽게 목소리를 냈다. 그건.. 확정된 게 아니어서 그랬어.. 그러다 안 사귀면 어떡해. 나 혼자 설레발친 거잖아.. 만약 진짜로 사귀었다면 제일 먼저 너한테 말했을 거야. 집에 들어가기 전에 너희 집에 먼저 갈 수도 있을 걸? 아니, 그냥 네 집에서 밤새 내내 떠들 지도. 장난을 더하며 설명하니 테이블만 내려보면서도 가만히 듣고있었다. 다시 두 손으로 감싸쥐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말한 거 아니야. 다른 학교에 친구가 있는데 걔랑도 같이 논 날에 걔가 다른 친구를 데려왔어. 그래서 애들이 눈치챈 거야. 조심히 남수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려 어루만지다 깍지를 꼈다. 그래도 너한테 말 안한 건.. 미안해. 앞으로는 안 그럴게. 남수는 말없이 있다가 내가 미소를 지으며 한 번 더 응? 고개를 기울이자 잠시 손가락을 한 번 까닥이더니 꼬옥 내 손등 위로 올려놓았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더 올리며 깍지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손등을 감싸고 있던 손을 풀어 남수 볼 위에 얹고 엄지로 쓸었다.

 "그럼 이번엔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 만들자."

 남수가 고개를 슥 들어올리며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깜빡였다. 마주보고 웃고있다가 입을 열었다.

 "앨범, 찾았어."


 -


 학교가 끝나자마자 남수와 함께 집에 왔다. 이왕 볼 거 제대로 추억 여행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미리 빼둔 앨범 세 권을 바닥에 놓자 남수가 눈을 반짝이며 기웃거렸다. 이게 다 앨범이야? 응. 그 사진은 어떤 앨범에 있는 거야? 이거였던 것 같은데.. 그냥 다 보자. 가운데에 있는 흰색 바탕에 파란색으로 커버를 따라 정사각형 선이 있는 앨범을 짚었다가 그 밑에 깔려있는 검은색 바탕에 금색 캘리그라피가 쓰여있는 앨범을 들어보였다. 남수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와, 진짜 귀엽다."

 처음에 떡하니 크게 붙어있는 한 장에 남수가 입을 벌렸다. 너야?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한 번 웃으며 진짜 예쁘다.. 볼살 통통해. 빨간 것 봐. 눈도 못 떴어. 중얼거리면서 검지로 사진 속 나의 볼을 살살 문질렀다. 다음 장으로 넘기자 가족 사진이 나왔고 앞엔 생일상이 차려져 있었다. 왼쪽 하단에 찍혀있는 빨간색 숫자를 보아하니 설이 누나 생일 파티였다. 아, 어떡해. 다 똑같아. 남수가 입을 가리며 큭큭대다가 아버님.. 어머님.. 너.. 설이 누나? 아니, 세현 누난가? 이건 솔희 누나같은데.. 양쪽에 있는 부모님과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나, 그리고 누나들을 한 명씩 짚으며 구별해갔다. 그거 세현 누나. 왼쪽부터 세현 누나, 설이 누나, 솔희 누나, 나이순 대로야.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어가 3분의 1쯤 됐을때 왼쪽 페이지 보인 첫번째 사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급히 손으로 덮었다. 그리고 남수 얼굴을 봤는데.. 눈을 뜨고 날 마주하고 있다가 슬금 눈을 오른쪽으로 피했다. …봤구나. …응. 남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어색해진 분위기에 괜히 코를 한 번 훌쩍이고 페이지를 넘겼다. 편해지게 음악도 켜놓고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지만 내 노출 사진은 잊을만 하면 튀어나왔다.

 어느덧 두 권째. 첫 앨범의 첫 번째 사진보다 화질이 좋았고 나도 훨씬 커있었다. 5살 쯤으로 보였고 사진관에서 찍은 듯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고 흰 셔츠에 남색 넥타이를 맨 채 흰 박스 같은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남색 베레모에 보랏빛이 도는 회색 체크무늬 자켓과 반바지였다. 나는 포토그래퍼가 시킨듯 입만 웃고 있는데 남수는 내내 양 입꼬리를 내리지 않고 바라보았다. 옷 너무 귀엽다. 눈이 얼굴 반만 해. 뒷장으로 넘기자 앞장처럼 반 양말을 신고있는 내가 있었는데 다른 점은 스튜디오 안이 아닌 야외 경기장이었고 빨간색 티셔츠에 한쪽 발 아래엔 축구공을 두고 활짝 웃으며 서있었다. 남수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축구했었어? 몰라. 잠깐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기억 안 나네. 남수가 끄덕이더니 다시 손바닥에 받쳐 턱을 괴며 빤히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왜?"

 "너 검은 머리인 거 신기해서."

 "지금까지 본 거 다 검은 머린데?"

 "그냥.. 나는 본 적 없으니까."

 말하고는 팔을 내려 두 손을 깍지끼고 그 위에 턱을 올려 완전히 엎드렸다. 그러다 고개를 기울여 나를 올려 보았다. 염색 왜 하는 거야? 음.. 그냥? 내 말에 왼팔을 뻗어 내 머리를 살짝 쥐었다가 스르륵 놓치며 건들었다. 머리 상하지 않아? 그래서 관리 열심히 하지. ..검은 머리도 예쁜데. 한 올 한 올 매만지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올려 내 머리를 보며 말했다. 그러다 다시 팔을 내리며 사진을 보곤 중얼거렸다. 이 땐 귀도 안 뚫었네.

 몇 장을 넘기자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있는 내가 있었고 주먹을 내지르고 있는 포즈에 조금 창피해지는데 남수는 가만히 바라보더니 앞 장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두리번 거렸다. 왜 그래? 묻자 사진 속 나의 귀를 짚으며 조금 격양된 목소리를 냈다. 귀. 뚫었어. 찾아낸 게 기뻤는지 또 사진을 보고 내 귀를 올려보았다. 언제 뚫은 거야? 7살? 6살인가? 그 쯤이었던 것 같아. 운동하는데 안 아팠어? 뚫었을 때는 아팠..겠지..? 근데 어릴 때라 기억 안 나. 찢어진 적도 없는 것 같고. 내 귓불을 만지며 답했고 남수는 눈을 반짝이며 다음 사진으로 옮겼다.

 사이사이에는 누나들과 함께 있는 내 사진이 있었고 처음엔 좀 가만히 있고 도란도란해 보였는데 갈수록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게 보였으며 그 중 몇 장은 내가 울고 있었다. 울기 직전, 울고 있는 중, 울고난 후, 아주 다양했는데 남수는 빨갛게 부은 눈을 짚으며 우는 것도 귀엽다면서 눈물 그렁그렁한 거 보라고 말했다. 아예 엉엉 입 벌리며 울음이 터져있는 것도 있었는데 그 옆에 솔이 누나가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고 있었다. 하품을 하면서. 남수는 쫑긋 위로 묶은 머리가 귀엽다며 헤실거렸다.

 "아, 드디어 나왔다."

 사진을 빼 남수에게 건넸다. 아직 염색하기 전 검은 머리, 영혼이 없는 듯 살짝 심통난 얼굴, 높이가 다른 엉성하게 묶인 양갈래, 손으로 지웠는지 입술 밖까지 번져있는 분홍색 립스틱, 그리고 둥그런 소매가 달린 꽃무늬 검은색 원피스. 남수가 입을 가리는데 흫. 하고 코로 새어나온 웃음 소리가 입가가 씰룩이고 있다는 걸 다 말해주고 있었다. 웃을 걸 예상하고 보여준 거라 그러려니 하고 무심하게 있었다. 남수는 아예 몸을 세워 침대에 등을 기대 앉으며 또록또록 눈을 굴려 옆에 있는 누나들과 널려있는 화장품과 옷가지까지 훑어보았다.

 "나 이거 주면 안 돼?"

 "그걸?"

 "응."

 "왜? 그거 못생겼잖아. 다른 괜찮은 걸로 해."

 "괜찮아. 잘생긴 건 매일 보니까."

 남수 말에 엎드려있다가 팔꿈치로 바닥을 짚으며 상체를 세웠다. 그러다 고개를 내젓고 남수처럼 일어나 고쳐 앉고 앨범을 들어 휙휙, 멈추고 바라봤다가 다시 몇 장을 더 넘겼다. 그리고 빼들어 남수에게 보였다. 금발, 익숙하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 무슨 머리를 시도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머리 옆쪽에 매달려있는 땋은 머리, 전보다 깔끔히 빨간색 립스틱, 그리고 흰색 바탕에 촘촘히 들어간 얇은 파란색 세로줄 민소매 원피스. 차라리 이걸로 해. 남수는 잠시 바라보더니 단호하게 가로저었다. 이해가 안 돼 눈썹 한 쪽을 올리는데 줄 거야? 하고 물었다. 나는 뒷목을 한 번 긁고 흑발이던 시절 사진과 비교적 최근 사진을 하나씩 더 꺼냈다. 대신 이것도 가져.

 남수는 그 사진을 구겨지지 않게 책 사이에 꽂아넣어 보관했고 곧 다시 유유히 앨범을 넘기기 시작했다. 후반부에서 어, 염색했다. 며 반가워하고는 곧 끝이 나 세 번째 앨범을 펼쳤다. 무릎에 커다란 거즈가 붙어있는 걸 보며 이건 왜 그러냐 묻길래 자전거 타다 넘어져서 8 바늘 정도 꼬맸다고 말했더니 미간을 좁히고 아팠겠다..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그렇게 마지막 앨범까지 다 보고, 일어나 책장에서 유치원 사진집과 초등학교 졸업앨범까지 가져오고 나서야 끝이 났다. 끝으로 본 우리는 불과 몇 개월 전이었는데 무척 어렸고 감회가 새로웠다. 그 날 우린 같이 잤고, 그 다음 날 남수 집에 가 낡은 버건디색 사진첩 한 권을 살폈다. 갓난 아이 시절의 모습이 대부분이었지만 남수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나처럼 씻고 있던 중에 찍힌 사진도 있었다. 너도 그런 거 있네. 송송한 거품기를 떠올리며 큭큭대자 남수는 얼굴을 붉히고 앨범을 덮었다. 그렇게 누워서 웃고있는데 남수가 잠시 머뭇대더니 증명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4학년 때.. 경시대회 나갈 때 찍은 건데.. 나는 웃으며 지갑에 넣었다. 사진 칸에 나란히 있는 남수의 교복 사진과 더 어린 얼굴 두 장. 남수는 우리 가족이 정말 화목해 보인다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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