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더이상 가르칠 것이 없구나. "


 L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스승의 말에 그는 적잖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스승의 부름에 긴장을 한 움큼 집어먹고있던 그의 예상과는 조금의 유사점도 존재하지 않는 그 말에, 스승을 적잖이 당황시킬만큼 얼빠진 표정을 - 그가 스승의 아래에서 보인 적 없는 그 표정을 지어보였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아직... "

"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너의 커피마법은 나의 것을 넘어서도 한참을 넘어섰기에, 그렇기에 더욱 네가 나의 품을 떠나는 것이 옳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


L은 그리 말하며 섭섭함이 묻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딘가 서글퍼보이는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 역시, 그의 스승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본 것이 당혹스러웠겠지. L 역시 그가 지은 표정의 감각이 한없이 낯설고도 어색하여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그를 가르칠 때, 커피마법은 조합식을 그리는 것의 속도와 비율들이 한데 어우러져야만 해낼 수 있는, 효율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마법이니 효율을 중시하라면서, 사사로운 감정과 같은 효율과 거리가 먼 것들을 멀리하라 일렀는데, 섭섭함, 아쉬움 따위를 표정에 드러내는 것이 너무도 후회스럽게 느껴졌다.


" 서운하십니까. "

" 서운하구나, 무척이나. 나의 가르침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너에게, 나는 조금의 아픔도 느낀단다. 어찌하여 너의 조합식은, 너의 마법은 나의 것과 달리 쓰고도 거칠어서, 네가 살아온 길도 이리 쓰고 거칠었을까. "


그는 입을 다물었다. 사사로운 감정이야말로 효율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언제고 이성적이고, 차가움을 유지하리라. 그리 다짐하며 며칠을, 몇 주를, 밤을 새워가며 연구하고 또 연구하였는데. 자신에게 보인 적 없는 스승의 표정에 의해 다짐이 깨질 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였기에, 입이 차마 열리지 않았다. 감정을 갖지 말라 말한 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어 이야기하는 것에 흔들릴 정도로 자신은 약했던가. 어찌하여 스승이 지어보이는 웃음에 목이 메이는가. 어찌하여 스승이 읊조리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시리도록 아픈가.


그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태도를 통해 전해지는 말들을, 그의 스승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무언가가 들어올리는 것을 느끼었다. 한없이 크게만 보였던 스승의 지팡이가, 자신의 눈 아래에서 고개를 들도록 제 턱을 들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지팡이의 끝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스승의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스승과 눈을 맞추지 못하였다. 공화국의 사람들은 그가 살아온 삶에 동정은 커녕 조금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하여, 자신에게 이리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해준 그의 스승에게 감정을 품지 말라 배웠을 지언정 감정을 품지 않았을 리 없다. 이는 곧 그로 하여금 더욱 그가 스승에게 다가가도록 하였다. 몸을 일으킨 그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인의 품에 안기었다. 사락, 비단결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손에서 바스라졌다.


" 쓰디 쓰고, 거칠고, 뜨거우며 차가운 너의 삶을 부드러이 녹일 수 있다면 좋겠구나. 너의 커피마법은 완성형이 아니니. "

" 잠을 줄이면 해결될 일입니다. 꿈의 달콤함은 쿠키로 하여금 잠에 더욱 묶이고 싶게 하니까요. "

" 잠을 줄이고, 뼈를 깎는다 한들 너의 마법이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의 곁에서, 나의 것을 더 배운다 하여도, 너의 마법은 쓰디 쓴 조합에 적응하여 더욱 비참해질 게다. "

" ...그럼...... "

" 제자여, 그대의 삶에 내가 감히 녹아들어도 괜찮겠는가. "


그는 당황하였다. 커피마법의 선구자인 자신의 스승이 자신과 같은 생을 살아간다니. 아니, 자신의 삶의 일부로 들어온다니. 영광이다. 허나, 영광스럽지만은 않다. 부담스럽고, 무거웠다. 어찌 나같은 것의 삶에 뛰어들겠다고 말하였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무어라 대답하였을 때, 그를 안고 있던 사람의 고개가 더욱 숙여졌다. 천천히 맞닿는 입술, 태어나 처음으로, 어쩌면 기억 속에 사라졌을지도 모를 그 부드러운 감촉을, 따뜻하고 또 따뜻한 이 시간을 즐기었다.


" 감히 사랑해도 될까요, 스승님. 아니, L. 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요. 스승님께서는 제가 감정을 갖지 말라 이르셨습니다. 헌데 이건......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

" 사랑하지 말라 이른 적은 없다. 다만 . 에스프레소, 쓰고, 아프며, 차가운 생을 그대가 더이상 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

" 동료를 만들고, 친구를 사귀려무나. 이 생을 살아가는 것은 너라는 단일의 쿠키지만, 이 시간을 살아가는 것은 다양한 쿠키들이니. 사랑을 주고, 구원을 행하렴. 설령 그것이 빛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이라 하여도. "

"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L. "

" 덕분에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올랐구나. 이리도 달콤한 감정이, 그저 상황에 대한 반응일 뿐인 것이 효율과 멀다고 배척한 과거가 너무도 부끄럽단다. "


라떼, 말의 끝머리에 그는 그리 덧붙였다. 에스프레소는 고개를 살풋 끄덕였다. 본명을 밝히지 않는 그였기에, 오히려 이니셜이라 생각하여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번에는 에스프레소의 쪽에서, 라떼에게 고개를 느릿하게 들이밀며, 입술을 살살 가까이에 두었다. 라떼 또한 거절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둘은 입을 맞추었다. 둘의 커피마법에 흩날리는 종이들이, 책들이, 커튼과 벗어놓은 외투가 그들의 모습을 가리었다. 입술을 떼고, 에스프레소가 내려다본 라떼의 얼굴에 행복이 녹아있었다. 즐거웠다. 에스프레소 자신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 스승님... 아니, L... 라.... 하아...... "

"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구나. 괜찮다. 천천히 하면 발전할 것이니. 네가 처음 커피마법을 배울 때에 그러했듯이. "

" ...네에.. "

" 사랑한다, 에스프레소. "

" ...... "

" 키스해도 되겠니. "

" ...........그대 자유입니다, 라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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