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애프터 러브

LOVE AFTER LOVE




13.


‘이미 예견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예견된 위험은 미리 대처하고 관리 할 수 있다는 뜻에서 비롯된 말이다. 생각해 보면…아니긴 뭐가 아니야. 예견된 위기는 분명 위기가 맞다.

 

드라마 ‘럽미어게인’은 예견된 위기를 맞았다. 고작 크랭크인된 지 한 달 만에 비공식적으로 촬영이 중단된 것이다. 폭행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가량 지났다. 약 7일 전, 울산에서 전정국에게 정확히 주먹 두 대를 맞고 분통을 터뜨리며 서울로 올라온 김영훈은 병원으로 직행해 전치 5주짜리 진단서를 뗐다. 물론 전정국이 분노를 꽉꽉 눌러 담아 치긴 했겠다만, 골절도 하나 없이 어떻게 전치 5주가 나오나. 마음에 상처라면 또 몰라도. 방법은 모르겠지만 양껏 부풀려낸 진단서를 가지고 그린 엑터스 이 대표를 찾아갔다. 사이좋게 양쪽 뺨에 피에로처럼 시퍼렇게 멍이 든 김영훈의 얼굴을 본 이 대표는 노발대발했다. 전정국은 대체 깡패냐 배우냐. 배우 얼굴을 이 지경을 만들어 놓은 게 제정신이 맞냐. 촬영장에서 어떻게 이런 황당하고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냐. 이번 일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공식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 아주 생난리를 쳤다. 어디에? 브릭 필름 고 대표에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더니. 왜 나한테 지랄이야? 내가 때렸어? 골든 엔터에는 내용증명 하나도 못 보내는 주제에. 괜히 제작사 대표한테 지랄이야. 지랄이! 고 대표가 이 대표와의 통화를 마치고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그런 말을 했단다. 고 대표도 이번 사건으로 많이 화가 난 상태였다. 1차로 이 대표의 엄한 화풀이에 부아가 치밀었고 2차로 촬영이 잠정 중단되었다는다는 소식에 날뛰었고 3차로 그린 엑터스에서 이번 사건을 ‘럽미어게인 드라마 촬영장 폭행 사건’으로 드라마 타이틀까지 붙여 기사화하자 뒷목잡고 쓰러질 판이었다.

 

‘럽미어게인’ 동료 배우 폭행 사건으로 ‘시끌’…촬영 중단으로 난항

전정국, ‘럽미어게인’ 촬영장에서 동료 배우 폭행.

김영훈 측, 그린 엑터스 입장문 발표. ‘전치 5주, 모든 법적 조치 검토 중.’

골든 엔터테인먼트, 해명도 없이 그저 ‘묵묵부답’

 

한동안 잠잠하던 전정국이 싱싱한 먹잇감을 던져주니 기자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었다. 현장 사정은 하나도 모르는 채 그저 카피에 카피만 거듭하는 인터넷 기사들이 한여름 장맛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정체 모를 현장 스태프와 드라마 관계자로부터 시작된 카더라는 기정사실로 되어 보도 됐다. 전정국이 현장에서 태도가 어쨌네 저쨌네. 원래 김영훈과의 관계가 이랬네 저랬네. 책임감 없는 인터뷰들은 이니셜 이름을 방패 삼아 무분별하게 재생산됐다. 진위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대중들의 흥미를 끄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김영훈은 그린 엑터스를 통해 입장문을 냈다. 촬영 현장에서 동료 배우에게 폭행당했다는 심적 충격이 무엇보다도 크다. 이에 유감을 표하며 가해자의 진솔한 사과와 제작사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그전까지는 촬영을 재개하기 어려우며, 이로 인한 모든 법적 분쟁에 대해 법률적 자문을 받고 있는 상태다. 그 말인 즉슨, 전정국이 두 발로 걸어와서 사과하기 전까진 이 상황의 해결책은 없다는 말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된 게 어디서부터냐 하면 당연히 전정국부터다. 그렇다면 마땅히 해결도 거기서부터 시작돼야 하거늘, 그럴 기미가 전혀 없었다. 전정국은 모든 인터뷰에 불응하고 사실상 칩거상태에 접어들었다.

 

드라마 하나에 이해관계로 얽히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이 황당하고 유치한 게이 치정극으로 드라마가 무산된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상황이 언론전에 여론전으로까지 번지자, 투자사인 드림컬쳐스까지 들썩거렸다. 투자금을 쏟아부어 줬더니 촬영장에서 배우들이 주먹질이나 하게 만들어요? 질책이 고스란히 진 감독과 고 대표에게 쏟아졌다. 원인 제공자가 아무리 전정국이라고 한들, 배우는 작품에 출연하는 출연자에 불과하고 이 제작 현장의 관리총괄을 책임하고 있는 것이 제작사이니 모든 것이 죄 없는 고 대표의 탓으로 돌아갔다.

 

일주일 남짓 폭풍 같은 사건을 겪은 진 감독은 스트레스로 골병이 났다. 내가 이 사달이 날 줄 알았지. 알았어. 그러니까 전정국을 주인공 시키지 말자고 그렇게 말렸거늘.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지만, 따지고 보면 전정국 못지않게 내 죄도 크다. 이전부터 둘 사이가 워낙 나빴던 것은 사실이나, 이번 사건의 쟁점인 폭행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나였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영훈과 같은 방에서 순전히 잠만 하루 잔 게 이렇게까지 난리법석이 된 거다. 전정국의 불같은 성질에 기름을 부었던 게 잘못이고 김영훈이 부채질을 하게 놔둔 것도 잘못이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다. 자책으로 상황이 마무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오렌지 주스 한 박스를 사 들고 진 감독의 자택으로 병문안을 갔다. 친절하게 맞이해주신 부인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두 아들은 처음 봤다. 감독님. 보기보다 능력 좋으시네요. 미인이랑 결혼하신 거 보니. 심심한 농담과 함께 들고 온 오렌지 주스를 한 병을 톡 까서 마셨다. 스트레스로 난 병에는 약도 없다는데 무슨 약을 먹는 건지 알약 몇 개를 집어삼키며 앓아누웠다. 김 작가, 나 죽으면 내 필모에서 ‘럽미어게인’은 꼭 지워줘. 내 유작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 이 와중에도 우스갯소리를 하는 걸 보니 병세가 심각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작업실로 돌아가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다 드라마가 제작 무산이라도 된다면 드림컬쳐스는 지금까지 들인 투자금만 날리는 꼴이고 브릭필름은 회사 간판에 먹칠하게 될 거고 진 감독은 새 영화 찍으면 되겠지만, 스트레스로 당분간은 고생할 거고, 그렇다면다면 나는? 피땀 흘려 쓴 아까운 대본을 날리게 되겠지. 대중들까지 다 알게 된 마당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불발된 대본을 누가 쉽게 재투자하겠냐고. 그럼, 드라마 작가들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제작대기의 무한 굴레에 빠져드는 거다. 3년이고 5년이고 드라마 판을 전전하다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게 수순이다.

 

‘럽미어게인’은 자그마치 나의 아까운 이년이 담긴 글이다. 예술가는 고통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하였는데 전정국과 이별하고 마음과 정신을 곱게 갈아 만든 대본이 허망하게 날아가는 거다. 아, 지금 이 고통은 대체 무슨 대본을 낳게 될까. 정말이지 불운한 예술가의 삶이여. 잡념에 한도 끝도 없이 파고들게 된다. 이럴 때는 뭔가 나를 멈춰 세워줘야 하는데 그게 여태까지는 전정국이었고 이제는, 없다. 아, 미련한 김태형. 무슨 생각을 해도 왜 전정국으로 끝이 나는 거냐.

 

초 저녁 무렵부터 미약하게 진눈깨비가 내렸다. 일곱 시의 올림픽대로는 정말 기가 막히게 막혔다. 내 속처럼 꽉 막힌 도로에서 기력을 다 쏟고 터덜터덜 힘없이 작업실로 복귀했다. 얌전히 차에 타서 운전만 했는데도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시스턴트들의 퇴근 시간이 지났다. 당연히 불이 꺼져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작업실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들어가 보니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잽싸게 퇴근하고 막내 어시인 수연만이 작업실에 남아있었다. 현관에서 가볍게 옷에 맺힌 물방울들을 털어내며 말했다.

 

“수연아, 아직도 안 갔어?”

“아, 작가님 오셨어요.”

“왜 남아있어? 6화 오타 검수 아직도 안 끝났어? 그거 급한 거 아니야. 내일 해. 촬영까지 중단된 마당에 우리만 열심히 대본 쓰면 뭐 하니.”

“아니요. 검수 끝났어요. 내일 마무리해서 드릴게요.”

“그래, 얼른 들어가. 날이 춥다.”

 

작업실 안쪽에 위치한 개인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내리깔린 짙은 초록색 블라인드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 내가 방에 불을 안 끄고 갔나. 이상한 느낌에 뒤돌아봤다. 수연이 어색하게 웃는다.

 

“그게…작가님, 손님이 오셨어요.”

 

작업실에 손님은 다 거기서 거기다. 제작사 대표, 투자자, 감독, 동료 작가, 배우 끽해야 이 정도다. 대부분은 직함이 있다. 이름이 붙지 않은 손님이라는 건 특이한 경우다. 미심쩍은 기분으로 문고리를 당겼다. 익숙한 작업방안. 손님용 소파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여자.

 

“안녕하세요. 김태형 작가님.”

“……………”

“저 아시죠?”

 

모를 리가 없다. 다만, 이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사람이다.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장서현입니다.”

 

불청객이었다.

 

어쩐 일이시죠. 퉁명스레 물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다. 달갑지 않은 손님을 맞기엔 내 성질도 고분고분한 편은 아니었다. 뭐 반가운 사이라고 장서현은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꽂아 넣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녀가 어색해진 손을 거둔다.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고 다시 착석한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긴 거북해서 데스크 의자를 끌어다가 사선으로 앉았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럽미어게인 촬영장 폭행 사건’에 대해 듣고 싶어서요.”

“…네?”

“전정국이 김영훈을 왜 때렸는지 알고 싶다고요.”

 

삼십삼 년 조금 넘는 인생 동안 별별 인간을 다 만나봤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장서현은 그중에서도 독특한 인간이었다. 전정국의 구여친인 그녀가 전정국의 구남친인 나를 찾아온 이유가 포털사이트만 열어도 관련 기사가 수십 개 쏟아지는 폭행 사건의 전말을 듣기 위해서라니. 어이가 없다.

 

“그런 거라면 전정국 씨에게 가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번지수 잘못 찾으셨어요.”

“정국이는 순순히 말해줄 거 같지 않아서요.”

 

장서현이 살며시 웃으며 대답한다.

 

“본인이 말하지 않는다면 그건 장서현 씨가 알아야 할 내용이 아니라는 뜻 같은데요.”

“언론까지 타면서, 일이 꽤 커졌잖아요? 내가 해결하려면 당연히 내가 알아야겠죠?”

 

마치 자신의 문제처럼, 마땅히 전정국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해결은 당사자들끼리 할 겁니다. 장서현 씨가 개입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요? 그럼 김 작가님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실 계획이세요?”

“명확히 말하자면, 저 역시 이 사건에 당사자가 아니고요. 제가 관련이 있다고 한들, 그걸 왜 장서현 씨에게 설명해야 하죠? 이 일과 전혀 무관한 사람에게.”

“사실은 제가요, 드림컬쳐스에 약간 지분이 있어요. 아버지의 주식을 상속받았거든요. 그러니까 이 드라마가 저랑 완전히 무관한 일은 아니다. 뭐, 그런 말이죠.”

 

아버지는 드라마계의 거장인 장한철 감독. 외삼촌은 투자사 드림컬쳐스의 김선의 대표. 가까운 친척들까지 줄줄이 드라마 판에 인맥 엮인 집안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 쥐꼬리만 한 투자 지분을 이유로 일개 드라마 작가인 내 작업실까지 쳐들어와 이 사건의 전말을 캐내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여론도 나쁘게 흘러가고 있고 드라마 촬영 초기부터 잡음이 들리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투자사 입장에서 굉장히 껄끄러운 일투성이네요.”

“그래서요?”

“지금이라도 주인공을 바꾸는 게 어떨까 해서요.”

“네?”

“함기석 배우. 아시죠? 진 감독님 전작 <윤슬>의 남자 주인공이요. 진 감독님이랑도 잘 아는 사이일 거예요. 제가 그분과 약간 친분이 있는데 최근 새로 들어갈 작품을 찾으시더라고요? 새 주인공으로 제격인 거 같은데.”

 

보자 보자 하니까 사람이 보자기로 보이나. 코웃음 치며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미간을 찡그리고 불량스럽게 불을 붙이며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정국이가 김태형 작가님과 드라마 찍는 거 싫어요. 그래서 이번 일을 핑계 삼아 주인공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요?”

“자격이 없으니까, 김 작가님을 찾아온 거겠죠? 아니었으면 내 선에 끝냈겠죠.”

 

아니, 씨발. 당당하기도 해라. 잠자코 궤변을 들어주는 것도 꽤 지치고 정신력이 소모되는 행위다. 그만하고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슬슬 피어올랐다.

 

“더는 들을 가치가 없네요. 안녕히 가세요.”

“거절하시면 곤란한데.”

“……………”

“그러면 저도 김태형 작가님을 좀 곤란하게 해볼까 하는데요.”

 

담배 연기를 쭉 빨아 그녀의 안면을 향해 길게 내뱉었다. 거리가 떨어진 탓에 매캐한 연기는 목표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아스라이 흩어졌다.

 

“네까짓 게 어떻게요?”

 

저속한 지칭에 장서현이 웃었다.

 

“방법이야 많죠. 이번 일을 빌미 삼아 제작사에 압박을 넣는다든가. 주인공 배우가 물의를 일으켜 투자 손해를 봤으니 계약 주체인 제작사에 배상을 요구한다든가. 조건부로 투자금을 회수한다든가.”

“이봐요. 장서현 씨. 내가 전정국을 주인공 시키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그걸 강제한 게 드림컬쳐스예요. 당신의 외삼촌, 김선의 대표라고.”

“……………”

“이 드라마가 엎어지면 제작사랑 나만 손해 볼 것 같아요? 드림컬쳐스가 제일 손해 볼 거예요. 지금까지 들인 돈은 한 푼도 회수 못하게 될 거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투자총괄인 김선의 대표가 지게 되겠죠.”

“알아요. 외삼촌은 당연히 기업가시니까 투자 관점에서 전정국을 선택하셨을거고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생각해요. 근데, 난 기업가가 아니에요.”

“……………”

“따지자면 전정국의 관한 일에서는 다분히 비이성적인 사람이니까, 내가 좀 손해를 보는 장사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장서현의 말은, 전정국을 내 곁에서 떼어놓을 수 있다면 투자 손해도 불사하겠다.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말이다.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그거까지 말하면…전정국이 진짜 날 안 볼까 봐. 그건 조금 무섭고.”

“……………”

“내 질투라고 합시다.”

 

게이 치정극이 끝났더니 이번엔 정통 치정극인가. 치정으로 둘러싸인 인생도 정말 피곤하다.

담뱃재를 테이블 위로 툭툭 털었다. 유리 위에서 불씨가 어렴풋이 꺼져갔다. 쓸모없는 말장난이 너무 길었다. 그만 불청객을 쫓아 버리고 소금을 뿌려야겠다. 전정국이 찾아왔던 이후로 작업실에 굵은소금을 한 포대나 사다 놓았는데 쓸 일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의미 없는 말만 계속되는 것 같은데. 그만 가시죠.”

 

어? 어어! 별안간 문밖에서 놀란 수연의 음성이 들렸다. 얘는 아직도 안 갔나. 무슨 일인지 밖이 소란스러웠다. 블라인드를 올려볼 새도 없이 방문이 벌컥 열렸다. 전정국이었다.

 

장서현을 발견한 전정국의 안면이 석고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구둣발로 들어와 거칠게 여자의 팔목을 낚아챘다. 악! 우악스러운 행동에 장서현이 작게 신음을 터뜨렸다.

 

“나와.”

 

꿈쩍도 하지 않는 장서현을 강제하여 일으킨다.

 

“아아! 이거 놓고 얘기해. 아파. 아프다니까!”

“나오라고!”

 

그토록 화난 전정국은 처음 봤다. 나 역시 4년 동안 그와 연애하면서 수없이 싸워왔지만, 저렇게 화내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전정국은 손에 쥔 가녀린 팔목을 마구잡이로 끌어냈다. 체격과 완력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상대를 두고 무자비하다 싶은 정도였다. 꼼짝없이 장서현이 작업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건물 외부로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손목이 자유로워졌다.

 

“어, 작가님. 괜찮은 걸까요?”

 

마음 약한 수연이 상황을 지켜보며 걱정했다. 괜찮아. 별일 아니야.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장서현은 빨갛게 부어오른 팔목을 문지르며 전정국을 노려보았다. 이내 짝, 피부가 서로  강하게 맞부딪치는 소리. 놀라서 블라인드 틈을 벌리고 밖을 내다보니 전정국이 고개를 돌린 채 서 있다. 장서현이 그의 뺨을 때린 것이다.

 

저 여자가 미쳤나! 나는 재빨리 외투를 걸쳐 입었다.

 

“수연아, 작업실 정리하고 들어가. 나 먼저 갈게.”

 

총알처럼 밖으로 뛰어나갔다. 장서현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한 번 더 손을 치켜든다. 이번엔 내가 그녀를 저지했다.

 

“보기보다 손버릇이 나쁘네.”

“……………”

“그만해요. 꼴사나우니까.”

 

여자의 손이 허공을 떨다 힘없이 툭 떨어졌다.

 

“그래, 여긴 좀 꼴사납지. 우리 집에 가서 얘기하자.”

 

장서현이 전정국을 이끌었다. 드라마에 씐 액운이 나를 따라다니는 건가. 왜 이렇게 가는 곳마다 난리야. 주말에 박지민 끌고 용하다는 무당집에 가서 부적이라도 써와야 하나. 세상에서 미신을 제일 싫어하는 게 나인데, 요즘 같아서는 그거라도 믿고 싶어진다. 발걸음을 돌려 주차된 차량에 올라탔다. 시동을 거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실랑이 중이었다. 불현듯 저 사이를 깨뜨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빵! 가볍게 클랙슨을 울렸다. 두 사람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다.

 

“전정국 씨. 우리 집에서…라면 먹고 갈래요?”

 

대한민국에서 속뜻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 유명한 대사. 이렇게 해볼 줄은 몰랐다.

 

“싫음 말고.”

 

운전석 창문을 올려 닫았다. 곧 전정국이 장서현의 손목을 뿌리치고 조수석을 향해 걸어온다. 남겨진 그녀의 고운 얼굴이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우그러진다. 짜릿했다. 이번엔 명백한 나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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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또 왔어요.

왜냐면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예요.

셀프감금하고 글만 쓰고 있습니다. 낑낑.

이번편은 사이다가 되셨길 바라면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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