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밀레, 그럼 나 다녀올게! 나랑 상행의 포켓몬들 잘 부탁해! "


" 그래, 걱정말고 조심히 잘 다녀와, 하행! 꼭 좋은 소식 들고오길 바랄게! "



하행은 공항에서 카밀레와 인사를 나눈 후, 곧장 신오지방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한 수속을 밟고 조금 기다린 후에 바로 출발대기 신호가 뜬 곳으로 향했다.


얼마 뒤 비행기 하나가 떠올랐고 그때까지 공항 주변을 서성이고 있던 카밀레는 멀어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살짝 손을 흔들며 말했다.



" 하행... 부디, 너의 형에 대한 단서를 꼭 찾길 바래. 우리가 상행을 기다려 온 그 오랜시간 동안 괴로워했던 것처럼, 상행 역시 많이 외롭고 쓸쓸했을테니까... "



에모옹~!



카밀레의 한쪽 어깨에 두 팔을 대고 매달려있던 에몽가가 아주 작은 손으로 제 주인의 얼굴을 꾹 누르며 그녀의 주의를 돌렸다.



" 응, 에몽가! 얼른 뇌문시티로 돌아가서 며칠간 함께 지내게 될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자고! "












" 아르세우스...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당신에게 있어서는 그 세월이 아주 찰나의 순간일지는 모르나, 끝이 정해져 있는 그 아이들에게 또다시 그러한 시련을 한 번 더 내리는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지 않습니까? "



" 그러나 이는 노보리... 아니, 지금의 이름은 상행이라고 했던가, 그 아이 외에는 믿고 맡길 수가 없는 일이오. 지금까지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람을 고르고 골랐으나, 그들은 결국 마지막에 가서 자신의 사리사욕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치고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만들었지.

그러나 그 아이는 그 먼 옛날부터 자신이 아끼는 동생의 목숨을 되살리기 위해 기꺼이 불사의 몸까지 버린 아이지 않소? 그 성품은 환생한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말이오.

내, 그 아이들에게 한 약속과 부인에게 또다시 주게 될 상처를 염려하여 처음부터 그를 선택하지 않고 굳이 먼 길을 돌고돌아 같은 시간선을 반복해 왔지만...

이제는 여기에서 더 이상 반복할 수도 없을 만큼 나의 힘은 약화되어있소. 그러니 당신 말대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그 일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그 아이와 쿠다리... 하행도 함께 불러 내 뜻을 전달하고 두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구려.

부디 이해해주시오, 부인. "



" ... "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오래도록 침묵하다가 다시 제 앞의 존재를 올려다보며 슬픈 얼굴을 하고 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존재는 가만히 한 손을 들어올려 여인의 하얀 뺨에 올려놓고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두 팔로 여인을 감싸 품 속에 끌어안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부인, 딱 한 가지는 약속하리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그 아이들에게 이와같은 고통을 겪게하지 않겠소. 그리고 최대한 행복한 삶을 살도록 힘써줄테니, 부인도 딱 이번 한 번만 나를 도와주면 안 되겠소? 부탁드립니다, 부인. "


" ... 알겠습니다, 아르세우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부디 그 약속, 꼭 지키시길. "



그 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뒤를 돌아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다가 이내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똑똑똑-



" 네, 들어오세요! "



신오지방에 도착하자마자 어느 건물을 찾아간 하행은 한 방문 앞에서 노크를 했고, 안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행은 후우- 하고 숨을 고른 뒤에 문 손잡이를 잡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신오지방의 무쇠시티 체육관 관장인 강석과 운하시티의 체육관 관장인 동관이 있었다.



" 어서오세요, 하행 님! 하나지방에서 신오지방까지 꽤 먼 곳을 오셨는데 쉬실 틈도 없이 이곳으로 오시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


" 아닙니다 강석 님, 여러가지 일로 바쁘신 두 분을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내달라고 해서 제가 더 죄송한걸요! "


" 그래, 뭐, 야콘에게도 대충은 들었다만... 자네의 실종된 쌍둥이 형제의 단서를 찾기 위해 이 신오지방에 찾아왔다고?

그런데 왜 하필 신오인가? 자네가 살고 있는 하나지방에서 끝내 찾을 수 없었다고 해도, 다른 지방에 있을거라는 생각은 보통 하지 않을텐데 말이야. 또, 굳이 우리를 콕 집어서 만나자고 한 이유는 뭐지? "


" 아버지! 그런 실례되는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



동관이 하행에게 거침없는 질문을 쏟아내자 당황한 강석이 안절부절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하행은 괜찮다며 강석을 진정시켰다.



" 아닙니다, 강석 님! 궁금하신것도 당연하지요!

으음,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우선 이 사진을 봐주시겠습니까? "


" 이건...? "



하행이 건넨 사진에는 하늘에 불길하게 떠 있는 커다란 균열이 있었다.



" 이 사진은 약 8년 전, 저희 하나지방에서 포켓몬 폭주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상공에서 발견된 균열을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저와 제 형제가 사고를 당한곳은 지하 깊은 곳이였던지라 하늘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지금껏 엉뚱한 곳을 뒤지느라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만...

최근에 마음을 달리 먹고 그 사고에 대한 원인부터 찬찬히 찾다보니 하늘에 이 균열이 뜬 곳을 중심으로 해서 특정 반경 내에 있는 포켓몬들이 폭주했었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균열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니 신오지방에서 그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기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어요. "



하행의 말이 끝나자 강석과 동관은 동시에 '설마'하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하행을 향해 돌아보고는 말했다.



" 그... 하행 님. 혹시, 신오지방의 전 챔피언에 대해서 아십니까? "


" 예? 그분이라면 난천 님 아니십니까? 전 지방을 통틀어서도 손에 꼽히는 강한 실력을 지니고 계시고 역사학자까지 겸하고 계신... 하지만 몇 년 전에 한 소녀에게 패하고 챔피언 자리에서 내려오셨다고- "


" 아니, 사실은 바로 그 소녀 챔피언이 몇 달 전에 갑작스럽게 실종되어 버리고 다시 난천이 그 자리를 맡고 있다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소녀가 사라진 날, 그 아이의 집 위쪽에 자네가 보여준 사진에 있는 것과는 좀 작지만 분명히 똑같이 생긴 균열이 있었다는거야. "


" 네? 그렇다는 것은...! "


" 음, 아무래도 자네의 형제가 사라진 날 하나지방에 뜬 균열과 우리 쪽 전 챔피언을 실종시킨 그 균열이 연관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


" 제 생각도 그래요, 아버지. 아...! 그러면 그분과 빛나가 지금 같은 곳에 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


" 어디까지나, 살아있다면 말이지. "


" 아버지!!! "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내뱉는 동관에게 강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하행은 여전히 괜찮다고 말하며 강석을 제자리에 앉혔다.



" 저는 괜찮습니다. 강석 님, 부디 진정하세요.

그럼... 결국 그 소녀 챔피언도 아직 찾지 못한 상태인거죠? "


" 그렇다네. 지금도 계속 수색을 하고 있네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


" 으음... "



동관의 말을 들은 하행은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슬쩍 잡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동관은 그런 하행의 모습을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래서, 챔피언이 아닌 우리에게 용건이 있는 이유는? "


" 아! 어찌되었든 제 형제가 사라진 곳이 지하철이다 보니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지하에 관련된 곳에서 떠돌지 않았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 그래서 두 분께서 운영하시는 광산 내부를 조사할 수 있도록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 그렇군... 그러면 오히려 광산보다는 신오지방에 넓게 퍼져있는 지하대동굴에 가보는게 훨씬 나을걸세. 광산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작업자들이 들락날락거리며 꼼꼼히 확인하니 평소랑 다른게 있었다면 지금까지 자네 형제에 대한 뭔가를 발견하지 못했을리가 없어.

하지만 지하대동굴은 워낙에 넓고 그곳을 탐험하는 트레이너들도 보통은 포켓몬을 잡거나 보물을 캐기 위해 돌아다니다 보니, 그 외의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혹시라도 단서가 있다면 자네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문제가 있다면... 지하대동굴은 어마어마하게 넓어서 모든곳을 샅샅이 뒤지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건데... "


" 그러면, 천관산을 중심으로 해서 찾아보는건 어떨까요? "



둘의 대화를 듣던 강석이 불쑥 끼어들어 그렇게 말하자 동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강석은 하행의 사진을 다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씩 웃으며 말했다.



" 아버지, 이 균열, 형태는 좀 다르지만 또 하나 존재하는 곳이 있잖아요? 비록 그림 속이긴 하지만요. "


" 아... 그렇지! 그 그림에 있는 그것 역시 이 두 개의 균열과 관련이 있을 수 있겠군. "


" 그림이라뇨? 이곳 신오지방에 균열에 대해 또 기록된 것이 있습니까? "



하행이 다급히 말을 묻자 강석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뭔가를 검색하더니 어떤 그림을 띄운 화면을 하행에게 보여주었다.







" 이건...! "


" 이 그림은 연고시티의 대성당 앞에 걸려있는 그림인데, 이 커다란 산이 저희 신오지방에서 가장 큰 천관산입니다.

그리고 이 위에 보이는 것... 색깔 때문에 지금껏 신오지방을 비추는 거대한 빛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하행 님께서 보여주신 큰 균열의 형태를 보아하니 흡사한 부분이 있군요. 만약 이것 역시 균열이라면 분명 여기보다 더 단서를 찾을 가능성이 높은 곳은 없을겁니다! "


" 좋아! 그러면 켄타로스 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으니, 지하 탐험을 할 수 있도록 장비를 지원해주는 우리의 친척에게 연락을 넣어놓도록 하겠네. 자네는 곧장 천관산 쪽으로 향하도록 하게나. "



하행은 조용히 그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밝게 웃으면서 강석과 동관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 감사합니다 강석 님, 동관 님! 덕분에 유용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고 막막하기만 했던 제 길에 방향을 잡을 수 있었어요! 게다가 이렇게 직접 지원까지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


" 음, 뭐 이 정도 가지고!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다만 자네의 형제를 수색하면서 우리 쪽 전 챔피언에 대한 정보도 찾아주길 바라네.

나야 뭐 그 아이와 그리 깊은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만 그 아이는 우리 지방의 존망(存亡)에 있어서 정말로 큰 역할을 해 준, 마치 영웅과도 같은 존재일세. 그런 아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으니 신오지방에 큰 충격을 받은 이가 적지 않아.

그리고... 나도 자식이 있는 입장으로서 그 아이의 어머니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한다면 하루빨리 그 아이를 어머니의 품으로 돌려보내줘야 할테고 말이야. "


"그렇죠... 알겠습니다, 동관 님! 저 역시 가족을 잃은 슬픔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그분도 찾아내서 함께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하행은 강석의 스마트폰을 돌려주고 다시 한번 둘에게 인사를 한 뒤 다음 목적지로 결정된 천관산으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건물 밖으로 나서니 곧바로 저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

하행은 그 높디높은 봉우리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상행... 나, 지금까지 너를 찾는다고 나름대로 노력했었지만 돌이켜보니 정말 우왕좌왕하며 방황했었구나. 하지만 이제서야 내가 가야할 길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어.


이것도 어떻게보면 정상적인 방법은 아닐지 몰라. 그렇지만 너 역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라져버린 건 절대로 아니잖아, 그렇지?


그러니 이번에는 너에게 다가가려는 나를 뿌리치지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줘.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반드시 네 곁으로 갈테니까.


부디 거기에서 날 기다려줘, 상행.












... { 삐-비비-비빅- 삐-비비-비빅-}



무슨 일이지...?

몇 달간 울리지 않던 아르세우스폰이 왜 다시...?

설마, 또 히스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건가?!



방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윤슬은 자신의 아르세우스폰이 울리는것을 보고 얼른 폰을 집어 화면을 확인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 아르세우스 님! 드디어... 드디어 상행 님을...! "



윤슬은 감격한 얼굴을 하고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한 손으로 가리고는 화면에 뜬 메시지를 한참 동안이나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이미 취침복으로 갈아입었지만 재빨리 긴 겉옷을 걸치고 집을 나서 어디론가로 황급히 뛰어갔다.


숨을 헐떡이며 발걸음을 멈춘 곳은 축복마을의 훈련장 건물 앞이었다. 윤슬은 호흡을 안정시키고는 아직 그 안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노크를 하며 그 안에 있을 누군가를 불렀다.



" 상행 님, 저 윤슬이에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괜찮으실까요? "



안쪽에서 상행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 그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윤슬이 이 시간에 자신을 찾아온 일이 이제껏 한 번도 없었기에 상행은 의아해했으나 그러한 티는 전혀 내지 않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 상행 님, 혹시 내일 해가 지기 전 즈음에 바쁜 일이 있으실까요? "


" 아니요, 급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그 시간대는 아마 한가할겁니다. "


" 그러면 그때 고지기지의 베이스캠프에서 절 기다려주시겠어요? "


"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왜 그러시죠, 윤슬 님? 혹시 제가 윤슬 님께 무례를 저지른 일이라도 있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


" 아뇨아뇨, 상행 님! 결코 그런게 아니에요!

그... 아, 이건 미리 말하면 안 되는거라 조금 곤란하긴 한데... 아무튼 절대 나쁜 일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행 님께 굉장히 좋은 일이 될테니까 절 믿고 그렇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릴게요! "



상행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자신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며 대답을 기다리는 소녀를 곤란하게 할 수는 없어 알겠다고 대답했다.



" 좋아요, 그러면 내일 뵐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상행 님! "


" 네, 윤슬 님도요! "



상행은 자신을 돌아보고 한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인사하며 멀어지는 윤슬을 바라보며 그도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면서 생긋 웃었다.



냐리잉~?!



" 까, 깜짝이야! 포푸니크, 인기척도 없이 와서는 그렇게 옆에 바짝 붙어서 갑자기 소리내지 좀 마세요! 심장 떨어질 뻔 했다구요! "



냐~리잉~! 키히히히힛~!



?!?!!



순간 상행의 볼이 새빨개지고 그는 포푸니크에게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 그런거 아닙니다, 포푸니크! 어떻게 제가 그런 파렴치한...! "



... ... ... ... ...



" ... 으윽... 괜히 이상한 소리하지 마시고 얼른 마무리하고 잠이나 자자구요, 포푸니크! "



상행은 포푸니크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넌지시 건넨 농담에 반박하려다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는지 말을 얼버무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부리나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포푸니크는 그런 상행을 보면서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또다시 킥킥 웃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행이라고 합니다! 강석 님과 동관 님의 추천으로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 실례지만 성함이...? "


" 성함이라고 할것도 없이 그냥 지하아저씨라고 부르면 된다네. 다들 그렇게 부르고 말이야! "


" 하지만 매번 그렇게 불러 드리기엔... 그러면 간단하게 지하 님이라고 불러 드려도 괜찮을까요? "


" 뭐, 그러게나! "



천관산 입구에서 두 명의 관장에게 소개를 받아 신오지방의 지하동굴을 처음으로 파기 시작했다는 지하아저씨를 만난 하행은 그가 챙겨온 장비를 건네받고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에 천관산에 있는 지하통로의 입구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하행은 깜짝 놀랐는데,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과연 여기서 내가 더 파낼만한 곳이 있기는 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미 정돈도 깔끔하게 잘 되어있는 상태여서 살짝 주눅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하행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자신의 모자를 똑바로 고쳐쓰고 두 눈빛을 반짝이며 생각했다.



아니야, 겨우 그런 생각으로 포기할것 같으면 이곳까지 찾아오지도 않았지. 분명 이곳에서 상행에 대한 뭔가를 찾을 수 있을거야!

남들이 들으면 아무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이판사판태클] 식 생각을 하는거냐며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걸!



샹데에에엘~~~!



" 아, 샹델라! 언제 볼에서 튀어나온거야? 혹시, 방금 내가 한 생각을 읽었니? "



샹델라는 조용히 몸을 위아래로 까닥이며 긍정의 생각을 드러냈다. 하행은 활짝 웃으면서 샹델라를 쓰다듬었다.



" 그래, 샹델라! 너도 여기에서 네 주인의 기운이 느껴진다는거지? 좋아~! 그러면 시작해볼까? 가자, 샹델라! "



샹델~~~라!!!












" 흠, 어째설까요... 오늘은 하루종일 기분이 싱숭생숭하군요.

마치, 저에게 무슨 중대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



냐리잉-?



자신에게 말을 거는건지 혼잣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행의 모습에 포푸니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은 늦은 점심시간.


상행은 덩굴정 앞에 있는 탁자에서 주문한 토란떡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어젯밤 윤슬이 자신을 찾아와 했던 부탁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 애매한 시간대에, 그렇게 먼 곳까지 불러내서 할 만한 이야기가 없었기에 도대체 무슨 일로 그러는 것일까 깊은 고뇌에 빠졌다.



" 이보게, 상행 군, 자네 토란떡 나왔다네! 평소 오던 때보다 훨씬 늦어서 배도 많이 고플텐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라 이 맛있는 냄새도 눈치채지 못하는겐가? "


" 앗, 죄송합니다, 야모 님! 오늘은 그다지 바쁜 날도 아니었는데 계속 이런저런 잡념으로 가득 차 있어서 자꾸만 멍을 때리게 되는군요. "


" 뭐, 원래 그런 법이긴 하지. 정신없이 바쁘면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하기가 어려우니까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여유가 있다는 증거니까, 그럴 수 있을때 충분히 즐기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게나. "


" 네, 야모 님! 그럼 잘먹겠습니다! "



상행은 야모가 내온, 토란떡이 가득 담긴 접시를 앞에 두고 두 손을 모아 짧은 식전 기도를 한 후에 젓가락을 쥐고 가장 위에 있는 떡부터 집어 호호 불어 식히고는 한 입 덥썩 베어물었다.



역시, 야모 님께서 만드시는 토란떡은 히스이지방 최고의 음식이군요!

아아... 하행에게도 이 맛있는 떡을 맛보여 줄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할텐데 말이죠!



야모가 자신 앞에 앉아서 자기가 토란떡 먹는 모습을 보고 있는것도 개의치 않은 채 상행은 두 볼 가득 떡을 집어넣고 우물우물거리며 황홀한 표정을 하고 식사를 즐겼다.


그런 상행의 얼굴을,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고 빤히 바라보던 야모는 순간 짖궂은 표정을 지으며 상행에게 말을 걸었다.



" 그래서 상행 군, 이제 슬슬 자네도 결혼해서 아이를 봐야 할 나이지 않은가? 그, 자네랑 매일같이 포켓몬 승부를 하는 조사대원 아이랑은 어떻게... 진전이 좀 있는지? "



푸흐읍-!!! 쿨럭, 쿨럭- 케헥-!!!



상행은 놀라서 목에 걸린 토란떡을 급히 탁자 아래로 뱉어내고 몇 번 큰 기침을 한 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자신을 향해 싱글거리는 야모의 얼굴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보면서 소리쳤다.


물론 그의 얼굴은 토망열매보다도 더 새빨게져 마치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상태였다.



" 아니, 왜 다들 저랑 윤슬 님을 못 엮어서 안달이십니까?!?!

제가 이 나이에 어떻게 윤슬 님이랑...!

그, 그런...!!! 그...런... "


" 흐~~~음? "


" ... ... ... 아무튼, 저랑 윤슬 님은 그런 관계가 아니니 제발 그만들 해주세요! 그... 뿜은 토란턱은 제가 치울테니 남은건 포장해주세요! 들고 가서 따로 먹겠습니다! "


" 알겠네. 거, 장난이긴 했네만 자네가 많이 기분 나빴다면 내, 사과하도록 하지. 미안하네! "


" ... 아닙니다, 야모 님. 저야말로 정성들여 만들어주신 토란떡을 뱉어버려서 죄송합니다. "



상행은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고는 야모가 싸준 남은 토란떡을 들고 그에게 고개를 까닥 숙여 인사를 하고선 마치 도망치듯이 황급히 덩굴정에서 멀어졌다.












" 하아- 하루종일 지하대동굴을 파나갔는데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네. 각오한 일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더 지친다... 시간도 많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그만 밖으로 나갈까, 샹델라? 내일 다시, 어...? 샹델라?! "



하행은 방금까지 제 주변을 비춰주던 샹델라가 보이지 않는것을 알아채자 깜짝 놀라서 두리번거리며 다급히 샹델라를 불렀다.



" 샹델라- 샹델라 어디있어-?! "



샹데에에에엘~~~~~!!!



저 멀리 코너 쪽에서 샹델라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하행은 부리나케 그 쪽으로 달려갔다.



" 샹델라, 여기에서 뭐 하고 있는거야! 네가 갑자기 없어져서 깜짝 놀랐잖아!

자, 어서 지상으로 올라가... 뭘 그렇게 빤히 보고 있는거야? 거기에 뭐가 있어? "



하행은 샹델라가 자신이 바로 뒤까지 와서 불렀음에도 대답 없이 흙벽 한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것을 깨닫자 그곳에 뭔가 심상치 않은것이 묻혀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연장을 들고 그곳을 조심스럽게 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행과 샹델라의 눈 앞에 툭- 하고 떨어지는 무언가.


뒤이어 곧바로 팔랑팔랑거리며 따라 떨어지는 것도.



!!!!!!!!!!



" 이... 이건...! "



하행은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채자마자 망설임없이 덥썩 집어서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들을 올려놓은 하행의 두 손바닥은, 덜덜거리며 위아래로 요동쳤다.







" 마, 말도 안돼...! 이건... 이건 분명... 상행의...!

아... 아아...! 샹델라, 내가,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지?! 이거 분명, 상행의 코트 조각과 버튼이 맞는거지?! "



샹데... 샹데엘~~~!!!



" 이럴수가... 이게 왜, 흙벽 안에서 나오는거야?!

서, 설마, 상행이 이 벽 깊은 곳에 파묻혀 있기라도 한거야?!?! 아, 안돼!!! 빠, 빨리, 빨리 꺼내줘야-!!! "



파아앗---!!!



?!?!?!?!?!






















으윽... 뭐야,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눈부신 빛이 우리 몸을 감쌌고,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끌려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여기도 동굴 같기는 한데... 분명한 건 아까까지 우리가 있던 지하대동굴은 아니야.



하행은 주저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저 앞에서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샹델라를 보았다.



" 샹델라! "



하행이 샹델라를 부르자 샹델라는 하행의 곁으로 돌아와 자기 스스로 하행의 허리춤에 달려있던 제 몬스터볼로 돌아갔다.


하행이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방금까지 샹델라와 대화를 나누던 그 여성이 천천히 하행 쪽으로 다가왔다.


하행은 순간 주춤했으나 왠지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여성은 하행의 바로 앞까지 와서 하행의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돌연 두 팔을 뻗어 하행을 끌어안았다.



" ?!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


" 쿠다리-! "


" ...? 쿠, 쿠다...리...? 그게, 누구죠? 저는, 제 이름은, 하행이라고 합니다만... "



하행은 다짜고짜 자신을 '쿠다리' 라고 부르며 끌어안는 이상한 여인을, 머리로는 밀쳐내야 한다는 생각을 똑똑히 하고 있으나 그녀가 자신의 품 속에서 조용히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차마 그리하지 못했다.


그 여인은 얼마간 더 훌쩍이다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하행의 얼굴을 보면서 말없이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까 전에는 없었던 커다란 통로가 동굴 벽 한쪽에 뚫려 있었다.



" 저기... 혹시, 저보고 저 통로를 향해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행은 뭔가에 홀린듯 그곳으로 발걸음을 뗐다.


하행이 통로에 발을 들이고 몇 걸음 걷지 않아서 또 한 번 밝은 빛이 그의 몸을 감싸는가 싶더니 그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광경을 전부 지켜보고 있던 여인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 쿠다리... ... 아니지... 하행.

부디 또다시 너희에게 시련을 내리려는 너의 또다른 아버지를 용서해주려무나.

그리고, 나의 사사로운 정 때문에 네 형을 고통받게 한 나도... 용서해주겠니...? "



후우-...



... ... ... ... ...



" 아르세우스... 신오님...

부디, 그 아이들에게 자그마한 축복이라도 내려주시길... "










 

IVY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