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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기억 속의 그대

W. 몸




집에, 같이 가자고 했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쳐다보며 멍하니 교정에 서 있었다. 우산이 없다. 비가 올 줄은 몰랐다. 가만히 운동장에 고여드는 빗물을 바라보았다. 같이 가자 말을 했던 김민규는 그 옆 분단 친구와 함께 먼저 집에 가 버린지 오래였다.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셨다며 제대로 놀아보자는 친구를 향해 좋지, 외치며 어깨동무를 해보이던 김민규의 밝은 얼굴이 생각났다. 신이 나서 문을 열고 달려가는 김민규를 보면서도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내 성격이, 진저리가 날 만큼 싫었다.


마냥 이렇게 감정을 되새기며 청승을 부릴 수는 없었다. 날도 추운데,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니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

조금만, 기다려 볼까?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집에 가던 중에 나와의 약속이 생각나 달려올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집에 가서 신나게 놀던 중에 생각이 나서 달려올 수도 있는 것이고, 아무튼. 언제가 되었던, 불현 듯 내 생각이 날 수도 있으니까. 세차게 내리고 있는 찬 가을비를 바라보았다. 하, 하고 입김을 불자 하얀 입김이 생겨난다. 


날씨가 춥다. 마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꽁꽁 언 손에 온기는 커녕 마이 주머니가 있는 허리께 가 차갑다. 시린 발을 콩콩 바닥에 두드리며 텅 빈 교정에서 홀로 김민규를 기다렸다. 몇 번이고 핸드폰을 들었다가도, 다시금 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어야 했다. 올 것 같아서, 저 멀리서 달려오는 김민규의 발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해가 지고 있었다.  온기가 사라진 입술을 깨물고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엄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응, 빨리 와.. 통화를 끊고 쓰러지듯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앉으니 또 울 것만 같았다. 나는 자꾸만 빙빙 돈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그저 너에게 다가가지도 너에게서 멀어지지도 못한 채 벙어리처럼 너의 주위를 돌기만 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바라는게 많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젖은 눈으로 바닥에 고인 빗물을 바라보았다. 

네가, 내 주위에 있기만 하면 돼. 언제든 내가 너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게. 힘이 들 때면 언제든, 너른 등을 볼 수 있게. 사라지지만, 네가 영영 사라지지만 않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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