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건너편 대각선쯤에서 멀찍이 자리 잡고 있던 찬열이 다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백현에게 다가와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혀엉- 왜 이릏케 늦게 와써-요?”
“뭐야, 벌써 취했어?”
 
 
오늘따라 유난히 들떠 보이더니 주량보다 많이 마신 건가? 알코올 향이 잔뜩 배여 늘어지는 목소리가 답잖게 어눌하다. 술기운이 올라오는 양 볼이, 아니 볼보다는 조금 위쪽, 눈과 볼 사이쯤은 불그스름하게 물든 채다. 찬열을 살피는 백현의 눈매가 못마땅하게 구부러졌다. 반쯤 풀렸음에도 잘나기만 한 눈매가 지그시 그 시선을 받아낸다.
 
 
“조금- 취했나 봐요.”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어가는 중이지만, 합류가 늦은 백현은 취하긴커녕 목구멍으로 술 한 방울 삼키지 못했다. 음주를 즐긴다거나 주량이 세진 않더라도 술자리의 들썩이는 분위기는 선호하는 편이다. 고로 저는 이제 시작인걸. 

조금 취했다는 말과는 달리 거나하게 취한 듯 연신 몸을 치대오는 찬열을 애써 무시하며 술잔을 채웠다. 맞은편에서 기다렸다는 듯 최실장이 술잔을 내밀었다. 잔을 부딪쳤다. 주량이 약한 저는 원샷을 하면 옆에 있는 놈처럼 될 게 뻔하니 한 모금만 가볍게 홀짝였다.
 
 
“변실장님 찬열이 넘- 잘 찍어준 거 아니야? 얘가 아주 번쩍번쩍 빛나던데?”
“아, 뭐… 이번 콘셉트랑 실장님 스타일링이 좋았던 거죠. 전 평소대로 셔터 누른 것밖엔 없는데.”
 
 
피에 굶주린 뱀파이어. 오늘 촬영한 유명 코스메틱 브랜드 화보의 콘셉트였다. 의상이라고 해봤자 잔 근육이 조밀하게 자리 잡은 탄탄한 상체에 걸친 블랙 롱코트뿐이었지만 찬열 특유의 분위기와 꽤나 잘 어울렸다. 창백한 메이크업을 바탕으로 포인트를 준 핏빛 입술, 오른쪽만 착용한 붉은 컬러렌즈까지 말이다. 찬열도 다른 때보다 촬영에 몰입했음을 느꼈다. 콘셉트와 딱 들어맞는 완벽한 피사체에 흥분하여 열정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만큼 결과물도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나와 주었고. 좋았던 분위기를 이어 스텝들과 함께 지금의 회식을 갖게 된 것이고.
 
 
“에이- 겸손은.”
 
 
괜히 머쓱해지는 바람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 반동으로 백현에게 기대 졸던 찬열이 옆으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정말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오늘따라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보던 찬열은 이 정도로 술을 못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아- 박찬열 조옴.”
 
 
최실장 특유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찬열에게 쏠려있던 시선이 앞으로 흘렀다.
 
 
“아니,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카메라 렌즈 박살 낼 것처럼 치명적인 분위기 뿜어내던 박찬열이는 어디 가고 주정뱅이만 남았어. 웃긴다 얘, 진짜.”
“찬열이가 원래 술이 이렇게까지 약하지가 않은데. 정말 이상하네요.”
 
 
곤란한 듯 양쪽 눈꼬리가 축 떨어졌다. 아무래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늘어진 몸뚱이를 힘겹게 일으켜 소파 등받이에 기대듯 앉혔다.
 
 
“어- 변실장. 찬열이랑 친해?”
“네? 아, 그냥 몇 번… 촬영 같이해서.”
“어머 그래? 찬열이 성격이 좀 까다롭다, 예민하다, 까칠하다, 이런 평들이 대부분인데. 변실장한테 치대는 거 보니까 보통 친한 것 같지가 않아서.”
 
 
에? 백현의 눈동자가 맹하게 뜨여졌다. 얘가 까다롭고 예민한 데다 까칠하기까지 하다고? 찬열에게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상평들이라 좀처럼 공감이 힘들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커다란 눈을 반으로 접은 채 눈웃음을 살살치며 ‘형- 백현형-’ 살갑게 굴던 찬열은 마치 명랑한 대형견을 연상케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까칠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단 말이지.
 
 
“지난 시즌 A브랜드 F/W 화보 촬영 때 총괄 스타일링 담당한 적 있거든. 그때 몇 시간 동안 기껏 만들어 놓은 헤어 맘에 안 든다고 그 자리에서 눈 똑바로 뜨고 정수리에다 생수 들이붓는데. 그 꼴보고 헤어, 메이크업 애들 입 떡 벌어져서는 부들부들 떨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니까?”
 
 
박찬열이? 이 박찬열이가? 상상이 어려운 장면이다. 앉혀둔 그대로 얌전히 잠든 찬열에게 시선을 두었다. 사실 얘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순간 찬열의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거렸지만, 백현은 아마도 눈치채지 못한 듯싶다.
 
 
 
그렇게 몇 잔의 술이 더 오갔을까? 얌전하던 찬열의 머리가 백현의 어깨에 툭 떨어졌다. 우음- 앓는 소리까지 낸다. 은근슬쩍 허리에 팔을 두르며 엉겨 붙는다. 취한 이의 잠투정이라고 하기엔 약간 과한 행동에 어쩔 줄 모르는 백현의 눈동자가 당황했다.
 
 
“아이고- 변실장 안 되겠다, 얘. 택시 좀 태워 보내줘.”
“저가요?”
“그럼 내가 데려갈까?”
 
 
백현의 눈동자가 주변의 모델들과 스텝들을 훑었다. 다들 이미 상당히 마신 모양인지 취한 척을 하는 건지 백현과 도통 시선을 맞춰오질 않았다. 어느 누가 만취인 사람 뒤치다꺼리를 반기겠느냐마는. 나는 무슨 죄냐고. 아씨- 얜 왜 하필 내 옆에서 쓰러져서는. 도움이 안 돼요, 아주. 조그맣게 구시렁거려 보지만, 결국 저보다 훨씬 커다란 덩치를 끙끙 부축해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맛있게 먹다 가세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쉬운 인사를 남기곤 술집을 나섰다.
 
 
 
늘어진 팔을 어깨에 걸치고 오른팔은 허리를 단단히 붙잡아 자세를 고정했다. 기대오는 찬열의 무게를 감당하며 대로변으로 다가가 남은 왼손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다행히 머지않아 그들 앞에 택시가 멈추어 섰다. 뒷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에 손을 올릴 때였다. 찬열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우읍- 형. 나 토할 것, 웁.”
 
 
바로 옆 가로수 밑에 그대로 쪼그려 앉아 널찍한 등허리를 둥글게 구부렸다. 곧바로 우웩- 구역질을 한다. 아, 진짜 미치겠네. 그 사이에 택시는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 오늘 진상을 제대로 부리려고 작정을 했나.

미간은 구부려졌지만, 손은 찬열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괜찮아? 오늘 너 진짜 이상해. 원래 토 잘 안 하잖아? 지금 봐도 나오는 것도 없고.”
 
 
쓰읍- 손등으로 입가를 훔쳐낸 찬열이 쪼그려 앉은 자세를 유지하며 고개만 들어 올렸다. 마주한 눈빛이 축축하다.
 
 
“혀엉. 나 속이 너무 안 좋아. 머리도 어질어질하구요. 오늘 알잖아요. 나 정말 촬영 열심히 한 거. 그래서 그런지 엄청 피곤하구… 차 못 탈 것 같은데. 그리구 나 넘 추워.”
 
 
벌게진 두 눈꼬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물방울이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듯했다.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주절주절 웅얼거리며 뱉어내는 대사들이 사람을 참, 곤란하게 만들었다. 봄이니 물론 낮 기온은 따스하지만, 밤공기는 아직 쌀쌀하다. 딸랑 셔츠 한 장만 걸친 양이 추워 보이긴 한다마는. 눈썹 사이를 긁적였다.
 
 
“그래서. 뭐?”
“저어기-”
 
 
찬열의 길고 굵직한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따라간 눈동자에 붉은색을 화려하게 발광시키는 간판이 맺혔다.
 
 
‘SWEET HOTEL’
물론 이름만 호텔인.



 




결국 우리가 서 있는 장소는 ‘SWEET HOTEL’ 506호 앞 복도. 왠지 모르게 뒷목이 근질거렸다. 물론 처음 와본 장소도 아니고 오롯하게 섹스만이 목적인 장소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얘랑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게 조금- 음, 조금 그래.

카드키를 든 백현은 선뜻 방문을 열지도 못하고 벅벅 애꿎은 머리통만 긁적였다.
 
 
“문 열줄 몰라요?”
 

머뭇거리는 가늘고 고운 손가락 사이에서 찬열이 카드키를 낚아챘다. 그리곤 도어락에 거침없이 태그했다.

찬열에게 등 떠밀려 입성한 현관에서도 백현은 머뭇머뭇. 저와는 다르게 진즉 방 안으로 들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셔츠를 벗는 찬열의 뒷모습만 꿈뻑꿈뻑 바라보았다.
 
 
“뭐해요? 안 들어와요?”
 
 
옷걸이에 대충 셔츠를 걸쳐두고 몸을 돌리는 찬열과 시선이 마주쳤다. 아까부터 근질거렸던 뒷목이 쭈뼛했다.
 

“아니, 난… 난 가볼게. 쉬어. 그게 더 편하잖아.”


돌아서는 백현의 손목이 다급히 붙잡혔다. 아, 엄청 뜨겁다. 살갗에 닿은 찬열의 손바닥이 내어주는 온도가 무척 높아서 저도 모르게 문고리를 꽉 움켜잡았다. 쇠로 이루어진 문고리에선 찬 기운이 올라왔다.


“나 혼자 못 자는데. 집에는 토벤이가 있지만, 여기는 없잖아요.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안 돼요?”


부탁을 말하는 말끝이 살짝 떨렸다. 간절하게까지 느껴지는 건 착각이려나. 스르르- 손에 힘이 풀렸다. 문고리를 놓쳤다. 얘한텐 왜 자꾸 거절을 못 할까. 왜 자꾸 마음이 약해질까. 정말 모를 일이다.

 
“아… 으응. 그래.”
 
 
찬열이 아이처럼 미소지었다. 심장이 조그맣게 박동했다.
저가 왜 이러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니 근데 잠깐만, 아까는 그렇게 취한 것 같더니만?


“너- 그 사이에 술 다 깬 거야?”


찬열은 백현의 물음에 답은 않고 냉장고에서 꺼내든 생수병을 기울였다. 수려한 턱선이 각도를 올리고 물을 넘기는 듬직한 목울대가 꿀렁꿀렁 율동 했다. 시선의 프레임 안에 걸려든 모습이 뭐랄까, 묘하게 선정적이다. 장소가 지닌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 특유의 분위기 탓일 수도 있다. 입이 말라 침을 삼켰다. 카메라를 챙겨왔더라면 당장 셔터부터 눌렀을 게 분명했다. 그제야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마신다고 카메라를 놓고 온 것이.


“술 다 깼냐고요?”
“아, 어. 멀쩡해 보여서.”
“솔직히 말하면, 취한 척-”
“엉?”


조그만 입술이 세모난 틈을 만들고 순한 눈매가 동그랗게 크기를 키웠다. 찬열의 입꼬리가 비죽이 말려 올라갔다.


“연기한 거예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백현의 귓가를 간질였다. 잘난 얼굴에 흐드러진 미소가 화려했다. 이 와중에 또 카메라가 아쉬워지는 건 아마도 직업병일 테지.
 
 
“완전 속았죠? 배우로 전향할까 봐.”
 

찬열에게 깜빡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상하지. 화가 나진 않았다. 조금 황당하고, 어쩐지 더욱 긴장되었다. 심장이 빨리 뛰는 것도 같다.


“별 뜻있던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말고.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요. 이상한 걱정은 안 해도 돼.”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허리를 낮추어 백현과 눈을 맞춘다. 순간 ‘이상한’에 포함된 장면이 머릿속을 스친 바람에 얼굴이 화륵 붉어지고 말았다. 미쳤다. 변백현, 미쳤네. 차마 시선을 마주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푸흐- 찬열의 웃음 결이 백현의 머리칼을 살랑였다.


“먼저 씻고 나올래요?”
“에? 어… 아, 응.”


어디 하나는 모자란 놈같이 대답을 해버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 없이 도망치듯 욕실로 들어왔- 아, 진짜. 미치겠네. 더욱 난감해지고 말았다. 욕실 벽면이 전부 통유리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중간 부분은 반투명이었지만 별다른 위로가 되진 않았다. 아무리 반투명이라고 해도 유리는 유리였다. 살구색이 너머로 다 비칠 터였다. 옷을 벗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한참을 또 머뭇머뭇. 하지만 언제까지고 여기서 망연히 서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피곤하다던 찬열도 얼른 씻고 쉬어야 할 테니.
슬쩍 눈동자를 굴려 바깥을 살폈다. 다행히 이쪽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소파에 긴 다리를 꼬고 기대앉아 TV 시청 중이다. 그제야 꾸물꾸물 쥐고만 있던 니트를 벗었다.


평소에는 느긋하게 씻는 편이지만, 그럴 여력이 없어 대충 물만 끼얹다시피 급하게 샤워를 마쳤다.


찬열의 시선이 TV에서 욕실 문 앞에 멀겋게 서 있는 백현에게 돌아갔다. 뽀얘진 볼과 젖은 머리칼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만 본다면 씻은 게 확실한데. 욕실 들어가기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셔츠부터 니트까지 꾸역꾸역 챙겨 입고 나온 걸 보면 참, 귀엽지. 오늘은 안 건드린다니까. 피식- 백현 앞에서만 유독 웃음이 이리도 헤프다.


“진짜 빠르다. 씻고 나온 거 맞아요? 옷 불편할 것 같은데.”
“어어. 나 원래 다 입고자. 어떨 땐 말이야, 양말까지 신고 잔다? 수면 양말 진짜… 따뜻하거든.”


젠장. 양말이 다 뭐야. 뭐하나 걸치는 것도 불편해서 드로즈 하나만 덜렁 입고 자는데. 망했어. 오늘 잠은 다 잤네. 붙잡든 말든, 아까 냉정하게 돌아섰어야 했는데.
 

“아, 그래요? 나랑 반대네. 난 뭐 입고 자면 불편해서 잠 안 오던데.”


입가의 웃음을 갈무리한 찬열이 몸을 일으켰다. 단숨에 반팔 티셔츠를 벗어 소파 위로 툭 떨어트렸다.


“야!!”


눈앞에 훤히 드러난 탄탄한 상반신에 까무러쳐 소리를 빽- 내지르고 말았다. 마구 흔들리는 눈동자가 갈피를 잃었다.


“깜짝이야. 왜요?”
“오, 옷을 왜, 왜 벗… 벗는 거야.”
“나도 씻어야죠.”
“으- 아니… 욕실 들어가서 벗으면 되잖아.”


찬열이 으흠, 목을 낮게 울렸다. 잔뜩 빨개져가지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백현의 모습이 자꾸만 건드리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 한 발자국 걸음을 옮겼다.


“촬영할 때 다 봤잖아요. 얼굴 터지겠다, 형. 무슨- 야한 생각 했죠?”


물론 보긴 봤지마안. 촬영이랑은 좀… 아으, 진짜. 백현은 발끝부터 밀려드는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엄지발톱을 노려보았다. 찬열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움찔, 어깨를 떨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 아야- 욕실 문에 뒤통수를 부딪치고 말았다.


“으아, 왜, 뭐, 뭐야-”
“형이 비켜야 내가 들어가지.”


아, 어, 아, 그렇지.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르며 얼른 옆으로 몸을 피했다.
 
욕실 안에서 울리는 찬열의 웃음소리가 경쾌하기 그지없다. 조그만 얼굴 빼곡히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아무래도 나 오늘 되게 모지리 같은데.


침대에 앉아 시트를 둘둘 감쌌다. 시선은 TV를 향해있지만, 신경은 온통 욕실이다. 유난히 물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볼륨을 계속 높였다.

 
백현이 사용했던 시간의 몇 배가 지난 후 달칵- 욕실 문이 열렸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니트를 벗으려던 백현의 손길이 멈추었다. 목 부분이 코에 걸쳐져 두 눈만 빠끔히 드러났다. 그 상태로 고개를 틀었다. 바스가운만 걸친 채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걸어오는 찬열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시금 카메라를 두고 온 사실이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멍청하게 벌어진 입과 홍조 띤 뺨이 니트 아래 가려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목적을 다한 수건을 방구석에다 아무렇게나 던진 찬열이 백현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어 니트 자락을 쥐었다. 백현이 목을 움츠렸다.


“뭐, 뭐야?”
“벗으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아- 으응, 그랬지. 여기 좀 더운 거 같아서.”
“더우면 셔츠도 벗던가. 아님 싸매고 있는 이불을 좀 치우던가.”


어, 어? 그럴까? 둘둘 말고 있던 시트를 풀어 발로 쓱 밀어냈다. 그제야 좀 살 것 같다.


“근데 나 침대 아니면 잘 못 자는데.”


슬쩍 침대로 올라온 찬열이 폭신한 베개에 머리를 누였다. 쿠션감이 좋은 탓인지, 드디어 백현과 한 침대에서 잔다는 사실이 들뜨는지. 입가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덜 마른 머리칼을 베개에 부비고 어정쩡하게 앉아있는 백현을 올려봤다. 혀로 연신 입술을 축이는 모양이 단단히 긴장한 듯 보였다. 근데 그게 몹시도 귀여워서 할 수만 있다면 여기저기 쪽쪽 입을 맞추고 싶었다.


“형도 얼른 누워요.”
“그럼… 내가 소파에서 잘까? 나는 소파도 괜찮은데.”
“변백현.”


유연했던 눈매가 파삭 구겨졌다.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어딜 벗어나려고. 굳어진 표정에 흠칫 놀라는 백현이 느껴져, 언제 인상 썼냐는 듯 급히 근육을 풀어냈다.


“혀엉. 그냥 침대에서 같이 자면 안 돼요?”


동그랗게 커진 눈을 연신 깜빡였다. 밀어뒀던 시트를 다시 당겨 끌어안으며 몸을 슬금슬금 뒤로 물리는 모습이 못내 서운하다.


“난, 소파에서-”
“그런 얼굴 하지 마요. 아무 짓도 안 한다니까.”


잠시 온도를 낮추었던 눈빛은 착각인 듯 시무룩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 찬열과 그다지 청결해 보이지 않는 좁은 소파를 번갈아 봤다.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바짝 벽 쪽으로 몸을 붙이고 정자세로 누워 천장만 말똥히 쳐다봤다.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갖춰 입은 옷도 답답하고 나란히 누워있는 상황도 자꾸만 의식되었다. 특히 옆얼굴에 닿은 찬열의 미묘한 시선이 가장 못 견디겠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잠재우지 못하고 결국 벽 쪽으로 몸을 돌려 버렸다.


“형.”
“…….”
“자요?”
“피곤하다며.”
“응.”
“…잘 자.”


중앙등, 보조등, 스텐드 조명이 하나하나 점멸했다. 어느새 깜깜한 어둠이 고요히 내려앉았다.


“잘 자요.”





백현이 몸을 꼼지락거렸다. 피부를 갑갑하게 감싼 옷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뒤척이면 찬열에게 피해를 줄까 그러지도 못한다. 끄응. 그냥 셔츠 단추 몇 개만 끌러야겠다.


한 개를 끄를지, 두 개를 끄를지 진지하게 고민 중인 백현의 손등 위로 슬쩍 찬열의 손끝이 스쳤다. 흠칫, 솜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미안, 뒤척이다가.”


손등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단추에 대한 고민이 순식간에 화르륵 연소됐다. 손바닥으로 손등을 문질렸다. 침을 꼴깍 삼켰다.

찬열의 손이 허벅지, 팔뚝을 스쳤다.


“아- 또 실수. 침대가 좀 불편하네.”
“박찬열.”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굴렸다. 찬열과 시선이 마주쳤다. 다시 침을 꼴깍 삼켰다.


“걱정하지 말고 푹 자라면서….”
“만지고 싶은데 어떡해요.”


백현의 손등이 찬열의 손아귀에 감싸였다.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굵직한 손가락이 얽혀들었다. 안달 난 마음이 마주 닿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백현은 차마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두근두근 크게 울리는 심장을 달래기에도 버거워서.


“손만 잡고 잘게요. 이거는 좀 봐주라.”


손등에 도톰한 입술이 꾹 눌렸다 떨어졌다.


“정말로 잘 자요.”


찬열의 눈꺼풀이 이내 스르륵 감겼다.










“찬열아 자?”
“…….”
“진짜 자냐?”


하아, 새끼.





 
 

찬백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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