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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더워 떨어져."

"야 네가 나한테 붙어 있는 거거든?"

"아 몰라 더워. 저리 가."



아 진짜 정여주. 어이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린 김도영도 기운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미친 듯한 더위와 습기에 기력을 죄다 뺏긴 우리는 지금, 40분째 놀이공원 어트랙션 줄에 서 있는 중이다.




남자친구 김도영





"종강 언제야."

"나 내일."

"엥 왜 이렇게 빨리해?"




개소리야. 주 5일 학교만 다녔구만. 플래너를 정리하다 말고 짜증스럽게 대답하자 김도영이 입을 삐죽이며 제 핸드폰 달력 화면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쉴 틈 없이 달려온 계절학기는 어느덧 종강을 앞두고 있었다. 3주 내내 학교에서 지내느라 죽을 뻔했는데 뭐? 왜 이렇게 빨리?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김도영을 쿡쿡 찌르자 김도영이 미안하다며 손을 모았다. 사과의 제스쳐를 하면서도 얄미운 표정을 짓는 김도영을 보자 오랜만에 드릉드릉 신호가 오는 듯했지만, 꾸욱 눌러 참았다. 그 뭐야, 우리는 일단, 그, 사귀니까.




야 그럼 우리 놀이공원 가자. 제 달력 어플을 꼼꼼히 보던 김도영이 아예 날짜를 잡았다. 안 간지 엄청 오래됐어. 김도영의 말에 나는 별 약속도 없으면서 플래너를 뒤적였다. 어차피 공부 일정 외엔 적을 것도 없는 플래너는 역시나 새하얗게 비어 있었다. 그래 그럼. 고개를 끄덕이자 김도영은 제 달력 어플에 뭔가를 적어넣었다. 고개를 쭉 빼 화면을 훔쳐보자 작지만 분명한 글씨가 보였다. 




[정여주 놀아주는 날]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 소리에 김도영이 휙 고개를 들었다. 아 왜 훔쳐봐! 나는 그 말에 더 크게 코웃음을 쳤다. 하! 고개까지 젖혀가며 코웃음을 친 나는 김도영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 들었다. 아 왜! 아우성치는 걸 무시한 나는 달력 어플에 적힌 일정을 수정했다. [여친님이 놀아주시는 날] 작은 칸 안에 써넣기엔 너무 길어 글씨가 잘렸지만 나름대로 만족한 나는 김도영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아 뭐했냐고 진짜. 종알대며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김도영이 입을 딱 다물었다.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조용한 게 이상해서 쳐다보니 김도영이 어쩐지 벅찬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새삼 좋아서."

"대체 뭐가?"

"네가 내 여자친구인 거."







이번엔 내가 입을 다물 차례였다. 김도영은 사귀게 된 이후로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오는 말을 해 나를 당황하게 하곤 했다. 나는 입술을 오므리며 괜히 눈알을 굴렸다. 양 뺨이 나에게 느껴질 정도로 뜨거워졌다. 아 뭐래 진짜. 괜히 투덜대며 면박을 주면서도 내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방학 중이라 사람이 많을 줄 알았던 놀이공원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헐 대박!!!! 항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성 앞 포토존이 텅 빈 걸 본 나는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야야 사진 찍어야 해. 그렇게 말한 나는 자연스럽게 김도영에게 카메라가 켜진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리고 김도영도 자연스럽게 늘 하던 대로 카메라에 나를 담았다. 사람도 없겠다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표정을 바꿔 몇 장을 찍고 나자, 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돌연 턱 밑에 꽃받침을 하고 있던 손을 내리고 쳐다보자 김도영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꺼내기 민망해 괜히 온몸을 비비 꼬던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야 근데 같이 찍고 뭐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우리 그... 뭐야, 그... 사, 사귀는데...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괜히 딴청을 피우자 김도영이 큰 소리로 웃었다. 나를 놀리나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걸 후회하고 있는데, 김도영의 웃음이 늘어졌다. 괜히 오랫동안 웃는 건 김도영이 어색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슬쩍 김도영을 쳐다보자 한껏 웃고 있는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아 빨랑. 발을 구르며 말하자 김도영이 터지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내 옆으로 섰다. 내 어깨에 제 팔을 두른 채 카메라를 켠 김도영이 뻔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특별히 사진 같이 찍어 준다. 우리 사귀니까."

"아 진짜!!"




김도영의 말에 또다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발끈하며 김도영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순간, 김도영이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찰칵하는 소리가 울렸다. 황급히 다시 카메라를 쳐다보자 또 찰칵 소리가 났다. 몇 번의 소리가 더 울리고, 꽤 정상적으로 보이는 결과물을 얻은 후에야 김도영은 나에게서 떨어졌다. 잘 나왔는데? 민망함을 참고 뻔뻔하게 말하자 김도영이 픽 웃으며 내 어깨에 제 팔을 둘렀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자, 우리는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놀이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어트랙션 중 하나인 롤러코스터의 대기 줄은 다리 건너까지 이어져 있었다. 미친. 멍하니 중얼거리며 줄을 서자 내 뒤에 선 김도영이 내 어깨를 조물조물 주물렀다. 벌써 기 빨렸어? 김도영의 말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정도야 뭐! 내 말에 김도영이 내 어깨를 주무르는 손에 힘을 주었다. 아 아파! 목을 접으며 어깨를 움츠리자 김도영이 내 어깨에서 손을 떼고 내 얼굴 양옆을 감쌌다. 서울 구경시켜줄까? 그 말에 나는 결국 소리 내 웃어버렸다.




"뭐 하냐고 진짜."

"정여주 놀아주기."

"귀찮게 하기 아니고?"

"아닌데."




김도영에게 잡힌 얼굴을 돌려 쳐다보자 김도영이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서로 엇갈린 방향으로 기울어진 우리의 얼굴이 가깝게 붙어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우리는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앞사람의 뒤를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기를 한참, 드디어 탑승장이 보였다. 와 드디어. 내가 쭉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리자 김도영이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더워? 다시 나에게로 고개를 돌린 김도영이 손에 들고 있던 휴대용 선풍기를 내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댔다. 나 괜찮아. 선풍기를 든 김도영의 손을 잡고 다시 선풍기를 김도영의 얼굴 쪽으로 돌리자 김도영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얼굴을 찌그러트렸다.




"몇 분이세요?"




직원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 김도영의 얼굴이 민망한지 조금 붉어져 있었다. 그런 김도영을 보고 씩 웃자 김도영이 입을 삐죽였다. 직원의 손짓에 따라 드디어 플랫폼으로 들어가자 어쩐지 벌써 허탈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둘이 나란히 줄을 서 있자 곧 앞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떠났던 사람들이 탄 열차가 도착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직원들의 경쾌한 목소리에 우르르 사람들이 빠지고 나자 텅 빈 열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 줘."




먼저 들어간 김도영이 내 가방을 받아 짐 보관 수레에 가방을 넣었다. 자리에 앉아 안전띠를 두르고 있으니 그제야 진짜 놀이공원에 온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야 대박.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김도영을 돌아보니 제 안전띠를 붙잡고 씨름하던 김도영이 날 보고 웃었다. 좋냐? 평소라면 김도영의 말에 바락바락 우겼겠지만, 오늘은 별로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응, 좋아!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자 김도영이 내 이마를 주욱 밀었다. 앞에 봐. 내 이마 위의 손가락을 잡으며 실실대자 결국 김도영도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서로를 마주 보며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실실 웃고 있는데, 앞에서부터 안전띠를 점검해주던 직원들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우리의 안전바를 찍 잡아당겨 확인했다. 민망해져 고개를 앞으로 돌리자 이내 출발 준비를 마친 열차가 앞으로 조금 이동했다. 긴장과 설렘이 뒤섞여 양 뺨이 뭉쳐졌다. 꽉 잡으세요, 출발합니다! 직원들의 경쾌한 카운트다운이 울려 퍼졌다. 


3, 2, 1, 출발~!






* * *





"너 그거 잃어버릴 것 같아. 나 줘."

"나 목말라."

"아니; 네 티켓 나 달라고."





우리는 실내로 들어왔다. 고작 어트랙션 몇 개를 타겠다고 기다리다간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뜨거운 더위에 지쳤기 때문이었다. 실내는 적당히 시원했다. 김도영은 내가 손에 달랑달랑 들고 있는 자유이용권을 가리키며 가볍게 면박을 주면서도 나를 가판대 앞으로 데리고 갔다. 물 마실래, 슬러시 먹을래? 김도영의 말에 나는 고민했다. 세상에 복숭아 슬러시라니. 저거 너무 땡기는데 저거 먹으면 이따 또 물 먹고 싶겠지? 근데 지금 저거 너무 먹고 싶은데. 쉬지 않고 느릿하게 굴러가는 슬러시 기계 속의 분홍빛 얼음 알갱이들을 쳐다보며 고민하자 김도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 하나랑 이거 하나 주세요."




사천 원입니다. 카드를 받은 점원이 물을 내밀었다. 그걸 받은 김도영은 뚜껑을 따 나에게 넘겨주었다. 고마워. 차가운 물통을 받아들자마자 짧은 감사를 표하고는 곧바로 콸콸콸 목구멍으로 찬물을 부어 넣었다. 목구멍이 얼얼함과 동시에 머리통이 깨질 듯 짜릿했다. 아으 물 진짜 시원해. 슬러시를 받고 있던 김도영이 나를 돌아보고는 발갛게 상기된 내 뺨에 슬러시 컵을 툭 댔다. 아 차거! 깜짝 놀라 어깨를 쭉 빼자 김도영이 짓궂게 웃으며 내 뺨에 집요하게 컵을 가져다 댔다. 슬슬 열이 받아 축축하게 젖은 물통을 냅다 김도영의 뒷목에 문지르자 김도영이 빽 소리를 지르며 몸을 뺐다.




"정여주 미쳤어?!"

"미친 건 너겠지!"

"가만 안 둬, 진짜."




웃음 섞인 비난을 한 내가 먼저 휙 달려 도망치자 김도영이 이 가는 시늉을 하며 나를 쫓아 뛰었다. 하지만 나는 50m도 채 달리지 못하고 후회했다. 실내여도 뛰니까 너무 더워!!! 높이 올려 묶은 머리는 철썩이며 내 뒷목을 치댔고,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또르륵 얼굴을 타고 턱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죽느니 김도영 손에 잡히자. 결심하자마자 그 자리에 대뜸 멈춰 서니 뒤쫓아 오던 김도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왜, 왜. 김도영의 말에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앓는 시늉을 하자 김도영이 손을 펼쳐 나를 받치려고 했다.




"너무 더워…."




더 놀릴까 하다가 김도영의 표정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실직고했다. 김도영이 두 눈을 감고 한 템포를 쉬더니 나에게 슬러시 컵을 내밀었다. 김도영이 준 슬러시를 퍼먹고 있는데, 김도영이 별안간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왜? 눈을 멀뚱히 뜨고 묻자 김도영이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로 눈을 깜빡였다. 너 이거 티켓 어쨌어. 김도영이 흔드는 자유이용권을 보니 문득 핸드폰 뒤, 티켓을 겹쳐 들고 있던 자리가 어째 휑한 것 같았다. 헉. 차마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슬쩍 김도영의 눈치를 보자 김도영이 나를 두고 우리가 온 길을 되짚어갔다.




"내가 그거 나 주라고 했지."




허리를 숙인 김도영의 옆에서 같이 허리를 숙이고 두리번대자 김도영이 이를 악물고 내 뒷목을 붙잡았다. 새로 발급 받아야 하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 뒷목을 짤짤 흔들면서도 김도영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 또한 이 상황이 황당해 눈으로는 계속해서 주위 바닥을 훑으면서도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아니, 분명 내가 손에 꼭… 아 헐!"




순식간에 김도영의 손아귀를 빠져나온 내가 후다닥 달려가 떨어져 있던 티켓을 주워들었다. 와 진짜 내꺼다. 다행히도 흘린 지 얼마 안 된 덕인지 티켓은 깨끗했다. 뒷면을 돌려 김도영의 티켓과 날짜를 비교해 본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 찾네. 열 받은 표정을 한 김도영이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건 말건, 나는 진짜로 티켓을 다시 찾은 상황이 웃길 따름이었다.




"지금 우리 대박 구질구질해."

"내 말이. 안 되겠어, 너."




돌연 내 손을 덥썩 잡은 김도영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뭐야, 어디 가는 데. 내 말에 대답하지 않은 김도영은 가까이 있던 작은 상점으로 갔다. 여기 그 티켓 넣는 목걸이 팔아요? 직원에게 묻는 김도영의 말에 나는 기겁하고 손을 빼려 했다. 나 그거 안 해! 친절한 직원의 안내에 따라 내 손을 잡고 매장 구석으로 간 김도영이 제일 튀는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곧바로 계산까지 마친 김도영이 목걸이에 티켓을 끼워 내 목에 걸어주었다. 잘 어울리네. 고개를 끄덕인 김도영이 다시 내 손을 잡았다. 나는 한껏 얼굴을 찡그리고 내 목에 대롱대롱 달린 요란한 목걸이를 엄지와 검지로 살짝 집어 들었다.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올려 보이는 김도영이 얄미워서 불퉁하게 투덜거렸다.




"왜? 아주 그냥 이름, 집 주소, 연락처 다 적어놓지?"

"이마에다 이렇게, 어? 김도영꺼라고 적어버려, 진짜."




내 머리통을 붙잡고 이마에 글씨 쓰는 시늉을 하는 김도영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한껏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 김도영의 입에 입동굴이 생겼다. 문득 거기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자 뭔가 이상했는지 김도영이 웃고 있던 표정을 풀었다. 왜, 또 뭔데. 김도영의 말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을 펼친 채로 말했다.




"네 입동굴에 손가락 넣어보고 싶어서."





지금 당장 넣겠다는 말도 아니었는데 내 말에 김도영의 표정이 복합적으로 찡그려졌다. 이게 당최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과 황당한 표정이 뒤섞인 얼굴을 보자 장난기가 동했다. 나는 한껏 도리질 치는 김도영의 왼쪽 볼을 붙잡았다. 이, 해봐. 내 말에 김도영은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고 고개를 휙휙 피했다. 으읍읍!!! 뭔가를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위협적으로 손가락을 들이미는 나를 보자 차마 입을 열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한 번만 해보자. 내 말에 김도영의 눈이 커졌다. 아 한 번만! 진짜로 손가락을 넣을 생각도 없으면서 괜히 김도영의 입술 앞에 손가락을 들이밀자 두 눈을 질끈 감은 김도영의 얼굴이 한껏 찌그러졌다. 나는 조용히 핸드폰 카메라 어플을 켰다.




찰칵. 짧지만 분명한 소리에 번쩍 눈을 뜬 김도영은 그제야 내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열 받은 표정이었다. 야 진짜! 쿵쿵 발을 굴러대는 김도영을 보며 깔깔 웃자 김도영이 눈을 뾰족하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가만히 서서 눈을 까뒤집는 시늉을 하는 김도영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뭔데. 안 속아."

"아니야. 진짜."




진짜 와 봐. 새삼 정색한 표정으로 손짓하자 김도영이 못 이기는 척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몸을 숙여 내 얼굴 앞으로 제 귓가를 가져온 김도영이 꿍얼거리는 걸 무시한 나는 손을 펴 김도영의 귀에 대고 입을 가까이했다.




"뭐냐며언..."

"아 뭔데."

"네가 여기서 제일 잘생겼다."




작게 속삭인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도영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아 뭐야, 왜 이래~! 괜히 큰소리를 치는 김도영의 입이 스멀스멀 귀에 걸렸다. 야, 야. 네 눈에나 그렇게, 어? 참나!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한껏 광대를 끌어올려 웃고 있는 김도영을 보다가 다시 손짓했다. 김도영은 이번엔 순순히 귀를 가져다 댔다.




"그래서 작게 말하잖아. 남들 들으면 큰일 나!"




찬물을 촥 끼얹는 내 말에 김도영이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푸하학!! 부러 과장해서 웃자 김도영이 나에게 손을 뻗었다. 쏠랑 몸을 틀어 그 손을 피하자 김도영이 완전히 열 받은 표정을 했다. 너 진짜! 김도영의 미간이 좁혀지고, 동그란 눈이 부릅떠졌다. 다른 사람이 지었으면 분명 화난 표정으로 보일 법한 표정인데도, 김도영의 얼굴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내가 두 손을 뻗자 김도영이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하고도 제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나는 김도영의 얼굴을 내 얼굴 앞까지 끌어당겼다.




"너 내가 좋아?"




내 말에 김도영이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왜 이래? 당황한 김도영의 목소리를 들은 내가 작게 웃었다.




"나는 너 좋아서!"




내 말에 김도영이 픽 웃으며 제 얼굴을 잡은 내 손을 감쌌다. 여기서 뽀뽀해도 되나? 김도영의 말에 나는 장난스레 웃는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되는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은 김도영이 제 손을 내 이마 위에 포개고는 그 손등 위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너 때문에 매일이 여름이야."




나는 물끄러미 김도영을 올려다보았다.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 따뜻하게 휜 눈꼬리, 가볍게 움직이는 양 뺨.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정확히 모르지만, 김도영의 표정을 알 수 있으니 되었다. 나는 붙잡고 있던 김도영의 손등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허공에서 둘의 눈이 마주쳤다. 뜨겁고 습한 여름 안에 서로의 곁에 있는 우리. 이전의 여름과는 다른, 새로운 여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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