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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때문이지. 본인의 명예 때문이기도 하고.”

진영이 초코 우유를 쪽 빨아들이며 말했다. 바닥까지 긁어 마시려는지 폭폭 종이를 들이마시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한가로이 창틀에 기대 교실을 둘러보았다. 고3이긴 했지만, 아직 봄이라 그런가, 푹 퍼져 자는 애들부터 공부하는 애들 틈에 섞여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 무리까지. 그래도 아직은 자유로워 보이는 풍경이었다.

나는 얼마 전 진영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물론 뱀에 관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평범하게 바꿔서 아픈 아이를 집안에 가둬놓고 감시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식으로. 사실, 뱀 이야기만 뺀다면 나머진 지극히 현실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어떤 미련? 이미 제 자식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니까? 서슬이 퍼런 눈이 얼마나 이글거리던지, 누가 보면 인아가 무슨 죽을죄라도 지은 줄 알겠더라고.”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미련보다는 그 아버지의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아들이 아니라 물건이었던 셈이지.

“아~ 걔 이름이 인아구나.”

말투는 심드렁한데, 그 안에 숨은 뜻은 흥미롭다는 느낌으로 진영이 말했다. 나는 아차 싶은 마음에 속으로 뜨끔했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어. 그래. 내가 얘기 안 했었나? 뭐, 암튼 그래서?”

티 나게 화제를 전환하려는 내 의도를 알아채고 진영이 씩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뭐, 굳이 캐묻지는 않겠다는 의도인 것 같았다.

“네 말처럼 아들이 아니라 물건이기도 했기에 미련이 남는 거야. 아직 제 뜻대로 이것저것 해본 것도 없이, 저의 손안에서 멀어지려 하니 그동안 입히고 교육한 게 얼마나 아깝겠어. 심지어 잘난 아들로 주위에 자랑해놨을 텐데. 물론 이것도 본인 욕심 채우자고 한 짓이지만, 그런 걸 알만한 인간이 아니지. 그런류의 사람들은 다 필요 없어. 본인 명예가 최고야. 그런데, 너의 그 ‘인아’라는 얘가 다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화가 나겠어.”

“그러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되잖아.”

“그런 인간들은 그게 안 돼. 왜냐면, 아까우니까. 거기에 쏟아부은 자신의 노오력이.”

“뭐?”

내가 목소리를 조금 높이며 새된 소리를 내자, 맞은 편에 있던 얘가 흘깃 쳐다본다. 열심히 수학 문제지를 풀고 있던 중이었는지 종이 위가 샤프 자국들로 시커멓다. 괜히 눈치가 보여 머쓱하게 웃어 보이자 녀석이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고 다시 문제지에 집중했다.

“노오력. 그래서 붙잡고 괴롭히는 거야. 별거 없어. 그게 다일걸? 이건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진짜 물건이라면 버리겠지만, 얘는 아들이잖아. 그래서 버리기보다는 괴롭히는 걸 선택한 거지. 아마 처음에는 미련이 남아서 데리고 있었을 거야. 그러다 안되니까 지금은 감시하면서 괴롭히는 거로 제 아들 목숨까지 쥐고 있는 거겠지. 그래야 대단한 아버지가 아픈 아들 병간호하면서 안타깝게 됐네 하는 식의 얘기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진영이의 말을 듣고는 문득 생각났다. 하긴, 그 아버지란 작자도 처음에는 인아가 나을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뱀에 해꼬지는 커녕 아예 끊을 수가 없으니 대신 인아를 괴롭히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참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자식 안쓰럽게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제 뜻대로 안 된다고 괴롭히는 거라니. 인간의 마음과 감정은 때때로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체중에서 제일 악독했다.

 



“뻔찔나게도 드나드는군.”

5월 중순 한낮의 햇볕은 생각보다 덥고 뜨거웠다. 나는 시험 기간이라 일찍 끝났다는 핑계로 과자를 사 들고 인아의 집에 도착한 참이었다. 이 가파른 언덕을 마을버스도 타지 않은 채 걸어 올라온 이유는 순전히 녀석을 빨리 보고 싶어서였다.

마을버스 배차 간격이 이 시간대는 거의 30분에 한 대씩이라 기다리느니 걸어가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다. 단짠으로 골고루 알차게 과자를 채운 검은 비닐봉지가 왼쪽 손가락에서 달랑달랑 즐거이 흔들렸다. 땀은 났지만,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시원한 몸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입구에서 이 인간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쩐일인지 인아의 아버지라는 작자가 내 눈앞을 턱 하니 가로막고 서 있었다. 나는 무언의 반항이 담긴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 이내 목만 까딱이며 인사했다. 그래도 어른이고 인아의 가족이니 겉치레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내 행동에 그는 픽하고 기분 나쁜 코웃음을 치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나보고 알아서 따라서 오라는 듯한 행동에 짜증이 났지만,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따라 들어갔다. 인아의 방이 있는 뒷마당으로 돌아간다면 왠지 쳐들어올 것 같기도 했다.

반들거린 가죽 소파에 털썩하고 무거운 몸을 안긴 남자가 고개를 까딱이며 자신의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샐쭉거리는 입을 애써 집어넣고 그곳에 앉았다. 부스럭대는 검은 비닐봉지를 살포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너도 이제 고3이지?”

남자에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오늘은 주위에 경호원이나 감시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남자가 행하는 압박감은 있었다.

“네.”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대답만 했다. 무뚝뚝한 대답이 예의가 있어 보이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한 건 아니니까. 남자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하얀 연기를 뭉게뭉게 피워냈다.

매캐하고 매운 연기가 순식간에 폐부로 스며들며 호흡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창문이 열려 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나는 여지없이 너구리굴 속에 너구리가 되었을 것이다.

“인아는 곧 내가 데려갈 거다. 그러니까 이젠 찾아오지 마. 아직 어린놈이라 내가 좋은 말로 타이르니 거니 허튼수작 부릴 생각도 하지 말고. 넌 네 인생이나 살아. 남의 인생에 끼어들지 말고, 알겠니?”

말투는 전에 비교해 상냥했지만, 그 속에는 함부로 까불면 애새끼고 뭐고 가만두지 않을 테니 말 들으라는 뜻을 조곤조곤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성격이 개지랄이다.

“데리고 가다뇨? 어디로요?”

“그건 네가 알 것 없지. 저 뱀 새끼들이 애새끼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제 아비한테 하는 짓이 아주 가관이야.”

남자는 말과는 다르게 뭐가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며 담배 연기를 피웠다. 웃고는 있지만 어딘지 잔혹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래서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설마, 내가 없는 사이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인아는요? 알고 있습니까? 애한테 무슨 짓 하신 건 아니죠?”

내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자 남자는 역시나 별 같잖은 걸 본다는 듯한 심드렁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시발, 쫄지 마, 김도윤. 그래 봤자 힘 있고 돈 있는 놈일 뿐이야. 시발, 그래서 문제지만.

“젊고 어려서 그런가. 가만 보면 너, 배포는 있어. 하긴, 나도 네 나이 때는 그랬었지. 그래도 난 말이지, 나에게 득이냐, 실이냐는 따질 줄 알았거든. 넌 그런 게 없어. 그냥 좋아한다는 어설픈 감정에 휘둘리고 있을 뿐이지. 꼬마야.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인아를 어디로 데려가든 그건 네가 신경 쓸 게 아니야, 알겠니?”

남자가 끄트머리만 남은 담배를 탁자 위에 그냥 짓눌러 꺼버리곤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이 집안은 누가 청소하고 관리하는 걸까. 저 작자가 저렇게 함부로 하는 걸 보면 애초에 뱀 누님들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까 물었지? 무슨 짓 한 건 아니냐고. 무슨 짓을 하긴 했지. 이거 보여?”

남자는 삐뚜름하게 웃으며 제 오른쪽 손목을 들여 보였다. 빨갛게 부어오른 상처가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워낙 두껍고 단단한 몸뚱이라 그저 생채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어제 애새끼를 데려가려고 하다가 내 손을 긁어 버리더라고. 평상시에는 얌전하고 멍해 보이더니 힘을 주니 손톱을 세우고 달려드는 게 여간 우스운 게 아니었지. 예전에 그래도 생긴 건 내 아들 같더니, 이젠 인간도 아닌 건지, 어떻게 그런 손톱이 갑자기 자라서 공격할 수 있냐고. 저런 걸 여태 키워주고 먹이고 재워줬다는 게 억울해.”

그는 전혀 억울하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구름 연기를 피워댔다. 어떤 무력을 행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인아가 싫어하는 방법이었을 거다.

“제 애비가 키워준 은혜는 모르고, 어디서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못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였지. 버러지 같은 놈.”

그러면서도 여전히 낄낄거린다. 나는 그 모습이 소름이 돋다 못해 화가 났다.

“당신 정말 아버지 맞아요? 어떻게 제 자식에게 그렇게 인정머리 없을 수가 있어요? 차라리 그럴 거면 인아 저한테 주세요!”

새파랗게 어린 것이 치기 어린 마음으로 덤비는 게 같잖다며 보고 있던 남자가 잠시 멍하니 있다 집안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웃어 젖혔다. 박장대소이긴 한데 상대를 얕잡아 보는 기운이 담긴 소리는 비웃음에 가까웠다.

“살다 살다 별 꼬락서니를 다 보겠군. 뭐? 저한테 달라? 허 참. 요즘 애들 맹랑하기 이룰 데 없다지만, 사리 분별도 떨어질 줄은 몰랐어.”

나는 솔직히 부끄러워졌다. 인아를 위해서 화를 내고 비난해주고 싶었는데, 기껏 나온 말이라곤 정말 객기부리는 문장들뿐이지 않은가. 지금 상황이 결혼할 상대를 자신에게 달라며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는 자리도 아니고, 이 무슨 신파 같은 짓인지.

나는 붉으락푸르락 해지는 얼굴을 감추고 싶었지만, 아직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내 감정에 남자는 우습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데리고 나와.”

짤막한 명령을 끝으로 전화를 끊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남자를 따라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딱히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때 매우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집안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으악! 이거 놓으라고!”

비명 같은 새된 목소리가 머리와 가슴을 찌릿하게 울렸다. 아니, 뭔가 쑤시는 듯한 느낌이다. 거구의 남성 두 명에게 양팔이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인아가 끌려오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커다란 까마귀 두 마리한테 날개가 먹힌 듯한 모습이었다. 인아의 하늘색 잠옷이 발버둥 치는 대로 나풀거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 식은땀이 흐르고 열이 치솟았다. 이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했다. 죄인도 아니고 제 아들이었다.

“당신 이거 너무하잖아!”

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분노로 소리를 지르며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키와 태산 같은 덩치를 가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상관 없었다. 발끝을 들어서까지 남자의 넥타이와 셔츠 깃을 덥석 움켜쥐었다.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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