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조 多, 캐붕 多

※ 의식의 흐름대로 쓴 쿠소썰입니다.. 중혁이가 맘마를 찾습니다..ㅎ 저의 최애캐 모에화를 견딜 수 있는 분들께만 열람을 권장합니다.. *^v^*



“김도쨔아아!”

또랑또랑한 목소리 사이로 어쩐지 울분섞인 감정이 삐죽 튀어나왔다. 반들반들한 바닥에 질질끌리는 옷가지가 요란스럽게 부스럭거렸다. 아장아장 소리가 날 것 같은 부지런한 걸음걸이에 맞춰 섬유가 스치는 소리가 다가왔다. 평소였다면 다섯걸음쯤 되었을까. 그리 길지도 않은 거리를 유중혁은 한참이나 열심히 걷고 달렸다. 뜻대로 벌어지지 않는 짧디짧은 양쪽 다리가 타다다닥 달음박치며 맨땅을 휘날렸다. 휘날렸다는 건 물론 본인기준으로 표현한 것이고, 제삼자의 눈으로 보기엔 아기사슴이 걸음마를 연습하듯 뒤뚱거리는 뒷모습이 보였다.

“여기에 두고 가지마라아!”

분명히 다급한 어조인데 김독자는 슬금슬금 기어 올라가는 입꼬리를 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비단 김독자뿐만 아니라, 바닥에 끌리는 유중혁의 코트자락을 붙잡고 있던 한수영도, 땅바닥을 긁어대는 검집을 대신 쥐고 있던 이지혜도, 소식을 듣고 온갖 설화팩을 챙겨온 이설화도. 모든이가 웃음을 참아내느라 이상하게 입매를 비틀어댔다.

“중혁아. 해결방법 먼저 찾아야지. 이모습으로 있을 건 아니잖아.”

김독자가 반쯤 무릎을 꿇으며 유중혁의 눈높이에 맞춰 앉았다. 그것마저도 분한지 어깨를 씩씩대는 것이 답지않게 귀엽기만 했다.

“그럼 차라리 날 데꾸가라!”

“그 위험한 곳에 널 어떻게 데리고가.”

“한수영이 나에게 이상한 옷을 입혀딴 말이다!”

여전히 웃음을 참는 표정으로 김독자가 슬쩍 눈을 흘겼다. 작아진 유중혁의 어깨너머로 입을 틀어막고 있던 한수영이 결국 먼저 터져버렸다.

“…야아핰핰핰핰하핳핰…! 나 못참겠어앟핰핰핳하…!”

“우찌마라, 한수영!”

“흫흨흐…아 배 아파. 아기 꿀벌옷 입은 유중혁을 네가 봤어야 했는데.”

손가락 사이로 끅끅대는 소리를 내뱉는 한수영을 보며 유중혁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김독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일의 원인은 정체불명의 히든피스에서 시작되었다. 공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작스럽게 발견된 히든피스는 시나리오 난이도 자체도 그다지 높지 않았고, 보상마저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 유중혁 혼자 빠르게 공략하고 오는 것으로 정해졌다.

김독자또한 큰 걱정 없이 잘 다녀오라며 팔랑팔랑 손을 흔들어주었었다. 그러나 유승이나 길영이도 혼자 클리어 할 만큼 간단한 난이도의 히든피스를, 유중혁은 하루가 다 지나가도록 빠져나오지 못했다. 처음에는 심드렁하던 한수영마저도 이튿날까지 깜깜무소식인 유중혁의 안위를 걱정했다.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반나절을 공단주변에서 서성거리던 김독자의 눈에 무언가 낯선 인영이 들어왔다. 드르륵, 끼익. 단단한 것이 땅바닥을 긁어대는 소리와 함께 어지러운 시가지를 걸어오는 그림자는 지나치게 작아 보였다.

대충 열 살 정도 아이의 체구를 지닌 물체였다. 시나리오에서 잔류된 이존재인가? 부러지지 않은 신념을 들고 있던 김독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대로 검격을 날렸을지도 몰랐다.

“김…도짜…?”

“…어…?”

익숙한데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 사이에 제법 가까워진 인영이 타박타박 발소리를 내며 속력을 내서 달려왔다. 그래봤자 속도는 도찐개찐이었지만. 나름대로 부지런히 뛰어오는 모습이 김독자의 눈에도 서서히 들어왔다. 어느 정도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낯설지 않은 코트자락이 펄럭거리는 것이 보였다.

“…유중혁?”

김독자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검집을 둘러싸고 있던 기다란 가죽끈에 유중혁의 발이 걸렸다. 바지며 코트며 지금에 몸에는 어울리지 않게 커다랬다. 끈에 걸려 헛발질을 함과 동시에 그대로 유중혁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흙바닥위로 철퍽이며 안타까운 소리가 났다.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물쭈물하던 김독자가 검을 거두고 재빨리 뛰어갔다.

“주, 중혁아!”

넘어지자마자 양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던 유중혁은 다시 한번 바닥을 뒹굴었다. 걸치고 있던 옷가지가 너무 커진탓에 자꾸만 바지자락이 밟혀 제대로 서지를 못했다.

“…빨리 일으켜라, 김도짜…!”

서럽고 분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어정쩡하게 상체만 세운 유중혁이 빼액 소리 지르고 나서야 김독자가 허둥지둥 손을 뻗었다. 제 몸의 반절이나 될까 싶은 유중혁의 양쪽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집어넣고 덜렁 들어 올리니 가뜩이나 흐느적대던 아공간코트가 힘없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단단하게 근육을 조여주던 목티는 헤벌어진 채 죽 늘어졌다. 귀끝이 벌겋게 달아오른 유중혁은 팔다리를 공중에서 바동거리다 이내 포기한 듯 김독자의 손에 얌전히 매달렸다.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김독자만 멀뚱히 눈을 깜박거렸다. 그 와중에 대차게 넘어지면서 까진 유중혁의 오른쪽 뺨에서 작은 핏방울이 동그랗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진짜…유중혁이야?”

“그럼 가짜겠나!”

“왜…꼬마가 됐어?”

억울한지 허공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곤 다시 추욱 늘어진 유중혁이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히든피스는 역시나 손쉽게 클리어할 수 있는 정도였고, 간단한 보상 말고는 숨겨진 정보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 종료후 보상정산과 함께 새로운 개연성의 스파크가 갑작스럽게 튀었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작아진 몸으로 공단부근에 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꼴로 걸어왔다고?”

스킬도 쓰지 못하는 아이의 육체가 된 채 두 다리로 종일 걸어오다 보니 이리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말하는 유중혁의 표정에 서러움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진짜 유중혁이었다면 서러움보다는 짜증에 가까웠을 얼굴이지만 아이의 모습으로는 아무리 미간을 구기고 인상을 찌푸려도 그저 억울하고 서럽게만 보였다. 아니, 보이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웅얼대며 이야기하던 유중혁의 눈꼬리에 옥구슬 같은 물방울이 희끗희끗 맺혀있었다.

“…너 울어?”

“…….”

흐끅. 대답대신 울분찬 숨소리가 크게 헐떡거렸다. 입을 앙다문 얼굴에 닭똥 같은 눈물이 톡, 떨어져 말랑한 뺨위로 굴렀다. 알맹이야 어찌 되었든 겉모습은 어린애였으니 김독자는 저도 모르게 유중혁을 품에 꼭 안고 토닥이며 달랬다.

“갑자기 왜 울어, 중혁아.”

“…애취급 하지 마라.”

“그래그래. 쉬이.”

“…흐끅.”

입만 열면 투덜대는 것과는 다르게 유중혁은 얌전히 팔에 안겨 김독자의 옷자락을 꾹 붙잡았다. 한참을 달래주고 나니 유중혁은 이마를 파묻은 어깨 자락에 고개를 부지적거리며 눈물 자국을 닦아냈다. 김독자가 몇 번씩이고 캐묻는 것이 거슬렸는지 꾹 다물려있던 입술이 삐죽대며 천천히 열렸다.

“…프다.”

“응?”

“…얼굴이…아프다….”

“얼굴?”

김독자는 천천히 공단 쪽을 향해 걸어가며 분에 받힌 아이를 토닥거리고 있었다. 한쪽어깨에는 유중혁이 질질 끌고 온 흑천마도를 메고 있는 채였다. 잔뜩 울음섞인 어조에 김독자가 단단히 끌어안았던 팔을 살짝 풀고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은 유중혁의 고개를 살살 들었다. 민망한지 자꾸만 품으로 파고드는 것을 어르고 달래 얼굴을 살짝 들추자 아까 흙바닥에 쓸려 옅게 쓸렸던 뺨이 전체적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쌀알같던 핏방울은 옷에 여러 번 문질러진 탓에 한쪽 얼굴에 죄다 번져있었고, 그 위로 새로운 선혈이 또다시 방울방울 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쓰라릴듯해 인상이 구겨질 정도인데, 말랑한 아이의 피부가 저리 까졌으니 얼마나 아팠겠는가. 정신은 그대로라도 몸뚱이는 착실하게 제 나이에 맞춰 감각하고 있었으니 유중혁도 수치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통증에 따라 찔끔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뚝뚝 떨궜다.

김독자가 뒤늦게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핏자국이 번진 뺨위를 톡톡 닦아냈다. 이미 유중혁이 한차례 얼굴을 부빈 자신의 코트위도 핏물이 선연했지만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일단 가서 소독해야겠는데. 이거 때문에 울었어?”

“…….”

“그…크흠, 아프면 그럴 수 있지 뭐. 빨리 가야겠다.”

저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유중혁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래봤자 아이의 몸인지라 김독자의 손길을 피할 순 없었다. 한쪽 볼위를 손수건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유중혁이 파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렇게 얼마쯤 걸어가자 일행들이 머무는 주거지에 다다랐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부터 김독자를 기다렸는지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아이들이 뛰어 내려왔다.

“아저씨!”

“독자 형!”

헐레벌떡 뛰어 내려오는 아이들의 뒤를 쫓아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던 한수영이 멈칫했다. 방금전까지 눈물을 보인 것도 잊고 이제야 수치심이 밀려오기 시작한 유중혁은 김독자의 어깨에 다시 얼굴을 묻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느스름하게 뜬 한수영의 시선이 김독자에게 매달린 작은 몸뚱이를 느리게 훑었다.

“…그건 뭐냐? 유중혁 찾으러 간 거 아니었어?”

“음…. 그렇긴한데.”

김독자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자 어깨 자락을 쥔 자그마한 손에 꾸욱 힘이 들어갔다. 어억. 덩치는 조그매진 주제에 악력은 평범하지 않았다. 수상쩍은 시선을 쏘아대는 한수영의 눈치를 살피며 김독자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게…. 그…중혁이야.”

“뭐…?”

“…이 꼬마가 중혁이라고.”

“꼬마가 아니라고 해따, 김도쨔!”

억울함이 잔뜩 묻은 고성이 시원스레 허공을 갈랐다. 낯설지 않으나 익숙하지도 않은 앙증맞은 목소리에 일순간 모든 이들이 침묵했다. 몸이 작아진 탓에 자꾸만 새어 나오는 혀짧은 소리는 본인 스스로가 듣기에도 민망했는지 유중혁의 목덜미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주 짧은 적막의 끝을 깬 것은 뒤이어 따라 나온 유상아였다.

“왜 다들 멀뚱히 서있…독자씨?”

눈치가 남다른 유상아답게, 유중혁을 찾으러 나갔던 김독자가 들춰메고온 아이를 유심히 바라보는 눈동자가 짓궂은 호기심으로 넘실거렸다. 누가 보아도 유중혁의 것이 분명한 검은빛의 옷가지를 걸치고 있는 아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유상아는 예의 사람좋은 미소를 싱긋 지어 보였다. 어쩐지 재밌는 것을 발견한 듯한 웃음이었다.

“늦어지길래 걱정했어요. 중혁씨.”

“…….”

“상태를 보아하니 꽤나 고전하셨나봐요.”

분명 일부러 저러는 것이다. 유중혁이 눈을 흘기며 유상아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인자한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 한마디를 기점으로 멍하게 눈을 끔뻑이던 한수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흡…야, 유중혁이었어? 꼴이 왜 그모양이야?”

“웃, 찌마라….”

“놀리지 말고. 일단 옷좀 갈아입혀야 할 것 같은데.”

웃느라 배를 붙잡고 휘청거리는 한수영을 뒤로하고 김독자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마주치는 이마다 놀라거나 당황하기 일쑤였지만 사납게 치켜 뜬 꼬마 유중혁의 눈초리에 금세 입을 합 다물었다. 자신의 방까지 들어온 후에야 유중혁을 내려놓고 상태를 살펴보던 김독자의 눈에 잔뜩 짓밟혀 넝마가 된 상·하의가 들어왔다.

“일단 씻을까? 옷 가져올게.”

당연하게 욕실로 붙잡아 이끄는 김독자의 손을, 유중혁이 찰싹 내리쳤다. 제 나름대로 힘껏 내리친 것이겠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는 찰싹대는 상큼한 마찰음만 났을뿐 전혀 아프지 않았다. 유중혁이 때린 팔목이 아프진 않았지만 눈치껏 아얏, 하는 소리를 내준 김독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돌아보았다. 어째 분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있는 유중혁이 씩씩대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뭘 당연하게 같이 들어가는 거냐.”

“어…혼자 씻을 수 있겠어?”

순간 유중혁의 얼굴이 왈칵 구겨지며 다시 한번 김독자의 팔뚝을 자그마한 주먹이 두들겼다.

“내가 짓짜 애인 줄 아나!”

“음, 그래. 뭐…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여기 있을게.”

“필요없따!”

능숙하게 수건을 챙겨 들고 욕실로 들어서는 자그마한 꼬마 유중혁을 바라보며 김독자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입꼬리를 진정시켰다. 가만히 욕실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한참이 지나고 나서 물줄기소리가 들렸다. 샤워기 위치가 지금의 유중혁에겐 팔이 닿지 않을 것 같아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대기하고 있던 것인데 어찌어찌 손에 쥐인 모양이었다.

…이제 저걸 어쩐다.

그제야 원초적인 물음이 머릿속에 떠오른 김독자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 굴리지도 않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이미 정산이 완료되어 소멸해버린 시나리오를 다시 발현시킬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멸살법에 나온적없는 이야기였기에 더 걱정이었다.

거실소파에 주저앉아 핸드폰을 켜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잽싸게 텍스트파일을 읽어나갔지만 몸이 작아지는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다. 저주인가? 아니면 오류? 아니라면 새로운 변수가 발생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떤 것이든 좋지 않은 일임은 같았다.

한숨과 함께 액정을 꺼버린 김독자가 소파 등받이로 길게 몸을 늘이며 고개를 젖혔다. 시야에 정면으로 들어차는 형광등 불빛이 시려 저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아직 물소리는 나고 있었지만 김독자는 늘어진 몸을 일으키곤 다시 욕실가까이로 걸어갔다. 닫힌문을 똑똑, 가볍게 노크하자 크게 들려오던 물소리가 일순 잠잠해졌다.

“중혁아, 나 내려갔다 금방 올 테니까 씻고 잠깐 기다리고 있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다시 물소리가 커지는 것을 확인하고 김독자는 집을 나섰다. 공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배회하며 낯선 시나리오의 흔적을 찾아 헤맸지만 역시나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곤 아일렌과 이설화를 불러내 상황을 설명했다.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장하영이 작아진 유중혁을 보겠다며 떼를 썼지만 가뿐히 무시했다.

“아무튼, 지금이라면 아무리 유중혁이라도 쉽게 당하거나 잡혀갈 수 있으니까요. 꼭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당연하죠. 저희도 다 같은 동료인걸요.”

생긋 웃은 이설화가 마지막으로 화신체를 정상으로 복구할만한 설화팩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돌아섰다. 깊게 숨을 내쉰 김독자는 한수영에도 온 한낮의 밀회를 열어보았다. 유중혁이 잠시라도 입고 있을 작은 의상 몇벌만 방앞에 두고 가라는 자신의 메시지에 아주 짤막한 대답이 돌아와 있었다.

[ㅇ]

“이게진짜….”

어쨌거나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이에게 구태여 싫은 소리를 보탤 필요는 없었다. 상념에 빠져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집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나설 때와는 다르게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 어째 불길했다. 김독자가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서자, 불안이 실재가 되어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다들 뭐 하는 거야?”

“김도쨔!”

양팔을 각각 이지혜와 한수영에게 붙잡힌 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유중혁은 김독자를 보자마자 두발을 바동거렸다. 그바람에 겨우 걸쳐져 있던 내의가 주륵 흘러내렸다. 아이의 몸인데도 군살없이 균형 있는 상체가 드러나고, 김독자는 저도모르게 멍하니 구경하던 시선을 간신히 떼며 한수영에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어쩐지 안쓰러운 모습에 자꾸만 눈이 돌아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독자가 입술을 꾹 짓씹는 동안, 한수영은 왜인지 뒤집어져 있는 옷 한 벌을 손에 들고 끅끅대느라 바빴다. 크기로 보면 분명히 본인 것은 아니었고, 당연히 유중혁에게 입힐 옷이 분명한데 이미 한번 입었다 벗은 것처럼 의상이 헤벌레 뒤집혀 있었다.

심지어 그 무늬가.

“…꿀벌?”

“어, 왔냐? 이거 존나 재밌다.”

“…너 설마 그걸 입히려고 가져온 거야?”

가져오기만 한 게 아니라 이미 한번 입혔지. 뒷말은 쏙 삼킨 한수영이 답없이 샐쭉대며 어깨만 으쓱거렸다. 천천히 상황파악을 한 김독자가 이마를 짚곤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유중혁이 짤막한 두 다리를 한 번 더 바동거리며 벗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역시나 실패였다. 그 모양새를 지켜보고 있던 김독자가 귀엽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가갔다.

“김돋자! 이 녀석들 사이에 두고 가지 마라!”

“어허, 이놈들이라니. 중혁어린이.”

“나도, 나도 차라리 데꼬가라, 김도짜!”

“우리 김독자는 바쁘니까 누나랑 놀자, 꼬맹아.”

“누구보고 꼬맹이라고…아! 한수영, 미칭건가!”

어느틈에 유중혁의 옆구리에 양손을 끼운 한수영이 덜렁 작아진 몸을 들어 올렸다. 웃음을 참느라 구겨트린 입매가 자꾸만 씰룩거리고 있었다. 김독자 본인도 말려올라가는 입꼬리를 눌러대느라 표정관리가 힘든탓에 계속해서 시선을 굴렸다. 두어걸음 앞까지 다가온 김독자가 유중혁을 내려다보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원래…이렇게 작았나?”

분명 처음봤을때는 열 살부근으로 보였던 유중혁의 체격은, 이제 거의 대여섯 살 아이처럼 작아져 있었다. 시나리오의 부작용인지, 작아진 몸뚱이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김독자의 물음에 바닥으로 유중혁을 내려준 한수영이 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네. 너 나갈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왔는데.”

한수영이 손바닥을 세워 허리위쪽을 톡톡 가리켰다. 확실히 지금 유중혁의 키보다 높은 위치였다.

“계속 작아지고 있나?”

“그런 것 같은데…중혁아, 이리 와봐.”

아까는 품이 조금 넉넉했을뿐인 티셔츠가 어느새 허벅지까지 내려오고 팔꿈치를 덮고 있었다. 본인도 이제야 눈치를 챈 것인지 가만히 몸뚱이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왈칵 미간을 찡그렸다. 만두처럼 뽀얗게 볼살이 오른 얼굴로 표정을 구기고 있는 모습은 지나치게 무해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네…. 아까보다 작아졌어.”

처음으로 유중혁을 발견했던 김독자였기에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반뼘정도 쑥 줄어든 꼬마 유중혁은 이제 김독자의 셔츠자락이 아닌 허벅지 근처의 바지춤을 붙잡고 서 있었다.

“몸에 다른 이상은 없고?”

“엄따.”

“…….”

“…….”

유중혁은 본인입에서 튀어나온 짤막한 목소리에 혀를 깨물었다. 짧은 침묵뒤에 찾아온 건 이지혜와 한수영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였다.

“…킇…크핡하핳핳핰핰핚핰!”

“사…킇흫…사부…흫ㅋ….”

“야아…너네….”

그만 웃으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김독자도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세게 잘근거리기 바빴다. 유중혁이 밤송이 같은 손아귀로 굳게 주먹을 쥐곤 김독자의 다리를 퍽퍽 두들겼다. 물론 통증은 전혀 없었다.

“웃찌마라…! 싱각하단 마리다!”

“…중혁아…. 너 제발 입 좀 다물어주라….”

“깅도쨔 너까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한수영이 핸드폰을 들어 짧은 팔다리를 휘두르는 유중혁을 찍어댔다. 찰칵대는 핸드폰 셔터음에 더욱 열이 뻗친듯한 유중혁이 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콩콩 발로 내리찍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어 젖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이들이 이제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댔다.

“그래서,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애초에 시나리오가 뭐였는데요?”

“찾으러 가봤는데 흔적도 없고…. 멸살법에도 나오지 않았던 시나리오야.”

“저대로 계속 작아지게 놔둘 순 없잖아.”

“방법을 찾아야하는데….”

팔짱을 끼고 있던 김독자와 한수영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두 사람과 함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유중혁은 계속 고개를 들고 있던 게 무리가 갔는지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목덜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 유중혁이라도, 너덧살 가량의 작은 체구로 큼지막한 티셔츠를 걸친 채 팔다리를 꼼질거리는 건 어느누가 봐도 지나치게 귀여웠다.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지혜가 흐물거리는 곡소리와 함께 귀여워! 를 연발했다.

해결된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지만 시나리오 오류로 인한 것이라면 늦어도 일주일 안에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김독자의 이야기와, 다른 화신들에게 물어서라도 화신체를 되돌릴 방법을 알아보겠다는 이설화 덕분에 유중혁도 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유중혁을 맡게 된 김독자가 첫날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한수영의 옷이 너무도 커진 터라 길영이의 옷을 몇 벌 받아온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속옷까지는, 미처 준비하지 생각하지 못했다. 늦은 저녁, 유중혁이 고집스럽게 홀로 욕실에 들어가고 난후 침대 위 시트를 정리하던 김독자가 희미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몸을 움직였다. 욕실문이 빼꼼히 열리고 아이가 된 유중혁이 커 보이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밑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왜그래?”

“…이… …다….”

“응?”

아이답지 않게 얼굴이 울긋불긋해진 유중혁은 아래로 떨군 시선을 들지도 못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속옷이…엄따….!”

“…어….”

으, 으음, 어어.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김독자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훑어 내려갔다. 굳이 입을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다름이 아니라 이미 걸쳐진 후드티가 유중혁의 발목까지 내려오는 탓에 완벽한 한 벌옷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수치심으로 터지기 일보 직전인 얼굴을 보고, 김독자는 얌전히 그를 달랬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하루만 참자. 내일 꼭 구해올게. 응?”

“…….”

유중혁은 아이처럼 자신을 달래는 김독자의 말투를 쏘아붙이려다가 포기하고 그냥 한숨만 푹 내쉬었다. 댓살 꼬맹이가 노인네처럼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며 이질감을 느낀 김독자가 삐거덕거렸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덜 마른 유중혁의 머리카락을 살살 털어주었다.

가까이에서 아이를 보살펴본 경험이 없는 김독자는 뭐만했다하면 유중혁이 부서지기라도 할세라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을 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오죽하면 침실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거리에서 ‘안아줄까?’라고 말하며 등짝을 얻어맞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매서운 얼굴로 내려친 것과는 달리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다행히 유중혁은 눈에 띄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아니면 아주 미세하게 작아지고 있는 것이거나. 어쨌거나 안도와 걱정이 반반 섞인 숨소리를 토해내며 김독자가 침대 위로 누웠다. 혹여나 가장자리로 떨어질까 싶어 벽쪽에는 꼬마 유중혁을 눕혀주었다.

“잘자, 중혁아.”

“…….”

“…음?”

어째 이불을 정리해 덮어주고 불을 끄고 오는 동안에도 조용하다 싶었더니, 10분도 안되는 시간에 이미 유중혁은 잠들어 있었다. 원래 아이들은 잠이 많다고 하지 않던가. 김독자가 피식 웃곤 비죽 튀어나온 유중혁의 작은 손을 이불아래로 집어넣어 주었다. 잠시 몸을 뒤챈다 싶더니 이제는 아예 도롱도롱 콧소리까지 들려왔다. 김독자는 핸드폰을 들어 촬영하고 싶은 생각을 꾹 참고 가만히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식을 키운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드문드문 들려오는 숨결을 듣고 있으려니 멀뚱하던 정신도 서서히 잠에 빠져들어 갔다.

 

 

“안댄다!”

“아이고…중혁아….”

“시러! 실타구 해따!”

침대 매트리스에 머리를 푹 박고 악을 써대는 유중혁의 곁에서 김독자는 죄인처럼 무릎을 꿇은 채 그를 달래고 있었다. 아직도 잠옷대신 입었던 후드티를 둘둘말고 둥그렇게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가 작은 너구리처럼 보였다.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 것까지는 좋았다.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며 나란히 씻고 나온 것까지도 좋았다. 문제는 그놈의 속옷이었다.

“중혁아…. 근데 그게 제일 작은 사이즈라는데….”

“…으윽….”

유중혁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를 잘근거리면서도 발목까지 오는 후드티는 양손으로 꼭 쥔 채 놓질 않았다. 무릎을 꿇고 있는 김독자의 앞에는 앙증맞은 크기의 팬티 한 장이 놓여있었다.

알맹이가 유중혁이라도 일단은 아장거리는 아이의 몸이었다. 그런 이에게 맨몸으로 옷을 걸치게 하기엔 보온문제도 그렇고 위생문제도 있으니 속옷이라도 입히고 나서 겉옷을 입히라는 이수경의 현실적인 조언을 따라 이현성이 잽싸게 구해온 어린이용 팬티였다. 단지, 구할 수 있는 것 중 제일 작은 사이즈임에도 지금의 유중혁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원래 저 정도 나이대엔 기저귀를 채우니까.”

“……아.”

김독자가 멍청한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유중혁이 따라서 입을 벌리고 있다가 탱글탱글한 얼굴을 와그작 구기며 뒤늦게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 하능거냐, 이수경!”

“기저귀….”

“김돋짜, 멀 고민하나! 안입는댜!”

“역시 그게 낫겠죠.”

주춤. 유중혁이 입을 꾹 다물고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일단 쪼르르 뒤로 달려가 이현성의 다리사이로 쏙 숨어버렸다. 작아진 몸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태세였다.

열이 뻗쳐 새빨개진 얼굴로 씩씩대는 모양새에도 겁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흐뭇한 얼굴로 부드럽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다행히 유중혁의 거센 반발로 기저귀를 차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이, 꼬마 어디 갔냐.”

평소였다면 점심때가 다 지나가도록 늦잠을 자고 있었을 한수영이 어쩐 일로 아침부터 움직였다. 사실 이유는 지나가는 개도 알만큼 뻔했다. 짓궂게 올라간 입꼬리는 어째 불순한 의도만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김독자가 물에 젖은 손을 털며 슬쩍 눈짓을 했다. 때마침 아침준비를 끝내고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자리를 잡고 있던 참이었다.

식탁의자 하나에는 여러 개의 쿠션이 층층이 쌓여있었다. 아직 의자의 주인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건만 한수영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대는 숨소리를 흘려댔다.

“저럴 거면 아기의자를 하나 구해오지 그랬냐.”

“…구해오면 앉을 것 같냐?”

“크흫…아니.”

“그만웃고 너도 밥이나 먹어.”

둥그런 식탁위로 한사람분의 식사가 더 차려지고 난 후에야 안쪽에서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이지혜의 품에는 까만 반 곱슬머리가 폭 매달려있었다. 엊그제까지 스승과 제자사이였던 두 사람은 똑같은 흑발에 비슷한 상의를 걸치고 있어서인지 남매같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얼굴은 전혀 닮지 않았다.

이미 한수영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유중혁은 이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수치심으로 바들거리고 있을 얼굴이 훤히 그려졌다.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은 한수영이 포크를 입에 문 채 턱끝을 까딱였다.

“어이, 유중혁.”

“…….”

조막만 한 주먹이 조금 더 세게 이지혜의 후드집업을 말아쥐었다. 뒤통수만 보이는데도 앞에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처음봤을 때부터 귀엽다는 감탄사만 연발하던 이지혜도 여전히 생글거리며 품 안의 작은 몸뚱이를 제대로 고쳐안았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한수영은 큭큭거리며 자꾸만 재잘거렸다.

“중혁어린이, 오늘도 기분이 별로인가 보네?”

“야, 그만해. 애 빡치게 왜 자꾸 놀려먹고 그러냐….”

“애라고 하지 마라, 김돗짜…!”

아니, 왜 나한테만…. 김독자가 억울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제야 한수영도 입을 다물고 자세를 고쳐앉았다. 쿠션이 잔뜩 쌓여있는 의자위에 조심스레 유중혁을 내려놓은 이지혜도 식탁 아무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차마 아이들에게만 식사준비를 시킬 순 없어 김독자가 아침을 준비했는데, 과정은 요란하긴 했어도 다 차려진 식탁위는 꽤나 그럴싸해 보였다. 미심쩍은 얼굴로 콩나물국을 떠먹어본 신유승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중혁아저씨가 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먹을만해요.”

고, 고맙다. 유승아…. 아직 식기도 들지 않은 김독자가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며 빈자리에 앉았다. 유중혁도 손에 비해 커다란 수저를 잘도 쥐고 혼자 그릇에 얼굴을 박더니 몇 번 국물을 떠먹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맛있을 수밖에 없는 게, 재료준비부터 양념까지, 전부 유중혁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달그락거리는 식기소리만 퍼지는 식탁위에서, 자꾸만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몸이 작아지니 손가락마저도 짧아진 유중혁이 젓가락을 쥐지 못하고 계속 허우적거리더니 이내 수저로 달걀말이를 조각내기 시작했다. 남들이 한입에 먹을 것을 열조각으로 분해해놓곤 만족스럽게 제 손바닥만 한 어른수저로 퍼먹는 것을 보고, 결국 한수영이 고개를 떨궜다.

“킇끅…흡큭끅….”

애처롭게 웃음을 참는 소리가 식탁아래로 줄줄 새어 나왔다. 유중혁이 매섭게 노려보고 김독자가 한숨을 내쉬는데도 한번 터진 웃음보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김독자가 젓가락을 들고 유중혁의 밥그릇에 반찬들을 작게 잘라 올려주는걸 보곤 아예 꺽꺽대며 고개를 젖히기까지 했다.

“…내일부터 넌 오지 마라, 한수영.”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한수영을 째려본 유중혁은 김독자의 선언에 고개만 끄덕거렸다. 언뜻 체념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신 사나운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나가고 전날내내 시나리오 오류를 해결하려 이리저리 수소문하던 아일렌이 침울한 표정으로 김독자 컴퍼니를 찾아왔다.

자꾸만 이길영이 툭툭 찔러대는 통에 김독자에게 도망 와 달라붙은 유중혁은 올려다보는 게 고개가 아팠는지 양팔을 쭈욱 위로 뻗었다. 그러자 김독자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팔 아래로 손을 넣어 양옆구리를 붙잡았다. 그리곤 유중혁을 품에 안아 들었다. 누가보면 아드님이 참 잘생겼다며 몇 살이냐고 물어볼 듯한 모습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김독자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는 유중혁과, 엉덩이까지 받치고 작아진 유중혁을 안아 드는 김독자를 보며 아일렌이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두 사람 그렇게 사이가 좋은줄은 몰랐네요.”

“어…이건.”

“헛쏘리 하지 마라.”

짤막한 혀로 내뱉는 목소리는 위압감이라곤 전혀 없었지만 아일렌은 시선을 돌리고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어딘가 피곤한 얼굴로 찾아온 아일렌이 잠시 말을 고르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전에 한번, 공단근처에서 발견한 적이 있는 시나리오 함정같다고 그녀는 말했다. 시나리오 함정은 단순한 성좌들의 놀잇거리로, 지난번 공단에서 발견된 시나리오는 보상과 함께 화신체가 오리로 변해버렸다가 닷새가 지나고 나서야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만우절도 아니고 무슨….”

김독자가 시선을 내리깔며 중얼거렸고 유중혁은 침음했다. 어쨌거나 원래 화신체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고, 시간이 해결책이라는 소리였다. 혹시라도 더 나은 정보가 들어온다면 전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아일렌이 우물쭈물했다. 뭔가 더 남은 게 있나? 김독자가 갸우뚱하며 의문스러운 시선을 던지자 망설이던 아일렌이 민망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그….”

“뭐 잘못됐어?”

“아니…. 제가 아이들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어….”

그렇구나…. 김독자가 바람빠지는 소리를 하는 동안 그 자리에 있던 모든이의 시선이 유중혁에게로 쏟아졌다. 얼이 빠진 채 아일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중혁이 정신을 차리고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딱 한 번만 안아보면 안될까요…?”

“…안될 건….”

김독자의 대답이 튀어나오기도 전, 아일렌은 잽싸게 다가와 자그마한 유중혁의 발을 붙잡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벌레라도 붙은 듯 유중혁이 두 다리를 파닥거렸지만 작은 체구가 버둥거리는 것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아일렌이었다. 잠깐이잖아, 어쩐지 미안해 보이는 얼굴을 한 주제에 김독자는 뻔뻔하게 유중혁을 건넸다. 한참 동안 만져지고 주물럭거려진 후에야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된 유중혁은 얼이 나간 낯으로 어깨를 부들거렸다.

“…다 필요엄따…! 이 배싱댜들…!”

“진짜 미안…. 그래도 저렇게 좋아하잖냐.”

삶에 여한이 없다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 아일렌을 보며 김독자가 싱긋웃었다. 이 새끼 어쩐지 즐기는 것 같군…. 유중혁이 의심가득한 눈초리로 김독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우쭈쭈하는 혀가 반 토막 난 소리 뿐이었다.

어쨌거나 길어야 며칠이면 이 꼬락서니에서 벗어난다는 확신이 생겼으니 유중혁은 어르고 달래는 김독자 컴퍼니의 손길을 꾸역꾸역 참아냈다. 간혹가다 한수영이 말도 안 되는 물건을 가져와 놀려대기도 했지만, (예를들면 뾱뾱소리가 나는 신발이나 유아용 유모차 등등) 그것도 몇 번 겪다 보니 익숙해졌다. 그래도 딱 한 가지 문제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중혁아. 맘마먹자.”

“…마아…!”

이 빌어먹을 시나리오 부작용은 자꾸만 유중혁의 몸을 어려지게 만들었다. 고작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 유중혁은 이제 걷다가 중심을 못잡고 넘어지기도 했다. 몸이 작아지니 균형이 잡히질 않아 자꾸만 뒤뚱거리기 일쑤였고, 성대는 발음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정말 두어살 아이의 몸이 되었는데 정신만은 멀쩡하니 유중혁은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만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만만이었지만 정작 이빨이 다 나질않아 말짱 도루묵이었다. 혀는 있는데 깨물 이가 없었다…. 덕분에 나흘째가 되는 날, 다른 이들이 평범한 밥상앞에 앉아있을 때, 유중혁은 김독자의 무릎위에 앉아 미음이나 떠먹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떠먹고 있는 게 아니라 떠먹여지고 있었다. 이놈의 몸뚱이는 본능만이 남아서인지 자고 일어나면 배가 고팠고 밥을 먹으면 잠이 쏟아졌다.

진하게 몰려오는 현타에 유중혁이 정신을 빼놓고 있는 사이 밥 한 그릇을 먹이고 트림까지 시켜준 김독자는 어디선가 주워온 포대기를 집어 들었다. 이 자식은 왜 아무렇지도 않게 날 육아하고 있는 것인가…. 사납게 눈을 치켜뜨려던 유중혁은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허망하게 축 늘어졌다.

“왜그래, 중혁아. 졸려?”

졸리기는 무슨. 이라고 하기에는 눈꺼풀이 벌써 무거워져 가물거렸다. 날 재우려고 하지 마라, 김독자! 라고 소리쳤지만 목구멍에서는 완성되지 않은 자음모음만 주르륵 쏟아졌다.

“으응…. 흐찌마야…!”

“그래, 그래.”

본인마저도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얼굴에 그늘이 져가는데 김독자는 어째서인지 찰떡같이 알아듣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당장에라도 눕힐 듯이 기울어져 있던 몸이 다시 바르게 세워져 김독자의 한팔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혀졌다.

“잠들기 싫지?”

“으우응….”

아직 날은 밝았지만 슬슬 작아진 유중혁에게 익숙해진 김독자 컴퍼니는 첫날처럼 죽어라고 그의 곁에 붙어있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단련을 하기 위해 나섰고, 그저 순찰을 돌기 위해 나선 이도 있었으며, 가벼운 산책을 위해 나간이들도 있었다. 그 덕에 느지막한 오후엔 김독자와 유중혁만이 집안에 남아있었다.

사흘, 짧은 기간 동안 본인마저도 기억하지 못했던 유중혁의 어린 모습은 꽤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스스로는 몰랐겠지만 김독자 컴퍼니의 모든 사람들은 이제 그 사실을 알았다. 어딘가에 집중하면 쥐락펴락하는 작은 주먹과 앞머리에 가려지지 않은 동그란 이마, 오물거릴 때면 한쪽으로만 삐죽올라가는 입꼬리. 아마 설정값에 지워져 잃어버렸을 어린 유중혁의 습관, 내지는 그의 몰랐던 모습들일 터였다.

십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사람의 생을 지켜봐 온 김독자였기에, 아무도 모르는 유중혁의 모습은 색다르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였다.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유중혁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당연히, 사랑스러웠을 어린 시절이었다.

매일 강하고 굳센 모습만 보여주는 이가, 비록 오류로 인한 것이라고는 해도 잊혀진 시절의 모습을 내보인 것에, 김독자는 새삼 마음이 아른거렸다. 자신을 살게 한 주인공도, 자신과 같은 시기를 지나왔고, 결국 지금에 와서 나란히 어깨를 마주했다는 사실에 이유 모를 충족감이 밀려왔다.

“내일이면, 돌아올 거야.”

아직 해는 길게 늘어져 창문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지만 오래간만에 느끼는 여유로움과 고요함에 두 눈이 깜박였다.

“중혁아.”

커다란 요에 덮인 채 품에서 꼼지락거리던 작은 아이는 의미 없이 튀어나오는 목소리를 대신해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눈망울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짙은 은하수가 검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여태껏 걸어왔을 수많은 시간의 잔재였다. 김독자는 그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느리게 입을 열었다.

“…내일은 무림만두를 먹자.”

오늘 점심까지만 해도 식사당번은 김독자였다. 그 사실은 유중혁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김독자는 무림만두를 만들어 본적이 없었다. 당연히, 유중혁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내일의 일상을 계획하는 한마디가, 서로의 불안함을 잠재웠다.

“닭국물도 같이 먹는 게 좋겠지?”

품 안에 안긴 아이는 그새 더 작아져 있었다. 시나리오의 부작용이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자그마한 손바닥은 쭉 펼쳐도 간신히 김독자의 눈하나를 가릴 정도였다. 그만큼 작은 손아귀가, 느릿느릿 뺨을 타고 올라와 김독자의 눈꺼풀을 꾸욱 눌렀다.

“…그래.”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지만 김독자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고 너른 소파 위에 길게 몸을 뉘었다. 혹시라도 자그마한 아이가 짓눌릴까 한쪽으로 몸을 구겨넣고,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얼굴을 쓸어내리던 참새 같은 손길도 점차 느려지는가 싶더니, 조금 더 가슴팍으로 파고들어 왔다.

“잘자.”

역시나 답은 없었다. 고작 며칠이었을 뿐인데, 잘 자라고 속삭여주는 동굴 같은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자리에 누우면 말없이 토닥거리는 커다랗고 단단한 손바닥이 생각났다. 이 어둠이 끝나고 나면, 어릴 적 자신을 버티게 해주었던 그 사람의 온기가 돌아와 있기를 바랬다. 여전히 김독자는 독자(讀者)였기에, 이야기를 품는 것보다는, 사랑했던 이야기에 품어지는 것이 익숙했다. 밝은 땅거미는 그들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고 더디게 저물어갔다.

 

 

“야아! 김독….”

쾅, 소리와 함께 노크도 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한수영이 자신을 사납게 노려보는 눈빛을 마주하곤 덜그럭거렸다.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사이 크게 콧방귀를 낀 사내가 먼저 몸을 틀었다.

“…언제 돌아왔냐?”

“오늘 새벽.”

“흐으으음…. 에이,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알았으면 좀 더 놀려먹는 건데.”

씰룩이며 치켜올라가는 눈썹을 보고 한수영은 새초롬하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제집처럼 신발을 벗고 소파 위에 드러눕는 한수영을, 유중혁은 말리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불위에 올려둔 냄비에만 온신경을 쏟아부었다. 집안가득히 고소한 냄새가 퍼지자 이른 시간임에도 하이에나처럼 냄새를 맡은 김독자 컴퍼니가 한명씩 나타났다.

“너도 참 부지런하다. 돌아오자마자 뭐하냐?”

“당연한걸 묻는군. 네 놈들 입으로 들어갈 식량준비지 뭐겠나.”

“…아침 식사를 무림만두로?”

“싫으면 굶어라.”

어휴 저 싸가지없는놈…. 혀짧고 앙증맞은 꼬맹이 유중혁이 그립다며 한수영이 길게 한숨을 쉬자 유중혁이 혀를 찼다. 대충 끓기 시작한 냄비에 뚜껑을 살짝 덮어두고 유중혁은 앞치마를 벗었다. 허리에만 둘러매도록 생긴 검은색 앞치마를 한쪽 협탁에 올려두고 굳게 닫혀있는 침실문을 열었다.

밤중에 자리를 옮겨둔 그상태 그대로 잠들어있는 김독자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자세히보면 옆으로 돌아누워 몸을 말고 있는 와중에, 자그마한 공간이 붕떠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를 품고 있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 일부러 비워둔 것인지. 뭐가됐든 그 자리의 주인은 정해져 있었다.

“…김독자.”

침대맡에 걸려있는 자그마한 후드티가 거슬렸지만 유중혁은 치우지 않았다. 침대아래에는 제 주먹보다 작은 신발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것에도 유중혁은 손대지 않았다. 며칠간 제대로 움직이지 않은 몸이 뻐근했지만 자신을 끌어안고 있던 팔의 감촉은 분명하게 남아있었다. 다정하게 등어리를 감싸 안던 온기도, 그대로였다.

“이제 일어나라.”

미동도 없던 몸뚱이가 앓는 소리를 내며 길게 몸을 늘였다. 고양이처럼 늘어져라 기지개를 한번 펴고 난 후 김독자는 한쪽 눈만 빼꼼히 떴다. 이어 젖은 땅 위에 무지개가 피어나듯 까만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까치집을 지은 머리를 빗겨주는 커다랗고 단단한 손바닥에 김독자는 이마를 비볐다. 이제는 자신보다 눈높이가 낮지 않은 사내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싱긋 지었다.

“돌아왔다.”

그를 따라서 김독자도 졸음이 남아있는 눈을 활짝 휘며 웃었다.

“어서 와.” 


성인 판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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