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GM과 함께 읽어주시길 권장합니다.





“.....N은.”

“이틀째 물 한 모금도 안 마십니다.”

“죽겠다고 시위라도 하는 거야, 뭐야.”


분노인지, 걱정인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뒤섞인 태형의 어려운 표정을 살피며 지민은 소리 없이 작은 숨을 내쉬었다. 캐슬을 중심으로 모든 상황이 급작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빠르게 타들어 가는 도화선 끝에 다다른 험악한 시한폭탄을 두 팔에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도무지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서렸다. 지금 두 다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불운한 예감이 밀려들었다. 지민은 연신 마른 입술을 제 혀로 축였다.


“모스크바에 있는 제 파실니로부터 전갈이 왔습니다, 킹.”


윤기가 다급한 걸음으로 뛰어 들어왔다. 태형이 그에게 시선을 내주었다.


“모스크바 제일의 킬러 둘이 샤이탄의 사주를 받고 얼마 전 출국했다고 합니다.”

“.......”

“임무는 캐슬의 킹과 나이트의 암살.”


보고를 마친 윤기가 태형과 지민을 바라보았다. 찬물을 세차게 끼얹은 듯한 숨 막히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부디 여기서 더 이상의 폭격은 없길 바랐으나, 지민의 바람은 곧이어 뛰어 들어온 폰 하나에 의해 무참히 박살 났다.


“킹...! 큰일 났습니다.”


불운한 예감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청담동 호텔 리모델링 공사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준비된 무대 위의 검은 막이 드디어 오르는 듯했다.





K를 위하여

#25

Written by. Etoile





이보다 더 시기적절한 기회는 다신 오지 않으리란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왠지 모르게 캐슬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칠흑처럼 어두운 옷을 갖춰 입은 정국과 남준은 라이플 조준경 너머로 캐슬의 동태를 살폈다. 30분 전, 킹과 비숍을 태운 검은색 세단이 비명처럼 커다란 파열음을 내며 저택을 빠져나갔다. 남준은 그 이유를 진즉 알고 있었으나, 정국에게는 속내를 삼켰다. 단지, 캐슬에 무슨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난 것 같다는 분위기를 전할 뿐이었다. 정국은 지금이 바로 하늘이 주신 천운의 기회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쥐고 있던 라이플을 남준의 곁에 인기척 없이 내려놓는 대신, 허리 뒤춤과 가슴 그리고 하체에 찬 벨트 포켓 여럿에 38구경 핸드건 3정과 탄창을 장착한 정국이 낮게 몸을 숙였다. 단단한 몸에 걸린 나이프 또한 셀 수 없었다. 그의 손가락 두어 개가 캐슬의 저택 쪽을 찔렀고, 남준은 무언의 고갯짓을 했다.


정국은 시야를 제외한 얼굴 전체를 덮는 검은 복면과 적외선 고글을 착용했다. 비장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초연한 그 얼굴을 바라보는 남준을 향해 오른쪽 눈을 한 번 깜빡이더니, 그가 곧이어 캐슬을 향해 홀로 잠입했다. 명확한 목표가 생긴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고, 망설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엄폐한 그는 마치 어둠 그 자체 같았다.


어렴풋이 느껴졌던 정국의 형체가 곧 감쪽같이 시야 속에서 사라졌다. 남준은 빠르게 레이더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좌표가 석진이 있는 곳을 향해 정확히 나아가고 있었다.


“한 시 방향, 셋. 왼쪽 7시 방향 둘은 나한테 맡겨.”


무전기를 통해 지시 내리자 어둠 속에서 풀썩, 시체가 쓰러지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푸슉, 푸슉. 소음기를 장착한 라이플에서 발사된 탄환이 험험한 캐슬의 저택을 지키던 자들을 맥없이 바닥 위로 추락하게 했다. 남준이 손쉽게 7시 방향 둘을 처리할 동안 정국은 이미 셋을 골로 보낸 뒤였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그를 나타내듯 빠르게 움직이는 좌표를 바라보며 남준은 무전기를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나이트가 있는 곳은.”]

“오른쪽 3시 방향으로 10m 전진 후 왼편 계단으로 올라가.”

[“그 귀한 캐슬 내부 설계도는 어떻게 구한 거야, 바알.”]

“우리 서로 사생활 같은 건 묻지 않기로 합의 봤잖아?”


인이어 너머로 그가 피식, 웃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캐슬 저택의 내부 설계도를 얻는 것은 꽤나 쉬었다. 국정원에서 오랜 기간 동안 캐슬의 목을 비틀 준비를 하며, 캐슬에 숨겨 둔 스파이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조심해, 미카. 캐슬의 룩은 너만한 실력자야.”

[“글쎄. 지킬 게 생긴 나는, 그 누구한테도 질 수가 없는데.”]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남준은 소리 없이 웃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그의 다소 오만한 자신감은 철저한 실력이 뒷받침을 했다. 남준이 딱히 지시 내리지 않아도 동물의 것과도 같은 그의 육감은 적의 소재와 움직임을 몇 수 앞서서 파악했고,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동작으로 적의 급소를 강타, 기절시켰다. 제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몸의 곡선은 마치 무용수의 동작처럼 고요했고, 유려했다. 바닥 위로 쓰러지는 몸뚱이의 소음조차 그는 허락지 않았다. 힘이 풀려 늘어지는 육중한 몸들을 받아 바닥 위로 사뿐히 내려놓는 와중에도 주변 경계를 늦추는 법이 없었다. 죄 열린 육감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으며, 본능은 이전에도 없던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남준의 백업으로 순조롭게 석진의 침실 앞 복도까지 다다른 정국은 낮은 포복으로 문 앞의 상황을 면밀히 살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장정 여럿이 그 앞을 꽤나 엄밀하게 지키고 있었다. 고글 너머로 번득이는 그의 안광에 의아함이 서렸다. 그들의 동태는 마치 죄인을 감금시킨 다음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이트가 갇혀 있어.”

[“뭐?”]

“문 앞에 조직원 넷. 룩의 외형을 가진 남자는 안 보이는데.”


하얀 피부에 날쌘 몸집을 지닌 서늘한 인상을 가진 사내. 샤이탄이 내보인 7년 전 사진 속에서 확인한 룩의 외양을 가진 이는 저 속에 없었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알 수 없는 감상 속에서 정국은 뒤춤에 닿는 나이프 두어 개를 오른손에 감아쥐었다. 대충 신체 어디든 맞히면 되었다. 방심한 틈을 타 실탄 네 발 갈기는 시간으로는 극히 충분했으니까.


조용히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신 이후, 다시 내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허벅지로 날아든 나이프는 그들의 무릎을 꿇렸고, 흠칫하며 사주 경계에 돌입한 멀쩡한 둘의 전두골이 정확히 두 발의 총성과 함께 뚫렸다. 그다음은 어쩌면 짜여진 대본과도 같았다. 바닥 위로 무릎이 짓이겨진 이들의 심장을 정확히 노린 두 발의 총성이 맹렬히 울려 퍼졌다.


“진압 완료.”

[“시간 없어. 서둘러.”]


고글을 벗어젖힌 정국이 문 앞에 섰다. 지체 없이 문고리를 잡아 돌렸지만 철컥거리는 소리만 날 뿐 열리지 않았다. 느릿한 그의 시선이 곧 육중한 문밖에 달린 걸쇠로 향했다. 쇠로 된 잠금장치는 별도의 열쇠가 필요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누가 봐도 가둬진 상태라는 게 명백해졌다.


“형, 문에서 떨어져.”


정국은 고민 없이 탄창을 갈아낀 핸드건을 고쳐 잡았다. 탕탕탕! 잠금장치 주변에 둥근 원을 그리며 탄흔이 줄지어 새겨졌다. 뻥 뚫린 원 안쪽의 약해진 지점에 주먹을 내리꽂자 잠금장치가 파편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그제서야 커다란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정국은 마침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진아.”


차가운 바닥 한편에서 등을 둥글게 만 채 앉아 있던 석진의 고개가 느릿하게 들렸다. 정국은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앞에 무릎을 접고 앉았다. 손을 뻗어 둥근 턱을 그러쥐자, 혈색 없이 파리한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감금당했어? 창가로 흘러드는 달빛에 반사된 정국의 또렷한 눈이 크게 번득였다.


방 안에 갇혀 있는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지긋한 상념들에, 정국이 약속한 3일 후가 오늘인 줄도 까맣게 몰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등장에 그를 바라보는 석진의 얼굴이 금세 하얗게 질렸다.


“.....정국아.”

“형을 가둔 거야? K가?”


조금 더 날이 선 목소리로 정국이 물었다. 석진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문득 시선을 돌려 바라본 문밖에는 초주검이 된 채 널브러져 있는 폰의 몸뚱이가 서넛 보였다. 그가 흠칫 몸을 떨며 그대로 질끈 눈을 감았다. 피 냄새가 났다. 뱃속에서 불쾌한 기복이 올라왔다. 석진은 밀려오는 토기를 누르려 핏기 없는 손으로 제 입을 콱 틀어막았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형, 괜찮아?”

“....우욱.”

“가야 돼. 일어날 수 있어?”


이틀 동안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해 곤죽이 된 몸이 정국의 팔에 의해 억지로 일으켜졌다. 팔랑거리며 휘청이는 허리에 팔을 깊게 휘감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석진은 멍한 얼굴로 그의 손길에 이끌리는 몸을 온전히 맡길 뿐이었다.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파리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정국은 어금니를 으드득 갈았다. 턱께에 둥근 근육이 움푹 자리했다. 상황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남준을 향해 정국이 무전을 쳤다.


“타깃 확보. 바로 이동할게.”

[“잠깐, 지금 누군가 그리로 간다. 들켰어.”]

“씨발.”


석진의 침실로 향하는 지민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신속했다. 그의 뒤를 폰 여럿이 서둘러 따랐다. 모두 무장한 채였다. 정원 바닥에 나뒹구는 시체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며 뻗어나가는 그들의 어두운 형상이 건물 안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안으로 들어갔어. 건물 밖으로 빨리 나와, 미카! 외부여야 엄호 가능해.”]

“형, 외부로 연결된 길 또 없어?”


분명 진득이 울린 총성을 듣고 지민이 무장한 채 달려오고 있을 터였다. 석진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정국과 지민. 두 사람이 마주친다면 둘 중 하나는 분명 죽는다. 날아가는 목숨이 누가 됐든, 그가 원하던 결말은 아니었다. 그들을 결코 마주치게 해서는 안 된다.


석진은 정국의 손을 낚아채듯 빠르게 움켜쥐고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길로 그를 끌어당겼다. 쉿. 정국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석진의 입을 세지 않은 힘으로 틀어막았다. 그제서야 석진은 타들어 갈 것만 같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와 똑같이 숨을 죽였다. 검은 두 형체가 기민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드나들었던 길인지라,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더라도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캐슬의 룩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상시를 위해 저택의 구석진 곳에 만들어 놓은 은밀한 길을 따라 건물을 도망쳐 나온 석진이 막 피부에 닿는 차가운 바깥공기에 숨을 훅, 크게 내쉬었을 때였다.


“N.”







날카로운 미성의 목소리. 정국은 뒤에서 석진을 부르는 그 이름 한 마디에도 일순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긴박함 속에서 축축이 젖은 앞머리가 차가운 바람에 속속히 말라붙었다. 석진은 떨리는 몸을 겨우 돌려 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지민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달빛 속에서도 형형히 빛난 채로 매섭게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N, 도대체 너는 뭐야?


“누구야, 너.”

“.....안 돼, 지민아.”

“내 이름. 부르지 마라, N.”


정국은 그가 명백히도 캐슬의 룩임을 알았다. 그의 외형에서 난데없는 살기와 위압감이 걷잡을 수 없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치직, 무전기 너머로 남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룩이야.”]

“엄호해.”

[“조준 완료.”]


지민의 눈이 번뜩였다. 제 몸에 드리워진 레이저 포인터의 붉은 점을 알아챈 순간, 그의 몸이 사라졌다. 간발의 차로 그가 있던 자리에 날아든 총알이 흙바닥에 박혔다. 정국은 건물 벽 뒤로 순식간에 몸을 감춘 그의 어깨 뒤로 나이프를 내던졌다. 그마저도 지민은 피했다. 일순 팔랑거리며 휘릭 돌아간 그의 몸이 그대로 땅 위에 단단히 중심축을 잡고는 핸드건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당긴다.


그때였다. 


안 돼, 죽이지 마. 귀에 꽂은 인이어로부터 들려온 처절한 목소리만 없었더라면 탄환 두 발 갈기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크윽, 멈칫하며 눈썹을 있는 대로 찌푸린다. 찰나와도 같은 그의 머뭇거림은 정국이 반격을 가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안 돼, 정국아!”


룩에게 겨누어진 총구 앞을 석진이 막아섰다. 하마터면 쏠 뻔했다. 정국은 방아쇠를 당기려던 동작을 가까스로 멈췄다. 무려 종이 한 장 차이였다. 0.1초만 늦었어도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이 석진의 가슴에 박혔을 거다. 끔찍한 상상에 순간 시야가 아찔했다. 정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 앞에 있는 석진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 있는 살인 병기 둘은 서로를 죽이고 싶어서 난리가 났는데, 정작 그들의 손발을 묶어대는 명령 속 주인들은 서로를 지키지 못해 안달이었다.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방패로도 쓸모없는 여린 몸을 내던진 석진이 정국과 지민 사이를 가로막은 채 처절하게 섰다. 이마를 흠뻑 적신 식은땀은 차가운 바람에 식어가는 반면에, 물기 어려진 두 눈이 허공 속에 맞부딪쳤다. 공기가 멈추는 듯했다.


“....동생이야?”


사무치도록 절절한 침묵을 깨고 지민이 조용히 물었다. 그대로 굳어있던 석진의 얼굴이 서서히 지민 쪽을 향했다. 투둑. 투둑. 무언가 얼굴 위로 떨어졌다.


“.....응.”


그토록 찾던 동생이면서, 왜 여전히 그런 얼굴인 건데, N.


지민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의 처연한 표정에 모든 전의를 상실했다. 그것은 정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 앞을 가로막은 석진을 바라보며 정국은 알 수 없는 절망을 맛봤다.


조금 전까지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밤하늘에서 난데없이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얄따란 빗줄기는 이내 속절없이 굵어졌고, 장대비로 바뀌었다. 거세게 쏟아져 내리는 빗물에 얼굴을 가득 적신 채로 선 세 사람의 형상이 암흑 속에 파묻혔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 자세에는 결코 흐트러짐이 없었으나, 그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고통을 관통하는 침묵 속에서 대치한 지 몇 분이 흘렀을까. 마치 영원할 것 같은 그 정적의 시간을 깨뜨리며 정국이 결국 석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N이 떠납니다, 킹.”

[“.......”]

“전정국과 함께요.”


잡을까요. 막을까요.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가지 못하게 할까요. 멀어져 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지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 가득 빗물이 적셨다. 눈물일지, 빗물일지 모를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치직. 인이어 너머에서도 아무런 명령은 들려오지 않았다. 사념에 갇혀 우뚝 서 있던 지민의 뒤로 폰 여럿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쫓지 않으십니까, 룩.”

“.......”

“룩?”

“.....아니.”

“예?”

“쫓는다.”





정국을 막아선 채 자신을 바라보던 석진의 얼굴이 파동처럼 잔잔히 일었다. 지민은 쥐고 있던 핸드건의 손잡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친동생을 만났는데 전혀 행복한 표정이 아니었잖아, N. 그는 어금니를 세게 뿌득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쫓겠습니다, 킹.”


그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무전기 너머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었다. 지민은 뒤따르는 폰 여럿을 대동하고 서둘러 그들이 지나간 길을 쫓았다. 그러나 주도면밀하게 미리 마련해 둔 퇴로를 통해 이미 사라진 후였다. 진흙더미에서 그들의 종적인 듯 보이는 발자국을 발견했지만, 퍼붓는 빗줄기에 그 이후의 자취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후우. 그가 깊은 숨을 내쉬며 빗물 덕에 이마 위로 잔뜩 쏟아져 내린 젖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올렸다. 그의 손과 머리카락 끝으로 가느다란 물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종적이 끊겼습니다.”

[“.......”]

“쫓아야 합니다.”


킹.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조금 더 힘이 실린다.


[“2시 방향으로 100m.”]


별안간 들려온 알 수 없는 좌표에 지민의 눈썹이 곡선을 그렸다. 의아함을 두른 반문보다 그의 명령을 따르는 몸의 반응이 더 빨랐다. 지민은 대답하는 것도 잊은 채 신속하게 몸을 움직였다. 자꾸만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의 빠른 몸놀림을 쫓는 폰의 동작이 매우 부산스러웠다.


“나이트 발견. 미카와 함께 있습니다.”


태형이 일러준 좌표대로 반신반의하며 그들을 추적해 따라온 곳에, 놀랍게도 석진과 정국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은 곧 무색히 사라졌다. 상대는 모스크바에서 이름을 떨친 그 위대한 킬러, 전정국이었다. 그를 대응하는 것 외 다른 사념을 지니기엔 다소 여유가 없었다.


“사살할까요, 킹.”

[“안 돼. 대기해.”]

“킹.”

[“기다려. 지민아.”]


이름을 부르다니, 반칙이잖아요. 뒤따라온 폰이 조달한 라이플 M16을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사정거리 안에 목표물이 들어와 있었다. 지민은 망원 조준경 안에 그들을 담은 채로 입술을 뿌득 깨물었다. 조금 전에도 그렇고 지금 또한, 그냥 죽여버리면 간단한 것을. 킹이 전정국을 죽이지 않는 이유를 모를 리 없었으나, 먼저 죽이지 않으면 되려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도 몰랐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조차, 방아쇠를 당기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손가락만 괜히 달싹인다.


“......!”


찰나였다. 정국이 뒤늦게 따라붙은 지민을 발견하곤 그를 저격했다. 무서운 놈. 이 먼 거리에서 조준경도 없이 이렇게 쏠 수 있다니. 제 뺨을 스친 총알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몸을 숨긴 지민이 다시 한번 두 사람을 쫓았다. 그러나 위협 사격 후 그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씨발.”


그가 낮게 욕을 중얼거렸다.


“사라졌습니다.”

[“......”]

“나이트가 배신했습니다.”

[“그럴 리 없어.”]

“킹!”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하, 지민은 깊은 숨을 내쉬며 제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저었다.


“....김석진은 캐슬을 버렸습니다.”

[“.......”]

“제 말 듣고 계십니까.”

[“...그가 다친 곳은.”]


다친 데는 없었나.


“미카가 목숨 걸고 지키던데요.”


이 와중에도 당신은 그를 걱정하시는군요. 지민이 곧 몸을 일으켰다. 표적이 사라졌으니, 임무 종료다.


“100m 사정거리 밖에서 미카가 쏜 리볼버에 죽을 뻔했습니다.”

[“살았으니 됐잖아.”]

“B 대신 제가 와서 다행이시죠?”


민윤기라면 킹의 명이고 뭐고, 쏴서 죽여버렸을 테니까요. 지민은 뒷말을 삼켰다.


[“캐슬로 돌아와.”]

“예. 킹.”


즉각 대답한 그가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호텔 리모델링 공사에서 난데없는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었고, 이는 호텔에 치명적인 위험의 소지로 매우 충분했다. 그것은 곧, 호텔을 이루고 있는 구조물 주축이 불량이라는 뜻이었고, 부실 공사로 증축된, 한 마디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호텔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삽시간에 이 보도는 언론을 탔고, 여론이 쏠렸다. ‘청담동 모 오성급 호텔의 부실 공사 적발, 이대로 안전한가?’ 따위의 헤드라인을 내건 기사들이 속절없이 쏟아져 나왔다.


태형은 리모델링 공사 건의 비보를 듣자마자 호석이 있는 개인 사무실을 찾았지만, 그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난장판이 된 사무실 테이블 위에서 휴지 조각이 된 통장을 발견했다. 물론 그 안에 들어있던 천문학적인 투자금과 수익금 또한 공기처럼 증발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청담동 호텔과 관련된 이슈로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이를 처리하기 위해 부리나케 떠난 킹이 캐슬을 비운 사이 킬러들이 저택에 들이닥쳤고, 전정국이 나타났으며, 김석진과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증발한 텅 빈 방 안을 바라보며 태형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의 뒤를 윤기가 부러 인기척을 내고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넋 나간 사람처럼 아무런 움직임 없이 굳어진 채였다.


“정 실장을 물색하여 호텔 경영 고문관으로 들이자고 제안한 자는, 나이트였습니다.”

“알고 있어.”

“정 실장에게 넘겨받은 샤이탄과의 투자금 거래명세표와 실제 입금액에서 차이를 발견했으나, 그것을 보고하지 않은 자, 또한 김석진입니다.”


무겁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샤이탄에서 사주한 킬러, 미카의 본명은 전정국이며, 그와 함께 한국으로 동반 입국한 자는 ‘바알’. 신원 추적이 안 됩니다.”

“.......”

“.....킹.”


윤기는 아연하고도 참담한 표정으로 킹의 등을 바라보았다.


자물쇠가 죄 부서진 문을 험상궂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지민이 주인 잃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이트를 잃은 체스 위의 말들이 패잔병처럼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내던져졌다. 자리 하나가 났을 뿐인데 뼈에 사무치는 이질감이 들었다. 남겨진 자들의 무력한 처량함이 걷잡을 수 없이 그 밀도를 채웠다.


지민은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의 태형을 살폈다. 하나뿐인 제 아버지를 잃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표면에는 아무것도 깃들어 있지 않았으나, 그의 눈은 여전히 섬뜩했고 형형했다. 무언의 전율이 일었다. 지민은 복부에 가득 힘을 주고 그의 명을 묵묵히 기다렸다.


숱한 사념과 사심을 삼켜낸 고통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캐슬의 킹이 본인의 뜻을 포고했다.


“N은 전정국의 친형이 아니고, 그의 신원, 출생, 나이, 모든 건 다 미상. 내가 김석진을 처음 만났던 건 ‘에덴의 집’이 아닌, 집창촌의 한 골목이었어. 캐슬의 마약을 빼돌린 전정국 친부의 아래에 한 아이가 짓눌려 있었지. 그게 바로 N이었어.”


지민조차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고요히 울려 퍼지는 킹의 목소리를 따라 당혹감이 서린 윤기와 지민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런데도 김석진은 전정국의 친형 행세를 했어. 기억에 이격이 난 게 사실이었을지 그 모든 게 다 연기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캐슬을 속이기 위해 신분 위장이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

“....그의 배후는 누굽니까.”

“모르겠어. 그러나 한 가지 정확한 건.”

“.......”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왔었고.”


태형이 몸을 돌렸다. 자신의 등을 우러러 바라보고 있는 룩과 비숍에 그가 시선을 맞추었다.


“그 새끼들이 누구든지 간에, 캐슬의 목을 노린 대가는 죽음으로 치르게 될 거다.”


생태계 정점에 선 최상위 포식자의 것처럼 그의 눈빛이 맹렬하게 번뜩였다. 그를 우러르던 두 사람의 고개가 마치 짠 것처럼 절로 숙여졌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전율했다. 목울대가 뜨거워진다. 손끝에서부터 미세한 떨림이 퍼져나갔다.


“이렇게 될 거란 걸, 어느 정도 예상했어. 그래서 강원도 호텔 경영권은 Q한테 독자적으로 맡겨놨던 거고.”

“예? 일부러 넘기신 거였습니까?”

“응. 2호점이었으면 지금쯤 싸잡혀서 망했겠지.”


태형은 킹핀의 죽음 직후, Q와 은밀하게 주고받았던 밀의를 떠올렸다. 그것은 형제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않았던 둘만의 계책이었다.


“청담동 호텔은 버리고 간다. 지금부터는 샤이탄, 전정국과 그 킬러, 그리고 쥐새끼처럼 숨어있는 ‘그 배후’에 대항하는 데에 총력을 가할 거야.”


그의 머릿속에는 체스 보드 위 모든 기물들의 역할이 이미 명백히 자리하고 있었다.


‘체크 메이트.’


킹의 죽음을 경고했던 N의 구호는 곧, 되려 그들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캐슬의 송곳니에 숨통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태형은 부드럽게 웃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여유로운 냉정함을 유지하는 그 모습에 지민은 이제까지 와서도 가히 두려움을 느꼈다.


“그렇다면 저희 쪽에서 ‘그들’을 어떻게 쫓죠?”


윤기가 쓰읍, 습관처럼 숨을 들이켜며 물었다.


“그 중심에는 김석진이 있어. N을 찾아야 돼. 그럼 모든 걸 알게 되겠지.”

“N은 전정국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를 어떻게,”


의아해하는 지민을 향해 태형이 천연스럽게 말했다.


“목걸이.”


위치추적기 달아놨거든.


















(+) 룩 헌정 편입니다. 룩짐니 너무 좋아여 흑흑...


1편 도입부 장면 떡밥 드디어 회수 성공..! 감격스럽네요ㅠㅠ 1편 초고 작성했을 때 생각도 새록새록 나구요. 실제로도 첫 편의 이 도입부 장면을 시작으로 스토리 구상이 시작됐던지라 K를 위하여의 첫 시작이었던 큰 의미의 장면이 나오기까지 연재를 이어올 수 있어 왠지 감개무량합니댜...😭


* 혹시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해당 장면에서 룩 대사 한 마디가 수정되었습니다. 


1편 수정 전.

“100m 사정거리 밖에서 미카가 쏜 리볼버에 죽을 뻔했습니다.”

[“살았으니 됐잖아.”]

"일부러 B 말고 저를 보내신 거죠?"

25편 수정 후. 

“100m 사정거리 밖에서 미카가 쏜 리볼버에 죽을 뻔했습니다.”

[“살았으니 됐잖아.”]

"B 대신 제가 와서 다행이시죠?"

->의미가 아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수정 후의 대사가 상황이랑 조금 더 잘 맞고 훨씬 매끄러운 것 같아서 25편에서 수정되었으며, 1편 역시도 따라 수정되었습니다. 아무쪼록 독자님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ㅠㅠ


* * 추가로 약간 설명충 같지만 나이트 관련 떡밥 회수 코멘터리 드립니댜앗


K를 위하여 12편 中

"사업 수완 괜찮은 사람으로 한 명 알아봐, N."

호텔 경영에 쓸만한 놈으로. 돈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태형의 말에 석진이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형이가 직접 석진이한테 지시 내렸었죠. 네 역시 석지니가...


K를 위하여 20편 中

"전에 보고했던 누락되었다는 샤이탄 쪽 투자금. 금액 정리해서 나이트한테 전달해."

"투자금 정리 파일과 입금 계좌 내역까지 함께 부탁드립니다."

석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추가 요청을 덧붙였다. 호석은 곧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껏 의미심장하게 투자금 정리 파일 달라해놓고, 이후 언급 없었습니다. 네 이것도 석지니가22....



K를 위하여는 총 31편 분량으로 완결 될 예정이며, 따로 외전 계획은 없습니다.

최대한 제가 싸질러놓은(? 떡밥들 자아알 회수해서 마무리 짓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아.



오늘 약간 사담이 긴데(머쓱 마지막으로요,

항상 메세지와 댓글로 감상 남겨주시는 분들 제가 징짜 사랑해여...(질척

여러분들의 감상이 제게 오조오억개의 영감과 비타민을 하사하시고 계십니다ㅠㅠ 아니져 비타민 정도가 아니라 저를 완죠니 자양강장제로 샤워 시켜주고 계시죵!

독자님들의 좋아요와 감상평은 곧 = 저의 자양강장제...저 허벌감정이라 한 마디 응원의 말씀에도 감격의 눙물 쏟아여 (허벌감수성 늘 소중한 감상 남겨주심에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K를 위하여 끝까지 쭈욱 잘 부탁드려요(꾸벅x613







진른 자급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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