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누구라도 나를 돌아보지 않을 것을 두려워 말고…….

삶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못되게 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에게 나는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삶이 그에게 지나치게 모질었기 때문에 나라도 잘해주고 싶어진다. 섣부르게.

사랑이 뭘까? 미워해야 사랑인가 착하게 대해주고 싶어져야 사랑인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사랑인가 아니면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개입하고 싶어져야 사랑인가? 상처 주고 싶어져야 사랑인가 상처 받고 싶어져야 사랑인가? 아니면 극의 중첩 상태가 사랑인가?

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어떤 날은 누구라도 붙잡고 미친듯이 사랑해주고 싶어서 못참겠는데 어떤 날은 약간의 생채기조차 입고 싶지 않아 조개 마냥 입을 꾹 다물게 된다. 제일 중요한 순간에 물밖으로 나와 출전을 포기하는 수영선수처럼.


12월 13일

다빈이랑 타코 먹으러 궁동에 왔다. 맥주 한 두잔 마시고 기억을 더듬어 이전에 X와 가봤던 카페(이름: 카이로스)에 왔다. 헤드폰 끼고 걷는데 어떤 대머리 외국인이 자기랑 나랑 똑같은 헤드폰을 꼈다고 본인 귀때기를 톡톡 치더니 웃었다. 양인들이란 언제나 유쾌하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무엇일까? 톨스토이를 경유하지 않고도 나는 답을 찾고 싶다. 한 인간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건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순간인가 타인인가 감정인가, 모두 다 아니면 그저 기억인가. 지나면 모두 부정확해질 뿐인....

내가 진짜 위로를 해줄까? 정말로 위력을 지닌 위로. 아무도 부술 수 없는 위로. 그건 바로 네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거야. 그 누구도 필요치 않는 완벽한 독자적 행위를,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거야…….


12월 16일

눈 떠보니 집안에 단내와 계피냄새가 가득했다. 엄마가 회사도 째고 뱅쇼를 끓이고 있었다. 꿀을 너무 탔는지 뱅쇼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달았다.

김씨이모네 김치 가지러 공주 나들이 가자는 권유에 냉큼 엄마 차에 올라탔다. 궁중칼국수 한 사바리 갈기고 계룡산 밑자락에 접어드니 김씨이모 집이 나왔다. 김씨 모는 급사한 남편의 재산으로 시골땅에 어엿한 단층집 한 채를 지어 말년을 즐기는 중이었다. 김씨이모의 남편은 생전 지독한 구두쇠로, 사사건건 김씨이모의 씀씀이를 참견하며 가정불화를 만들었다. 견디다 못한 김씨이모는 일을 구해 자기 용돈을 직접 벌어 썼는데, 우리 엄마와 김씨이모는 바로 그 일터에서 만난 사이다. 둘이 함께 근무했던 일터는 이제 망해 사라졌지만, 두 여인의 우정만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어느 날 김씨이모의 남편이 병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구두쇠 남편 앞으로 부동산 여러 채와 현금이 꽤 있었던 거다! 김씨이모는 긴 세월 갑갑한 결혼생활을 이어온 데에 대한 보상을 한큐에 받았다. 이제 물 맑고 공기 좋은 시골에 들어가 혼자 살기 딱 좋은 아담한 집 한 채 지어놓고, 근처에 사는 보살님들(a.k.a 무속인들)과 하루종일 뽕(a.k.a 고스톱)을 치다가, 저녁 되면 밥 지어먹고 잠에 드는 인생을 살면 되었다.

그 삶이 너무나 좋아보여,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다고 했더니 김씨이모는 건넛집 사는 106세 할배가 죽으면 나더러 그 집 들어가 살라고 받아쳤다. 하지만 106세 할배는 아직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데다가, 장애 등급 받으러 병원 갔더니 의사로부터 “뼈가 아직도 청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200살 까지 살 수도 있으니 오래 기다려야할 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 할배는 노인 수당으로 월 90만원 정도를 받아 생활을 영위하는데, 80대 여자친구가 수급일에만 찾아와 그 돈을 뽈가먹는다고 했다.

아니, 106세 할배랑 80대 할매가 만나면 뭐하고 놀아요? 물었더니 김씨이모는 태연하게, “잠도 자는데?” 하며 심드렁하게 귤을 까먹었다. 백 살이 넘어도 할매가 주물딱 거리면 좋아 죽는다는 말을 하는 김씨이모 입으로 조그만 귤 조각들이 성의없이 입장했다. 그런 건 대체 누가 소문을 내는 거냐고 물으니 뽕 치다 보면 다 알게 된단다. 보살님들은 모르는 게 없다고. 여든이 되어도 돈 때문에 백 살 넘은 꼬부랑 할배를 쭈물럭대야 하는 할매의 고달픈 사정 때문에 내 가슴이 미어졌다.

김씨이모는 1번 시어머니, 2번 시어머니 3번 시어머니까지 있는 집에 시집을 가서 고생을 오래했다. 아내를 3번까지 거느린 시아버지는 그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였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김씨이모는 그 동네에서 ‘대문집 며느리’라 불린다. 그 옛날 그 동네에 대문이 있는 집은 자기네 집 하나 뿐이었다고.

대문집 며느리였던 김씨이모가 요즘 연애를 한다. 상대는 70대 할아버지(김씨 이모는 60대다)로, 김씨이모는 자꾸 자기 남친을 ‘본부장님’이라 부른다.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은 어떻게 연애를 할까? 서로를 어떻게 특별한 사람 취급할 수 있을까? 이미 모든 오욕정사를 다 겪어본 이들로 하여금 다시 누군가를 ‘여자친구’, ‘남자친구’ 삼게 만든 그 마음이 궁금하다. 로맨스는 아무리 늙은 마음이더라도 변함없이 사람을 정복시키고 사랑으로 감정을 떼미는 강력한 무언가인가 보다.

무김치 한통을 얻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무 잠이 쏟아져서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설잠에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 세시 반 즈음 제대로 잠들었다. 다섯 시 무렵 일어나 욜라탱고로 출근했다. 오가는 지하철에서 로맹가리 책(유럽의 교육)을 읽었고, 어김없이 마음을 함락당해 눈물을 흘렸다. 내 마음에 인간에 대한 애정과 동정과 연민과 가여움이 가득 차 버린 탓이었다.


12월 28일

살아있는 한 어차피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류이다.

나도 이제 부정할 수 없는 20대 후반이 되었네. 그 무엇도 바꾸지 못하고. 사람은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을 때면 언제나 서러워진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을 사랑하지만 혼자 있고 싶구나.

나는 아직도 겨울이 오면 문득 코가 맵고 눈물이 금방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나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근데 이번 생에 하도 못된 말 못된 생각 마니 해서 다음 생도 지금이랑 비슷하거나 이보다 더 끔찍할 것 같다.

중요한 건…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겠지요. 아주 잠깐 미소 짓기 위해.


드디어 이 짓이 끝났군요.... 써놨던 일기를 옮기기만 하면 될 거라 생각해서 누워서 돈먹기라 여겼는데 예상보다 신경도 많이 쓰이고(어디까지 검열해야 하는지... 그저 전 직장 사람들이 이 계정을 찾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시간도 오래 걸렸네요. 

한 분야의 대가가 아닌, 익명(절반은 실명이지만..) 소시민의 일기가 팔릴만한 것이 되고 실제로 내다 팔 온라인 가판대가 생기기 까지 많은 일기-문학가들의 시도와 메일링 등의 구독 서비스의 출현 그리고 무엇보다 기꺼이 주머니를 열어주는 독자들의 등장이 있었네요. 

몇 해전만 해도 이런 식의 생(raw)일기를 유료 발행하는 건 파렴치 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이제는 낯도 두꺼워지고, 저 스스로도 날것을 노출하는 아슬아슬한 재미를 느껴서 작년 한 해를 통째로 갖다놓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항상 마음 깊이 자비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제나 덧글이나 좋아요 등의 알림이 오면 약간 태어남을 보상받는 기분이 듭니다. 냉소하려 해봐도 어찌되었든 저는 글쓰기가 재밌나봅니다.  

올해도 곧 있으면 중간지점에 다다르네요. 저는 여전히 일기인입니다. 여러분 모두 일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http://yebinbaksa.dot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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