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드림컾 연성 모음]





[드림주 프로필] 

 

이름: 단 나비 (23세)


생년월일: 2001년 7월 15일 (탄생화: 들장미) 


키/몸무게: 155cm / 40kg 

(허리 20인치 / A 65)


세미 시스루뱅이 있는 검은 긴 생머리 / 겉쌍커풀이 있음 / 둥글고 큰 눈 / 밝고 생기있는 피부색 / 오른쪽 눈 밑과 왼쪽 콧대에 점이 있음 /토끼상 or 아기고양이상

(거울 기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왼쪽 눈 아래, 오른쪽 콧대에 있는 걸로 보임.) 

   

#다정한 #INFJ #내향적인 #이상주의자 #독립지향적 #로맨티스트 #운명론자

 

직업: 대학교 휴학생 (패션디자인학과)


가족 관계: 부모님과 네 살 많은 오빠 한명 


아빠 [단 서우]: 전 내과의 / 현 베이킹 유튜버

엄마 [유 도현]: 국립대 경제학과 정교수

오빠 [단 휘]: 공군 사관학교 출신 파일럿(공군 중위)


세부 성격 및 그 외 설정:

화목한 가정에서 막내로 자라 모난 곳 하나 없이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함.

생활력이 강해 어디서든 금방 적응하는 면모가 있음.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가끔 상처받을 때도 있으나 금방 털고 일어남.

운명적인 만남을 믿으며 언젠가 자신도 멋진 사랑을 할 것이라고 생각함.

모태솔로는 아니지만 여태 했던 연애가 전부 한달을 채 못 넘겨 사실 모태솔로나 마찬가지임.

운명적인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음.(가족과 연을 끊는 것까지도.)

바깥생활에 별 미련이 없고, 집안에 있는 걸 좋아함.

자연을 사랑하며, 화단을 가꾸거나 동물 키우는 걸 좋아함.

일상의 소중함을 어렸을 때 일찍이 깨닫고 평범하고 평온한 매일에 감사하며 살아갈 줄 앎.

손재주가 뛰어나 뜨개질, 재봉틀 등 무언가 만드는 취미를 여럿 가지고있음.

성격이 조금 소심하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처음 본 사람에게도 금방 호감을 가짐.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에게 유독 약함.(얼빠)

벌레와 큰 소리를 유독 무서워함(바람 소리, 천둥 소리 등)

몸치라서 춤은 못추는 대신 노래를 잘 함.(고등학생 때까지 교회 성가대 소프라노였음.)

대학에서 사귄 친구 중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친구들이 있었던 덕분에 모태신앙 기독교인이지만 그쪽으로도 많이 열려있음. 



(+디테일한 설정 추가. 2024. 03. 25)


- 나비는 휴학 전에 교양에서 만난 타 과 선배(18학번)와 썸을 탄 적이 있음.


-  저녁을 먹으며 가볍게 술을 마시다가 술에 취한 나비를 데리고 모텔에 들어가려던 도중 여자친구에게 그 장면을 들켜 관계가 박살남.


- 나비가 해명하기도 전에 학교에 아는 사람이 많은 남자 선배가 먼저 나비가 자길 꼬셨다는 식으로 소문을 냈고, 그 사건 이후로 휴학까지 하고 힘들어하는 나비를 위해 부모님이 나비 혼자 휴학기간 동안 지낼 곳을 마련해준 것.


- 나비가 주로 외출하는 시간: 오후 2시~4시 / 오후 10시 ~ 새벽 1시

(사람이 많이 없고, 조용한 시간.)


- 워낙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금방 떨쳐내고 잘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에 혼자 있으면 조금 힘겨워함.


- 나비가 사는 소형 주택은 15평. (거실 겸 주방, 침실 겸 작업실, 욕실로 구성 되어있음.)


- 일이 잘못 되었을 때 남탓이나 자기탓을 하기 보다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보다 하고 넘어가는 편.

(과연 사람이 죽어도 그럴 수 있을지는…)


- 마음을 잘 주는 만큼 끊어내는 것도 잘함. 그런데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정말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다 안고 가려하는 타입. 나비가 저 멀리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는 이상 먼저 연이 끊길 일은 없음.


-그런데 그 선이 사랑하는 사람 한정으로는 흐려지다 못해 아예 사라짐. 나비에게 운명적인 사랑은 절대적이고 불가결한 것임을 알 수 있음.


- 나비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망설임없이 희생할 수 있음. 

나비가 7살 무렵, 오빠인 휘가 얼음판에서 미끄러져 뒤로 넘어질 뻔 한 적이 있었는데, 옆에서 걸어가던 나비가 휘 뒤로 순식간에 엎어지듯 넘어져 휘의 뒤통수가 깨지는 걸 막아냄. 그때 나비의 한쪽 무릎뼈가 부서져 지금도 비오는 날이면 가끔 그 부분이 욱신거림. 휘는 그때 나비가 입원했던 걸 떠올리면 죄책감 먼저 드는데 정작 나비는 입원했을 때 오빠가 매일 하굣길에 꽃이랑 쿠키 같은 걸 사와서 좋았다고 얘기함.

 



[서사] (24.07.14 수정) 



만약, 이사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동네에서 한밤중에 길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보조배터리도 없는데 핸드폰이 아예 꺼져버렸다면? 심지어 주변에 집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도로 한복판이라면?



"큰일났다…."



 잠이 오질 않아 잠깐 집 근처만 가볍게 산책하려 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주택가에서 한참 떨어진 도로를 걷고있었다. 나비는 길을 잃었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핸드폰을 켜고 익숙하게 아빠의 전화번호를 누르다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원래 살던 동네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맞아, 그랬었지. 하나뿐인 오빠도 서산에서 근무하는데다, 이 시간에 강화시까지 올 수 있을리가 없다. 아니, 사실 연락하면 무리해서라도 오긴 하겠지만…. 언제까지고 오빠나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진짜 어둡다. 여긴 가로등도 없네. 시골은 시골이구나."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어 괜히 고개를 들어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 본 나비가 중얼거렸다. 오늘 밤 내로 집에 갈 수 있겠지…? 한참을 정처없이 걸었더니 슬슬 발이 아파온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찬바람이 얼마 있지도 않은 나비의 체온을 앗아갔다. 차라리 뛰면 좀 체온이 오를까 싶어 나비는 전원이 나가버린 핸드폰을 크로스백에 넣고 지퍼를 단단히 잠근 뒤,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지치고 추워서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결국 사고가 났다. 



"어…!"



꽤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차의 전조등에 눈이 부신 나비가 눈을 찡그린 순간, 놀라서 힘이 빠져버린 한쪽 다리가 반대쪽 다리에 걸려 그대로 넘어지고 만 것이다. 다행히 차에 부딪히기 전에 운전자가 방향을 틀어 교통사고는 면했다. 대신 무릎과 손이 아스팔트에 갈려 피투성이가 됐다. 갑작스러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비가 넘어진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자 그녀가 차에 부딪힌 줄 알았는지 갓길에 정차한 남자가 급히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괜찮아요?"


"어… 그런 것 같아요…. 아마도요…."


"말할 수 있는 거 보니까 다행히 치이진 않았나 보네요. 이 시간에 혼자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위험하게."


"그게요, 제가 산책하다가 길을, 길을 잃어서…, 정말 죄송한데, 혹시 전화 한번만 쓸 수 있을까요?"



 남자는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산책을 하다가 여기까지 와서 길을 잃을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는 얇은 나비의 옷차림을 보고 작게 혀를 찼다. 이 밤중에 긴소매 티셔츠에 스커트만 달랑 입고 산책을 하는 것도 모자라 그런 옷차림으로 도로에서 뛰어다니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일어나요. 계속 그렇게 엎드려있을 건 아니죠?"



 나비는 낯선 남자가 내민 손을 겁도 없이 덥석 잡았다. 맞닿은 손바닥이 축축해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남자가 나비의 손바닥을 보더니 살짝 미간을 구겼다. 넘어지면서 도로 위에 굴러다니던 자잘한 돌에 손이 긁혔는지 손바닥이 살짝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다.



"…무릎도 엉망이네. 안 아파요?"


"아파요. 근데 일단 집에 가야 치료를 하든 말든 하니까…."


"그건 그렇죠. 참, 전화 빌려달라고 했죠. 누구 데리러 와줄 사람 있어요?"



 재킷에서 핸드폰을 꺼내 건네는 남자의 물음에 나비가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 이 동네에서 혼자 사는건가? 어려보이는데. 그는 일단 핸드폰의 잠금을 풀어 나비의 손에 쥐여주고 그녀가 어디로 연락하는지 지켜봤다. 1, 1, 2…. 112?


"잠깐만요, 112? 경찰한테 전화 하려고요?"


 나비는 자기가 뭐 잘못했냐는 듯 말간 눈으로 그를 멀뚱히 올려다봤다. 나비가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다시 핸드폰을 가져간 남자가 작게 웃었다. 



"그런거라면 굳이 전화할 필요 없어요."


"네? 왜요…?"


"제가 경찰이거든요. 집이 어디에요? 데려다줄게요. 타요."


"어… 음, 감사합니다."



 나비가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절뚝거리며 남자를 뒤따라갔다. 남자는 친절하게도 그녀가 천천히 조수석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기다려준 것은 물론, 손수 문까지 열어주었다. 나비가 조심스레 조수석에 앉는 것까지 확인한 남자는 그제야 문을 닫고 반대편으로 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나비가 최대한 상처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며 안전벨트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더니 말없이 나비 쪽으로 팔을 뻗어 대신 안전벨트를 매줬다. 그녀가 조금 친절이 과한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남자가 나비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 다쳤잖아요."


"아…. 고마워요."


"뭘요. 근데 이 동네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최근에 이사왔어요?"


"나흘 전에요."


"길 잃을만 하네요."


"그렇죠. 근데 제가 진짜 심각한 길치라서 잃어버린 것도 있어요. 저는 당황하면 무조건 직진하거든요."



 나비가 머쓱하게 웃었다. 긴장을 안 한 건지, 아님 긴장한 티를 안 내는건지. 한밤중에 만난 낯선 남자의 차에 탄 것 치고는 지나치게 경계심이 없는 나비의 모습에 남자가 그녀 몰래 조소를 띠었다.


철컥.


 남자가 버튼을 눌러 차 문을 잠갔다. 이러면 보통 두가지 반응으로 나뉜다. 깜짝 놀라며 손잡이를 잡고 열으려 하거나, 다리를 꼬며 은근히 유혹하거나. 남자는 잠자코 나비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녀가 당황하며 긴장하기를. 



"그, 저기…. 사실 아직 저희 집 주소를 잘 모르거든요. 강화서 근처 주택가 맨 안쪽에 있는 파란 지붕 주택인데…, 혹시 어딘지 아세요?"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예상을 깨는 나비의 말에 남자가 잠시 벙쪘다. 상황 파악이 안되나? 남자가 어이를 상실한 채 조용히 나비를 응시하자, 그녀는 그가 당황한 줄도 모르고 그저 이정도 정보로는 자신의 집이 어딘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남자가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지붕 색만으로는 어디있는지 모르시겠죠…? 잠시만요. 제가 최대한 기억해볼게요. 강화시 애월읍…,"


"아니, 아니에요. 어딘지 알아요. 그 주택가에서 파란 지붕은 딱 하나 뿐이잖아요. 순찰 돌 때 봤어요."



 머리를 싸매고 주소를 기억해내려 애쓰는 나비를 만류하며 남자가 말했다. 이거 진짜 큰일날 아가씨네.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가족이 아니라 경찰한테 전화하려던 것을 보아하니 가족이 같이 사는 것 같진 않고, 이사온지 나흘 정도 됐으면 지인이 있지도 않을테니 이대로 데려가서 마음대로 굴리고 놀다 죽여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딱히 누굴 죽이고싶은 기분이 들지 않아서, 그는 나비를 얌전히 집에 데려다주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출발할게요."


"휴우…. 아침이 될 때까지 계속 헤매야 하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경찰관님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민태주예요. 내 이름. 저기, 경찰관님, 둘 다 아니고, 민태주요."


"아…! 저는 나비예요. 단나비."



 이런 상황에도 환하게 웃으며 이름을 밝히는 나비를 바라보며 태주가 속으로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애 이름을 나비같은 걸로 지어놓으니까 순진하게 겁도 없이 팔랑팔랑 돌아다니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희미한 피비린내 사이에 부드러운 향이 섞여 태주의 코 끝을 간지럽혔다. 겁도없이.



"혼자 살아요? 가족들은요."


"여기서는 혼자 살고, 부모님은 서울에 계셔요."


"그렇구나. 혼자 살면서 학교 다니면 힘들지 않아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고등학교도 버스타고 한참 가야하는 걸로 아는데."


 운전하느라 앞만 바라보며 태주가 건넨 질문에 나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더니 웃음을 터뜨린다. 가볍게 흩어지는 웃음소리가 맑다. 


"아하하, 그렇게 어려보여요? 저 고등학생 아니에요. 대학교 3학년인데."


"3학년이면, 스물 둘?"


"아뇨, 3학년 1학기 끝나고 작년 여름방학에 휴학해서 올해로 스물 셋이에요."


"아, 휴학했구나. 휴학하고 여기서 자취하는 거예요?"


"네. 서울은 월세가 너무 비싸기도 하고, 조용한 동네에서 지내보고 싶어서 여기로 왔어요."


"…이 동네가 조용하긴 하죠. 사람도 많이 없고요."



 그래서 가끔 흘러들어오는 가족 없고, 지인 없는 젊은 여자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곳이기도 하지. 태주는 조용히 웃으며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가족은 다 멀리 살고, 심지어 이사온지 얼마 안 된, 순진한 젊은 여자. 딱 좋은 먹잇감이었지만 성급하게 굴고싶진 않았다. 이렇게 화장품 냄새도, 독한 향수 냄새도 나지 않는 여자는 오랜만이라.



"다 왔어요. 여기 맞죠? 파란 지붕 주택."


"어, 맞아요! 어떻게 바로 찾았어요? 신기하다…."


"순찰 돌 때 지나가는 곳이라서요. 이 동네는 골목이 많아서 꼼꼼히 돌아야 하거든요."


"하긴, 그렇겠네요. 태워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만나면 커피라도 한잔 살게요."


"다음엔 밝은 대낮에 만났으면 좋겠네요. 밤에 여자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해요."



 진심 없는 얄팍한 걱정에도 나비는 눈을 휘어가며 활짝 웃어보였다. 태주가 문의 잠금을 풀어주자 그녀는 꾸벅 인사한 뒤 차에서 내렸다. 그녀가 현관을 열고 들어간 뒤에야 태주도 그곳을 떠났다. 해가 뜰 때까지 시간이 간당간당하긴 해도 트렁크에 실려있는 시체를 이대로 하루 더 묵힐수는 없으니, 그는 서둘러 저수지로 향했다. 


     




그렇게 다시 만나기만을 기다리던 중, 태주는 나비를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재회했다.

정말로,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늦은 저녁, 술집 앞에서 취객이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곳에는 완전히 술에 쩔어있는 나이든 남자 하나와 그 손에 붙들린 나비가 있었다. 저 아가씨는 대체 왜 이 시간에, 술집 앞에서 취객에게 험한 꼴을 당하고 있는걸까. 그때 분명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고 했는데 말이다.



"경찰입니다. 진정하시고 손에 든 거 내려놓으세요."


"뭐?? 너, 이 시퍼렇게 젊은 놈이, 끅, 내가 누군지 알어? 어? 고작 순경 달고, 어엉?"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나비의 손목을 붙들고있던 남자가 태주의 말에 분개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취객이야 술에 취했으니 얼굴이 시뻘건 색일 수 밖에 없는데, 소리도 못 지르고 울고만 있는 나비의 한쪽 뺨은 왜 붉은 걸까. 태주는 어쩐지 조금 속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먼저 점 찍어둔 사냥감에 다른 이가 선수쳐 흠집 냈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거겠지.



"일단 서로 가서 얘기 하시죠. 김 순경님, 저쪽 팔 좀 잡아주세요."



 같이 온 동료 순경의 도움으로 갓 잡아올린 생선마냥 펄떡이는 남자를 제압해 경찰차에 밀어넣은 태주가 겉옷을 벗어 간신히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멍하니 주저앉아있는 나비의 어깨에 걸쳐줬다. 나비는 제 어깨에 옷감이 닿자 작게 움찔 하더니 고개를 들어 태주를 올려다봤다. 놀라고 겁먹었던 큰 눈에 스치는 안도감에 태주는 어째서인지 불쾌해졌다. 


 불쾌한 건 불쾌한거고, 나비도 서에 동행 해야하니 조심스레 그녀를 부축해 조수석에 태웠다. 동료가 뒷좌석에서 나비를 힐끔거리고 쳐다보는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태주는 괜히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고 서까지 운전만 했다. 서에 도착해서야 조용해진 취객과 멀리 떨어진 곳에 나비를 앉혀두고, 그 앞에 마주앉은 태주가 따뜻한 물 한잔을 그녀에게 건넸다.



"괜찮아요? 진정되면 천천히 얘기해요."



 따뜻한 물을 한모금 마시고 조금 진정된 듯 나비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피부가 얼마나 약한건지, 그새 멍이 올라와 보라빛이 도는 나비의 뺨을 태주가 손 끝으로 스치듯 쓸어내렸다. 갑작스러운 터치에 나비가 조금 놀란듯 움찔 하더니 안그래도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바람에 태주는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최선을 다해 단속해야했다.


 태주의 손길에 나비가 잠시 놀라긴 했지만, 금방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진술했다. 나비의 말에 따르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때 쯤 하나로마트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나비가 또 길을 잃었고, 달이 뜰 때까지 읍내를 헤매다가 취객의 손에 붙들려 험한 꼴을 당할 뻔 했다고 한다.


 술이 살짝 깬 중년 남성은 나비가 짧은 옷을 입고 그 시간에 돌아다니길래 막 출근한 노래방 아가씨인 줄 알았다고 변명했다. 나비의 옷이 좀 하늘하늘하긴 했지만, 도우미 아가씨들이 입는 옷과는 거리가 먼 디자인이라 그런지 서 안에 있던 그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젊고 예쁜 아가씨가 이 시간에 술집 주변에 돌아다니니까 내가 그런 오해를 한 거 아냐-."



 나비 탓을 하며 꼬장부리는 남성을 싸한 눈으로 쳐다보던 태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 줄 몰라하는 나비와 피의자 사이에 우뚝 섰다. 서가 좁지만 않았어도 피의자와 피해자를 이렇게 가까이 붙여두고 진술서를 쓰진 않았을텐데,


"… 나비 씨, 필요한 진술은 다 들었으니까 일단 집에 가시죠. 제가 데려다드릴게요."


"어어, 그래. 민 순경이 나비 학생 데려다주고, 오늘은 그대로 퇴근해. 순찰도 다 돌았잖아."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자기는 얘기 아직 덜 끝났다며 난리치려는 남성을 두 경찰관이 붙들고 진정시키는 동안 태주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나비의 어깨에 걸쳐주고 팔로 그 위를 자연스레 감싼 뒤 서에서 빠져나왔다. 태주가 자차에 나비를 태우고 나비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나비는 멍하니 조수석에 앉아 살짝 부어오른 뺨을 손으로 매만졌다.


 파란 지붕 집의 대문 바로 앞에 차를 세워두고 나비가 차에서 내리는 걸 도와준 태주가 아직도 넋이 반쯤 나가있는 나비의 눈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비 씨, 나비 씨…!"


"… 아, 어, 벌써 다 왔어요? 와…, 집이다…."


"오늘 많이 놀랐죠. 이거 멍 오래 갈 것 같은데… 원하면 아까 그 남자 폭행죄로 고소해도 돼요. 그럴 마음 생기면 112 말고, 이 번호로 연락 줘요."



 태주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나비의 손에 쥐여주었다. 잠시 명함에 적혀있는 태주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빤히 들여다보던 나비가 뺨을 발그레하게 붉히며 입을 달싹이다 말했다.



"저어… 신고 말고 다른 용무로 연락하는 것도 괜찮아요?"



 투명한 나비의 호감에 벙 쪘던 태주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쉽게 넘어온다고? 역시 여자는 쉽다. 태주는 차오르는 흥분을 억눌러 숨기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편하게 연락해요. "



 순식간에 환해진 나비의 표정에 태주는 또 웃음이 나려는 것을 참느라 죽을 맛이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담. 크로스백을 뒤적거리던 나비가 아이라이너를 꺼내더니 손을 달라는 듯 태주에게 한쪽 손을 내밀었다. 나비가 뭘 하려는지 대충 눈치챈 태주가 나비의 작은 손 위에 제 손을 올려놓자 그녀는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태주의 손등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이건 제 번호에요. 연락 걸었는데 모르는 번호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까…."


"아, 그래서…. 고마워요. 사려 깊네요."


"참, 지난번에 커피 사드린다고 했었는데. 음… 내일 시간 괜찮아요?"


"내일은 야간근무라서 어려울 것 같은데…. 모레는 비번이에요. 모레 주택가 근처 카페에서 만나요."


"좋아요. 그러면… 그때 뵐게요.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조심히 들어가요."


"나비 씨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요. 잘자고, 모레 만나요."



 태주의 근사한 미소에 또 한번 나비의 뺨과 귀가 붉어진다. 마음같아선 나비의 집에 들어가 다친 뺨을 치료해주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나비는 잘 모르는 남자를 집에 냉큼 들일 정도로 발랑 까진 여자는 아닌 듯 싶어 태주는 나비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차에 올라탔다. 어쩐지 흥미로운 일이 시작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태주나비 드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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