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WORD: 1차, BL, 집착, 자낮수


이치노와타리 하지메의 전기

저자 쿠모데 겐

Chapter 1. 이치노와타리 하지메는 어떤 사람인가?

 

선생님, 그러니까 이치노와타리 하지메 씨를 모르는 사람은 UDI에서 드물 거예요. 그야 선생님처럼 유능하고, 친절하고 또 똑똑하신 분은 없으니까요. 물론 몇몇 사람들은 선생님에 대해 불평하지만, 그건 그를 잘 모르거나 질투심에서 우러나온 험담입니다. 선생님을 조금만 안다면 그따위 말들이 다 모함이라는 사실을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겠죠. 애초에 UDI에 입사할 만한 실력을 갖췄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 있는지도 신기합니다. 보통은 지능이 높아야 실력도 좋지 않나요? 살다 보면 늘 상상도 못 했던 가능성을 마주하고 감탄하게 되네요. 거두절미하고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쓰죠. 이건 선생님을 위한 책이니까요. 저만큼 선생님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아니, 잘 안다고 하기엔 조금 부끄럽지만요. 선생님 같으신 분을 누가 완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저는 그냥 그를 조금 더 오래, 그리고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를 얻은 것뿐이죠. 저 같은 것까지 내치지 않고 곁에 두신다는 점에서 선생님의 아량과 친절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물론 저 역시 부끄러움 없는 UDI의 직원이지만, 그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니까요. 물론 선생님에 비하면 누구든지 부족하죠.

저는 가끔 선생님이 인간이 맞을까, 궁금해하곤 합니다. 아,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완벽할 수 있나, 그런 의미로 말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으시고 불편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아요. 물론 쉽게 칭찬도 안 해주시고 소리 내어 웃는 모습도 본 적이 없긴 하지만…. 절제와 겸손은 미덕이 아닙니까? 무언가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상황 파악도 빠르시니, 쉽게 놀라지도 않지요. 다른 사람들은 선생님께 알고 있으면 좀 언질이라도 해달라고 화를 내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굳이 말해주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나요? 아무런 의미 없이 무언가를 할 분이 아니시거든요. 그러니까 저를 곁에 두고 있는 것도 깊은 뜻이 있는 거겠죠. 선생님이 저를, 다른 사람보다 더 인정해준 겁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저에게서 어느 특별함을 본 게 아닐까 싶네요. 그러니까 저 역시 최선을 다해 선생님을 보필하고 도와야 하지 않겠나요? 선생님이 죽으라고 하면 기꺼이 그런 시늉이라도, 아니,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저 같은 것의 삶으로 선생님께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기쁠 테니까요.

아, 이 일화가 떠오르네요. 선생님과 같이 출장을 나간 적이 있어요. 필요한 자료가 있는데 이게 워낙 오래된 거라 다 수기로 적혀 있고, 그쪽에서 PDF로 보내주지도 못한다고 고집을 부렸거든요. 참 빡빡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이에요, 아닌가요? 피차 바쁜데 고집불통이었고. 여하튼 그래서 직접 그 자료를 읽으러 선생님과 제가 나고야까지 손수 운전해서 갔거든요. 무슨 자료인지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네요. 쓰면 사칙 위반으로 잡혀가거든요. 어차피 설명해도 이쪽 계열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너무 아쉬워하진 마시고요. 이 글은 선생님에 대한 것이지 시시콜콜 직장 기밀 누설하는 고발 소설도 아니니까 말이죠. UDI 본부에서 나고야까지는 왕복 8시간, 그러니까 편도 4시간쯤 걸리는 거리예요. 아침 일찍 출발해도 필요한 자료를 다 모으고 돌아오면 한밤중이란 말이죠. 여유 있게 정보를 모으기 위해 아예 그곳에서 하룻밤 숙소를 잡았습니다. 효율을 중시하는 선생님께서, 운전도 안 하는 저를 고려해서 말이죠!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몇 번을 부탁드려도 어림도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출장 자체는 무난하게 흘러갔던 거로 기억해요. 그쪽 기관도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고, 저희는 그것들을 기록한 후 숙소로 향했죠. 거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명 1인실 두 개를 예약했는데, 숙소 측 실수로 2인실 하나만 남은 겁니다. 그것도 트윈 사이즈 침대 두께가 아닌 퀸사이즈 침대 하나만 있는 곳으로요. 낭패가 아닐 수가 없었죠. 누가 직장 동료와 한 침대를 쓰고 싶겠어요? 물론 저야 같은 이불 아래 누울 수 있다면 영광이지만, 감히 저 같은 것에게 선생님이 닿기라도 한다면…. 저는 당연히 컴플레인이라도 넣으려고 했지만, 선생님은 괜찮다며 웃어넘기시더군요. 정말 배려심이 넘치시지 않나요? 호텔 측에서도 무언가 보상을 약속했지만 잘 기억은 나지 않네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가끔 제가 누구인지 깜빡깜빡할 때도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물론 선생님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기억력이 뛰어나시지만요. 선생님 같은 사람으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일지 참 궁금하네요. 그럼 저도 선생님처럼 모든 것을 웃어넘길 수 있으려나.

저희는 짐을 풀고, 각자 씻은 후, 나란히 누워 같은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심장이 어찌나 요란하게 쿵쾅거리던지, 그날 심정지로 실려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니까요. 그랬더라면 제 시체 부검은 선생님께서 직접 해주시려나요? 그런 상상도 나쁘진 않네요…. 제 속내를 직접 헤집고 살피신다니, 감사한 동시에 죄송스러울 정도예요. 너무 보잘것없어서 실망하시면 어떡하지, 싶거든요. 참 다행이지 않습니까? 선생님에게는 남의 생각을 잃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물론 그분의 흔들림 없는 시선을 마주하다 보면 제 안이 다 드러나는 기분이 종종 들기도 해요. 제까짓 게 거짓말을 해봤자 그분은 단박에 알아차리겠죠. 그래도 정말 깊숙이, 아주 깊숙하게 숨겨놓은 욕망은 그분도 모를 겁니다. 아니, 몰라야 합니다. 그 욕망이 뭐냐고요? 하하…. 그런 건 아무 상관없잖아요.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저에 대한 게 아니라고요.

선생님은 금방 잠드셨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당연하지 않나요? 선생님이 무방비하게 제 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결국, 모든 인간은 수면을 취할 때만큼은 나약하고 순진해지고 마는 거죠. 핸드폰은 협탁 위에 두고, 몸에는 호신용품 하나 없이 그저 무의식의 바다를 유영하는 겁니다. 저는 그때 마음만 먹었더라면 핸드폰을 뒤져 개인 정보를 긁어모을 수도 있었고, 혹은 선생님의 목을 짓눌러 그대로 질식시킬 수도 있었어요. 선생님 같은 분을 제멋대로 다룰 기회를, 선생님이 저에게 직접 쥐여준 거죠. 결국, 그도 방심하고 마는 인간인 겁니다. 오만하게 타인의 나약함을 믿고 마는 인간인 거예요. 그래서 저 같은 인간에게까지 약점을 드러내고…. 저는 밤새 내내 선생님을 바라보며 고민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그런 충동에 시달리곤 하지 않습니까? 공든 모래탑을 무너뜨리거나, 티 없는 옥에 흠집을 내거나, 흰 눈을 밟아 더럽히고 싶다는 마음이요. 존재하는 완벽함에 오물을 묻히고 싶다는 갈망이요. 저만 그러나요? 이런 저열한 인간임을 결국 또 선생님에 의해 낱낱이 드러나고 마는군요.

용기를 끌어모으는 데 몇 시간이 걸렸어요. 그리고 햇빛이 창문으로 쏟아질 때, 그때가 되어서야 저는 몸을 일으키고 선생님을 바라볼 수 있었죠. 그러나 제가 움직이기도 전에,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선생님이 눈을 떴어요. 저를 보고 웃으시며 말씀하셨죠. 좋은 아침, 쿠모데, 라고요. 잘 잤냐고 물어보지 않더군요. 일찍 일어났다고 놀라지도 않더군요. 그제야 저는 깨달았어요. 선생님은 제가 무슨 충동을 지니든, 그걸 해내지 못하리란 사실까지 알고 계신 게 분명하다고. 그런데 어떻게 제가 선생님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나요.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고, 또… 파악해주신 선생님을.

그날 운전은 감사하게도 선생님이 해주셨어요. 저는 운전기사라도 부르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선생님 말씀을 거스를 순 없었죠. 저는 아직도 궁금해하곤 합니다. 만약 그날 밤, 제가 무언가를 해냈더라면. 하다못해 핸드폰을 엿보기라도 했더라면, 그렇게 그의 예상을 깨부쉈더라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하지만 예, 저는 그의 신뢰를 유지하고 싶으니까요. 아무것도 안 한 건 당연하죠. 꿈도 꾸지 않았어요, 예. 다른 멍청이들과 다르게 전 선생님의 곁에 머물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바보들과 다르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죠. 아주 당연한 겁니다. 아주 당연한 거예요….

프로필 사진: 신유님 작업물/커미션계: @tianlee_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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