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찬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건물 안에 있는 데도 이따금 센 바람이 불 때면 건물 안까지 그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흘려들으며 아까부터 편의점 안을 서성이는 손님을 멍하니 보던 코노하는 15분이 지나서야 상품 몇 개를 집어들고 카운터로 오는 손님에게서 물건을 받아 바코드를 찍었다. 추운 날씨에 언 몸이라도 녹이러 온 건지, 쓸데없이 긴 시간동안 어슬렁거리던 것이 조금 눈에 띄었지만 빈 손으로 나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코노하 아키노리는 계산을 끝내고 편의점을 나가는 손님에게 입에 붙은 인사를 하고는 기지개를 켰다. 한가한 곳에 위치한 편의점이었기에 이 시간까지 사람이 많지 않아 방금 그 손님이 나가자 편의점 안에 남은 것은 자신 혼자뿐이었다. 그 사실에 조금 기분이 좋아진 코노하는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부터 슬슬 정리를 하면 마감시간에 정시퇴근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알바 마감 생각에 코노하는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묵직한 쓰레기봉투를 들어 편의점 뒷문으로 향했다. 뒷문은 쓰레기를 버리거나 창고에 들어가지 않는 커다란 잡동사니를 내다놓을 때, 혹은 가끔 숨을 돌릴 때에만 드나드는 직원 전용문이었기 때문에 콧노래를 부르다 손님과 마주쳐 뻘쭘할 일도 없었다. 자동문인 앞문과 달리 수동이었기에 조금 불편했지만, 마감 생각에 기분이 좋은 코노하는 가볍게 문고리를 돌렸다. 빨리 내다버리고 집에 가야지! 그 생각만 하며 골목으로 나간 코노하는 쓰레기봉투를 내려놓으려고 몸을 틀었다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이곳은 편의점 직원 전용이라고 해도 될 만큼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좁고 어두운 골목이었다. 그런데 그 골목에 웬 정장을 입은 남자가 미동도 없이 벽에 기대어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놀랄 것이었다. 짙은 갈색의 곱슬머리가 여기저기 뻗쳐있는 남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꽤 비싸 보이는 정장이 군데군데 얼룩지고 더럽혀져 있는 것은 희미한 빛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쓰레기봉투는 무겁고 냄새가 났지만 곧 집에 갈 생각에 들떠 있던 코노하는 그 남자를 보고는 놀란 것도 잠시, 곧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새벽이라고 해도 이런데서 만취해 쓰러져 있으니 고운 시선이 갈 리가 없었다. 

“저기요, 이런 데서 자지 말고 집에 가서 주무세요. 네?” 

인상은 찌푸려졌지만 그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도 없어서 쓰레기봉투를 지정된 곳에 내려놓은 코노하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말을 걸어도 미동이 없어 코노하는 그를 깨우려 상체를 숙여 그에게 손을 뻗었다.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를 흔들어 깨우려던 코노하는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아채는 남자의 손길에 흠칫 놀라 고개를 뒤로 뺐다. 방금 전까지 의식이 없는 것 같았는데 그의 손을 낚아챈 손에는 꽤 힘이 실려 있었다. 뻐근하게 압박되는 손에 다른 의미로 미간을 찌푸린 코노하가 제 손을 저지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 

천천히 고개를 드는 남자는 언뜻 보기에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눈은 어둠 속에서 상대를 경계하는 육식동물 같이 보였다. 골목의 그림자 속에서 어둡게 빛나는 눈동자에 흠칫 놀라 숙였던 상체를 뒤로 빼려던 코노하는 아플 정도로 자신의 손을 쥐어오는 남자의 손에 다시 한 번 인상을 찌푸렸다. 술에 취한 사람이 뭐 이렇게 힘이 세? 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고 보니 만취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술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코노하는 내심 고개를 갸우뚱했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 이상했다. 

“저기, 별로 이상한 짓 하려던 거 아니니까 이 손 좀 놔줄래요? 술에 취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런 시간에…” 

이상하단 생각에 뒤늦게 남자의 행색을 유심히 살피던 코노하의 눈에 자켓 안 쪽으로 붉게 물든 남자의 셔츠자락이 보였다. 새하얀 흰색 위의 선명한 그 색은 더욱 눈에 띄어서 코노하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그곳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그의 시선을 눈치 챈 듯 남자의 다른 손이 얼른 자켓을 끌어당겨 그 부분을 가렸다. 정신을 놓고 있던 코노하는 당황하여 다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해요, 집까지 가기 힘들어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음, 문제 안 일으키고 금방 갈테니까 이건 못 본 척 해줄래요?” 

남자의 말투는 정중했고 인상은 부드러워보였지만 잘 보면 그 눈이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노하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아직까지 잡혀 있는 손에서도 순식간에 땀이 차올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웃으며 부탁하듯 말하는 남자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코노하는 마른 침을 삼키고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코노하의 표정을 살피던 남자는 그의 대답에 만족한 듯 의외로 간단히 그의 손을 놓아줬다. 그에 작게 안도하며 땀이 찬 손바닥과 손목을 주무르던 코노하는 피곤하니 조금 더 있다 가겠다며 등을 다시 골목의 벽면에 기대는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거기 엄청 더러울 텐데. 남자를 쳐다보는 코노하의 머릿속에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걱정이 스쳐지나갔다. 아마도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본능적으로 현실도피를 하는 듯 했다. 실제로 지금도 희미한 달빛에 비친 골목 벽은 얼핏 보기에도 관리가 되지 않아 더러워 보였다. 남자를 빤히 보던 코노하는 아직까지 혼란스러운 머리를 어찌 못하고 있다가 편의점에 손님이 온 것을 알리는 알림음에 어깨를 흠칫 떨었다. 손님이 이 남자를 보기라도 하면 소동이 일어날 텐데. 걱정이 되어 힐끔 남자를 내려다보자 남자가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가 웃어보였다. 

네가 입을 다물기만 하면 돼.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의미에 코노하는 곤란한 표정으로 편의점 안쪽과 남자를 몇 번 번갈아 봤다.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듯 보이는 코노하를 관찰하는 듯 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초조해진 코노하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안쪽에서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마지못해 뒷문 문고리를 손에 쥐었다. 잠깐 다녀올게요. 남자를 그냥 두고 가기가 마음에 걸렸는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코노하는 바로 편의점 안쪽으로 뛰쳐 들어갔다. 붙잡지는 않을까 하는 코노하의 걱정과는 달리 그 남자는 코노하를 붙잡거나 하지 않았다. 코노하가 들어간 뒷문을 한동안 빤히 쳐다보던 남자는 곧 힘이 빠진듯 뒷머리를 벽에 기대고는 긴 숨을 내뱉었다. 

“이거, 귀찮게 됐네...” 

편의점으로 들어간 그를 영 못 미덥게 바라보던 남자―사루쿠이는 슬슬 자리를 옮겨야 되나, 생각했지만 몸을 움직이기가 너무 귀찮았다. 만약 좀 전에 그 남자(코노하)가 신고를 하면 그 남자와 경찰을 기절시켜놓고 도망가야 하나. 사루쿠이는 코노하가 들었다면 기겁할 만한 생각들을 이래저래 5초쯤 고민하다가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포기했다. 합리적인 판단을 짓누를 만큼 몸이 무거워 당장의 피로감이 이겨버린 상황이었다. 사람이 오기 전 도망치기를 포기한 사루쿠이는 정장 자켓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지금 조용히 사라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들키는 편이 귀찮기는 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젯밤에 있던 난투극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상대편의 지원군 때문에 거하게 맞은 복부가 아직까지 지끈거렸다. 하지만 셔츠에 묻은 피의 대부분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사루쿠이는 여유롭게 들이마셨던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며칠에 이은 과로에 몸이 무거운 게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폭신폭신한 침대가 절실하긴 했지만 그런 침대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가는 것도 일이었다. 역시 조금 더 이곳에 앉아 있자 생각해 담배를 한 모금 더 들이마시던 사루쿠이는 귀에 거슬리게 삐걱거리는 문 소리에 닫혀있던 편의점 뒷문을 바라봤다. 설마 진짜로 경찰을 데려왔나 하는 귀찮음에 슬며시 손을 정장 포켓에 넣은 사루쿠이는 의외로 혼자 나타난 편의점 직원을 보고 나이프를 쥔 손을 그대로 포켓 안에 대기시켰다. 보통 피 묻힌 셔츠를 입은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 돌아오지 않을 텐데 왜 돌아온 것일까. 호리호리한 것이 겁이 많아 보였는데 의외로 강단이 있나? 아니면 속은 이상한 놈인 걸까. 머릿속에 피어나는 의문에 가만히 코노하를 바라보던 사루쿠이는 그의 손에 무언가 잔뜩 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게 무어냐고 물었다. 

“그, 다친 것 같길래. 이거..” 

더듬거리며 나온 그의 말에 사루쿠이는 눈을 깜빡이며 코노하와 그가 내민 손 안에 든 것을 번갈아 봤다. 그의 말대로 그 손 안에는 편의점에서 파는 데일밴드나 붕대, 연고 같은 것들이 있었다. 신고를 했으면 했지 설마 그가 자신에게 약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에 한동안 의약품과 코노하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사루쿠이는 웃으며 포켓에 넣었던 손을 빼 그것들을 받아 들었다. 은근히 긴장되어 있던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고마워요.”

사루쿠이가 한참을 가만있어 민망해하던 코노하는 사루쿠이의 인사에 안도했는지 표정을 조금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경찰에도 신고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면 신고를 해놓고 시간을 벌려는 속셈일지도 몰랐다. 받아든 것들을 요리조리 살피며 머리를 굴리던 사루쿠이의 머리 위에서 타이밍 좋게도 코노하가 그 의문에 답을 해주었다. 

“경찰에 신고는 안 했어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소란 피우기 싫은 건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저는 곧 퇴근해야 되서 조금 있으면 저랑 교대할 다른 알바생이라든가 환경미화원이 왔다 갔다 할 테니까 여기 있으면 눈에 띌 거예요.” 

“아, 벌써 그런 시간인가? 알려줘서 고마워요.” 

코노하의 말에 사루쿠이는 담배를 한 모금 더 들이마시고 작아진 꽁초를 길바닥에 비벼 껐다. 아직 몸은 무거웠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대로 계속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굳이 그 사실을 알려준 것을 보면 눈앞의 그와는 달리 다른 직원은 입이 가볍다는 뜻이겠지.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 사루쿠이는 아무래도 자신이 가는 모습을 보고 가려는지 쭈뼛거리면서도 옆에 있는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보통은 이런 모습을 보면 겁을 먹기 마련인데 도망을 가지도, 신고를 하지도 않다니. 역시 보기와는 달리 배짱이 있다는 생각에 문득 그의 이름이 궁금해진 사루쿠이는 그의 가슴 부근에 달린 명찰을 확인했다. 코노하. 명찰에 적힌 그 남자의 이름을 확인한 사루쿠이는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이것저것 고마워요, 코노하씨. 난 이만 가봐야겠네요. 아, 그리고 좀 전에도 말했지만 여기서 날 만났던 건 없었던 일로 부탁해요.” 

“걱정 말아요, 신고 같은 거 안 할 테니까.” 

코노하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남자에 순간 깜짝 놀랐지만 곧 남자의 시선이 자신의 유니폼에 달린 명찰에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걱정하지 않아도, 그에게 말했듯이 코노하는 귀찮은 일은 질색이었다. 신고를 하게 되면 분명 자신도 몇 번이고 서에 가야할 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지금은 웃고 있었지만 처음 마주했던 그의 눈동자가 위험한 빛을 띄고 있었다는 것을 코노하는 잊지 않았다. 척 봐도 평범해보이지 않는 이를 상대로 마음에 거슬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코노하는 애써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하고 마감 준비를 위해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사루쿠이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 코노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곧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신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아마 그라면 괜찮겠지. 며칠 그의 동태를 살펴보고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그 때 처리해도 나쁠 건 없을 거야. 코노하가 들었으면 오싹해 했을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사루쿠이는 포켓에 든 나이프를 만지작거렸다. 그에게는 조금 특이한 편의점 직원이나 더러워진 자신의 정장보다도 집에 있을 폭신한 침대와 따뜻한 욕조가 더 중요했다.  

 


 

 

일주일 후, 코노하는 변함없이 야간 알바를 하며 새어나오려는 하품을 참고 있었다. 며칠 전에 조금 특이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그 후로 편의점을 찾아오는 경찰이나 불량배는 없어서 코노하에게 그 일은 하나의 헤프닝으로 치부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하나씩 특이한 에피소드가 쌓이기 마련이니까. 어디서 술을 마시고 싸움이라도 붙었었나보다 생각하면 역시 술은 조심해야 할 물건이었다. 코노하는 이미 한 잔 하고 온 듯한 손님들이 고른 과자와 맥주 캔의 바코드를 찍으면서 내심 제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1,420엔입니다. 봉투 드릴까요?"

기계적인 문답을 주고받으며 상품을 담아주고 손님을 보낸 코노하는 조용해진 편의점 안에서 참았던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야간 편의점 치고는 손님도 진상도 그리 많지 않은 일은 지루하다는 것만 빼면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제법 마음에 들었다. 방문객을 알리는 익숙한 멜로디에 고개를 들어 그 멜로디만큼 기계적으로 방문객에게 인사를 한 코노하는 자동문 사이로 편의점에 들어선 남자들을 보고 방금 전에 했던 생각을 취소해야 하나 생각했다.  

"이거 하나." 

"네, 잠시만요~."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을 해와서 평균보다는 키가 큰 코노하와 비슷한 체격의 남자와 그보다 덩치가 좋은 남자 둘이 편의점으로 들어와 카운터로 바로 다가왔다. 단지 그 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불길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 텐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체구가 작은 쪽과 눈이 마주친 코노하는 순간 든 섬뜩함에 괜스레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분명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남자가 손에 든 담배갑을 확인하고 똑같은 것을 진열대에서 골라 집어든 코노하는 입 안에서 작게 혀를 깨물어 불길한 느낌을 애써 털어내려 했다.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코노하는 담배를 바코드에 찍어 계산했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괜히 꺼림칙해 손님이 얼른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코노하는 남자가 말을 걸어오는 것에 내심 혀를 찼다. 그런 코노하의 표정을 살피듯 남자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물었다.  

"일주일 전쯤에 혹시 여기 다친 사람이 오지 않았었나요?" 

"네?" 

남자가 그 말을 한 순간 코노하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뒷골목에 쓰러져있던 남자가 스쳐지나갔다. 와이셔츠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봤으니 남자가 찾는 사람은 그 때 그 사람이 분명했다. 주변에 불량배가 많은 것도 아니고, 요근래 이 근처에서 본 수상한 사람이라면 그밖에 없었다. 일주일 동안 그를 찾는 이가 없기에 큰 탈 없이 넘어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코노하는 속으로 이름도 모르는 그에게 조용히 욕을 읊조렸다. 다음에 만나면 두고 보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분함과 별개로 척 봐도 친구를 찾는 것과는 거리가 먼 심상찮은 분위기에 코노하는 내심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어느쪽으로 갔다든지, 누구랑 왔다든지 정말 모르세요? 당신이 얘기했다는 건 비밀로 할게요. 제 친구랑 오해가 좀 생겼는데 싸운 것 같아서 대신 사과하려고 그래요." 

친구와 싸웠다는 남자의 말에 코노하는 내심 그럴 줄 알았다고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꽤나 절실했는지 코노하에게 한 두 번 더 질문했지만, 데일밴드를 좀 챙겨주었을 뿐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정말 몰랐기에 코노하는 모른다는 대답을 유지했다. 

"여기 뒷골목에 사람이 왔다 간 흔적이 있던데..." 

"거기는 매일 저희 쓰레기 모아놓고 새벽이면 환경미화원 분들이 쓰레기 수거하러 왔다갔다 하는 곳이에요. 사람이야 드나들죠." 

아무리 돌려 물어도 두 사람의 대화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진전이 없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덩치 큰 남자가 참지 못한 듯 결국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됐고, 일부러 숨겨줬다간 재미 없을 줄 알아. 뭔가 알고 있으면 확실히 대답해!" 

다짜고짜 언성을 높인 그는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덩치가 더 커서 그를 올려다보자니 위압감마저 들었다. 이러다가 쓸 데 없는 일에 괜히 말려들까 겁이 난 코노하는 슬슬 짜증과 분함을 넘어 억울해졌다. 말하라고 해도 그에 대해서는 정말 모를 뿐더러 자신에게 비밀로 해달라며 웃던 남자의 얼굴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려서 코노하는 내심 울고 싶어졌다. 

"저, 정말 모른다니까요! 누군지도 모르고 여기 왔다가는 편의점 손님이 몇 명인데 제가 일일이 어떻게 기억합니까? 계, 계속 이러시면 경찰 부를 거예요!!" 

코노하의 말에 덩치가 욱하여 표정을 일그러뜨렸지만, 웃는 낯의 남자가 그를 제지하고 앞에 나섰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희도 사정이 좀 있어서 간절하게 찾고 있었거든요. 다른 곳을 더 찾아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덩치 큰 남자의 팔을 가볍게 토닥이며 가자는 사인을 보내자, 씩씩거리면서도 덩치는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코노하는 꾸벅 인사까지 하는 웃는 남자에게 마주 인사하고는 두 사람이 편의점을 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익숙한 자동문 소리가 오늘따라 반갑게만 느껴졌다.  

"하아........" 

코노하는 두 사람이 찬 타가 편의점에서 멀어질 때까지 가만히 그 뒤꽁무니만 빤히 쳐다보다가 그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배구 시합을 뛰고난 후처럼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등에는 기분나쁜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보통 진상과의 말싸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진짜 뭐야, 저 녀석들은..." 

코노하는 한참을 그렇게 얼이 빠져 있다가 조금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야 카운터 의자에 제대로 앉을 수 있었다. 그 때쯤이 되니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된 남자에게 자연스럽게 원망의 화살이 돌아갔다. 그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이름 모를 남자 때문에 왜 자신이 이런 협박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하니 무서움은 짜증으로 뒤바뀌었다. 

"다음에 만나면 가만 두나 봐라."  

다친 것 같길래 기껏 사비까지 들여가며 데일밴드까지 사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코노하는 이제는 기억도 흐릿한 남자에게 이를 갈며 다음에는 절대로 모르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말고 엮이지도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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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콩나듯..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뜸하게 가져오는 사루코노라 죄송합니다.

작심삼월 시작한 김에 어떻게든 글을 써보려는데 오랜만에 쓰려니 어렵네요.

단편을 쓰고 싶었는데, 뒷이야기가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황폐한 땅에 사루코노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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