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02 야마구치 타다시 온리전 '12번의 서브'에서 배포했던 「그 연애편지의 행방」의 웹공개입니다.

연애편지를 테마로 한 3가지 커플링의 이야기를 실었었습니다.


평소엔 시마야마를 미는데 이때는 왠지 야마시마를 썼네요...

딱히 앞뒤 구분이 의미가 있진 않지만...






 시마다 마코토는 서브 연습이 끝난 마트 뒤켠 공터에 서서 양 손에 편지봉투와 휴대전화를 든 채 미간을 좁혔다. 왼손에 든 휴대전화의 액정 위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려 둘 사이에 오간 몇 개의 말풍선을 더듬었다. 집엔 잘 갔니, 네, 잘 왔어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다음 주엔 뇌물이라도 들고 와라, 난 비싼 몸이니까, 하하, 뇌물, 뭐가 좋으세요?, 그야 뇌물 하면 당연히 봉투지, 그것도 모르냐, 봉투로군요, 알았어요. 별다를 것 없는 평소의 장난기 어린 대화문이다. 이게 일주일 전. 그리고 이 대화의 결과물이 오른손에 달랑달랑 들린 편지봉투다.


 “타다시. 이게 뭐야?”

 “러브레터요.”


 뻔뻔스레 대답하는 제자의 이마를 편지봉투로 찰싹 때렸다. 처음 만났을 때엔 여유라곤 하나도 없이 절박해 보이기까지 했던 후배이자 제자는 이젠 제법 고등학생다운 장난을 걸어오게 되었다. 제법 아팠는지 이마를 감싸쥐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폭 내쉰 시마다는 휴대전화의 화면을 끄고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정말 촌지 같은 거라도 가져온 줄 알고 놀랐잖아.”

 “러브레터예요.”

 “아, 네, 네.”


 제자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봉투를 뜯었다. 어차피 초등학생마냥 어깨 주물러주기 티켓이나 그런 거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봉투를 뒤집어 손 위에 탁탁 털었다. 


 “어?”


 손 위에 내려앉은 것은 예상했던 조잡한 종이쪼가리가 아니라 삼등분으로 고이 접힌 편지지였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얼빠진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 시마다는 급히 제자의 안색을 살폈다. 제자는 평온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유 모를 긴장감을 느끼며 시마다는 조심스레 편지지를 펼쳤다. 편지지에는 정갈한 필체로 단 한 줄만이 쓰여 있었다.


-진짜 뇌물은 어른이 되면 드릴게요

 “타다시!”


 킥킥 웃는 제자를 보고 있자니 맥이 탁 풀렸다. 역시 고등학생은 고등학생이다. 하늘 같은 스승님을 골려먹다니 천벌이 떨어질 일이로고… 할아버지마냥 궁시렁거리던 시마다는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빼들고 그 빈 자리에 편지를 쑤셔 넣었다. 네 성인식 날 들고 가서 정당하게 요구하면 되겠구만? 면박을 주듯이 톡 쏘아붙이자 제자는 까르르 웃었다. 


 거진 한바퀴 나이가 어린 이 제자는 어느 순간부터 불쑥불쑥 농담을 던져 오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촌 오빠에게 잔뜩 흥미를 가진 여중생 같은 눈을 한 채였다. 관심은 있지만 그렇다고 진심일 수는 없는 상대를 대하듯이 툭툭 건드려 오는 것이다. 시마다는 제자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에 대해 제법 눈치채곤 있었지만 그에 대한 대처는 아직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장난은 츠키시마한테나 쳐, 요녀석아."


 손가락을 튕겨 제자의 이마를 딱 때렸다. 제자에게는 소중한 친구가 있다. 연습 중 쉬는 시간마다 제자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했다. 차갑게 빛나는 달빛 같은 그 아이는 이 제자와 오랜 시간 함께해 왔고, 아마도 부모님 다음으로 제자의 인생에 관여해 온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 다음의 다음 쯤은 되려나... 괜시리 억울해지는 망상은 빨리 잊기로 했다.


 "츳키도 재밌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 녀석도 성격이 좋진 않아..."


 두 번이나 얻어맞은 이마를 다시 감싸쥔 제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시마다를 내려다보았다. 제자는 시마다보다 키가 컸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앳된 얼굴로 어린애 같은 장난을 쳐 오다보니 자주 잊곤 하지만, 제자는 거의 180센티에 이르는 큰 키의 소유자였다. 입을 앞으로 죽 내민 제자는 방금 전 시마다가 그랬듯 궁시렁거리며 뒷정리를 시작했다.


 허리에 양 손을 짚고 감시하듯 제자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자니 유난히 달이 밝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제대로 바라보니 거의 꽉 찬 달이었다. 내일이나 모레가 보름인 모양이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달이 그득그득 차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시마다는 가슴 어디께가 죄어 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마다는 이 어린 제자가 꽤나 귀여웠다. 처음엔 얼떨결에 시작한 연습이었지만 어느 새 오늘은 무엇을 가르쳐 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가르쳐 줄 때마다 제자는 노력으로 대답해 줬고, 그 결과물도 곧 나올 것이었다. 제자는 최근 성장이 좋았다. 아마 원하는 것을 다 배운 후에는, 두 번 다시 못 보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만큼의 빈도와 거리로 그를 대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다 끝났어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멍하니 한심한 생각을 하는 사이 제자가 뒷정리를 끝내고 말을 붙여 왔다. 고개를 깊게 숙인 감사 인사를 받으니 정신이 들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그래. 조심해서 가고 다음엔 이런 거 가져오지 마라~"

 "네! 제 성인식을 기대하세요."


 트레이닝복 위에 책가방을 둘러 멘 제자는 밝게 웃으며 골목길 너머로 사라졌다. 그 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던 시마다는 바지 뒷주머니를 괜시리 문질거렸다. 성인식, 제자의 성인식. 몇 년이나 남은 미래가 눈 앞에서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더 느긋하게 고민해도 될 것 같았다.

아직 제자는 귀여우니까, 아직 어리니까. 시마다는 고개를 바짝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름달이 아직은 다 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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