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우리는 정신을 차린 듯한 헤이미치와 화제의 인물, 설리반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에피에게 억지로 끌려 나왔는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그를 피해 캣니스의 앞에 앉는다. 캣니스는 어제 입었던 녹색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핀도 그대로다.



 헤이미치는 심드렁하게 피타에게 자기 옆자리를 가리킨다. 하필 설리반의 앞자리다. 피타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심기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에피가 나머지 빈자리에 앉는 바람에(캣니스와 내 옆이다), 피타가 자리를 바꿀 기회는 날아가고 만다.



 나는 토스트 한 조각을 집어들고 천천히 먹기 시작한다. 캣니스는 잉글리시 머핀을 첫 번째로 택한다. 모두가 먹는 동안, 식탁은 조용하다. 에피가 가끔씩 대화거리를 던지지만, 누구도 그걸 받아주지 않는다. 곧 그녀는 심통이 나서 커피잔을 감싸고 콧김을 내뿜는다. 피타가 캣니스와 헤이미치에게 핫초콜릿 한 잔씩을 건넨다. 헤이미치는 손사래를 치고, 캣니스는 고맙게 그것을 받아든다.



 설리반은 모두를 곁눈질하며, 쥐처럼 가끔씩 음식을 잽싸게 가져간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등은 약간 굽어 있고, 손톱은 온전하지 않다.



 마침내 직원들이 식탁을 치우기 시작하자, 캣니스가 입을 연다.


 “아저씨는 올해 어떻게 행동하실 건가요? 피타와 다프네를 앞세우고 뒤에 숨지는 않기를 바랄게요.”


 캣니스는 헤이미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헤이미치가 나를 바라보며 코웃음친다. 에피가 올해의 두 조공인에 대한 인상을 벌써 전했나 보다.


 “마음은 그러고 싶다만, 내가 생각보다 큰 역할을 맡고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방송에 나오는 건 이 둘에게 맡기고, 나는 전략에 집중하도록 하마.”


 캣니스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전략이 나에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데.”


 설리반이 불쑥 끼어든다.


 “당신들은 캐피톨과 짜고서 우승자가 되었어. 돕는다는 건 개뿔, 나를 저 뱀대가리에게 바치려는 거지?”


 이게 무슨 헛소린가 따져 물으려던 참에, 피타가 테이블을 쾅 두드린다.


 “그러면 그냥 여기서 나가세요. 나가서 캐피톨이 당신을 어떻게 대하나 겪어 보시고요. 아직도 다프네와 제가 가짜로 우승한 것 같다면, 당신에게 제가 경험 있는 살인자라는 걸 증명해 드리죠.”


 피타가 식탁에 놓여 있던 고기 써는 칼을 움켜쥔다. 에피가 입을 막고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그쪽은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겠네요. 피타 전에 제가 나설 것 같거든요.”


 캣니스가 설리반을 똑바로 노려본다. 게일의 충고를 지키려는 것 같다.


 “자, 진정들 하고.”


 헤이미치가 상황을 정리한다. 그는 피타의 손목을 가볍게 쥐어 칼을 내려놓게 한다.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한 번에 하나씩. 이따가 역에 도착하면, 스타일리스트들의 말을 군말없이 따르도록. 그 사람들이 딱히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헤이미치는 이 대목에서 설리반을 똑바로 쳐다본다.), 시키는 대로 해. 이상.”


 “하지만...!”


 캣니스가 말을 이으려 하자 헤이미치가 손짓으로 말을 끊는다.


 “의문이 들겠지만 그의 말에 따르는 게 나아.”


 내가 말한다. 캣니스는 애원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지만,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식탁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너희들은 잠시 나를 따라와라.”


 헤이미치가 우리 둘을 호출한다. 우리는 커피잔을 다시 움켜쥔 에피와 각자 생각에 잠긴 두 조공인을 놔두고 헤이미치를 따라 다른 칸으로 이동한다. 그는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엿듣지 않도록 열차 끝부분으로 향한다.


 “뭐, 너희가 저 여자아이와 가까이 지낸 건 안다. 그러니 저 애의 능력은 뻔히 알 테니까 나중에 다루자. 일단 코너 설리반에 대해서 너희들이 아는 걸 이야기해 봐.”


 “제 친구 게일의 말에 따르면 직업은 광부고 작업반장 말에도 쉽사리 따르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지금까지 사고가 안 난 게 다행이래요.”


 “저는 잘 모르지만... 하는 언행을 봤을 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피타가 화난 목소리로 말한다.


 “피타.”


 헤이미치가 한숨을 내쉰다.


 “죄송해요. 사실 아침 식사 전에도 저 사람이랑 한바탕 전쟁을 치렀거든요. 제가 계속 벽을 쾅쾅 두드렸다면서 새벽에 저를 깨웠어요. 저는 조용히 있었다고요.”


 피타는 억울해 보인다.


 “음,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무슨 사건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다행인 것 같은데요.”


 오래도록 12번 구역의 빈곤하고 고된 생활을 겪은 탓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인 대부분의 사람들을 고려하면, 설리반의 행동에는 참작의 여지가 없다. 그가 특별히 힘든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지금 나는 그걸 고려할 처지가 아니다.


 “저놈이... 아니, 저자를 캣니스의 방패막이로 사용할 수 있다. 너희 둘, 그걸 원하냐? 저자를 희생시키고 캣니스가 살아남도록 선택하는 걸 말이다.”


 헤이미치는 피곤한 기색이다. 그가 멘토가 된 후 이제까지 반복해 온 선택일 것이다. 작년에는 운이 좋아 한 명을 선택하고도 두 명이 경기장에서 살아 나왔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운이 좋지 않다. 12번 구역에서 또 하나의 우승자가 나온다는 게 기적이겠지. 혹은 그 전에 경기장이 폭발할지도 모른다.


 “원하지 않는다면, 캣니스에게 쏟아야 할 자원이 저자에게도 쓰일 거다. 물론 그게 그 여자아이에게 좋게 작용하진 않겠지.”


 “어쩔 수 없죠.”


 내 입에서 바로 튀어나온 말이다. 피타의 어두운 표정을 보아하니 그도 결심을 한 눈치다.


 “그냥... 최소한의 지도만 해 주죠.”


 긴 침묵 끝에 피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헤이미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제, 캣니스 애버딘으로 넘어가 보자. 걔는 뭘 잘하냐?”


 “활을 정말 잘 쏴요. 다람쥐의 눈알을 꿰뚫어 잡을 정도로요. 그리고 덫을 잘 써서, 재료만 손에 넣으면 무기 없이도 식량 수급에 문제가 없을 거예요.”


 피타가 재빨리 말한다.


 “칼도 좀 쓰고, 식물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나무도 잘 오르고요.”


 내가 나머지 사항을 덧붙인다.


 “승산이 조금이라도 있구나. 너희가 저 애를 그동안 훈련시켰던 거로 아는데, 맞냐?”


 “네.”


 “그래. 단점은?”


 “꽤 다혈질적인 면이 있어요. 충동에 의해 행동하기도 하고요.”


 “그건 감안해서 전략을 짜야겠구나.”


 헤이미치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어떻게 하죠?”


 “너희도 메이크업을 받게 될 거다. 그건 군말 없이 따르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우리의 준비팀들이 전해준 사항이다.


 “그러고 나서 안내해주는 대로 자리에 앉아 구경만 하면 돼. 표정 조심하고, 다른 우승자들과 친해져라, 알았냐?”


 고개를 끄덕이자, 헤이미치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와인 한 병을 들고 자기 방으로 가버린다. 창밖으로 휘황찬란한 캐피톨의 풍경이 보인다. 피타는 내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먼저 나간다. 나는 칸과 칸을 잇는 연결 통로에 숨어 환호하는 군중들을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클레이는 시나와 정반대로 활달한 사람이다. 나보다 겨우 한두 살 많아 보이는 외모에다가, 머리를 형광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그의 눈은 이름과 똑같이 진흙 색이다.


 “시나가 당신에 대해 정말 많이 이야기했어요! 나는 그걸 듣고 엄청 기대했고요!”


 “정말 정말 좋아요!”라는 외침을 뒤로 하고 나는 캣니스에 대해 생각한다. 캣니스는 시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원작에서 짧은 시간 안에 진정으로 친해졌으니, 이번에도 그러길 바란다.


 “이번에는 우승자들도 조공인들과 비슷한 컨셉으로 갈 거예요. 화끈한 추첨 행사를 거쳤으니까 개회식이랑 인터뷰에서도 화끈한 의상을 입게 될 거래요! 의상 만드는 건 나도 도왔어요!”


 ‘화끈한’이라니, 무슨 뜻일까? 노출이 많은 의상은 아니길 바란다. 저번처럼 불을 이용할까?



 클레이는 내 눈꺼풀에 진하게 오렌지빛 아이섀도우를 칠한다. 볼에도 비슷한 색조를 넣는다. 전반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려고 한 것 같다.


 “당신의 의상이에요.”


 클레이가 나에게 의상을 입히고 나서 요란스럽게 절을 한다. 그가 팔을 바깥으로 세 번 돌리는 광경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의상에 집중한다. 시나의 팀은 옷에 작년에 비해 SF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석탄 색의 캐주얼 정장에는 빛을 내는 큐빅들이 달려있고, 내 움직임에 따라 다른 색을 낸다. 왠지 최면을 거는 듯한 모습이다.


 “당신이 바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내가 바지로 하자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건 클레이가 맞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피타도 나와 비슷한 의상을 입었다. 바지는 나와 똑같은 모습이지만, 그는 상체에 간단한 흰 와이셔츠만 입고 있다.


 “내 새 스타일리스트 아마란스가 자기도 같이 의상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네 새 스타일리스트도 그랬어?”


 “정확한 추측이야.”


 “이번에는 가짜 불꽃이 없나 봐. 그리운데.”


 피타가 말한다.


 “퍽이나.”


 나는 가짜 불꽃을 붙이기 전에 유달리 긴장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반대로, 이번에 캣니스와 설리반은 옷 때문에 긴장하지 않는다. 시나는 다양한 질감과 빛깔의 천을 이어붙여, 석탄이 타오르고 꺼지는 광경을 옷으로 형상화했다.



 시나와 포샤가 옷의 조명을 켜고 끄는 법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조명이 켜지자, 천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석탄에 불이 붙고 하얗게 사그러드는 광경을 보여준다. 캣니스는 그것에 완전히 매료된 표정이지만, 설리반은 딱히 기꺼워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잠을 자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조공인들끼리 손을 잡으라고 할까?”


 피타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말한다.


 “왜? 너의 짝사랑이 다른 남자와 손을 잡아서?”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든다. 피닉이 우리 자리 가까이에 앉아 있다. 이번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것 같은 튜닉을 입고 있다. 그의 선택인지, 스타일리스트의 입김이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피닉의 몸이 드러나게 옷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 있다.


 “뭐 그런 셈이죠. 당신에겐 재밌는 광경이겠지만요.”


 피타가 부루퉁하게 말한다. 연기 시작이다.


 “안녕, 피닉. 다행이네, 피타. 시나가 시선을 정면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있는데?”


 나는 시나가 자세 시범을 보여주는 걸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너희가 그런 의상을 입으니 아주 성숙해 보이는구나. 산골 소녀와 소년 컨셉은 이제 갈아치워 버렸니?”


 우리가 우승자 인터뷰 때 입었던 옷을 말하는 거다.


 “멘토가 된 만큼, 의상도 변해야죠.”


 내가 말한다. 피닉을 빨리 떨궈내는 게 상책이다. 피타는 몰라도, 내 입을 조심해야지. 그는 반란 세력은 맞지만, 아직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니 조심하는 게 낫다.


 “이번에도 값어치 있는 비밀을 손에 넣으려고 그물을 짜고 있나요, 피닉?”


 이건 너무 심했나? 피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하지만 피닉은 가볍게 웃으며 내 말을 받아친다.


 “아쉽게도 이번 ‘파티’에서 너무 많이 얻어서 말이야. 이번 헝거 게임에서는 내 조공인들을 살리는 데 집중할 거야.”


 저 아래 광장에서 4번 구역 마차가 출발한다. 은으로 된 삼지창을 든 조공인들이 마차에 타고 있다.


 “이제 자리로 돌아가 볼게. 그 별명대로 행운이 따르길 바랄게, 행운아 양. 그리고 사랑을 지키길 바라, ‘순정파’ 피타.”


 피닉이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피타가 말한다.


 “와, 저 사람 진짜 장난 아니다. 경기가 시작하고 나면 경계 대상 1순위가 되겠는데.”


 “사실 경기 전에도 경계 대상 1순위야. 적이 되면 큰일을 만들 사람일걸.”


 “그러면 너는 왜 그렇게 공격적이었어?”


 아직 피닉이 자기가 반란 세력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비밀은 지켜줘야지.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이유를 댄다.


 “‘파티’에서 저 사람이 나를 거의 방치했거든. 그걸 갚아준 건데.”


 핑계라고 한다면 핑계일 수도 있지만, ‘파티’ 이후로 나는 피닉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텔레비전 버전 피닉에 대해서는.


 “있지, 너도 섣불리 행동하는 걸 조심해야 할 것 같아.”


 나는 대답 없이 열차 모형을 뒤집어쓴 6번 구역 조공인들이 전차를 타고 나가는 것에 집중한다.



  여름에 원래 알바를 잘 안하나요...? 이번에 두 분이나 그만두셔서 제가 일주일에 7일을 다 나가야 한답니다.ㅋㅋㅋ 다행히 오랜 시간 동안 근무를 하진 않지만 매일 알바 나가는 것도 정말 힘드네요. 여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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