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6

 

 

 

 

 

집으로 가는 길, 정재현은 문태일과 총 세 번의 뽀뽀를 했다. 문태일 집 앞에서 두 번, 정재현 본인 집 앞에서 한 번. 마지막은 뽀뽀라고 하기엔 좀 진했다. 혀만 안 섞었지, 집요하게 서로의 입술을 물었으니까. (버드 키스라고 부르는 게 적당할 것이다) 정재현은 문태일의 어깨를 잡고 벽에 기대 입술을 맞대면서 혀가 들어오면 어떡하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부끄럽지만 아직 키스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잔뜩 긴장한 정재현 모습을 잘 알았는지, 아니면 티가 났는지 문태일은 크게 밀어붙이진 않았다. 사실 문태일은 정재현 아랫입술을 물었을 때 애가 화들짝 놀라서 몸을 떨길래 차마 혀는 넣지 못했다. 분위기는 키스 각이였는데 까딱하다간 키스고 뭐고 평생 입술 못 붙일 거 같아서 그냥 입술만 주구장창…… 뭐, 그랬다.

“혀, 형…….”

“미안. 너 입술 부었네.”

문태일이 엄지손가락으로 정재현의 통통해진 아랫입술을 쓸었다. 세게 문 것 같진 않은데……. 따갑진 않지? 정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아요. 같아요? 애매한 대답에 문태일이 소리 내 웃고는 안 괜찮으면 꼭 자기한테 A/S 받으라며 정재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A/S요? 응. 무상으로 해줄게. ……기간은요? 글쎄. 그건 너 하는 거 봐서. 아무튼, 더 하고 싶은데 너 얼굴 터지겠다. 오늘은 그만할게. 아, 넵. 정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라이라는 말이 붙긴 했지만 (예쁜 또라이, 예또) 평소 캠퍼스 내에서 예쁘다고 소문이 났던 정재현은, 그 소문에 맞는 잘난 얼굴과 달리 연애 경험 전무 스킨십 전무였다. 그래서였을까 정재현은 터질듯한 얼굴을 하고 삐걱거리는 몸을 겨우 움직여 집으로 들어갔다. (재현아! 오른팔이랑 오른발이 동시에 나가는데? 어, 아, 네네) 거의 관절에 기름칠이 필요한 깡통 로봇처럼 삐그덕삐그덕 집으로 들어간 정재현은 주말 내내 문태일 생각만 했다. 그나저나 그 형은 입술 따갑다고 그러면 A/S는 어떻게 해주는 거지? 입술에 바르는 연고 하나 사주고 치우는 건 아니겠지? 궁금한 건 주말을 야금야금 다 까먹고 월요일이 되어도 해결되지 않았다.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주말을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 아침, 정재현은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문태일을 떠올렸다. 교수님 얼굴을 보면 그게 문태일 얼굴로 바뀌었고, 깜짝 놀라 고개를 숙이면 노트에 문태일이 그려져 있었다. 헉. 정재현이 황급히 눈을 비볐다. 충혈될 정도로 비비고 나서야 정재현의 손이 멈췄다. 더 비비자니 눈가가 따가워서 그랬다. 그러고 있으니 쉬는 시간에 옆에서 동기 하나가 많이 피곤하냐며 정재현에게 박카스 한 병을 내밀었다. 지난 학기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윈윈이었다. 이거 너 먹으려고 가져온 거 아냐? 정재현이 박카스를 쥐고 물었더니 윈윈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레모나랑 섞은 거 한 병 마셔서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얼굴은 초췌해 보였다. 너 주말 내내 놀았지? 과제 하느라 밤 샌 폼은 아닌데? 아냐,  나 한국어 공부했어. 공부? 응, 드라마 봤거든. 그게 공부야? 요즘 드라마 재밌더라. 윈윈이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래서 드라마 뭐 보는데? 펜트하우스. 넌 봐도 뭘 그런 걸 보냐. 왜? 재밌어.

“재현이 너는 요즘 연애하느라 바쁘지?”

“응? 연애? 아 그게…….”

과에 벌써 소문이 다 났나? 안 날 거란 생각은 안 하긴 했는데. 정재현이 뺨을 긁적였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친한 애가 많이 없을 윈윈까지 아는 거 보면 그냥 전교생이 다 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정재현은 민망함을 환기하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박카스 뚜껑을 열었다. 잘 마실 게 고마워. 아, 뭘 그런 걸로. 사실 소문은 잘 모르겠는데 너 카톡 프로필 봤거든. 둘이 잘 어울려. 맞다 나랑 형이랑 프로필 사진 같은 걸로 바꿨었지……. 정재현이 얼마 전에 문태일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린다니 고마워.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고마워하니까 뭔가 이상해. 그래? 응.

윈윈이랑 대화하면서 문태일에 대한 생각을 환기해서 그런가 정재현은 남은 시간 동안은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갑자기 문태일 얼굴이 뿅 하고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는 소리다. 정재현은 교수님이 나가자마자 가방에 교재랑 필기 노트를 넣으며 짐을 정리했다. 윈윈은 벌써 강의실 밖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윈윈이랑 같이 나가기로 했던 건 아니니 상관없었긴 한데 좀 아쉬웠다. 어디가 어떻게 잘 어울리는 지 좀 더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었는데.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그나저나 점심 뭐 먹지? 돈가스? 김치볶음밥? 정재현이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 순간 누가 뒤에서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전에 자신이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같은 과 선배가 서 있었다. 재현아,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정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 고백 이후로 접점이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의 동행에, 강의실에 남아있던 정재현의 동기들이 저마다 각자 의견을 내며 수군거렸다. 뭐야? 둘이 뭐야? 정재현은 그 말이 다 들리면서 일부러 모른 척했다.

정재현은 선배를 따라 강의동 뒤로 향했다. 건물 뒤편은 축제 때나 애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웠지, 평소에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여기면 괜찮겠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선배가 대뜸 정재현의 손을 붙잡았다. 재현아. 네? 정재현이 놀라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저, 선배 손 좀…….

“너 태일이랑 사귄다고 하던데.”

“아, 네……. 선배도 그 소문 들으셨…….”

“내가 너 거절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야?”

“네?”

네가 어떻게든 나한테 차인 거 복수할 거란 얘기가 돌아서, 너 그럴 애 아니라는 거 알면서도 혹시나 싶었는데. (참고로 정재현은 이 선배가 문태일 찾아간 거 모른다. 그럴 애 아니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인 것도) 둘이 왜 사귀는 거야? 너 태일이 괴롭히려고 일부러-.

“아니에요.”

“어?”

“저 그런 걸로 남 괴롭히는 사람 아닌데요.”

정재현이 다시 앞으로 다가서며 선배와 눈을 마주했다. 정재현이 다가가니 이번엔 선배가 뒤로 물러섰다. 사실 정재현은 이때까지 별생각이 없었으나, 선배가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그동안 저런 사람을 좋아했었나 싶어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평소라면 소문에 대해 해명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그냥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하고 말았겠지만, 이번만큼은 꼭 제대로 된 해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한때 좋아했던 선배에게도 문태일에게도 예의다 싶어서.

“선배. 저 선배 좋아한 거 진심이었어요.”

선배 때문에 태일이 형 안거, 아니라곤 말 못 하지만 괴롭히려고 만나는 거 아니에요. 선배한테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니 그건 좀 슬프네요. 한참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선배는 정재현의 진지한 표정을 보곤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그녀는 이 상황에 대해서 정재현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둘이 사귀는 건 문태일도 동의해서 그런 걸 테니까 자기가 끼어들 상황이 아니었고 그냥 질투가 나서 그랬다. 문태일을 좋아하니까. 그걸 치졸하게 정재현이 말하는 걸 들으면서 깨달았다. 사람 괴롭히고 이용하려고 만나는 거 아니면 됐어. 예쁘게 잘 만났으면 좋겠네. ……괜히 이상한 얘기해서 미안해.

정재현은 멀어지는 선배의 뒷모습 보면서 고민했다. 내가 너무 생각 없이 굴었나? 저 선배처럼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만약에 태일이 형도 그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역시 처음부터 제대로 얘기하는 게 좋았을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정재현은 제 핸드폰 액정을 가득 채우는 문태일의 이름에 깜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악! 얼른 핸드폰을 주워 확인하니 다행히 깨진 곳은 없었다. 모서리만 바닥에 찍혀서 살짝 울퉁불퉁할 뿐이었다.

“……여보세요?”

-재현아 뭐해? 강의 끝났어?

“아, 네, 저 이제 건물 밖으로 나왔어요.”

-점심은? 안 먹었으면 같이 밥 먹자.

“형.”

-응? 왜? 연강이야? 밥 먹기 애매해?

“아뇨, 그게 아니라…….”

저 형 좋아해도 돼요? 그 말에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정재현이 긴장해서 손끝을 물어뜯었다. 내가 말을 이상하게 했나?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 정재현의 고백 이후 한참 대답이 없던 문태일이 일순간 큰 소리로 웃었다. 평소보다 배로 호탕한 웃음소리에 정재현이 핸드폰을 귀에서 떼며 어깨를 움츠렸다. 혀, 형? 재현아, 그런 거 안 물어봐도 돼. 우리가 그냥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지? 그 말에 정재현이 용기를 냈다. 형. 저.

“그럼 그렇게 할래요. 좋아하고 싶어요.”

우리는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니까.

 

 

 

 

 

문태일은 수화기 너머로 구구절절한 고백을 듣는 줄 알았다. 좋아하고 싶어요. 동의를 구하는 그 말이 마치 좋아한다고 못 박는 것 같았다. 그래, 재현이는 아직 자기감정에 확신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문태일은 둘이 사귀게 된 계기를 떠올리며 푸흐흐 웃었다. 재현아, 오랜만에 학식 먹자. 형이 먼저 가서 식권 끊어 놓을게.

‘근데 나 왜 소개시켜달라 그랬어? 물어봐도 돼?’

‘……형 좋아해서요.’

‘어?’

‘그럼 우리 만나볼래?’

‘그럴까요?’

“재현아, 너 토요일에 내가 한 말 들었지?”

-네? 무슨 말이요?

“나 좋아해달라고 그랬는데.”

-……그랬어요?

“응. 사실 속으로 말한 건데. 통했나 봐.”

문태일은 정재현이 사랑스러웠다. 시작부터 자길 좋아한 게 아니란 걸 알아서 더 그랬다. 근데 그래서 뭐? 결국 좋아하게 됐잖아. 아, 얘는 왜 이렇게 예쁘고 귀엽지? 할 거면 하나만 하던가. 왜 혼자 다 해 먹는 걸까? 이런 애가 유교과 또라이라니 말도 안 돼. 정재현한테 제일 처음 또라이라고 말한 애는 진짜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 문태일이 학생 식당에서 식권을 두 장 끊으며 웃었다.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 생각할 정도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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