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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진은 감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스물다섯이나 속 알맹이는 서른 먹은 남자고, 주변에는 시커먼 사내자식들만 득시글거리던 삶이 익숙한 사람이다. 부족함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양친은 자식들에게 관심이 없었고-정확히 말하면 자식들을 외면하려 노력했다- 양친이 세상을 뜨고 나서부터는 동생을 부양하느라 최종학력은 고졸로 굳었고, 던전 쇼크 이후로는 그 동생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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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진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건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한유진은 감상적인 사람이 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자신이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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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한유진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탁자를 두드리는 것을 멈췄다. 걸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닮은 듯 수려한 얼굴의 사내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한유현, 하고 이름을 부르면 눈매가 슬몃 휘어지고 또 매끄럽게 올라가는 입매가 있다. 익숙한 얼굴이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었다? 한유진은 제게로 다가오는 동생의 얼굴을 보며 잠시 고개를 기울인다. 익숙한 얼굴. 입 속으로 중얼거리는 말은 일종의 편린이다.

 유현아.

 응.

 익숙하다 못해 혀 위에 감긴 이름이 어째 어색하다. 따끔하니 혀 아래가 찔린 기분도 들었다. 입 안, 아래쪽만 겨우 가리는 혀가 목구멍을 틀어막을 만큼 비대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지만, 한유진은 그 때도 그게 울음의 전조임을 몰랐다. 한유진은 가끔 그랬다. 너무 감성적이지 않아서, 감성적이지 못해서, 감성적일 수가 없었어서... 하여간 수많은 이유로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고 우울해야 할 때 우울하지 못했다. 그게 제 속을 파먹어 가는 줄 알았으면 조금 달라졌을까. 그래도 한유진의 본질이 어디가지는 않을 테니 여전히 그는 울음을 참고 삼켰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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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한유현의 본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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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진은 제 앞에 앉은 동생을 본다. 익숙한 얼굴이지만 낯선 표정을 하고 있다. 전에는 그랬다. 지금에야 익숙하지만... 달짝지근하게 풀어진 표정은 해연 길드장의 것이 아니라 한유현의 얼굴이다. 한유진의 동생인 한유현. 다섯 살이나 어리고 제 손으로 길러낸 동생의 얼굴. 한유진은 문득 조그맣던 한유현이 달아주던 카네이션을 생각했다. 버리고 왔던 카네이션을 떠올리니 다시 혀가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한유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제 앞의 동생을 본다. 제가 보지 못했던 스무 살의 동생. 시선이 마주치자 설핏 웃어주는 모습에 한유진은 문득 옛날에 살았던 집을 한 번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카네이션은 덧씌워지지 않았겠지. 그건 아주 옛날의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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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무슨 생각해? 어느새 다시 탁자 끄트머리를 두들기던 손가락 위로 열감이 감긴다. 다른 사람들보다 확연히 높은 체온이 검지를 둥글게 둘러싼다. 그제서야 한유진은 손끝이 아리다는 것을 깨닫는다. 제 손을 감싼 손이 저보다 훨씬 커졌다는 것도. 아직 스물이니 더 커질지 모른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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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그는 굳이 되뇌곤 한다. 원래 감상적인 사람은 아니지, 나는. 부풀어 오르는 혀 사이로 숨을 들이키며 생각한다. 드문드문 차오르는 울음을 삼켜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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