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가. 오늘 늦는다며. 과 회식? 데리러 갈까? 아아…. 술 많이 안 마실 건 아는데, 거기 같이 있는 사람들이 워낙…. 아, 아니야. 그 사람들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지이…. 일단 그러면 가게 주소만 찍어놔. 대충 내가 형 너무 안 온다 싶으면 데리러 갈게. 엉. 어엉. 술 마시기 전에 숙취해소제 꼭 먼저 먹고. 내가 응가 회식 한다고 해서 가방 주머니에 넣어놨어. 한 번 봐봐. 에이, 그런 말 하지 말고. 어엉. 어. 일찍 나올 것 같으면 전화 해. 엉~”

 

이창섭은 서은광에게 과도할 정도로 다정하게 굴었다. 그 다정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종종 무언가 잘못하기라도 하면 버림받을까 전전긍긍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통화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휴대폰을, 심지어 두 손으로 소중하게 떠받들고, 허리까지 굽혀가며 통화를 마친 이창섭을 바라본 임현식이 그의 자켓 안주머니에 있던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들고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통화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형 잡아먹는 상사랑 통화하는 줄 알겠다.”

“야. 대학생이 무슨 직장인이야….”

 

쓰읍, 하. 담배를 물려준 걸로도 모자라 라이터로 불까지 붙여준 임현식에게 고개를 까딱이며 감사를 표한 이창섭이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고 그보다 더 긴 호흡으로 숨을 내뱉었다. 연기가 직선으로 나아가다 주변으로 흩어져 사라져갔다. 호흡이, 감정이 진정되어서일까. 머리 위로 삐죽 솟아있는 세모꼴의 귀가 접히나 싶더니 이내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아니. 통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좋아가지고 혼현을 못 숨기는데, 형 앞에서는 어떻게 감추고 있대?”

“웃픈 이야기인데 아직도 형은 날 개수인으로 알아.”

“푸핫!”

 

웃지 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임현식의 팔을 퍽 친 이창섭의 목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 천하의 늑대가 개취급 당하는 건 슬픈 일인데, 그걸 모르는 은광이 형이랑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건 좀 웃긴 일이다.”

 

후우. 이창섭이 입꼬리만 올려 웃으며 담배를 다시 빨아들였다. 그를 따라 제 담배를 입에 문 임현식 또한 길게 흰 연기를 내뱉는다.

 

“근데 늑대여도 괜찮지 않아? 형을 물진 않을 거잖아.”

“…….”

“……그래. 물고 싶은 걸 참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런 뜻이 아닌 거 알잖아.”

“…그래. 알지. 아는데….”

“그리고 형이랑 몇 년을 봤는데, 늑대라고 해서 너랑은 이제 절교야! 늑대는 무서우니까! 이러겠어?”

“…….”

“……그랬어?”

 

어엉, 그래서 들키면 죽어. 이창섭이 고개를 푹 숙였다. 길게 들이쉬고 내신 숨 탓에 짤동해진 담뱃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들키면 죽는다.

이창섭 X 서은광

w.벨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아는 사실. 서은광은 겁이 많다. 놀려먹기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 감수성 풍부한 사람이-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그는 감수성이 너무나도 풍부했다.- 놀라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는 모습을 보면 더 놀리고 싶어하는 사람과 더 이상 놀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곤 했는데, 임현식은 전자에 속했고 이창섭은 후자에 속했다. 물론 이창섭 또한 종종 전자의 사람이 되곤 했는데 전반적으로 후자에 속한다기에 들어보니 과거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했다. 임현식은 그 사건이 있었다고 한들 이창섭이 지나치게 서은광에게 저자세로 굴 필요까지는 없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창섭은 서은광 한정으로 그가 만들어놓은 틀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생각보다 서은광이 담담하게 넘어갈 수 있을 수도 있는데, 이창섭만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말한 것도 이창섭의 말이었다.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그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라고 말했다가 이창섭 발표자로부터 ‘서은광에 대한 고찰’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들을 뻔한 뒤로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했다. 둘 사이의 일인데 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뭐…. 평소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창섭이 제 앞에서 서은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우는 지 아닌 지 알 수 없는 앵알댐을 듣는 게 재미있어서도 조금 있었다. 307% 정도?

 

“그래서, 이창섭 선생님의 오늘 고민은 무엇인가요?”

“장난치지 마…. 나 지금 진지해….”

“언젠 안 진지한 적 있었나.”

 

고개를 처박고 있는 이창섭의 동그란 뒷통수를 보며 누군가에게 카톡을 하던 임현식이 저벅저벅 복도로 나가 강의실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한참 뜸을 들이는 시간이라서 굳이 말하지 않고 이동이 가능했다. 이창섭은 서은광에 한해서 빤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임현식은 이창섭이 엎어져있는 책상의 앞 책상에 걸터 앉았다. 토도도독. 카톡의 대상자에게 강의실 호수가 전송됐다. 떡볶이 시킨다. 엉. 엄청 매운 걸로. 나중에 은광이 형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순한 걸로. 아, 싫어. 난 매운거 먹을래. 너 많이 먹잖아. 다 시켜. 확 나갈까보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응가가 요새 다시 귀를 보여달라고 해.”

“보여주면 되잖아. 어차피 개로 아는데.”

“그게 문제야.”

 

갑자기 고개를 든 이창섭에 카톡을 하던 임현식의 고개가 그를 향해 내려갔다.

 

“은광이 형 개 좋아하잖아.”

“그래.”

“늑대는 안 좋아하지.”

“아, 진짜.”

“늑대랑 비슷한 개도 많은데 그냥 이번에도 그렇게 넘어가면 되잖아.”

 

은근히 눈치 없는 형인데 왜 매사 그걸 걱정 해? 임현식의 말에 이창섭이 늘어뜨렸던 팔을 들어 책상에 놓았다.

 

“…완전 동물화를 보여달래.”

“…갑자기?”

 

눈을 나름 동그랗게 뜬 임현식이 이창섭의 말을 정리해보면 이러했다. 수인과 인간이 공존한 시간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수인에 대해 겁이 많은 인간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서은광이었는데, 소동물의 경우 귀여워하지만 큰 동물은 겁을 먹는 편인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수인이 절친인데 자기가 겁을 먹는다는 이유로 수인이 편히 수인화하지 못하는 게 말이나 되냐고 했단다. 어렸을 때 이창섭뿐만 아니라 다른 수인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 때문에 겁이 생겼다고 말하긴 했다는데 본인이 생각해도 앞으로도 이창섭의 수인화를, 혹은 수화를 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나보다. 예전과 지금은 다를 거잖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창섭의 손을 붙들고 올려다보며 하는 그 말에 이기지 못하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여버렸단다.

 

“그 형은…. 형 보고 시베리안 허스키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 그래서 안그래도 허스키랑 말라뮤트 사진을 좀 보내주긴 했는데….”

“한번씩 시뮬레이션 해봤었나보네?”

“당연하지. 그때 응가가 얼마나 놀랬는데….”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아 완전 수화가 되었던 때가 있었다. 자기가 없을 때 서은광이 좀… 난처해하던 때가 있었는데 마침 그 광경을 발견했더랬다. 서은광의 가방과 제 가방을 모두 내던지고 달려들었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다시 기억이 돌아왔을 땐 놀라 바닥에 주저앉은 서은광이 저를 바라보며 울고 있었고, 손을 내밀었을 때 움찔하며 몸을 뒤트는 서은광이 있었다. 그제야 이창섭의 시야에 제 손이 들어왔었다. 사람의 손이 아닌, 털이 부숭하고 발이 짧은 동물의 발이.

 

“…그때 이야기는 지금도 잘 하지 않아.”

 

뭐 좋은 일이라고 그걸 이야기하겠냐마는. 이창섭이 팔을 베고 누워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을 하늘이라 하늘이 높다. 캠퍼스 나무들의 낙엽이 다 떨어지기 전에 형이랑 단풍이나 보러 가자고 해야하는데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다음날 서은광이 이창섭에게 손을 내밀며 놀라서 미안하다고,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긴 했다.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맞잡을 당시 손이 엄청 떨고 있었던 건 기억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싸움은 안 좋은거니까 같이 사과하러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손을 맞잡고 병문안을 갔는데, 보자마자 늑대라고 소리치는 아이가 있었다. 팔에 꽂은 링거의 색이 다른 걸 보니 수인이었던 모양이다. 이창섭은 늑대라는 말에 급하게 저를 돌아보던 서은광의 눈동자를 기억하고 있다. 인과가 정확한 사건이었으므로 서로에게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기에 간단하게 병문안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서은광이 물었다. 늑대야? 이창섭은 흘끗 서은광을 바라보았지만 서은광은 가방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그를 눈짓으로만 보다 아니, 하고 이창섭이 대답했다. 서은광은 그제야 이창섭을 돌아보았다. 놀라서 미안해. 그렇게 말하는 서은광을 바라보던 이창섭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대답했다. 앞으로도 본인이 늑대라는 사실은 절대 들켜선 안 된다고 다짐했던 날이기도 했다.

 

“그럼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곧 보름이야.”

“아.”

 

사람들은 종종 늑대와 개를 헷갈려할 때가 있었다. 그것은 수인일 때도 마찬가지였으나, 보름달이 뜰 때는 두 종은 확연히 차이를 드러냈다. 평소 각자의 눈동자 색을 띄고 있더라도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샛노랗게 변한다던가, 주둥이가 더 길어진다던가, 털이 더 억세지고 풍성해진다던가, 덩치가 더 커지고-늑대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발톱이며 이빨이 날카로워진다던가, 좀 더… 예민해진다던가. 한 번 씩 이창섭의 동물 모습을 봐왔던 서은광이라면 이번 동물화를 보고 이창섭이 사실은 개가 아니라 늑대였다더라 하는 걸 알아차릴 게 뻔했다.

 

“그럼 그 전에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니야?”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보름이 되어가면 슬슬 변하더라. 지금이 딱 그때여서…. 미루려고 하긴 했는데 왜 이리 고집인지 모르겠어.”

 

뭘 알고 그러는 건가? 덧붙인 이창섭의 말에 임현식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형이 그럴 눈치나 있어? 주변에서 부추기는 거에 귀가 팔랑거려서 시도해보려고 한 건 있겠네. 임현식의 말에 이창섭이 미간을 좁혔다.

 

“분명 육성재 그 새끼가 분명해. 그 새끼도 내가 늑대인거 알잖아.”

“형, 너네는 여전히 사이가 안 좋구나. 은광이 형이 걜 많이 감싸긴 하지….”

“…….”

 

이창섭이 고개를 드는 것을 마주한 임현식이 왜? 하고 물으니 대답은 않고 둥그런 볼만 팔에 뭉갠다. 임현식이 난처한 듯 웃었다.

 

“아니, 그 형이 날 좋아하는 걸 보고 나더러 어쩌라고.”

“넌 그걸 꼭 입 밖으로 꺼내야겠냐?”

“형 반응 보는 게 재밌어.”

“지랄.”

“나중에 유도 심문해서 욕 녹음 성공하면 꼭 은광이 형 보여줘야지.”

“그래라, 진짜.”

“호랑이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그것도 억울해.”

 

임현식이 호랑이 수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서은광은 하하! 웃었다. 그렇구나! 그래. 그랬구나…! 응…. 나, 잠깐만…. 그렇게 향한 곳이 이창섭의 뒤여서, 이창섭은 울고 싶었다. 218. 호랑이도. 사자도. 곰도. 늑대도. 무서운 동물은 못 봐서 달음박질치면서 임현식은 좋다고 제 뒤에서 매달려 이후 또 만난 임현식 보며 인사를 하더라. 아니, 무섭다며. 무섭다며!? 그, 그래도 멋있잖아! 이창섭은 또 울고 싶었다. 여우새끼랑 호랑이새끼가 번갈아가면서 제 속을 태운다. 가장 제 속을 태우는 건 서은광이지만 서은광은 이창섭에게 늘 예외니까.

 

“호랑이도 늑대 뒤에서 흘끗흘끗 하는데 늑대도 괜찮겠지.”

“그 얘기하기만 해.”

“하겠니. 이렇게 재밌는 광경을 두고.”

“하.”

 

담배 말린다. 주머니를 뒤적여 라이터를 꺼내 쥐며 말하는 이창섭에 임현식이 고개를 들었다. 강의실 뒷문께에서 발견한 무언가를 바라보던 임현식이 이창섭을 내려 보았다.

 

“담배 피우는 거 형이 알면 뭐라고 하겠다.”

“……들킬 리가 없지.”

“창섭이 형은 은광이 형한테 비밀이 많네.”

 

임현식은 이창섭이 쥐고 있던 라이터를 빼내고 그의 머리 위에 얹어냈다. 강의실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을 거라는 건 두 사람 모두가 잘 알았다. 그리고 언제 만날 겁 많은 인간을 위해서라는 것도 잘 알았고. 킁, 은광이 형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임현식의 말에 덧붙일 말이 없어 머쓱해하며 이창섭이 말하자 어지간하네, 하고 임현식이 대답한다.

 

“담배 피우는 것도 비밀이고, 개가 아니라 늑대인 것도 비밀이고, 형을 좋아하는 것도 비밀이고.”

“…….”

“그거 다 터지면 은광이 형이 많이 서운해 할 거야.”

“절교나 안 당하면 그만이지.”

“형은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건데?”

 

이창섭이 입을 다물었다. 오래 기댄 탓에 팔이 저리기도 하고, 얼굴에 좀 열이 오른 것도 같아서, 차가운 책상 위에 다시 볼을 붙인다. 서늘한 온도가 볼을 타고, 척추를 타고 내려가는 것만 같다. 몸이 식어가는 걸 느끼며 이창섭이 눈을 감았다.

 

“나는 지금이 좋아.”

 

은광이 형이 은광이 형으로 있는 게 좋아. 내게 세상을 알려줬어. 본능적으로 살 수 있었던 나를 인간답게 살게 한 게 형이야. 늑대는 사회적인 동물이자 독립적인 동물인데, 나는 독립적인 면이 좀 더 강했어. 그걸 부모님도 종종 걱정했고. 나는 걱정하지 않았는데, 그게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걸 응가가 알게 해준 거야. 응가는 나중에 좋은 사람을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볼 거야. 나는 응가를 좋아하고, 응가도 나를 좋아한다 말했지만 그게 같은 뜻은 아니라는 걸 알아. 응가는 나에게 연애나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냐고 물었지만… 늑대는 한 상대만을 사랑하는 걸. 마주 사랑할 수 없다면 내 사랑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걸 지켜보는 게 좋아. 곁을 내어주기만 했으면 좋겠어. 은광이 형의 모든 순간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형은 내가 늑대라는 걸 몰라야 해. 내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는 형 앞에서, 내 정체성을 실제로 부정당하고 싶지 않아. 나도 이기적이지. 형 덕분에 내 정체성을 확립했는데, 형이 나를 부정하는 걸 견디지 못해서 끝까지 내 정체성을 숨기려고 한다는 게. 나는 지금을 잃는 게 두려워. 그때 나를 보며 두려워하던 형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 늑대냐고 묻던, 두려움 가득한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거야. 앞으로도 잊을 생각 없어. 그 눈빛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 거야. 평생 비밀로 할 거야.

 

“형이 알게 되면 어떻게 할 건데.”

“…….”

“자의든 타의든 알게 되면. 그 이후는 생각해봤어?”

 

이창섭이 상체를 들어올렸다. 임현식에 의해 머리 위에 얹어졌던 라이터가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약간 눌려있던 볼이 금방 탄력을 되찾는다. 감은 눈으로 과거 저를 두렵게 바라보던 서은광의 작은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차갑게 식은 볼 안쪽으로 혀를 누르던 이창섭이 고개를 젓는다.

 

“안 들킬 건데 뭘 생각해. 들키면 뒤져야지.”

“음…. 그렇구나. 그럼….”

“-창섭아.”

“?!”

 

덜컹!

 

이창섭이 급하게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뒤로 몸을 돌렸다. 양 손에 하얀 봉투를 들고 있던 서은광이 멍하게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 떨어졌던 라이터가 책상의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은광의 시선이 땅으로 떨어진 라이터를 향하자 급하게 의자를 뒤로 밀고 앞으로 나선 이창섭이 서둘러 주저앉아 바닥에 떨어진 라이터를 찾았다. 아, 아니다. 이러는 게 아니라. 어. 이건, 그러니까…. 라이터를 주워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가, 아차 싶어서 책상 위에 얹고 서은광을 바라보려던 이창섭은 그의 시선이 어느새 제 머리 위에 있음을 알았다.

 

아.

 

이창섭이 홀린 듯이 제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삐죽 솟은 삼각형의 귀. 평소보다 더욱 커지고, 뾰족해진 귀의 솜털이 축축해진 손에 엉겨붙는다. 미친, 이게 뭐야?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했던 순간들이, 순간 느리게만 흘러가는 것만 같던 시간이, 갑자기 배는 빠르게 흐르기 시작한 느낌을 받았다. 서은광의 눈동자가 위에서 아래로 굴러 내려오는 순간.

 

“창섭아!!!!”

 

이창섭이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강의실을 뛰쳐나갔다. 책상을 헤치며 앞문으로 달려나가던 이창섭은, 뒷문을 지나칠 때 검은 짐승의 모습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고, 앞문으로 나갈 때까지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던 서은광이 손안에 들고 있던 것들을 내던지고 그를 따라 뒷문으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짐승이 내던진 떡볶이 봉투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낚아챈 임현식이 순식간에 조용해진 강의실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쫓아 달려나가던 은광이 형 표정을 보면 여태 한 걱정이 다 소용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들키면 죽는다는데…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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