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려면, 사랑할 대상을 찾아야 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맞닥뜨린 둘은 처음부터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그건 아닌거같은데요!"

다시 완고해진 다니엘이 거세게 항의했다.


"뭘 아니야! 나는 내가 더 잘알아. 잔말말고,클럽으로 간다."

"클럽에서 뭔 사랑이에요, 원나잇이지!"

"그럼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디로 가야되는데?"

 

정작 성우가 질문 하자, 다니엘이 버벅거렸다.


"그..야. 자연스럽게 만나서, 썸부터 타고..연애하고.."

"어디서?"

"........"


특별한 직업 없이, 하고싶은것만 하면서 설렁설렁 사는 성우에게 일정하게 방문하는 장소나, 단체같은 게 없었다.

결국 할 말을 찾지 못한 다니엘은 백기를 들고 조용히 클럽에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말이 사랑의 대상찾기지, 간만에 놀러가는 기분에 성우는 조금 들떴다.

올블랙 세미수트로 차려입은 성우는 멋있다, 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가만히 있으면 냉랭한 분위기가 피어나오는 작은 얼굴은 조각상같았다.

거울을 보며 새삼 자기 모습에 만족하는데, 다니엘이 자기가 전에 사준 세미정장을 입고 어정쩡하게 걸어나왔다.


"이런 옷 처음 입어봐요."

"기억도 안난다며, 뭔들 처음이겠지."

"그런가."


자기의 모습을 어색해하는 반면에, 화려한 무늬의 세미정장은 다니엘에게 잘어울렸다.

천사노릇엔 소질이 없어도 멋내기에는 소질이 있는지, 알아서 머리에 왁스를 척척 발라 살짝 위로 올린 핑크색 머리도 괜찮았다.


평소의 스포츠청년같은 분위기와 다르게, 제법 성숙해보여 생소하다.


"멋지네."

역시 내 센스란, 감탄하며 성우가 과감없이 칭찬하자 다니엘의 얼굴이 빨게졌다.


"그래서, 그쪽이랑 지금 이렇게 입고 클럽가자구요."

"그쪽, 당신이라고 하지말고 앞으론 그냥 형이라고 불러."

".....그건 좀..내가 나이가 몇인데.."

"습."


마지못해 그래요, 대답하고 다니엘은 형. 하고 불렀다.

잘하네, 성우는 기특하다며 다니엘의 머리를 부비부비 만졌다.

에이씨, 그럼 왁스 다시 해야되잖아요 투덜대는 녀석을 보면서 성우는 완전 사람 다됬네. 라고 생각했다.





간만에 찾아오는 클럽은 여전히 화려하고 시끄러웠다.

들어오자마자 여자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는 게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이 자신에게만은 아니였지만.


정작 본인은 딱봐도 클럽초짜란 티는 다 내면서 성우만 바라보고 있는데도, 다니엘에게 우수수 꽂히는 관심과 욕망의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데리고 다니기 쪽팔리지 않을 정도 라고만 생각했던 성우는, 생각보다 다니엘의 인기가 대단하자 떨떠름해졌다.


룸을 잡자마자, 여자들이 물밀듯이 찾아왔다. 

보통이라면 남자들이 룸을 잡고 어떻게든 여자들을 꾀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하지만, 들어오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은 둘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치열한 경쟁을 이기고 입성한 여자들은 하나같이 다 이쁘고, 잘빠졌다.


그 중에 웃으면 보조개가 들어가고 귀여운 스타일의 어린 여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성우는 정작 심드렁했다.

이렇게 순하고 여려보이는 여자는 별로, 라고 생각하며 성우는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어쩔줄 몰라하는 다니엘을 힐끗 봤다.


겉으로 핑크머리에 화려한 의상만 보면 양아치같은데, 하나하나 여자들의 반응에 즉각적으로 보이는 순진한 리액션의 갭이 오히려 먹히는 건지, 인기만발이다.


지금도 누님스타일의 여자가 다니엘을 통째로 잡아먹으려고, 옆에 찰싹 붙어서 다니엘의 심신을 농락중이었다.


"이름이 다니엘이라고? 외국살다왔어?"

"아뇨. 근데, 그 손좀.."

"어머, 미안. 내가 모르고.."


여자는 민망해하는 구석도 없이 상큼하게 웃으며 다니엘의 허벅지를 지분거리던 손을 뗐다.

모르긴 뭘몰라. 성우는 코웃음을 쳤지만 그저 순진한 다니엘만 아, 아니에요..하면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딱봐도 육식녀인 여자는 오늘 작정을 한건지 이번엔 다니엘의 머리에 뭐가 묻었다며 손가락으로 다니엘의 핑크빛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꾼은 꾼을 알아본다고, 저렇게 대놓고 밝히고 적당히 뻔뻔한게 좋은데.


성우는 왠지 김이 빠져 슬쩍 룸을 빠져나와버렸다.

육식녀의 마수를 쳐내느라 정신없는 다니엘은 자기가 나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도와준다더니, 초치고 있네.



룸을 빠져나온 성우는 바에 앉아, 칵테일을 시켜 혼자 홀짝였다.

어차피 자기정도 되면 꼭 룸에 있지 않아도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오는게 여자다,라고 생각하며 성우는 나른하게 술잔에 입을 댔다.


성우의 예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아, 또각또각, 소란스런 음악속에서도 가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이힐 소리와 인기척이 느껴졌다.


역시 옹성우, 어디 안죽지. 그런 생각을 하며 성우는 피식피식 웃었다.

그러나, 어떤 여자일까~ 기대감을 안고 성우는 뒤돌아봤다가 표정이 구겨졌다.


"옹성우."

"......가희야."


세상에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전여친이었다.

큰 키에 죽이는 몸매, 당당한 성격이 매력인 여자였다. 좋은 여자였지만, 그래서 지루했다.

순탄한 연애를 참지못한 성우는 양다리도 모잘라 세다리, 문어다리, 남자까지 손뻗었다.


딱히 숨기지도 않은 성우에게 넌 최악이다, 쿨한 성격의 전여친은 한번 비웃고 떠나버렸다.


어엉, 그래. 하고 자신도 쿨하게 보내줬지만 괜히 아쉽긴 아쉬웠다.

그나마 개 중에선 깔끔한 마무리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럽에서, 이렇게 다시볼줄은 몰랐는데.


얼떨떨하게 올려다보는 성우를 보며 그 전여친은 팔짱을 끼고 헤어진 그날처럼 비웃음을 짓고있었다.


"오랜만이다?"

"어엉. 술이나 한잔할래?"


날카로운 전여친의 말에 성우는 뻔뻔스럽게 받아쳤다.

지지않고 전여친 역시 있는한껏 빈정거린다.


"내가 너랑 한잔 마실 입장이니. 너도 여전히 웃기네."

"그럼 인사는 왜하냐? 갈길 가지."

"너같은 놈이 잘사나 보러왔지."


성우나 가희나, 입안에 칼날이라 품은 것처럼 서로 신랄했다. 입은 웃고있지만, 눈은 서로를 차갑게 노려봤다.


"너는 그럼 잘사냐?"

성우의 물음에 가희는 피식 웃었다.


"응. 엄청. 넌 오늘도 여자나 낚으러 왔어?"

"너도 여기있으면 할말 다한거지."

"난 남친있어, 친구 생일때문에 온거야."

"진짜, 무슨 수작이야. 얼른 생일축하합니다~라도 부르러가던가."


짜증이 확 나서 성우는 까칠하게 대답했다. 연애중도 아니고, 헤어진 전여친한테 베풀 수 있는 매너는 여기까지였다.


"안그래도 갈거야. 여전한거같아서 다행이네."

"뭐가 다행인데."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넌 오늘도 여기서 혼자서 원나잇 상대나 찾고있구나."

"....너 짜증난다. 그냥 좀 갈래?"

"응 너 짜증나게 하려고 인사한거야. 잘있어."


전 여친은 악의가 듬뿍 담긴 미소를 지으며, 성우의 어깨를 톡톡 치고 떠나갔다.

번잡한 사람들 속에서 금새 모습을 감춘 전여친의 뒷모습을 보며 성우의 기분은 최악으로 내려갔다.


오늘 일진 정말 사납네.


화나는데, 허탈해서 화날 기분도 나지 않는다.

뱃속에 뱀 백마리라도 또아리를 튼 듯 속이 아팠다.

더이상 클럽에 한시라도 있고싶지 않아 성우는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후덥지근한 열기에 벗어나 밤공기를 쇠자 허무한 기분은 더 물밀듯이 밀려왔다.


사랑은 뭔놈의 사랑, 다니엘의 말대로였다.

녀석의 말에 휩쓸려 연애할 상대를 찾겠답시고 나온 자신도 우스웠고, 결국 전여친 따위에게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직시당한 것도 우스웠다.


시끄럽고 열기가 가득한 클럽으로 돌아가고싶지 않아 성우는 가만히 혼자 벽에 기댔다.

이대로 집에나 가버릴까, 라고 생각하는 성우에게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여자가 말을 걸었다.


"혼자 왔어요?"

"아니, 일행있어요."

"흠. 아쉽네."


여자는 마저 남은 담배연기를 후, 내뱉고 하이힐로 담배를 짓이겼다.

하이힐에서 여자의 희고 쭉 뻗은 다리, 그리고 제법 육감적으로 생긴 입술까지 성우의 시선이 쓱 훑어갔다.

자신의 노골적인 시선을 눈치채고도 여자는 흥미롭다는 듯이 나른하게 미소지었다.


"아쉬울게 뭐가 있나요?"

성우가 한쪽 입꼬리만 올려 씩 마주 웃었다. 




알 거 다 아는 성인남녀가 오밤중에 아쉬움없이 할 거라곤 뻔했다. 

능숙하게 호텔로 리드하는 성우의 에스코트에,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섹스는 만족스러웠다. 여자는 농염했고, 하룻밤 불장난은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후희 중 여자가 우리 오늘부터 만나볼래?따위 소리만 하지 않았다면.


뒤끝없고 성숙해보이는 첫인상에 끌렸는데 아마추어도 아니고 뭐라는 건지.

확 식어버린 성우는 여자가 잠들때까지 기다렸다가 슬쩍 호텔방을 빠져나왔다. 

방금전까지 격렬하게 불타올랐던 상대인데, 살이 닿기도 싫어졌다.


한바탕 뛰고나니 후련하긴 한데, 재미는 없다

이렇게 사는 게 지루한데 멈출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엘레베이터를 타고 바람같이 호텔을 빠져나오던 성우는 호텔로비에 서서 자신을 지켜보던 다니엘을 발견하고 우뚝 섰다.


언제나 신출귀몰한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니까.


전에 당한 바가 있어 그다지 놀라지도 않은 성우는 다니엘 쪽으로 걸어갔다.

다니엘은 세상 우울한 표정으로 그런 성우를 처연히 바라보고 있다.

혼자 룸에서 뭔 일을 당한건지 다 헤쳐진 셔츠로 방탕한 차림인데도, 어슴푸레한 새벽속에 다니엘은 처량해보였다.

새삼 두고온게 미안해져, 뻘쭘하게 성우는 물었다.


"언제부터 있었냐."

"형이 갑자기 사라지고 난 후, 얼마 안되서요."


미안하다고 해야되나. 망설이면서 성우가 미안해. 하는데 다니엘이 성우를 외면하며 이야기했다.


"됐어요, 미안해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시무룩해하는 다니엘은 처음이라 성우가 변명하지 못하고 다니엘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때, 자신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다니엘의 인영이 흔들렸다.

아주 미묘한 차이였지만 눈썰미가 좋은 성우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마치 공기가 다니엘을 투과하듯, 아지랑이처럼 다니엘의 모습이 조금씩 흔들렸다가 투명해지기를 반복했다.

인영의 가장자리가 신기루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며 흐트러졌다.


놀란 성우가 손가락질을 하며 더듬더듬 웅얼거렸다.


"너..지금....모습이 이상해.."

"말했잖아요."

"뭘?"

"나는...이대로면...형이 그럴때마다."


다니엘은 말을 삼켰다가 억지로 꺼냈다.


"형이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스스로도 상처받을때마다 난 약해져요."


어두운 얼굴로 다니엘이 거의 꺼져가듯이 중얼거렸다.

그제서야 성우는 다니엘을 처음봤을때, 이대로라면 소멸할 수 도 있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성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건 원하지 않는다. 

그저, 평소처럼 가벼운 행동이었을 뿐인데 어떤 존재가 아예 사라져버리는 무서운 일같은거. 성우는 감당할 수 없다.


성우는 어쩔줄 몰라하며 다니엘의 팔을 잡고 의미없는 사과를 반복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미안해."


살짝 겁에 질린 성우를 다니엘이 울망한 얼굴로 쳐다봤다.

원망대신 안타까움만이 가득한 눈이었다.


너는 왜 날 그렇게 보는거야.

성우의 가슴이 갑자기 답답해졌다.

미어터질거 같은 감각에, 뭐라도 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성우의 두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니엘이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그러는거에요...매번.

 그러고싶지도 않으면서. 

 사실 형이 제일 그러고싶지 않잖아요."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는 말에 성우는 부정하지 못했다.

늘 충동에 이끌리고, 후회를 반복하는 자신이 자신조차 싫었다.

스스로를 긁는 자해같은 행동에, 옅은 흉터들은 쌓이고 쌓여 아픈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모르겠어. 난...나는."


평소엔 모터처럼 움직이는 입이 얼어붙었다.

성우는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다 고개를 아래로 처박았다.


아무말 못하는 그런 성우를 그때, 다니엘이 갑자기 껴안았다.

뜻밖의 체온에 당황하여 몸을 물리려고 하는데 다니엘이 큰 손으로 성우의 등을 토닥였다.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마치 무해하고도 커다란 대형 인형에 안긴 기분이 들어 성우는 얼떨결에 다니엘을 마주 안았다.


"내가 형을 도와줄수 있게 해줘요."

이와중에도,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다니엘의 말이 애상스러웠다.


성우는 자신도 모르게 다니엘의 어깨에 고개를 슬며시 떨구었다.


마주잡은 등에, 우연히 손에 만져진 다니엘의 날개는 처음 볼때보다 더 작아져 있었다.

성우는 왠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어, 손바닥보다 작아진 날개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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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같은 시리어스를 쓰고싶다.라는 욕망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주인공들이 힘들면 저도 쓰기 힘드네요.


연약한 망나니를 전 좋아해서....옹 고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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