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지(@durumagi_loh) 님의 로드&빛라레 팬아트를 보고 쓰는 주접용 엽편입니다.

 * 약-간의 성애적인 요소의 암시가 있습니다.

 * 원본이 된 팬아트는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발론은 항상 바쁘다. 로드는 특히 그랬다. 많고 많은 동맹국과의 관계를 조율하고 기사들을 관리하다 보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왕조차도 마음대로 쉬지 못한다. 휴가를 내는 것조차 일이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느 여름날, 로드는 느닷없이 휴가를 냈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아우레아가 기사들에게 수영복을 하나씩 만들어 선물했기 때문이다.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녀의 연인, 라이레이 옌은 어떤 수영복을 선물 받았을까. 그걸 입은 모습은 얼마나 예쁠까.

 

눈을 감으면 비키니를 입은 라이레이가 떠올랐다.

 

눈을 뜨면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라이레이가 어른거렸다.

 

잠자기 전에는 래시가드를 입은 라이레이가 생각났다.

 

로드는 머릿속의 라이레이에게 자신이 아는 수영복이란 수영복은 모두 입혀보았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다. 망상……. 아니 생각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휴가를 신청했다.

 

왕의 권한으로 억지로 통과시키고 라이레이에게 달려가 말했다.

 

해변으로 가자.

 

단둘이서.

 

지금 당장.

 

 

* * *

 

 

라이레이 옌은 생각했다.

 

‘그대, 어디 아픈가요?’

 

용인족의 지도자로서 살아온 경험이 없었다면 그대로 입 밖에 낼 뻔했다. 연인 사이라지만 상대는 일국의 왕이며 동맹의 수장이다. 무심코 건넨 말조차 아발론과 용인족 사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라이레이는 로드의 말에 답하는 대신 눈을 가늘게 떴다. 정신 차려요, 로드. 여기 밖이라구요. 사람들이 보잖아요.

 

로드가 눈을 깜빡이다 말했다.

 

“싫은가?”

 

아무래도 라이레이의 마음은 전해지지 않은 듯했다. 라이레이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병장 한가운데서 기사들의 시선이 온몸에 꽂혔다. 누군가는 질투했고 누군가는 따스하게 웃었고 누군가는…….

 

“으하하하하핫!”

 

……세상이 뒤흔들릴 정도로 웃었다. 라이레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쪽을 흘겨보았다. 오늘의 원한은 기억해두겠어요, 프라우 경.

 

하지만 장난기 가득한 엘프보다는 눈앞의 대책 없는 인간이 더 문제다.

 

정말, 정말로, 대책이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는.

 

“알았어요.”

 

로드가 환하게 웃었다.

 

“고맙다.”

“하지만 당장 가는 건 무리…….”

“하긴, 짐도 싸고 할 게 많겠지. 두 시간 정도면 되겠나?”

 

그 이상은 기다려줄 수 없다는 분위기가 넘쳐 흘렀다.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라이레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명의 인간에게 압도당했다.

 

 

* * *

 

 

라이레이의 수락이 떨어진 이후로는 모든 일이 계획대로였다.

 

아발론 왕실 소유의 해안 별장을 정리하도록 시킨 다음, 필요 최소한의 경호 인력만을 대동한 채 라이레이와 손을 잡고 마법진을 통해 순간이동했다.

 

그러는 사이 프라우의 웃음과 요한의 안타까운 목소리와 루인의 싸늘한 시선을 받긴 했지만 알 바인가.

 

이제 수영복을 입은 라이레이를 볼 수 있는데.

 

그녀와 단둘인데.

 

이제 걸리적거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대.”

 

라이레이 본인만 빼고.

 

“어디 아픈가요?”

 

처음엔 걱정해주는 걸까 싶었지만, 표정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로드는 우뚝 굳은 채 생각했다. 표정이 왜 저러지? 내가 뭔가 잘못했나?

 

라이레이가 표정이 더 싸늘해졌다. 평소엔 가을 하늘처럼 깊고 맑기만 하던 푸른 눈동자가 한겨울 호수처럼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기분 탓일까, 벚꽃색의 머리칼마저 일렁이는 듯했다. 마치 불꽃처럼.

 

떨떠름하니 눈을 깜빡이며 로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 용혈을 개방했나. 이제 나를 끝내려는 걸까.

 

라이레이가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표정이네요.”

 

솔직히 모르겠다. 그런데 모른다고 말하면 정말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드는 은근슬쩍 시선을 내리깔았다. 살짝 아래를 보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아예 푹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자신이 입은 옷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바탕에 형형색색 꽃무늬가 가득한. 연인과 여행을 가는 것이니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으려고 했던 건데.

 

‘라이레이는 내 사복 센스를 싫어했지.’

 

기껏 단둘이 여행을 왔는데 그런 것도 배려하지 못하다니. 오롯이 로드의 잘못이었다. 로드는 깊은 반성 속에 고개를 더 푹 숙였다.

 

“하아…….”

 

라이레이의 한숨 소리가 더 깊어졌다.

 

“됐어요. 수영복 입은 거 보고 싶다고 했죠. 보여줄게요. 원한다면.”

 

스륵. 슥. 천에 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로드는 반사적으로 튀어 올라가려는 고개를 가까스로 멈췄다.

 

그랬다간 라이레이가 정말로 로드를 ‘끝내버릴’ 것 같아서.

 

가득한 번뇌와 갈등 위에 두려움을 한두 방울 더한 시간이 끝나고, 라이레이가 말했다.

 

“고개 들어요, 로드.”

 

로드는 그 말대로 했다. 너무 급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충동을 억누르느라 목뼈에 무리가 가는 기분이었다.

 

그러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까지의 냉랭한 시간은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라이레이만이 남았다.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듯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지만……. 그 눈동자가 품은 빛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밖에 햇살 쏟아지는 바닷가가 있지만 굳이 나갈 필요도 없다. 바다만큼 투명하고 반짝이는 푸른색이 눈앞에 있으니까.


하얀 얼굴에서 살짝 도드라진 입술도 아름답다. 푸른 눈에 시선을 빼앗길 듯하다가도, 은연중에 드러나는 엷은 곡선이 로드의 시선을 가져갔다.

 

“이제 만족해요?”

 

눈이 시리도록 하얀 셔츠와 그 아래 언뜻 드러난 수영복의 대비도 눈부셨다. 그 아래 감싸인 살갗은 대리석보다 단단하고 매끄러웠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만족하냐니까요.”

 

평소엔 싸매고 다니는 배를 드러낸 탓에 로드가 힘껏 할퀴어도 자국도 안 남을 듯한 복근이 그대로 보인다. 그 아래를 비스듬하게 감싼 파레오와 마찬가지로 언뜻 고개를 내민 수영복의 대비는. 그리고 거기서 은근히, 자신도 잊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골반뼈는.

 

“내 말 듣고 있나요?”

 

로드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뇌를 거치지 않고, 심장의 고동을 따라 퍼져 나오는 말을 아무렇게나 흘렸다.

 

“라이레이 옌.”

“이제야 말을 하는군요. 그래요, 만족했나요.”

“네 별명이……. 태양의 공주, 라고 했던가.”

“저번에 분명히 말했던 것 같은데요. 그런 부끄러운 별명 붙이지 않으면 따르겠다고.”

“사실이니 별수가 없지 않나? 나는 그 별명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대, 역시 어디 아픈가요?”

“선글라스를 써야겠어. 눈을 못 뜰 것 같으니까.”

 

라이레이는 확신했다.

 

“아프군요. 샬롯 경에게 연락할게요.”

 

진심이었다.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려 방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로드가 더 빨랐다. 로드가 라이레이의 손목을 붙잡았고, 용인족의 지도자와 평범한 일반인의 힘 차이는 명백했으며, 로드는 그대로 휙 끌려가 라이레이의 품에 얼굴을 박았다.

 

그대로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로드가 말했다.

 

“가지 마, 라이레이.”

“그대, 정말…….”

“휴가 동안은, 그대를 독점하고 싶어.”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매달리듯, 로드가 라이레이에게 매달렸다. 로드는 가벼운 편이었고, 용인의 근력으로 감당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 호흡에 묻어 나오는 애정이 무거웠다.

 

라이레이는 힘겹게 로드를 받쳤다.

 

“평소엔 안 그러잖아요.”

 

일국의 왕으로서. 기사들의 주군으로서.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약하디약한 몸을 깎아가면서 살아간다.

 

지금은 생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다.

 

로드가 이러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일단 진정해요. 어디 안 갈 테니까. 이것 놓고.”

“새삼 느꼈어. 역시 네가 좋다.”

 

네가 좋다.

 

그 두 마디 말을 들은 순간.

 

라이레이는 깨달았다. 로드가 왜 이러는지.

 

그리고……. 자신도 똑같이 굴고 싶어졌다. 아니, 더 심하게 하고 싶었다. 오늘 내내 마음고생 한 것의 이자를 열 배, 백 배로 쳐서.

 

라이레이는 로드를 번쩍 안아 들었다. 주저 없이 침대로 간 다음 가볍게 손짓했다. 후두둑. 로드가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멍하니 올려다보는 로드와 눈을 마주치며 라이레이는 입술을 핥았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라이레이 옌은 로드를 좋아한다.

 

그리고, 라이레이 옌은 로드를 독점하고 싶다.

 














 


언제 한번 시간이 나면 라이레이가 로드를 '독점하는' 모습도 써보겠습니다...


지금 쓸 게 너무 많아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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