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붕, 날조, 엉성함 주의^-ㅠ



여름의 초입에 있는 날답게 해가 저문 지 오래임에도 거리는 활기로 가득했다.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 연인들의 웃음,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세느강에는 가로등 불빛이 금빛으로 너울댔다. 마리네뜨는 난간에 기댄 채 한숨을 내쉬었다. 공기가 쌀쌀하다고 하지만 적당히 눅눅한 공기에 그녀는 얇은 면티 차림이었다.

“원하는 대로 오는데 왜 한숨 쉬는 거야, 마리네뜨?”

티키가 뒤편 지붕을 바라보며 재잘거렸다. 티키 말대로 마리네뜨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로 아드리앙을. 혹은 블랙캣? 어차피 동일인물이니까 뭐 어쨌든.

물론 원해서 불렀으나 막상 금방 만나러 갈 테니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말을 들었을 땐 덜컥 겁이 나고야 말았다. 과제 스트레스로 낯간지러운 말을 몇 번 뱉고,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졌지만 사실 그가 오는 건 전부 거짓말 때문이었다.

그래, 거짓말. 다소 과장이 섞었으나, 그렇다해도 그가 이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교수님이 내준 과제가 끊기질 않아…….”

재봉틀을 돌리며 칭얼거리자, 책상에 세워둔 핸드폰에서 경쾌한 웃음소리가 튀어 올랐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 해바라기 꽃잎이 튕기는 듯한 그런 웃음소리. 마리네뜨는 화면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심각한 문제야, 아드리앙.”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잖아?”

“정공법으로 찌르지 말아 줄래?”

그 말에 그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콰미들도 덩달아 꺄르르 웃었다. 아드리앙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옆에서는 함에서 튀어나온 콰미들이 화면을 바라보며 떠드는 중이었다. ‘맞는 말이지.’라던가, ‘어, 블랙캣 오랜만!’이라던가, ‘플랙도 지금 화면을 보고 있을까?’같은 말들. 가뜩이나 과제로 어지러운데 주변이 떠들썩해 머리가 아팠다. 마리네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화면 속 아드리앙이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콰미들이 뭐라고 해?”

“네가 보고 싶대, 블랙캣.”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거짓말을 술술 내뱉는 모습에 콰미들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틀린 말은 아니라는 동조부터, 솔직해져야지 우리를 핑계대면 안 된다는 훈계까지. 귀가 아파 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두 번째 말은 누가 한 건지 안 봐도 뻔했다. 사스겠지. 마리네뜨의 시선이 잔소리를 외면하듯 재봉틀로 향했다. 천 위에 비스듬한 곡선으로 푸른 실이 박혀있었다. 초크로 그어진 하얀선을 벗어난 실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힘들면 너무 무리하지 마.”

그녀의 연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하지만 스피커 너머로 나오는 말은 그녀의 마음을 감싸기엔 역부족이었다. 음량 조절 버튼 하나에 따라서 가깝게도, 멀게도 느껴지는 음성이 그녀 마음에 채 와닿지 못하고 액정에서 미끄러졌다. 바로 옆에서 듣고 싶은데. 마리네뜨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그렇게 입 안쪽까지 씹고 말았다.

정말 고의가 아니었다.

이가 닿은 곳부터 찌릿한 고통이 금세 입 안으로 퍼져나갔다. 침에 비릿한 철향이 스며들었다. 마리네뜨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텅빈 입 안에서 아픔과 비명과 철향이 한데 섞여 메아리쳤다. 얼굴을 감싼 채 부들부들 떨고 있자, 핸드폰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마리네뜨?”

방금전까지 있던 여유는 어디 가고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분화구가 폭발하 듯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솟아났다.

“아드리앙…… 나 입 안 씹었어.”

“괜찮아?”

“피맛나……, 너덜너덜한 것 같기도 하고.”

기실 과장이었다. 물론 매우 아팠고, 혀끝으로 건들면 잇자국과 비릿한 맛이 느껴졌으나 하루 정도 푹 쉬면 나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니까 너덜너덜한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입술을 씹는 정도로 그렇게 강하게 씹을리가 없었다. 운이 나쁘면 그대로 구내염이 생겨버리겠지만.

아, 정말. 마리네뜨는 계속해서 혀끝으로 볼 안쪽에 난 상처를 톡톡 건드렸다. 살짝살짝 스며나오던 피는 금방 그쳤다. 침을 몇 번 삼키자 이제는 아무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기묘할정도로 매끈거리는, 급속도로 부어오르는 점막 뿐. 이대로 침대에 누워 잔다면 내일은 멀쩡할 듯했다. 하지만 아직도 울컥거리는 감정이 가시지 않아 마리네뜨는 한손으로 뺨을 감쌌다.

“붓고 있어…….”

“약 발라야 하는 거 아냐?”

스피커 너머로 허둥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바라보자 아드리앙의 얼굴이 살짝 희게 질려있었다. 당혹감을 온전히 감추지 못한 목소리에, 옆의 콰미들까지 진짜 심하게 다친거냐고 난리라 마리네뜨는 더 칭얼거렸다.

“집에 약이 없어. 약국도 다 닫은 것 같고.”

순전히 앙탈이었다. 걱정해주는 목소리를 들으니 뾰족하게 박혀있던 불만이 아주 살살 녹아내리는 것 같아 마리네뜨는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초크를 벗어난 실을 보니 다시 머리가 아팠다. 일주일 내내 과제로 정신없이 내달렸는데, 그 사이 일이 더 쏟아져서 방학이 되어 종강을 기다리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그리고 학사일정 상 방학은 삼 주 뒤였다. 학사일정이니 종강은 교수 재량이라 믿을 수도 없었다. 정말 다 포기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던 감각이 아드리앙의 걱정에 입안에 얼음을 넣고 굴리 듯 천천히 녹았다. 얼음을 문 입 안처럼 심장이 뜨거워졌다.

불만이 녹아내리는 만큼 묘한 만족감이 차오르는 사이에 스피커 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살짝 낯선 말을 뱉었다.

“그럼 내가 갈까?”

“지금?”

“응, 우리 집엔 의무실이 있으니까, 거기서 약 가져갈게.”

사실 약 바를 정도는 아닌데……. 아드리앙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탈리한테 의료면허증이 있거든. 그래서 집에 대부분 약이나 의료시설은 구비되어있어. 정신이 멍해졌다. 저택처럼 큰 집이라 신기한 방이 많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의무실이 있을 줄이야. 새로운 사실에 정신이 팔린 사이 솔직하게 털어놓을 타이밍을 놓쳤다. 마리네뜨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들키지 않을까?”

“이미 자고 있을 거야. 다시 가져다 놓으면 되니까.”

확실히 그럴 시간이지. 시침은 12시를 훌쩍 넘겼다. 마리네뜨가 시계를 봤다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옆에서 콰미들이 꺅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블랙캣이 오는 거야? 플랙이랑 놀자! 축제분위기와 반대로 그녀의 마음은 모호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 얼굴을 덮은 손바닥 틈새로 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올 거라고…….”

그녀의 반응에도 그녀의 연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리네뜨가 한 말이 거의 거짓말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걱정기는 싹 사라진 채 그가 내심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금방 갈게. 옥상에서 기다려줘.”

 


 

밤이 깊었으니 바람이 쌀쌀한만도 한데, 기댄 철제 난간조차 미지근하기만 했다. 마리네뜨는 살짝 비릿한 강물 냄새가 섞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어쩐지 목이 말랐다. 물냄새 때문인가.

몸을 반쯤 기울이고 있는데 곧 저 멀리서 방울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크리스마스 길거리 공연에서 볼 수 있는 핸드벨 같이 청아한 소리였다. 마리네뜨의 손가락이 난간을 톡톡 두드렸다. 지금은 한여름이니 핸드벨이 아닌 다른 소리라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보고 싶다는 마음과 모르는척 하고 싶다는 마음이 시소처럼 기울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모르는척 하고 싶다는 마음이 졌다. 마리네뜨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 그가 걸쳤다. 지붕위에 우뚝 선 채로, 흘러내리는 달빛을 머리카락과 슈트 위로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남자. 반쯤 어둠에 잠겨있는데도 금빛 머리카락은 선명하기만 했다. 밤하늘만큼이나 새까만 가면과, 그 안에 있는 초록색 눈동자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드…… 블랙캣!”

저절로 입술이 벌어졌다. 마지막에 목소리가 커진 건 의도한 게 아니었다. 아드리앙이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을 황급히 블랙캣으로 바꿔 부르느라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변신을 푸는 순간 당연히 정체를 들키겠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소리없이 바람처럼 옥상을 넘어온 그가 곧 그녀 앞에 섰다.

“많이 기다렸어, 마이 레이디?”

마리네뜨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푸른색 머리카락이 살짝 날렸다. 블랙캣의 입술이 체셔고양이처럼 호선을 그렸다.

“잠깐 손좀 내밀어줄래?”

어리둥절해하며 손을 내밀자,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바톤을 쑥 뽑더니 비스듬이 비껴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뭔가를 계속 꺼냈다. 전부 입안 상처에 바르는 약이었다. 그의 마디진 손가락이 약들을 하나씩 집어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이건 소독약, 이건 연고, 이건…….”

뭔가 많았다. 마리네뜨는 그가 약을 다 꺼낼 때까지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약을 전부 꺼낸 그가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곤 이번엔 눈까지 반달로 휘며 빙긋이 웃었다.

“변신해제.”

수십 마리의 반딧불같은 녹색 불빛. 마리네뜨는 엉겁결에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 너머로 느껴지던 환한 불빛이 불꽃처럼 순식간에 불타올랐다가 사라지고, 이내 다시 어둠이 내려왔다.

“이제 눈 떠도 돼, 마리네뜨.”

바뀐 건 옷차림밖에 없는데도 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있는데도 귀에 난 솜털이 전부 쭈볏 서는 듯했다. 스피커로 들었을 때와 달랐다. 마치 깃털처럼 심장 위에 사뿐히 얹히는 목소리. 마리네뜨는 헛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

“아드리앙…….”

“응?”

그가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얗게 빛나는 셔츠와 금빛 머리카락은 그가 있는 곳만 낮처럼 보이게 했다. 뾰족한 얼음은 이제 완전히 물이 되어 사라졌다. 물방울이 떨어지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리네뜨는 눈을 살짝 굴리다 말했다.

“미안한데, 나 사실 심하게 안 다쳤어.”

마리네뜨는 그렇게 말하고 살며시 그의 얼굴을 살폈다. 휘둥그렇게 뜬 바람에 아드리앙의 눈은 평소보다 살짝 커져 있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는 사이 옆에 둥둥 떠 있던 플랙이 하품을 했다. 산뜻해보이는 주인과 다르게 피곤한 기색이 만연했다.

“난 각설탕이랑 들어가 있을게. 나갈 때 불러.”

“마리네뜨…….”

티키가 그렇게 말하곤 플랙과 함께 자리를 떴다. 마리네뜨는 황망한 심정으로 두 콰미가 쏙 문을 뚫고 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왜? 고개를 돌리자 아드리앙의 표정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놀라서 휘둥그렇게 뜬 눈은 사라진 평온한 얼굴. 자세히 보면 장난기가 어린 걸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마리네뜨는 그런 걸 살필 여력이 없었다.  마리네뜨가 그를 향해 약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사실 약 필요 없어. 말 못 해서 미안해.”

약을 들고 찾아온다고 했을 때, 제대로 거절 못 한 데엔 그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바리바리 싸온 걸 보니 기쁨보단 죄책감이 더 컸다. 생각해보면 아드리앙도 모델일이나 학교 일로 바쁠 텐데……. 차마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데 손등 위로 따스한 온기가 닿았다.

“아드리앙?”

시선을 들자 아드리앙이 그녀의 손을 감싼 게 보였다. 서늘한 여름밤의 바람이 그들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트리며 지나갔다. 고양이는 그녀가 아는 것보다 연기를 잘해서, 달빛 아래 짙은 녹색으로 반짝이는 그의 눈빛이 자뭇 심각해 마리네뜨는 입이 탔다.

아드리앙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피가 났다고 했잖아.”

“괜찮아. 그래도 금방 나을 정도고…….”

“그럼 보여줘.”

마리네뜨는 다시 혀끝으로 볼의 상처를 더듬었다. 입 안쪽이라 아무래도 보여주는 덴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연인이라도 입 안을 보여주기는 부끄러웠다. 마리네뜨는 고개를 저었다.

“못 볼 거야. 너무 어둡고, 상처가 깊은 곳에 있거든.”

“그럼…….”

마리네뜨는 말을 다 이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아드리앙이 한 발짝 그녀를 향해 훅 다가왔다. 사둔 채 비밀 서랍에 넣어두고 울적할 때만 맡던 그의 향수가 그 자신의 체향이 섞인 채로 밀물처럼 폐부로 들이닥쳤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의 목소리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눈송이 같아 몸이 움츠러들었다. 한여름에 눈이 내릴일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확인할게.”

그가 조심스럽게 얇은 유리잔을 만지듯 오른쪽 귀부터 그녀의 턱선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찰흙에 자국이 남듯 그녀의 심장에 자국이 남았다. 곧, 턱 끝에 닿은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살짝 치켜올었다.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어찌나 울리던지 고막에도 하나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주저 없이 눈을 감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떡하지? 퓨즈가 녹는 것처럼 뜨거운 열로 뇌와 신경이 하나하나 녹아내렸다. 그와 반대로 그의 손이 닿는 턱이나, 그의 숨결이 닿는 뺨과 입술 위는 송곳을 매만지듯 감각에 날이 서 있었다.

그렇게 입술 위에 부드럽게 그의 입술이 닿았다. 꾹, 도장을 찍듯 누르는 입맞춤이었다. 심장 위에 올라갔던 깃털이 방향을 바꿔 쓰다듬는 듯해  재채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입술이 닿은 채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리네뜨는 눈을 떴다가, 그들의 그림자 속에서 금사처럼 반짝이는 그의 속눈썹을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긴장 때문에 숨이 막혔다. 부르고 싶은 이름은 맞닿은 그의 입술 때문에 입 안에서만 울려퍼졌다.

‘아드리앙…….’

그 마음을, 마차 나오지 못해 나비 날개처럼 얇게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가 엄지 끝으로 살짝 아랫입술 밑을 눌러 입을 벌렸다. 그리고 살며시 그녀의 아랫입술을 햝더니, 금방 잇새를 파고들었다. 마리네뜨는 이제 정말로 숨이 막혔다. 닿는 곳마다 느껴지는 온기와 간지러움으로 과부하가 걸려 머리가 펑 터질 것 같았다.

그녀의 치열과 입천장을 훑고, 혀를 살짝 잡아당겼다가 놓은 후 아드리앙은 그녀의 볼을 더듬었다. 몸을 뒤로 빼고 싶었지만, 어느새 그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어서 빠질 수도 없었다. 곧 매끈하게 부어오른 상처에 그의 혀끝이 닿았다.

피가 그쳤다고는 하지만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였다. 상처에 난 잇자국을 따라 와닿는 생경한 감촉에 머리 꼭대기부터 찌릿한 감각이 몰려왔다. 피가 쏠려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섞이는 숨에서 그 온도가 느껴질 듯해 마리네뜨는 손을 들어 아드리앙의 가슴팍을 밀치고 때렸다. 결국 몇 번 그녀의 주먹을 받아내던 아드리앙이 뒤로 물러났다.

“……아드리앙!”

“약 바르는게 좋겠어.”

뒤로 물러난 그가 태연하게 대답하며 엄지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훝었다. 둘이 떨어진 공간을 선선한 바람이 채웠다. 그러나 밤바람도 머리를 식히지 못했다. 김이 나는 것만 같았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본 마리네뜨가 고개를 도리질 쳤다. 충격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드리앙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슬픔이 짠맛이고 기쁨이 단맛이라면, 분명 설탕알갱이가 오독오독 씹힐 것 같은 목소리였다.

“아니면, 내가 발라줄까?”

하나, 둘, 셋. 정확하게 3초 뒤 말을 이해한 마리네뜨가 손바닥으로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틈으로 보이는 얼굴이 그야말로 그녀의 가면처럼 새빨겠다. 어찌나 새빨간지 정말 변신을 외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됐거든!”

마리네뜨가 휙 몸을 돌려 서둘러 문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발코니에 혼자 남은 아드리앙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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