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시엣의 생활은 생각보다 잔잔했다. 구름 움직이듯이, 나는 첫 공연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마엘은 자신이 소유한 극장을 ‘소극장’이라고 칭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저택보다도 컸다. 이런 것이 소극장이라면, 대극장은 얼마나 웅장할지 나는 가늠하지 못했다.


 나는 해금을 손에 들고 쓰다듬었다. 창가림막 사이로는 수 대의 마차들이 보였다. 금빛으로 치장된 가장 화려한 마차는 아마도 로랑 부인의 것일 테다.


“많이 긴장되죠?” 마엘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경박함을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조금이요.”


“걱정 말아요. 잘 해낼 거에요. 해금이라는 그 자체부터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데요. 거기다가 클로시엣이라는 이름까지 더해진다면 분명 좋은 반응이 나올 겁니다.”


“말씀은 잘하시네요.” 


 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마엘만큼이나 언변이 뛰어난 사내는 없을 것이다. 마엘은 적어도 내 앞에서만큼은 재치가 뛰어나고 사랑스러운 사내였다.


“그런데 꼭 이 한복을 입어야 해요?” 내가 물었다.


“그럼요, 무대는 퍼포먼스니까요. 드레스는 너무 식상해요. 드레스는 사석에서나 입어요.”


 나는 이 우스꽝스러운 한복을 저 무대 위에서 입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했지만, 마엘의 안목을 믿기로 결심했기에 순응하기로 했다.


“준비해요, 나 먼저 무대에 나가 있을 테니까.”


 나는 그 시간이 왔음을 알았다. 초침이 움직이는 것조차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무대 뒤로 향하는 복도를 걸었다.


 복도는 어두컴컴하여 마치 내 마음과 같았다. 복도 양 벽 사이로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는 문들이 잔뜩 달려 있었다. 


 나는 무대 뒤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어둡고 습한 무대 뒤는 쥐들이 찍찍거렸다. 나는 마엘이 내게 나오라는 말을 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


“저 년을 봐!”


 나는 누군가가 나를 향해 쑥떡이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 살폈다. 나는 그리고 정말 기이한 무언가의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요정 같았다. 그림자의 키는 땅딸막하고 목소리는 얼마나 쉬었던지. 나는 차라리 그것이 나의 영감, 희랍(그리스) 신화의 뮤즈이길 바랬다.


“제가 찾은 보물, 해금과 클로시엣입니다!”


 내가 그것에 한눈팔려 있을 때, 마엘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내 영감을 뒤로 한 채로 무대로 서둘러 나갔다. 


 무대에서 본 객석은 실로 공포스러웠다. 만찬 때 봤던 티소 부인과 알랭 장군, 윌리엄 씨, 그리고 로랑부인. 아주 대하기 어려웠던 이방인들이 반가울 정도였다. 마엘은 경박스럽게 박수치며 나를 마주했다. 나는 이방인들에게 인사하였고, 내 데뷔탕트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기도했다.


 무대 뒤에서 마셨던 숨을 다시 흘렸다. 손은 벌벌 떨리고 땀이 끊임없이 났다. 이방인들은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시작해요.’ 마엘이 이리 입 모양을 내었다.


 나는 마엘을 본 뒤, 객석 맨 앞줄에 있는 내 꿈과도 눈을 맞추었다. 그제야 내 손이 움직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라던 순간 아니었던가, 두려울 게 뭐 있던가. 고요는 내게 퍼붓는 욕지거리가 아니라, 내게 주는 영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에 새하얘지며 요동치던 가슴이 고요해졌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해금의 활을 떼자, 수많은 박수갈채가 덮쳤다. 나는 마엘에게 당장이라고 고맙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내게 이런 것이란 허상과 같은 것이었는데! 그 순간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내 공연이 끝난 후에 많은 이들이 무대 뒤편을 찾았다. 그들의 열의 아홉은 마엘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의 대화엔 내 공연에 대한 극찬이 쏟아졌다. 어떻게 이런 물건을 데려왔냐면서. 정말 기뻤다. 내가 의미있는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나를 찾아오는 이도 있었다. 로랑부인은 고고한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공연 잘 봤어요. 이럴 줄 알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뜻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나는 그녀와 대화할 때마다 내 불란서어 실력이 턱 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부인. 다 부인 덕이지요.”


“무엇이요, 마엘이 당신을 잡은 것인데.”


 그때의 그녀의 목소리는 귀신이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목소리에 할 말을 잃어서 그들이 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얼버무렸다.


 수많은 그들이 돌아간 뒤엔 나와 마엘의 시간이었다. 그는 공연에 대한 향후 계획과 오늘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온 초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무척이나 들떠있었으며, 그런 모습을 보는 건 나 또한 즐거웠다.


 “오늘 공연은 정말 최고였어요! 클로시엣. 나는 당신이 최고의 유명인사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는 과도한 몸짓 서슴없이 표현했다. 앞으로 찾아올 더 많은 관객들을 떠올리니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곧 내 영광이 될 것을 알았으므로, 더욱 열정적으로 연습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고마워요, 마엘. 부인도 좋아하시는 것 같았어요.”


“어머니야 뭘, 클로시엣을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 하셨는걸요. 어머니께서 클로시엣을 다시 한번 주말 만찬에 초대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주말 되죠?”


“네, 그럼요. 당연히요.”


 나는 한국관은 잊은지 오래였다. 

아니 님 진짜 글 잘 쓰시네요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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