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듣자마자 이해할 수가 없어서 다원은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째서?


이제는 먼 옛날 일처럼 생각되지만 인하는 가끔씩 충동적으로 죽음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 매일 죽고 싶었던 나날의 잔재였을 수도 있다. 게다가 죽고 싶어질 만큼 인하가 해오는 일은 고되었고 사람 앞에서 가면을 쓰는 것도 정신을 많이 갉아먹었다. 그렇게 인하는 늘 분노가 쌓인 상태였으며 그게 쌓이다 폭발하면 상당히 심리가 위험해진다.


깊이 생각해보니 최근 인하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겉으로 표는 나지 않았지만 거기서 한계를 느꼈던 걸까.


아니면 어머니가 눈앞에서 죽어버린 것이 역시 충격이 컸던 걸까. 인하는 어릴 적에 어머니를 나름대로 사랑했기 때문에 무시 받았을 때 그 상처는 더 깊었던 것 같다. 그게 두려움으로 번진 것이다.


살인자에 비열한 인간인 건 틀림없지만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간 게 자기 탓이라는 생각에 죄책감과 후회로 마음속에 남아 견디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느라 다원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마음을 모르는지 인하는 대답했다.



“물어달라니까. 내 부탁 못 들어주는 거야?”



그 대답에 다원은 더욱더 혼란스러워져서 말했다.



“아니, 왜, 왜 또 죽으려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런 일 하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요!”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네?”



인하가 오히려 왜 그러냐는 듯이 물어서 다원은 당황했다. 인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원은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아니 하지만 갑자기 물어달라니 예전에도 저에게 그래 줬으면 한다는 듯이 말했잖아요. 저, 전 절대로 그런 짓 못 해요!”


“...역시 멍하니 있길래 내 말은 안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였구만.”


“엣.”


“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했어?”


“아...”



혹시 조금 전에 인하 아가씨께서 뭐라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은하에 대해 생각하느라 듣지 못한 걸까? 다원은 속으로 찔렸다.



“아, 아니요.”


“뻥치시네.”



다원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인하는 불편한 표정을 하면서 팔을 걷더니 다원 앞에 내밀었다.



“잔말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물어.”



인하는 귀찮은 듯 무심한 듯 말을 던졌다. 다원은 쥐죽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러면 좀비가 될 텐데요...”


“그냥 물어.”



더 말대답하면 정말 때릴 것처럼 인하가 쳐다봤다. 다원은 그야말로 쪼그라들었다.


정말로 물어도 되는 걸까. 아까 딴생각하는 사이에 인하 아가씨는 무슨 말을 했던 걸까. 다원의 심장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자기 안에 좀비 본능이 처음으로 인간의 살결에 입을 댈 수 있으니 흥분한 건 아닐까.


다원은 복잡한 기분으로 인하의 팔에 손을 대고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인하의 반응으로 보아 자살할 생각이 아닌 건 틀림없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다원은 믿고 있었다.


다원은 눈을 질끈 감고 인하의 손을 살짝 물었다.



“!”



그리고 바로 입을 뗐다. 심장이 널뛰기하듯이 크게 뛰고 있어서 무서워졌다. 열이 나는 것 같고 식은땀이 난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인하는...



“응. 역시 없어졌네. 오케이. 직접 확인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면 분명 말릴 테니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대신 쓰고 싶지 않고.”



그렇게 말하고 무덤덤하게 태블릿 PC에 정보를 입력하고 있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하 아가씨 이, 이건...”


“다원이 너 확실하게 감염 바이러스가 없어졌어.”


“네!?!?”



다원은 너무 놀라서 소리쳤다.



“아까 전에 말했잖아. 최근 치아 검사할 때 독이 깨끗이 없어진 거 같다고. 3번째 검사할 때도 그랬으니까. 오늘 최종 확인해본 거야.”


“그럴 수가... 이유가 뭐죠?”


“잘 모르겠지만... 크루즈 파티 사건 이후로 그런 거 같아.”



그렇게 말하면서 인하의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때부터... 근데 인하 아가씨 혹시 기분 상하셨어요?”


“...하아.“



인하는 다시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하 아가씨?”


“이상한 점이 두 가지 있어.”


“네?”



인하는 뜬금없이 손가락을 세우며 그렇게 말했다. 다원은 인하가 하는 말에 집중했다.



“하나는 크루즈선에 있던 로봇을 전부 회수했는데 이상하게 한 대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



크루즈에서 좀비 사태가 일어나고 인하 회사의 로봇들은 3층의 가장 큰 계단의 바리케이드 역할을 한 덕분에 사상자는 적게 발생할 수 있었다.


망가진다면 모를까 한 대가 감촉같이 사라지는 건 어떤 경우가 있는 건지 다원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샬럿에게 들어서 깨달았는데 좀비가 될 때 증상이 달랐다는 점.”


“좀비가 될 때 증상이요?”


“좀비가 될 때는... 기침하지 않아.”


“.....네?”


“눈앞이 흐려지거나 눈이 충혈되거나 지친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거나 해. 다원이 너도 좀비가 될 때 그런 느낌이지?”


“..........”



다원은 잠시 할 말을 잃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저기 혹시 은하에 대한 얘기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지? 그 사람 절대 그럴 인간이 아닌데. 자살하겠다느니 뭐니 떠들고. 키스로 자살을 택한 것도 이상하고 굳이 바다에 뛰어든 것도 이상해.”



정리하자면 이런 말이다. 정말로 좀비가 되었다면 그런 어설픈 증상으로 나올 리가 없고 로봇이 한 대 없어졌다는 건 로봇을 이용해서 탈출했을지도 모른다.


즉, 전부 은하에게 놀아났을 가능성이 있다. 깜짝 놀랄 정도의 메소드 연기에 인하와 다원은 속아 넘어갔고 은하는 자살한 척하면서 교묘하게 배에서 탈출하여 도망쳤을 수도 있다!


잘 생각해보면 그 난리가 난 배 안에서 구조된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은하의 계획대로 모조리 죽여버린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은하는 자신의 정체를 나불나불 말하고 다녔다.


죽어버린 것으로 또다시 위장하면 일을 벌인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쉽게 도망칠 수도 있다.


어차피 죽어버려도 조직에서 또 새 신분을 받으면 되니까. 이번에 적 마피아를 친 큰 실적을 올렸으니 분명 상을 줄 거야- 후후


라고 은하가 말할 것 같아서 다원은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은하가 살아있는 건가요?”


“확실하진 않지만 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은하가 정말로 살아있다면 지금까지 힘들었던 시간들은 뭐였는가, 다원은 심경이 복잡해졌다. 살아있어서 안심해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은하는 무슨 짓을 꾸밀지 알 수 없는 인물이고 이번 기회에 범죄에 손 놓게 된다면 좋겠지만 은하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지금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활을 반복할 것 같다. 은하답다면 은하답지만... 다원은 오금이 저렸다.



“저기 정말로 은하가 좀비가 되지 않았다면... 언제부터 저는 감염 바이러스가 없어진 거예요?”


“그게 나도 가장 의문인데...”



인하는 턱에 손을 괴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역시 키스했을 때 아니야?”


“네?”


“키스할 때 입안에 뭘 넣었다거나... 뭔가 먹은 느낌 없었어?”


“그, 그게 잘...”



다원은 은하와 키스했을 때를 돌이켜보았다. 솔직히 너무 놀라서 맛을 느낄 정신도 없었는데. 음... 그러니까 키스했을 때 느낌이...


근데 인하가 불쾌하다는 시선으로 다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시선을 눈치채고 다원은 깜짝 놀랐다.



“느낌이 어땠는데? 어디 말해 봐.”



인하의 목소리는 딱딱하고 몹시 차가웠다.



“아, 아니 정말 정신이 없어서... 느끼고 말고 할 게 없었어요.”



일단 다원은 얼버무렸다.


인하는 계속 의심의 눈초리로 다원을 바라봤고 다원은 견디지 못하고 결국 눈을 피했다.



“너 나랑 어머니 둘 중에 누굴 더 사랑해?”


“그, 저기 인하 아가씨...?”



급기야 이런 질문을 해와서 다원은 당황했다.


뭐지 이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같은 질문은? 근본적으로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인하가 한 질문이니까 그런 질투는 아니리라 다원은 여겼다.



“하, 뭐 됐어. 그보다 이 기회니까 하는 말인데.”


“네?”


“나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거든.”


“무슨 한계 말인가요?”



정말로 화가 풀린 건지 뭔지 인하는 툭 터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최근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 지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 나는 너무 바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아아.”



인하의 표정은 이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후련해 보이기도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서 숨 가쁘게 살아왔으니까 이제는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보람도 있었고, 후회하지 않지만 무리한 건 사실이야.”



나이 든 사람이 하는 말 같지만 인하는 너무 이른 나이에 빠르게 정상에 올라간 사람으로서 휴식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되는 말이었다.


다원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이번에야말로 휴가 가는 건가요?”


“응, 몇 년 동안은.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서 조용히 보낼 생각이야.”



인하는 지금까지 휴식이란 죽음으로밖에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이제서 용기를 내어 새로운 선택을 했다. 다원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는 책임이나 의무는 잊고 마음껏 휴가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그동안에 짐은 모두 내려놓고 꼭 마음 편히 쉬었으면 좋겠어요!”


“응.”


“휴가는 어디로 가시나요?”


“우선 발리에 있는 사유지에 가고 나중에 호주에 있는 사유지로 옮길 거야.”


“그렇군요. 휴가 가는 동안에는 인하 아가씨께 걱정 끼치지 않게 기계 저택이나 실험장 안에서 철저히 관리받을 테니까 안심하세...”


“뭐? 잠깐 무슨 말이야? 너도 함께 가는 거야.”



인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해서 다원은 다시 깜짝 놀랐다.



“네!? 저도?”


“당연하지. 너를 내버려 둘 순 없잖아... 게다가 전에 ‘공원’ 데려가 줬을 때 언젠가 또 함께 가자고 했었고. 다른 사유지로 가겠지만.”



그러고 보니 전에 다원은 인하에게 언젠가 다시 공원에 놀러 가자는 말을 했었다. 좀비 바이러스는 없어졌어도 아직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통제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지만 정말 제가 가도 괜찮을까요? 마음 편히 쉬고 싶으실 텐데.”


“...친구가 있는 편이 더 즐겁잖아.”


“하하 그, 그렇긴 하죠...”



다원이 머쓱해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때 침묵이 흘렀다. 다원이 멀뚱거리고 있자 인하는 뜸 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다원이 너 이제 아가씨 호칭 관두는 게 어때?”


“네?”


“동갑인데 존댓말 하는 거 이상하잖아. 이제 예의 차리는 건 그만둬.”


“네? 하, 하지만.”



이제 와서 호칭을 바꾸기에는 입에 붙었을 정도로 익숙해져 버렸다. 게다가 경의를 담아서 존댓말을 하는 터라 다원에게 더욱더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인하와 다원은 실제로 어릴 적 소꿉친구도 아니었으니 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다원을 향해 얼굴을 들이대고 각오가 담긴 표정을 짓더니 겨우 입을 뗐다.



“자, 잘 들어. 너 그렇게 나에게 계속 경칭을 쓰면 그 이상으로 가, 가까워지는 건 더 어려워질 거야!”


“.....”



인하는 생각보다 꼴사납게 말하고 있었고 다원은 인하가 하는 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난 너에게 과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몰라도 현재 너랑 가장 친한 사람은 나라고 생각하니까! 잘 생각해보고 정해라!”



그렇게 말하고 인하는 화가 난 것처럼 발에 힘을 주고 쿵쿵 걸어서 실험장 밖으로 나갔다.


다원의 눈으로 본 인하의 얼굴은 착각이나 꿈속이 아니라면 붉게 상기된 것처럼 보였다. 평소답지 않게 상당히 흐트러지고 허둥대고 있었다.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한 다원은 중얼거렸다.



“그 이상으로 가까워진다고...?”






그 이후로 인하는 저택의 직원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당분간 모든 일은 다 잊고 권한도 내려놓고 멀리 떠나겠다고 말했다. 데려가는 사람은 다원뿐이다.


처음에는 모두 놀랐지만, 인하가 원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표현은 안 하지만 저택의 직원들은 인하를 누구보다도 걱정하고 가족처럼 생각했다. 인하의 행복을 우선하는 건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었다. 좀 성가신 딸 같다고 언젠가 유리가 말한 적이 있었다.


일단 회사의 모든 권한은 대표이사 대리라는 명목으로 유리에게 임시로 맡기기로 했다.



“안 그래도 집사는 저 한 사람뿐인데 이건 너무 업무 과중 아닌가요? 양아치 대표가 따로 없군요.”


“그렇게 투덜댈 거면 그냥 이 회사 확 줘버릴까? 크크”



인하가 소악마 같은 표정으로 유리에게 말했다.



“그런 무서운 말씀을... 그래 놓고 다른 데서 새로운 사업을 차릴까 봐 저는 두렵군요.”


“뭐 나라면 그것도 가능할지도 모르지, 엣헴.”


“농담도. 그러니 천천히라도 좋으니 충분히 마음이 다듬어진다면 돌아와 주세요. 언제든지 저희는 기다리겠습니다.”



유리는 진심으로 진지한 눈빛을 하고 그렇게 말했다. 다른 직원들도 다르지 않은지 한마디씩 했다.



“응, 나도 대표님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 전에 거기로 몇 번 놀러 갈지도 모르지만요. 하하하”


“정말 평안히 푹 쉬세요. 샬럿 말대로 언젠가 놀러 갈게요. 다원 언니도 보고 싶어질 테니까요.”


“인하 아가씨께서 당분간 제 요리를 못 드신다니 슬프지만 잘 해 드실 수 있게 레시피 꼭 메세지로 보내드릴게요.”


“나중에 놀러 가면 그곳의 자연경관 꼭 구경시켜줘, 아가씨.”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아가씨.”



박 씨 할머니의 말을 끝으로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인하는 알았어 알았어 라며 모두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릴리스는 인하에게 다가가 낑낑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인하는 릴리스를 위로하며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다원은 자기도 모르게 릴리스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앗, 정신 차려.’



다원은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 유리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듯이 말했다.



“저는 대리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대표 자리는 저에게 맞지 않습니다. 명심해주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귀환하길 바랍니다, 인하 아가씨.”


“그래. 꼭 돌아올게.”



인하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ㅡㅡㅡ




날씨가 따뜻해질 무렵, 인하와 다원은 발리로 떠날 준비를 다 마쳤다. 인공섬의 비행기는 정비 중이라 비행기는 인천 공항 전용 비행장에서 타기로 했다. 나름대로 사전 준비는 잘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인하에 대한 시민들의 비난은 여전했다.


좀비 사태 일은 제대로 책임지지도 않고 도망치는 거냐 사망자가 나온 마당에 아직도 좀비를 사살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키우느냐 초심을 잃었다 등 말이 많았다.


다원의 핸드폰으로 준희에게 톡이 왔다. 택시 운전사의 가족에게서 온 메세지였다. 우리 가족은 사장님을 언제나 응원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밖에 인연이나 인하의 열렬한 팬은 여전히 인하를 지지했다. 인하가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였다.


발리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이 인천 공항까지 끈질기게 몰려왔다. 다원이 곤란해하던 차에 인하는 다원의 손을 갑자기 꼭 잡아서 다원은 화들짝 놀랐다.


인하는 마음을 다잡고 눈도 피하지 않고 카메라를 향해 당당히 말했다.



“나는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해왔다고. 아직 이렇게 어린데 좀 놀아도 되잖아. 그리고 우리 좀비는 사람을 공격하는 걸 싫어해. 알고 말하는 거야?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노력했어. 좋은 아이야. 노력해서 한 번도 사람을 제대로 공격한 적 없는 이 유일한 좀비를 칭찬해줘도 모자랄 판에 말이라도 좀 알아듣지 그래? 우리는 당연한 보상을 받으러 가는 거야. 그러니까 국민 여러분 너그럽게 알아줘.”



어떤 가면도 보호막도 없이 인하는 친구에게라도 말한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그렇게 시끄럽던 기자들이 조용해졌다.


다원이 창백해진 얼굴로(원래도 좀 창백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되느냐 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는데 인하는 빵 터져서 크게 웃더니 다원의 손을 꼭 붙잡고 이 틈에 전용 비행장 안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하하 재밌다! 이렇게 말하는 거!”



인하는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아니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어차피 욕할 사람들은 욕할 건데, 뭐 어때!”



인하는 꽉 닫힌 뚜껑이라도 연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원에게는 그 미소가 너무 눈부시고 아름다워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유리가 다 책임질 건데 뭐! 우린 멀리 도망쳐버리자!”


“이, 인하 아가씨!?”



그렇게 인하와 다원은 멀리 떠났다. 앞으로도 이 부자 아가씨를 사랑하는 좀비는 나 하나뿐인 그런 나날이 이어지길 바라며.


곰말리입니다. 백합 작품(GL 작품)을 보는 것도 정말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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