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늘 품에 끼고 다니는 여자는 얼굴이 달랐고,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로 이 사람이 네 엄마라고 했다. 별로 말을 섞기 싫어 대꾸 없이 방에 들어갈 때쯤이면 쓸모없는 놈이라고 아무 물건을 내게 던졌다. 등이 따끔하다가도 가끔 뒤통수에 둔탁한 것이 날아와 기절할 때도 있었다.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것도 등의 상처들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여느 때처럼 집에 들어왔고, 현관을 들어서자 거실 전등에 목을 매단 채 힘없이 흔들리는 아버지를 보며 눈을 끔벅였다.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고, 저항의 흔적도 없었다. 눈앞에 시체가 있는데도 놀란 마음 없이 어질러진 바닥을 치웠다. 빈 술병들, 구겨진 신문지들, 꽁초가 잔뜩 쌓인 재떨이. 눈을 천천히 감고 떴다. 조금씩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 못 한 채 무거운 추를 바라봤다. 왜 그랬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어봤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집안의 상황을 경찰에게 신고하고는 집 밖에서 홀로 모래성을 쌓아 놀고 있는 마리를 찾았다. 아장아장 걸어오는 폼에 부드러운 미소를 그려 보였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뒤편에 들리는 소리가 꽤나 소란스러웠다. 집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마리는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오빠, 울지 마. 그래. 울지 말아야지. 근데 정말 어떡하지, 우리.

경찰이 내게 흰 봉투를 건넸다. 이게 뭔지 물어보니 아버지의 유언장 같다고 했다. 품 속에서 발견했는데, 내용을 열어보지 않았지만 자필로 쓴 무언가 같다고. 나는 꼬깃꼬깃하게 접힌 봉투를 받았다. 다행히 마리는 아직 글을 배우는 중이니 안심하고 편지를 꺼냈다.

대충 우리를 위해 남긴 것도 없고, 책임감 없이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말이 쓰여있었다. 다만 마지막 문단에는 위 문장들과는 비교가 될 만큼 구부정한 글씨로 -이 주소의 사람을 찾아가렴-이라 적혀있었다. 주소를 보니 집과 그리 멀지 않은 도시였다. 남겨둔 게 없지만 찾아가라는 건 뭘까. 여하튼 내게 남은 길은 여기 하나라는 건 확실했다. 유언장을 접어 봉투에 넣었다. 원래 미래는 없었는데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눈을 천천히 끔벅이다가 마리가 내 옷깃을 꼭 잡는 느낌에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마리를 데려가야 할까? 괜히 위험에 휘말리면 어떡하지?

하는 수없이 마리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고서 손을 꼬옥 잡았다. 마리는 우물쭈물거리다 내게 말했다. 집에 있고 싶어. 무서워. 새어나가는 발음으로 꼬물거리듯이 말하는 목소리에 깊게 한숨을 쉬었다. 슬쩍 집 앞을 보니 노란 테이프들이 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시체 운반은 끝이 난 것 같았고, 크게 들락날락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리. 같이 가야 해. 지금 집에는 아무도 없어. 나는 여동생을 처음으로 짐짝처럼 느껴지는 기분에 온갖 오물을 다 씹어먹은 얼굴을 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여린 손을 꼬옥 잡고 주소로 향했다. 가는 길이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수중에 돈도 없어서 끼니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어 마리를 지키기가 힘들었다. 마리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너클 시티에 도착해서는 겨우 금랑에게 연락을 취해 마리를 맡겼다. 꽤나 고급적인 옷을 입고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가 조금은 믿음직스러웠다. 금랑은 남들이 보기에도 부잣집 도련님의 이미지였다. 후원을 받고 자라며 기초적인 교육, 의식주가 모두 해결되며 장차 이 너클 시티의 보스가 된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마리의 말에 금랑은 활짝 웃으며 마리를 에스코트했다. 너도 어린애면서.. 혼자가 된 나는 다시 유언장을 꺼내 주소를 확인했다. 아직 너클 시티에서 더 가야 한다.

금랑이 돈을 줬지만 자존심 때문에 많은 양을 받지 않았다. 꼭 나중에 갚을게. 금랑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친구 사이에 이 정도는 괜찮다며 다독였다. 편하게 아머까오 택시를 타라며 기사님을 부른 금랑은 마리와 함께 저택으로 들어갔다. 슛 시티의 로즈 타워로 가주세요. 꼬깃하다못해 완전히 구겨진 유언장은 가치를 잃었다. 내겐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타워 안으로 들어가 로비의 직원에게 구겨진 봉투를 보여줬다. 봉투에 적힌 마크가 무언가를 의미하듯 직원은 상냥하게 엘리베이터 위치를 알려줬다. 다른 엘리베이터와는 다르게 좁고 누를 수 있는 버튼이 많이 없었다. 어떤 사람일까? 여기 주인은 분명 로즈라는 아저씨일 텐데. 가라르를 위해 많은 걸 베풀고 아름답게 하는 사람. 거의 위인으로 칭하는 사람이 아버지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혹시 나도 금랑처럼 후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올라갈수록 내 가슴도 무언가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래와 같다.

오, 네가 두송이구나.

아버지 이야기는 들었다.

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팔았던 담보는 너와 네 여동생이란다.

너는 내게 팔린 거야.

금랑에게 여동생을 넘길 생각을 하다니, 너도 참 기댈 사람이 없었구나.

앞으로 잘 지내보자꾸나.

마리를 위해서라도 힘써보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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