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만세! 자유시간 만세!"

"형, 주말동안 뭐 하실 거예요?"

"훈련실 정비가 끝났다길래 가 보려구. 같이 갈래?"

"좋죠."

"와, 박지민이랑 석진 형이랑 둘 다 왜 이렇게 부지런해?"

"일주일 뒤가 랭킹전이잖아. 훈련해야지."

"어...?"

"못 들었어? 선생님께서 알려주신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입학식 때도. 3월 말에 랭킹전이 있다고, 준비 하랬잖아."

"망했다... 나 훈련 하나도 안했는데!"

"같이 하면 되지. 가자!"





For Luna

루나를 위하여




호그와트의 로비에서 한 층을 내려가면 찾을 수 있는 은색의 겨울나무 문. 손을 가져다 대자 은은한 냉기가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석진이 문을 열었다.



파앙, 터엉-!

훈련실을 가득 채운 여러 기구들. 은색의 실로나 나무로 만들어진 벽과 천장, 검은색의 루엔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은 충격과 소리를 흡수하고 있었다.

"자고 있는 윤기 형이랑 도서관 간 주연이 빼고 다 모였네요!"

"그러게. 다들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날아오는 공을 열심히 막아내던 정국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뭘 어떻게 한건지 두 쪽이 난 만년필과 씨름하던 남준도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어, 그냥 들어오면 안돼! 뱃지 차고 와야 돼."

호석이 문 옆 탁자에 놓인 바구니를 가리켰다. 네개의 푸른 뱃지들이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뱃지를 가슴께에 달자, 작게 빛난 뱃지의 안에서 호그와트의 문양이 보였다.





"물의 근원... 물의 근, 찾았다!"

"지민아, 찾았어? 헐, 엄청 많다!"

"그러게. 이 정도 크기면 연못쯤 되려나?"

"터트려 볼까?"

"태태. 네가 다 치울 수 있겠어?"

"아아아아, 절대 안되고 괜찮습니다."

"뭐라는 거야."

쿡쿡, 지민이 웃었다. 그의 손에는 말랑한 푸른색 구슬이 들려 있었다.

"와, 아직 반도 못 증발시켰어!"

"우리 쫌만 쉬었다 하자, 짐나..."

지민의 손에서 타오르는 붉은 불꽃 한 가운데에, 3분의 1 정도가 빈 푸른 구슬이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태형의 손에서 빛나는 청아한 빛은 그 불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지민이 불을 거두자 순간 길을 잃은 빛은 천천히 마나로 흩어졌다. 

사락.

한줄기 빛이 닿은 것은 뱃지에서 새어나온 마력. 게걸스럽게 빛을 삼킨 마력이 포효했다.


쩌엉-!

"으악!"

뱃지가 깨졌다. 풀려난 마력은 미친 듯 날뛰었다. 제 몸집을 불리며 공기를 휘젓는 움직임에, 다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화륵, 지민의 손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포션을 들이킨 제 주인의 마나를 삼키며, 불길이 거칠게 으르렁거렸다. 날뛰던 마력 역시 잠시 주춤하는 듯 했다. 지민이 손짓하자, 불길이 마력을 향해 달려들었다. 금방이라도 그 것을 태워버릴 듯이. 쩌억, 마력이 불길을 향해 입을 벌렸다.

"윽...!"

너무나도 손쉽게, 마력이 불길을 삼켜버렸다. 제어를 잃은 지민이 주저앉았다. 더욱 거세게 날뛰는 마나와, 그 주위에서 함께 타오르는 불길. 모두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검게 물들며 그 기세를 넓히던 마력이,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들의 단순한 힘만 따지자면, 힘을 좀 얻고 날뛰는 마력은 그다지 위협적인 상대가 아니였다. 그런데도 그들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도움을 받으며 그들 직접 싸워본 적이 없었다. 기껏 해야 슬라임 등 잡다한 몬스터 뿐. 그조차도 주위에 스승이 있었고, 안전이 보장되어 있었다. 훈련실에 있는 여섯명 중 그나마 싸움 경력이 있는 것은 김석진 정도일까. 에오스 가문의 후계자인 그는, 어릴 때 부터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잦았다. 가끔 그를 죽이기 위해 찾아오는 밤손님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방에는 여러 아티팩트들이 있었고, 사방에 널린 것이 방어석이였으며, 상대 역시 눈과 귀, 머리가 달린 인간이였으므로 그다지 긴 전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열 아홉의 나이에 기사직을 받은 민윤기라면 꽤 상당한 전투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지금 6층 위에 있는 기숙사에서 한창 잠에 빠져 있었다. 젠장, 김석진이 오랜만에 험한 말을 뱉으며 발동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방어석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헉...!"

그 마력이. 검게 타오르는 파도가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지민은 아득한 공포를 느꼈다.제 마나를 거의 다 흡수당하고 벽에 기댄 채 간신히 눈만 뜬 김태형. 그 역시 도망칠 만한 기력은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고작 눈을 감고, 태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 것 뿐.

화악!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깨창! 정국의 방어막이 깨졌다. 탐욕스럽게 입을 벌리며 달려드는 파도! 


키이이잉-

순도 높은 마나가 주변을 장악하는 소리와 함께, 파도가 멈췄다. 먹음직스러운 사슴을 두고 토끼를 먹을 호랑이가 있으랴. 지민이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떴다. 제 심장 바로 앞에서 멈춘 파도. 그 서늘한 감촉에, 지민은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석진의 눈에 보랏빛이 일렁였다. 겨울 새벽의, 그 차갑고 담담한 공기같은 마나가 파도의 눈길을 끌었다. 제 마나로 파도를 유인하는 석진의 손 끝이 떨렸다. 보랏빛 감도는 눈 역시 공포가 깃들어 있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르르... 파도가 낮게 으르렁거리자, 지민이 몸을 떨었다. 

캬아아아!

눈으로 쫓지 못할 속도로, 파도가 휘몰아쳤다. 석진이 만들어낸 얼음조각은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졌다. 카창카창, 몇 겹의 방어막이 깨져나갔다. 마지막 순간. 보랏빛 눈이 천천히 감겼다. 무력한 손 끝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바람이...




멎었다.



"괜찮으십니까."

거친 파도 앞을 막아선 손이 있었다. 수없이 책을 넘기느라, 손 끝에 잔상처가 남은.

"아..."

석진의 잇새에서 새어나온 신음이 떨렸다.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은 익숙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저를 내려다보는 흑색 눈에는 한 치의 불쾌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카르르르... 파도가 분하다는 듯 그르렁대며 더 나아가려 애썼지만, 흰 손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별다른 외상이 없음을 확인한 주연이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쩌저적, 그녀의 눈에 은빛이 깃듬과 동시에 파도에 균열이 일었다. 파도가 거세게 회전하며 벗어나려 들었다. 주연이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파앙-!

파도가 다시 마나로 흩어졌다. 누군가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붉은 노을이, 주연의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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