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Pink Martini - Amado Mio







1.

말로만 듣던 용민의 등판이었다.

 

 

 

용민           야. 김민수.

 

 

 

그가 전교생에게 배척당하길 바라던 용민은 얼마 전부터 친구가 생겨 그들과 함께 다니는, 쉽게 말해 학교생활을 편하게 하는 민수가 눈엣가시였다. 그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에 다녀온 후로 은연중에 따돌리기 시작하던 용민은 제가 계획한 것과 반대로 돌아가자, 이에 대해 어떻게 좀 해달라는 반 아이의 도움을 받는 순간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자기 무리들의 부모 소득 수준에 반의반도 못 미치는 애가 본인들과 동등하게 학교 다니는 게 용민의 사고로는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용민           야, 대답 안 해?

 

 

 

해민이 빌려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던 민수가 뒤늦게 말소리를 듣고 이어폰을 빼며 ‘응?’ 하고 대답하자, 용민은 기다렸단 듯이 앉아있던 민수의 어깨를 제 어깨로 있는 힘껏 쳤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어깨끼리의 마찰인데도 빡! 소리가 나자, 뒤에 있던 해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옆자리에서 웹툰을 보고 있던 범일은 이상하게 돌아가는 판에 ‘완전히 아사리판~’이라며 만사가 귀찮은 모습으로 따라 일어섰다.

 

 

 

범일           아 시바 미쳤냐고~

 

 

 

도저히 초등학생 입에선 나올 수 없는 찰진 욕이 범일의 입에서 나오자, 그걸 용케 들은 용민이 옆을 돌아본 순간 해민이 빠르게 그의 어깨를 온몸으로 뻑!!!!! 쳐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힘에 밀려 용민이 뒤로 밀려나는 걸 같이 온 패거리가 겨우 잡아주자, 용민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이없단 듯 허, 하고 웃으며 자신에게 민수를 줘패달라 부탁한 녀석을 끌고 나왔다. 얼마 전까지 저희들과 함께 다녔던 애인 걸 알자마자 해민은 이번에야말로 진짜 죽여버리겠다고 주먹을 쥐는 걸, 용수철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난 민수가 간신히 뜯어말렸다.

 

 

 

용민           (일부러 크게 웃으며) 야, 네들 셋이 사귀냐?

범일           저 새끼가 돌았나.

 

 

 

말로 조지는 범일과 다르게 해민은 그 자리에서 주먹을 갈겼다. 그걸 바로 옆에서 직관한 민수는 그대로 얼어버렸고, 범일은 한숨을 내쉬며 ‘아... 이건 너무 빠른데.’ 하고 고갤 내젓는다. 예상 못한 순간에 갑자기 얻어맞은 용민이 당황해서 뭐냐고 일어나려는 사이, 해민이 이번엔 어깨를 발로 찼다. 용민을 불러온 해민의 옛친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해민이 한 대 더 패려는 걸 민수와 범일이 죽을힘을 다해 그를 말렸다.

 

 

 

범일           입 뒀다 뭐하냐! 말로 해!!!

 

 

 

그 말에 해민이 비웃는다.

 

 

 

해민           이런 새낀 말로 해선 안 돼. 줘패도 알아들을까 말깐데, 입 아프게 말을 왜 하냐.

 

 

 

이에 용민이 ‘너 이 시발!’하고 튀어나오는 순간, 범일이 세상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외쳤다.

 

 

 

범일           선생니이이이이이임!!!!!!!!!!!!!!!!!!!!!!!!!!!

 

 

 

진짜 교실이 다 떠나가란 심산으로 존나 크게 질렀다. 그 소릴 듣지 못하면 사람도 아닐 만큼, 아이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지나가던 다른 반 선생이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으로 교실 안을 힐끗 보더니, 싸움판이 열린 학급 분위기에 급히 쫓아 들어왔다. 너희 왜 싸워? 그가 묻자마자 범일은 제일 빠르게 외쳤다.

 

 

 

범일           용민이가 해민이 새끼 때리려고 했어요!!! 애들 우르르 끌고 와서 민수 어깨빵 존나 하고, 네가 민수냐고 애 겁주고, 도와주려 한 해민이 새끼도 졸라 이 새끼들이 다구리 까려고 지금!!!!!!!!!!!!

선생           범일아, 제발 예쁜 말 좀 해.

범일           얘가 얘 때렸어요!

선생           때린 거야, 때리려 한 거야.

범일           용민이가 얘를 때리‘려고’ 했는데 분위기는 이미 때린 수준이었어요. 그럼 때린 거 아닙니까? 만지지 않아도 분위기를 조성한 것만으로 성추행이 되듯, 이것도 결국엔 폭행 아닙니까, 선생니임?!!! 때리려고 주먹 휘둘렀는데 맞지 않았다고 폭행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선생           너 말 되게 잘한다. 해민이가 용민이 때렸니?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용민이가 더 두들겨 맞은 것 같은데.

범일           아니라니깐요?! (이마빡을 치며) 와 돌겠네! (해민을 가리키며) 야 이 새끼야, 그러니까 내가 무식하게 주먹부터 들지 말라 했지!!!!

해민           안 그랬으면 김민수 이미 이 새끼한테 맞았어.

범일           그러니까 내가 때리더라도 안 보이는 델 때리라 했잖아. 이 새끼는 학습이 안 돼요.

선생           그러니까 결론은 용민이가 해민이한테 두들겨 맞았다?

용민           (발끈하며) 두들겨 맞진 않았거든요?!!! 그냥 좀 스쳤거든요?!

선생           뭔데 진짜.

 

 

 

변명 자체를 할 생각이 없는 해민과, 그의 변호를 실패한 범일, 그리고 자존심이 상해 맞은 적이 없다고 우기는 용민. 말 그대로 ‘아사리판’이었다.

 

 

 

범일           아니 근데요, 선생님. 이 새끼드...

선생           ‘이 친구들’.

범일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요. 10분밖에 없는 이 황금 같은 쉬는 시간에 굳이 남의 반에 우르르 쫓아와서 민수를 건드렸다는 게 중요 포인트 아닙니까? 이 새끼들, 아니 이 친구들이 왜 왔겠어요. (갑자기 급발진하며) 패거리로 몰려와서 김민수 개작살 내려고 온 거 아니에요!

 

 

 

이를 반박하고자 용민 패거리의 몇 명이 결국 맞은 건 용민인데 왜 네가 난리고 소리치니, 용민은 발작과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자기는 맞은 적이 없다며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야 이 새끼들아, 나 맞은 적 없다고!!!!!

 

 

 

범일           이 새끼들 지들끼리 팀킬 오지네. 야 이 새끼들아, 그럼 네들이 지금 남의 반에 우르르 몰려와선 (민수를 가리키며) 세상 물정 모르는 이 새끼한테 ‘야 김민수 개새끼야, 대답 안 해?’ 이런 이유가 뭔데!! 지금 네들끼리 편 먹고 애 하나 잡으려고 온 거 아니야!!!!

용민           ‘김민수 개새끼’라곤 안 했거든?! 그냥 ‘김민수’라고 했거든?!!

범일           분위기 조성했잖아아아악!!!!!!!!!!!!

 

 

 

정작 당사자 민수는 1초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바락바락 소릴 지르는 범일을 말려도 봤지만, 범일은 ‘지금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 하고 오히려 그에게 호통을 쳤다. 넌 저기 가서 해민이 새끼랑 서 있어! 그 이후로 범일은 일당백으로 상대편 아이들이 무슨 얘기를 하려 할 때마다 ‘아아아아아아악!!!!!!!!!!!!!!!!’ 소릴 지르며 더 크게 지랄하기 시작했다.

 

 

 

민수           ......

해민           ......

 

 

 

후에 보니, 용민을 데려온 원인이었던 아이는 이미 도망친 후였다. 선생이 용민 패거리에게 너희는 왜 남의 반에 와서 민수에게 겁을 줬냐 물으니, 용민은 그저 할 말이 있어 온 거라 우물거렸고 범일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범일           뭐래 등신이, 너 이 새끼 반 죽여놓으려고 온 거잖아. 저 새끼가 너한테 김민수 좀 밟아달라고 지랄..... (이미 그 아이가 사라진 걸 깨닫고) 뭐야, 어디 갔어, 이 새끼!!!!!

 

 

 

본격적인 용의자 색출이 시작되었다. 찾으면 제 손으로 죽여버리겠단 범일의 각오에 민수는 제일 그만 좀 하라며 그의 등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해민은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의 뒤에 숨어 용민에게 ‘네 새끼 이따 학교 끝나면 죽여버릴 거야’ 라며 조용히 입 모양을 뻐끔거렸다.

 

 

 

민수           제발 둘 다 그만...

 

 

 

다른 의미로 매일이 스펙타클한 하루였다.

 

 

 

 

 

 










 

 

 

 

 

2.

노인과 함께 가게 앞 정자에서 바둑을 두던 영은 어디선가 밀려오는 스산함에 파드득 놀라며 빠르게 고갤 들었다. 판은 잘 풀리는데 알 수 없는 한기가 오소소 느껴지자, 그는 몸을 움츠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왜 소름이 돋지...

 

 

 

그의 말에 마저 돌을 둔 노인이 곧 겨울이라 그렇다며 대수롭잖은 듯 양털 담요를 던져주었다.

 

 

 

노인           덮어라.

 

 

 

 

 












 

 

 

3.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예정한 날짜보다 한 달이 더 늦춰졌지만, 결혼식도 어찌저찌 서류가 통과된 후부터 수목원 측과 여러 미팅 끝에 생각보다 모든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드레스만 빼고.

 

 

 

태영           날 추울 게 걱정이면 야외 결혼식은 왜 하니.

단영           옳소.

 

 

 

최대한 다 가렸으면 하는 자야의 입장과 보석이 잔뜩 박힌 드레스를 활짝 까서 입으라는 태영과 단영. 전부 못 들은 걸로 하겠다는 세훈과 밥은 뭐 먹을 거냐는 산. 이에 피자가 먹고 싶다는 솔눈까지. 보통 소수가 오는 드레스 피팅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온 경우는 샵 직원들도 처음인지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태영           벗으라니까.

자야           벗을 거면 이걸 왜 입니. ‘아담과 이브’ 마냥 처음부터 벗고 들어가지.

태영           까는 게 예뻐. 내가 드레스 좀 입어봐서 알아.

자야           이혼 3번 한 사람 말은 안 들어. 내가 매번 그 새끼들 관상 더럽다고 결혼하지 말라 했거늘 마지막까지 안 들어먹더니, 내 말 3번이나 무시한 사람 조언은 안 들을 거야.

태영           (자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너! ‘조언’이란 단어 금지야.

자야           왜?

태영           있어, 그런 게! 드레스도 경험이야. 한 번 입는다고 뭘 아니?

자야           그렇다고 3번을 입어?

태영           그게 바로 내가 돈이 많단 증거야. 너 오스카에서 수제작을 아무나 해주는 줄 알아? 아무튼 까는 게 예뻐. 말 들어.

세훈           대체 까는 게 왜 예쁜데? 나 진짜 이해가 안 가네. 자야는 안 까도 예뻐!

단영           그럼 둘 다 까.

자야           아니 안 깐다니까!

 

 

 

기어이 두 시간을 넘긴 피팅의 결과는, 날이 추운 관계로 필요 이상의 노출은 원치 않는단 신랑 신부의 입장을 받아들여 목부터 발까지 전부 가리는 드레스로 결정했다. 그런데 막상 이 불편한 걸 강릉까지 가져가 수목원 안에 입고 들어가서 거즌 1시간 동안 서 있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야           우리 말이야. 드레스 꼭 입어야 할까.

세훈           입기 싫어?

 

 

 

물론 세훈은 본인에게 최고의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만, 자야에게도 최고의 결혼식이길 바랐기에 그가 원하는 건 뭐든 해주고 싶었다. 드레스 말이야...

 

 

 

자야           우리 그냥 면사포만 할까.

세훈           상관없어. 그렇게 해도 괜찮다면 그러자.

자야           대신 같이 쓸까?

세훈           그것도 괜찮지.

 

 

 

이에 태영이 무슨 소리냐며 어이없어했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태영           결혼식 도사를 앞에 두고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자야           이상하게 드레스에 정이 안 가네. 이걸 굳이 그 고생하며 입어야 하나 싶어.

태영           ......

 

 

 

말문이 막힌 태영의 옆에서 영은 산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영           내 주변에서 쟤가 제일 매력적이야.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굉장히 진취적인 분이세요.

영           (끌끌 웃으며) 근데 큰일 났네. 오 대표 어머니 이번엔 진짜 뒤로 넘어가시겠어. 아무래도 드레스에 몰빵하신 것 같던데.

 

 

 

영의 걱정대로, 역시나 세훈이 드레스는 입지 않고 둘 다 베일만 쓰기를 결정했다고 연락하자, 여자는 제 아들이 면사포를 쓰는 건 중요치 않은지 그저 ‘아이고, 또 돈을 아꼈네.’ 하고 절망했다. 대체 자야는 네 돈 다 언제 쓰고 죽으려고 그렇게 돈을 안 쓰냐며 전화 내내 탄식이 끊이질 않았다. 돈을 아끼려는 게 아니라 불필요해서 안 하는 거라 해명해봤지만 여자에겐 통하지 않았다. 돈을 아낌없이 쓰는 것이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라 믿는 자였기에 여자의 귀엔 세훈의 해명은 하나부터 열까지 단 한 글자도 들리지 않았다.

 

 

 

세훈           대신 면사포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걸로 할게요.

여자           *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싸서 되겠니? 날밤을 새서라도 세상에서 제일 비싼 걸로 찾아 다이아몬드까지 박아. 알았어?

세훈           예에.

여자           * 물론 구두도 제일 비싼 걸로 해야 할 거야, 알았냐고!!

 

 

 

그러곤 뚝, 끊어버린다.

 

 

 

 

 

 

 

 







 

 

 

 

 

 

4.

결혼식을 이틀 남긴 날, 대본을 탈고한 자야는 얼마 뒤에 있을 오디션을 앞두고 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를 만나 인물 별로 원하는 이미지들을 조율하고 있었다.

 

 

 

자야           이 캐릭터는 파격적인 변신이 될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평소에 바른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맡아 그 이미지를 한 방에 뭉갤 계기가 되길 바라요. 이런 배역이 어울린다고? 대중이 바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감독           연극판으로도 범위를 넓혀야겠네요.

자야           요즘은 영화판보다 연극판 배우들이 더 잘하더라고. 마스크도 다양하고.

 

 

 

캐스팅 디렉터는 미리 뽑아놓은 오디션 대기 배우 명단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딱히 끌리는 이가 없어, 결국 그 배역은 내정 없이 공개 오디션으로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자야           이 역할은 통통 튀는 어린 남자애인데, 가끔은 서늘한 눈빛으로 상대를 쏘아보기도 해야....

디렉터        나재민씨는 어때요?

 

 

 

나재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이름이라 듣자마자 어색한 미소가 지어졌지만, 이내 디렉터의 추천처럼 그 역시도 이 역할에 제법 어울릴 것 같았다.

 

 

 

자야           괜찮겠네. 순위에 넣어봐요.

감독           그럼 주인공은 당연히...

 

 

 

그가 지금껏 써왔던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은 거의 태영이었다. 이번 작품도 그러리라 예상한 감독은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갤 가로젓는 자야를 보여 짐짓 당황한 얼굴로 고갤 갸웃거렸다.

 

 

 

자야           장 배우 아니에요.

감독           진짜요?

자야           네, 장 배우는 이번 작품에 함께하지 않을 거예요.

디렉터        왜요?

자야           기대하셨나 보네.

디렉터        조금? 쉽게 접할 배우는 아니잖아요.

자야           내후년에 들어갈 다음 작품 주인공을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이... 역대급으로 빡세요. (씨익 웃으며) 그래서 그때까진 좀 쉬게 놔두려고. 마침 지금 다른 작품 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디렉터        아아..

 

 

 

자야는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세훈이 절 데리러 오기로 한 시간이었다.

 


 

자야          아무튼 주인공은 공개 오디션으로 진행하죠. 딱히 생각하고 쓴 인물이 없어.

감독          왠지 힘든 오디션이 되겠네요.

자야          바닷속도 계속 파다 보면 조개 하나는 발견하겠지. 그 안에서 진주 꺼내는 건 우리 몫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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