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구질한 구애인  05









“두 사람이 아는 사이였다니, 깜짝 놀랐어요..”

“그러게요. 세상 참 좁네요. 하하...”


미팅이 끝난 후 제희의 제안으로 김과장, 경수 이렇게 셋이서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주변 여자 회사원들이 득실거리는 파스타 집 안에서 세 사람은 마주 앉았다. 김과장 옆에 경수, 그리고 경수의 앞에 제희가 앉았다.


“임과장님이 잘해주신 덕분에 저번 달 매출도 좋았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에요. 제가 뭘... 오히려 김과장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저야말로 실적이 많이 올랐는 걸요.”


하하하... 경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대화에 끼지도 못 하고 어색하게 따라 웃을 뿐이었다. 그때,


“어? 태준씨!”

“어? 김과장님! ...도경수?”





셋에서 넷이 되어버렸다. 샐러드만 사가려고 들어왔던 태준이 비어있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경수는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편한 태준이 있어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이는 기분이었다.


“태준씨는 경수씨랑 입사 동기라 하셨죠?”

“네. 나이도 동갑이고 그래서 더 친해졌어요.”

“아, 부럽네요.”


??? 나지막히 흘러나온 제희의 말에 김과장과 태준의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 떴고 경수는 당황했다. 이 사람이 뭐라는 거야?


“하하... 임과장님이 경수를 많이 좋아하나 보네요.”


뻘쭘해진 공기를 풀어보고자 태준이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으나,


“네. 근데 경수씨는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해요.”

“......”


제희의 대답에 더욱 뻘쭘해져버렸다.


“아.... 그나저나, 두 분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나이도 경수씨가 임과장님 보다 어린 걸로 아는데, 신기하네요.”


이번엔 김과장이 나섰다.


“아, 그게 경수씨 동거인이 잃어버린 핸드폰을 우연히 제가 주워서... 그래서 알게 되었어요.”

“경수 동거인? 헐, 네 애인 핸드폰 잃어버렸었어?”

“애인? 경수씨 애인 있었어?”


세 사람이 동시에 경수를 쳐다보았다. 아.... 경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뻥긋댔다.


“실례합니다.”


그때, 굿 타이밍으로 종업원이 음식을 가지고 왔다. 접시가 놓아지는 와중에 제희와 경수의 눈이 마주쳤다. 경수는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제희의 눈에 괜히 음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맞다.   


‘그냥 동거인 맞아요?’

‘저랑 핸드폰 주인은, 말 그대로 그냥.... 동거인이에요.’


그러고 보니, 내가 그랬....었지. 따지고 보면, 태준에게 거짓말을 한 거지, 제희에겐 거짓말을 한 게 아닌데... 괜히 거짓말을 하다 들킨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식사가 끝나고 네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건물 앞에서 김과장이 먼저 제희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오늘 감사했습니다.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그리고, 저... 김과장님. 실례가 안 된다면 경수씨 잠깐만 빌려도 될까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제희에 말에 김과장 옆에 서있던 경수는 놀란 눈으로 제희를 쳐다보았다. 할 이야기? 무슨 이야기?


“아, 네. 그럼요. 편하게 이야기 나누시다 보내주셔도 되요. 그럼, 저희는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아니, 저....”

“네. 감사합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당황해 하는 경수를 남겨두고 두 사람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경수씨. 잠깐 저기 앉을까요?”


뭔가 버림받은 듯한 강아지처럼 우물쭈물 서있는 경수를 제희가 건물 옆 벤치로 이끌었다. 흡연구역 옆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지.... 경수는 곁눈질로 제희를 힐끗 쳐다봤고 그때서야 제희의 입이 열렸다.


“핸드폰 주인, 애인이었군요.”

“네? 아.... 그게, 사실은....”


경수는 뭐라 설명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래. 어차피 제희씨는 핸드폰 주인이자 동거인이 남자인지도 여자인지도 모를 테니, 그냥 말해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애인....이었어요. 예전에. 사정이 있어서 지금 같이 살고 있고.... 그러니까....”

“전애인이란 말이죠?”

“아...네. 맞아요. 전애인.”


전애인이란 단어를 제 입으로 담으니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또 그런 얼굴 하네요.”

“...네?”

“저번에 동거인 얘기 나왔을 때도 경수씨, 지금이랑 똑같은 표정이었는데.”

“제가 무슨....”

경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저를 쳐다보자, 제희가 피식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음... 뭐랄까-. 마치 멀리 간 사람을 떠올리듯... 아련하고, 슬퍼보였어요.”

“......”

“경수씨는 아직 그 사람 좋아하는 거 맞죠?”


제희의 말에 경수는 입을 벌렸다가, 이내 아무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라고 답했어야 하는데, 그럴 의지가 꺾여버렸다. 고작 두 번 만났을 뿐인데... 어떻게 이 사람은 이리도 쉽게 나를 간파해버리는 거지? 매일 같은 공간에 사는 그 녀석은.... 7년을 함께한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슬픈 것은 마찬가지였다. 경수의 표정은 더욱 침울해졌다.


“어쨌든, 나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거네요.”

“네?”

“저, 경수씨에게 호감 있어요. 모르는 척 하지만, 사실 경수씨도 알고 있잖아요.”

“......”


제희의 말이 맞았다. 제희의 말대로 경수도 어느 정도는 제희의 마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어제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제희에게 몇 번의 메시지가 왔었다. 잘 들어갔냐. 밥은 먹었냐. 출근은 잘했냐. 옷은 따뜻하게 입고 나갔냐... 등등. 그 무엇 하나 답장을 하진 않았지만, 아무리 눈치 없는 경수라도 그 메시지들 안에 들어있는 사심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답장을 하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아까의 재회가 더 뻘쭘했던 거였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답을 달라는 건 아니에요. 경수씨가 현재 전애인과 함께 살고 있고, 미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으니까.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냥, 우선은... 아는 형 동생으로- 부담 없이 저와 편하게 만나주면 안 될까요?”

“......”


경수는 제법 간절해 보이는 제희의 눈빛에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어떻게 하지.... 분명 딱 잘라 안 된다고... 미안하다고 거절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경수는 왜 지금 제가 망설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백현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 1년간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백현이 제게 했던 말들. 제가 했던 말들. 생각들. 그리고, 상처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현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냥 동거인이라기엔 애매한 현재의 우리 관계. 그리고 그 원인은 저에게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친구가 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건 여전히 저 하나뿐이다. 백현은 이미 저와 함께 했던 길을 벗어나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 그러니, 이제 저도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하는 게 아닌가. 백현을 위해서라도... 저를 위해서라도.... 경수는 입술을 감쳐 물었다.






“하... 벌써 토요일 저녁이라니.”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자마자 백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출근 때문에?”

“어... 요샌 토요일 저녁부터 우울해.”

“참나. 뭐 누기 전과 후가 다른 게 사람의 마음이라더니. 언젠 주6일 일해도 좋으니 취업했음 좋겠대매.”

“풋... 그러게 말이다....”


성호의 직구에 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주말마다 우울해 하던 예전의 경수를 떠올려냈다. 동시에 배부른 소리 한다며 외면했던 못난 자신의 모습도.


“그래서. 소개는 잘 시켜줬어?”

“어? 어.... 야. 넌 절대 소개팅 주선 같은 거 하지마라.”

“장난해? 소개시킬 사람 있음 내가 가졌지. 남한테 왜 소개를 시켜줘.”

“큭큭- 그렇네.”


백현은 몇 시간 전, 제 대학 선배와 회사 동료 친구의 소개팅 주선을 보고 왔다. 같은 부서의 친한 여자 대리가 얼마 전에 제 SNS에 올린 사진을 봤는지, 자기 친구가 백현씨랑 같이 찍은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한다며, 혹시 여친 없음 소개 좀 시켜달라고 했다. 백현은, 안 그래도 선배도 얼마 전에 여친과 헤어진 상태였고, 물었더니 선뜻 오케이 하길래 알겠다고 주말에 같이 보자고 했더랬다. 그리고 백현은 이번을 계기로 다신 주선 따윈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와- 인사만 시키면 끝인 줄 알았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서로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셋이 같이 놀자며 저를 보내주지 않는 거였다. 곧장 나오려던 계획은 무산 되었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결국 함께 카페에서 커피까지 마신 뒤에야 풀려났더랬다.


“근데 여자 대리는 왜 안 나왔어?”

“남친이랑 데이트한다고 나만 보낸 거지, 뭐.”

“우리 자기, 황금 같은 주말에 고생 많았네~”

“다시는 내가 주선 같은 거 보나 봐라.”


백현은 그러면서 제 입에 미리 잘라 놓은 소시지 한 조각을 집어넣었다.


“근데, 자기. 아까부터 뭘 그렇게 자꾸 쳐다봐?”


저와 대화를 하면서도 자꾸만 흘끔흘끔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시선에 성호가 입을 삐죽였다.


“야. 경수 왜 이렇게 안 오냐?”


어딜 보나 했더니, 가게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나 보다.


“경수가 말 안 했어? 누구 좀 만나고 온다고 늦을 거라던데.”

“뭐? 나한테는 아무 말 안 했는데?”


성호의 말에 백현이 눈썹을 구기며 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부재중 전화 알림도, 신착 메시지도 없었다. 점심 때 제가 집을 나서기 전까지도 방에서 나오지 않아 대화는커녕 얼굴도 보지 못했더랬다. 도경수... 나한테는 말 안하고, 성호한테만 말했다 이거지?


“큭큭... 변백현 표정 봐라.”

“...뭐가.”


저도 모르게 뾰로통한 목소리가 나가버렸다.


“나한테만 연락했다고, 너 지금 삐졌잖아.”

“아니거든?”

“애니그등~”

“...놀리지 마라. 가뜩이나 요즘 우울해 죽겠는데.”

“왜? 경수씨가 쟈가워서? 너도 참 양심도 없다. 도경수는 배알이 없고.”


백현은 성호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뼈 때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요즘 들어 잦아진 성호의 비아냥 섞인 말들이 자꾸만 귀에 거슬린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도 못 하지만.


“야. 너 그냥 가면 안 되냐?”

“싫어~ 자기 옆에 꼭 붙어있어야지, 내가 어딜 가~”

“아이씨, 왜 이리로 넘어와? 징그러우니까 저리 가!”

“아이잉~ 우리 사이에 새삼 부끄러워하기ㄴ... 어? 도경수!”


제게 엉겨 붙은 철거머리를 필사적으로 밀어내는데, 성호의 입에서 나온 경수의 이름에 백현은 미어캣처럼 입구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뭐하냐, 너네?”


못 볼걸 봤다는 듯 눈살을 잔뜩 찌푸린 경수가 목도리를 풀어내며 둘에게로 다가왔다. 추운 바깥 공기 탓에 볼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음~ 백현자기와 나의 찐한 애정표현~?”


그 말에 경수의 표정은 더욱더 썩어 들어갔다.


“...놀고들 있네. 여기 생맥 한 잔 주세요.”


경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가까이 있던 종업원에게 주문을 했다. 그때, 백현의 뚱한 시선이 경수에게로 향했다. 언제나 제 앞에 앉던 경수가 성호의 앞에 앉은 것이다.


“이게 빠져가지고, 어딜 늦고 지랄이야? 감히 형님들 기다리시게.”

“형님 좋아하시네. 늦는다고 미리 말했잖아.”

“한 시간이나 늦게 온다고는 안 했잖아. 대체 누굴 만나고 온 거야?”


성호가 경수의 앞에 수저를 가지런히 놓아주며 따지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츤데레도 이런 츤데레가 없다.


“있어. 아는 형.”

“아는 형? 누구?”

“누군데?”


성호보다 백현의 목소리가 빨랐다. 왜 이래, 이것들이. 동시에 제게로 향한 둘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경수가 잠시 눈을 굴리다 툭 던지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몰라도 돼.”

“요것 봐라? 이제 사회인 짬밥 좀 됐다, 이거지? 우리가 모르는 지인도 만들고 말이야. 다 컸네, 도경수.”

“내가 원래 너보단 크잖냐.”

“...재수 없어. 한 마디도 안 져요, 아주.”


꽤나 분한 얼굴로 저를 째려보는 성호에 경수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진성호 갖고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니까.


“실례합니다.”


때마침 종업원이 맥주를 들고 왔고, 셋은 곧바로 잔을 부딪쳤다. 꿀꺽꿀꺽- 대충 한 모금만 마시고 내려놓은 둘과 다르게 경수는 순식간에 반을 비워냈다.


“오- 오늘 술 좀 땡기나봐?”

“아니, 뭐 그냥. 목이 좀 타서.”

“안주도 좀 먹어.”


백현이 포크에 찍은 소시지 한 점을 경수의 입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그에 경수의 당황한 시선이 소시지에 잠시 머물렀으나 이내 입을 벌려 냉큼 받아먹었다. 사귈 때는 늘상 하던 행동이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백현에 비해 경수는 잘 마셨으며 또 좋아했다. 그래서 술을 마실 때마다 경수의 안주를 챙기는 건 항상 백현의 몫이었다. 포크로 가는 손보다 잔으로 가는 손이 많아진다 싶으면 계속해서 경수의 입에 무언가를 넣어주었다. 물론 그것도 헤어지기 전까지만 그랬지만. 오랜만에 본 광경에 성호의 가늘게 뜬 눈이 경수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느낀 경수는 괜히 받아먹었다 싶었다. 저거 또 나중에 지랄하겠네. 란 생각이 들었다. 별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나온 행동일 걸 알아서 일부러 거부하지 않았던 거다. 부러 저 혼자 의식하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 뿐이었다.


부르르-


그때 테이블 위에 있던 경수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누군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경수씨. 친구들 잘 만나고 있어요? 잠깐이었지만 오늘 즐거웠어요. 내일은 우리 영화 보러 가요.]


제희였다. 경수는 미리보기로 읽다 제 핸드폰으로 향한 백현의 시선을 느끼곤 얼른 핸드폰을 뒤집어 버렸다. 그러자 그 시선은 곧장 제 얼굴로 향했다. 큼큼- 경수는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여기 오기 전, 경수는 제희와 만났다. 그날 결국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경수에 제희는 매우 기뻐했다. 환하게 웃는 제희의 얼굴을 보며 경수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일종의 연습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홀로서기 연습. 백현이 언제 집을 나갈지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그나마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도 사라져버리게 될 텐데. 혼자가 되었을 때 멍청하게 슬퍼만 하고 있을 제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당장 연애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제희의 제안대로 일단은 아는 형이 생겼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보기로 했다.


“오늘 만난 사람이야?”


어쩐지 날이 선 듯한 백현의 목소리에 경수는 흠칫 놀랬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뭔가 뜨끔한 마음이 되었다.


“어? 응. 뭐....”


메시지를 봤나...?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봤으면 또 어때. 라는 생각이 금세 뒤따랐다. 내가 누굴 만나든 어차피 신경도 안 쓸 텐데.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 사이에 낀 성호가 눈치를 보다 한마디 하려는데, 또다시 진동이 울렸다. 이번엔 백현의 핸드폰이었다. 메시지가 아닌 전화인 듯 시끄러운 진동이 연달아 계속되었다.


“....후-. 잠시만.”

심각하게 굳어있던 표정이 잠시 풀리며 백현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네, 대리님.”


가게가 비교적 한산했기에 백현은 나갈까 하다,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받았다.

“아, 소개팅... 예-... 얘기 들으셨구나....”


소개팅??? 백현의 입에서 나온 소개팅이란 단어에 경수의 귀가 순간 쫑긋해졌다. 그리고 곧바로 험악하게 뜨인 눈동자가 빠르게 백현에게로 향했다.


“네. 차 마시고 헤어졌어요.”


뭐? 차를 마시고 헤어져?? 뭐야..... 오늘 진짜 소개팅 한 거야?? 그거 진짜였던 거야??! 경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사실 불안하긴 했지만, 저가 물었을 때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한 백현의 반응에 마음 한 구석으론, 아닐 수도 있다란 기대를 어느정도 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진짜, 레알로 소개팅을 했단 말이지...? 경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러게요... 결국 그렇게 됐네요.”

“......”


???

심상치 않은 기운에 성호의 시선이 경수에게로 향했다. 뭐야? 도경수 왜 또 저런 못난 얼굴이야? 뭐에 또 화가 난 건데?? 앞에서 질겅질겅 마른 오징어를 씹던 성호가 어딘가 잔뜩 뿔이 난 경수의 얼굴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네. 전달할게요. 감사합니다. 푹 쉬세요.”


짧은 통화를 끝내고 백현은 다시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었다. 오늘 소개팅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지 둘이 잘 안 되서 아쉽다며, 오늘 혼자 나가게 해서 미안했다고 하면서 다음에 선배랑 같이해서 밥 한 끼 먹자는 그런 내용이었다. 밥은 무슨 밥이야. 잘 된 것도 아니고 사람 마음 불편하게시리. 나중에 선배 바빠서 힘들 것 같다고, 다음에 하자고 대충 둘러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백현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때, 제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 작성하는 듯한 경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까 그 메시지에 답장하는 건가? 백현의 눈썹이 저도 모르게 크게 꿈틀거렸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경수의 아는 형이라는, 오늘 처음 알게 된 존재가 상당히 신경 쓰이고 께름칙했다. 백현은 사실 아까 경수의 핸드폰에 떴던 메시지를 읽었더랬다. 읽으려고 읽은 게 아니라, 정말 어쩌다 눈에 들어 와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한 순간, 백현은 짐작했다. 아는 형이, 그냥 단순한 아는 형이 아니겠구나, 라는 기분 나쁜 예감......


“도경수. 너 만나는 사람 생겼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와버렸다. 생각이 뇌를 거치기 전에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내뱉고 나서야 말해버렸단 사실을 인지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담고 싶지는 않았다. 제가 앞에 있는데도 그 아는 형이라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경수가 눈에 거슬렀다.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와 버렸다.


“......”


백현의 물음에 핸드폰을 만지던 손이 정지버튼을 누른 듯 뚝- 멈추었다. 그리곤 잠시 후, 아래를 보고 있던 탓에 눈꺼풀에 가리어져 있던 까만 눈동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백현에게로 향했다.


“아니.”

“......”


덤덤하게 내뱉어진 경수의 담백한 대답에 긴장했던 백현의 마음이 순간, 훅- 하고 풀어져버렸다. 아니...아니구나..... 그리고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까는 그럼, 내가.... 잘못 봤던 건가? 아니면, 정말 아는 형인데 내가 괜한 착각을,


“근데, 만나볼까 하는 사람은 있어.”

“......”


곧바로 이어진 경수의 발언에 백현의 생각이 거기서 뚝 끊겼다.


“왜? 그러면 안 돼?”


경수의 목소리만큼이나 낮게 가라앉은 시선이 백현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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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빠르게 고구마 끝내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해봅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gongs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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