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긴긴 밤에 짧은 낮이 없었다. 


며칠 째 천계의 천족 궁전에는 삼엄한 경계가 지속되고 있었다. 

오가는 이의 정확한 출입이 보고 되었으며 급한 용무가 아니면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미 곤륜산에서 발생한 이상한 일들을 감지한 야화의 빠른 판단때문이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고지하지 않고 다만 바람의 방향이 이상하다는 이유를 핑계로 대신했다. 그것은 퍽 그럴듯한 핑계가 되었으니 백천조차도 그냥 별 의심없이 수긍할정도였다.  천계에서 바람은 이상한 성질을 지녔는데 그중 바람의 어떤 특정 방향은 천족의 마력에 영향을 주었기때문이다. 특히 미련한 동풍이 불어올때는 모두 조심해야 할정도로 그 영향이 강력해졌다.  그리고 그 동풍은 야화같은 천족의 높은 신만이 감지할수 있었다.  제법 좋은 핑계였다. 

야화는 한동안 궁내의 모든 소풍조차 금지시켰으나, 곤륜허에서 일어난 일은 묵연의 일이 연관되어서 차마 백천에게는 정확히 알리지 못한까닭에, 바쁜일을 핑계삼아 백천과의 마주침을 일부러 며칠째 계속 피하고 있던 중이었다.  

마주보기만해도 그녀가 금새 무언가를 바로 알아내고 쏜살같이 눈치챌것 같았다.  예전처럼 야화는 자신의 일을 쉽게 백천에게 숨기질 못했다.  그러기엔 서로가 지나치게 가까왔다.  목숨을 두고 가까워진 사이엔 뭔가 더 특별한게 있기마련이다.  이젠 서로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알아채는 일이 많아졌다. 

그 일에 대해 얘기를 하면 백천의 성격상 묵연의 어려움을 구경만 하진 못할것이다. 더구나 곤륜허 제자들의 일은 곧 백천의 일이기도 했으니 당장 묵연을 찾아 나설지도 몰랐다. 야화는 그런 백천을 말릴수도 없었고 또 그런 위험속에 백천을 뛰어들게 할순 더더구나 없었다.  이건 잠시동안만이라도 반드시 비밀이어야했다.  


야화는 시간이 걸릴뿐 어차피 묵연이 그 일의 원인을 밝혀낼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며칠의 낮과 밤이 속절없이 지나가며 야화에겐 시간이 더욱 느리게 흘렀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품이 그리워진 야화는 질질 끌려가는 이 이상한 상황에 스트레스를 늘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은 차갑다못해 시무룩했다. 

그 스트레스때문인지 한번씩 그냥 확 나서서 싹 처리해버리고 싶어도, 묵연조차도 비밀리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중이니 자신이 표면에 나서서 끼어들기도 불편하고 애매했다.  지금은 힘들어도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어보였다.  결국 그는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아리에게 줄 새로운 호신용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화는 그러는 중에도 백천의 다정한 손길과 그녀의 따뜻한 품이 무척 그리웠다. 

무엇보다도 그녀와의 끊어낼수 없는 꿀처럼 달달한 사랑의 순간들이 마음에 매 순간 간절했다.  더구나 이제 막 아리의 동생을 갖기위해서 겨우 백천을 설득하고 날마다 이어가던 황홀한 신혼이었기에,  심각해보이는 냉냉한 그의 얼굴표정과 달리 그의 마음엔 표현하지못하는 백천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넘쳐 흘렀던것이다

" 좋아요,  일단 아리의 동생을 낳을때까진 오늘부터 금주를 할께요. " 

낭낭한 백천의 약속이 아직도 야화의 귓등에 올라와 잔잔히 머물러 있었다.  

 얼마나 듣고 싶던 약조였나. 

말리기 힘든 애주가인 그녀의 그 말을 떠올릴때마다 혼자서 바보미소를 짓는 야화는 영락없이 여전히 처음처럼 사랑에 빠진 모습 그대로였다. 

여신인 그녀가 다시 아기를 갖는 일은 첫째인 아리를 가질 때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야화가 천계 최고의 왕이라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직 자유롭고 싶은 백천은 그녀의 그런 소망 때문이라기보단, 정직하게는 마음 깊은 곳에서 또 다시 아이를 갖는 일 자체를 이상하게도 두려워했다.  아마 아리를 가졌을 때의 힘들었던 추억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한 야화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했었다.  야화에게도 지금은 과거의 무정했던 행동으로 인한 백천과 자신의 뼈아픈 고통을 치유하고 만회할 좋은 기회였기에  그만큼 더욱 같이 있었으면 싶은 간절함이 타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쉽게 해결될것 같지 않으니 야화 혼자서 애가 타는 중이었다.  야화의 긴긴 밤엔 낮조차 짧지 않고 일분 일초가 그렇게 매정하게 천천히 흘러갔다.  그의 긴긴 밤에 짧은 낮은 결코 없었다. 


비밀리에 곤륜허의 제자들 사건을 은밀하게 따로 조사하던  동화제군은 아주 복잡한 표정으로 냉소를 흘리며 사명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감히 천족을 상대로 이런 얄팍한 수를 쓰려하다니... '

동화제군의 눈빛이 냉엄한 빛으로 번득였다.

" 그래서, 지금 묵연이 머무는 곳이 봉황족이 지배하는 타타조족이란 말이냐? "

" 네. 그곳에서 매우 은밀하게 머물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동행하지 않았고 혼자서만 움직인다고 들었습니다. " 


출중한 전쟁의 신이 대체 어떻게 그의 행적을 다른 천신에게 정확히 노출시킬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이 알아낼수 있는건 거기까지였다. 그것도 묵연이 죽음에서 돌아온 이후 묵연이 어느정도 회복될때까지라는 전제하에 동화제군은 남모르게 묵연의 안위를 위해 그의 머리카락 한가닥에 슬며시 실려 둔 마법진 때문이다.  그 마법진은 묵연이 천족이 다스리는 영토를 넘어 마족의 땅으로 갈때마다 동화제군에게 그가 향하는 곳에 대한 정보를 연통해주었다.  사실 그건 진심을 담은 마음으로 그를 지키고 있었기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아니면 묵연이 벌써 없애버렸을것이다.  그것은 묵연에게 제자로써 최선을 다하려는 백천을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지켜내고 싶어하는  야화의 암묵적인 의중도 들어가 있었고, 묵연조차도 슬며시 그들의 호의를 즐기고 있던 참이었다.   다만 묵연은 그가 원하지 않을때는 그 머리카락에 혼자만 아는 태고의 방식으로 로암이라는 위장술에 능한 초를 피워 동화제군이 실려둔 마법을 교묘하게 잠재웠으니 그건 동화제군도 미처 생각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묵연은 그가 다니는 곳을 동화대군에게조차 위장할수 있었다. 

" 봉황족은 묵연에게 호의적이지.  묵연만 긴장을 풀지 않는다면 그곳이 그렇게 많이 위험하진 않을거야. "

동화제군은 그렇게 대꾸한 후, 사명에게 이번엔 인간세계로 내려간 묵연의 다섯째 제자를 아무도 모르게 만나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아오라고 지시를 내린 뒤, 다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음 , 그러나.... 드디어 봉황족이 숨겨둔 야망을 드러내는 것일까? '  

동화제군의 눈빛엔 심상치 않은 예측으로 긴장이 가득했다. 


하지만 타타조족에 잠입하여 묵연이 지금껏 은밀히 조사한 바에 의하면 봉황족의 최고신, 여왕 차루루에겐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 




https://youtu.be/dORKQFfdne4?list=RDdORKQFfdne4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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