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떠오른 돌발 미션을 읽자 마자 머릿속으로 한사람이 스쳐 갔다. 미로 정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온가람. 온가람이어서가 아니라, 누군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서 동관 쪽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발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하체가 무너지며 쿠당탕, 꼴사납게 넘어졌다.


"씨발..."


구급차에 실려 갈 때, 꼭 범인은 반고요라고 외치고 가야지.




"헉...허억..."


열심히 달린다고 했는데 조깅이나 구보 수준으로 밖에 뛸 수 없었다. 그새 학교는 실시간으로 난리가 났다. 동관에 화단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시작된 불이 옆으로, 옆으로 번져가며 거의 재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열기,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 매캐한 연기가 오감을 자극했다.


현장에는 소방관들과 교내 보안 직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동관 게시판 앞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반고요와 감사부 부장도 보였다.


다행히 아직 미로 화단까지는 불이 번지지 않았다. 그러게. 불이 붙은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 있어서 못 나오고 있는 거지?


의문은 이내 풀렸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건물을 사이에 두고 빙 돌아 미로 화단 출구 쪽으로 가자 출구에 온가람이 쓰러져 있었다. 연기를 마셔서 기절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온가람을 흔들어 깨우는 동안 단순한 기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닥에 고인 붉은색 웅덩이를 보고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온가람! 온가람!"


머리에서 흐른 피가 손바닥을 적셨다. 아직 상처를 통해 피가 새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방금 막 다친 듯 했다. 숨, 숨은 쉬고 있나?


손이 덜덜 떨렸다. 코밑에 손을 대 봐도 이게 온가람의 숨결인지 불어오는 바람인지 구별할 수 없었고 가슴에 귀를 대 봐도 내 심장이 더 크고 불안하게 뛰어서 온가람의 박동을 들을 수 없었다.


짜악! 스스로 고개가 돌아갈 때까지 뺨을 내리쳤다.


정신차리자, 송재하.


일단, 일단 사람을 불러야 한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데 손가락이 떨려서 119를 누르는데도 여러 번 삐끗했다. 11119, 1129, 1116, 1169...


"시발!"


핸드폰으로 대가리를 내리찍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온가람의 머리에서는 피가 계속 흘렀다.


"지니야! 반고요 전화 걸어줘!"

-네. 반고요 선배님 에게 전화를 걸게요.


혹시나 하고 외쳐봤더니 다행히 전화가 걸렸다. 119 대신 반고요를 부른 건, 찰나 간 이곳이 소설인 만큼 119의 번호가 119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보세-

"선배니이이임!"


반고요, 도와줘.




황설수설 하기는 했어도 간절한 외침이 닿아서일까. 금방 반고요와 구급대원이 달려왔다. 나는 반고요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고 온가람이 실려 가는 동안 반고요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반고요는 아직 불이 완전히 진화되지 않아 위험하니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며 나를 부축해 일으켰지만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갓 태어난 동물처럼 풀썩풀썩 주저앉았다.


"다치셨습니까? 이분도 환자인가요?"


다치긴 했지. 엉덩이가 터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말로 구급대원을 돌려보냈고 약간의 앙심을 담아 반고요에게 무게를 실어 일어났다.


"여긴 왜 왔어."


아직 눈물이 그치지 않은 놀란 후배에게 취조부터 하시다니.


"...선배님이, 흥, 그렇게 나가시는데, 제가 어떻게, 흡, 집에 갑니까."

"하아..."


절뚝거리느라 안전이 보장된 곳까지 나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사이 눈물은 말랐고 약간의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사람 죽은 것처럼 통곡을 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아니야.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안 지린 게 어디야.


"고테이!"


내가 미로 정원에 다녀온 동안 동관 게시판 앞에 모여 있는 학생들이 더 늘었다. 교내에 남아있던 신문부와 감사부는 물론, 하교했던 학생회 소속 학생들도 학교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방송부도 있었다. 신믿음은 나를 발견하자 마자 뛰쳐 왔다.


"이, 이거 뭐야? 피? 피야?"


피라고? 웅성웅성.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그러고 보니 온가람의 피가 교복에 묻어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스스로 뺨까지 쳤으니 얼굴 반쪽에도 피로 얼룩졌을 것이다.


반고요는 신믿음에게 나를 짐짝 넘기듯 넘겨주고, 인파와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방송부장에게 다가갔다. 두사람이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더니 순식간에 사색이 된 방송부장이 구급대원들 쪽으로 달려갔다.


방송부장 이름이...아! 온그루.


90퍼센트의 확률로 온가람과 형제일 것이다.


"야, 너 괜찮냐니까?"

"어어. 괜찮아, 나는."

"그럼 이 피는 누구 건데!"

"이건..."


모두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신문부가. 곧 교내에 파다하게 퍼질 이야기이지만 내 입으로 말하긴 꺼려졌다. 가뜩이나 방금 피해자의 형이 공포에 질려 달려간 모습을 본 참이라 더더욱 불편했다. 반고요를 바라보았다.


말 해요?


표정으로 물었더니 반고요가 한숨을 쉰다.


"자리 비워서 죄송합니다. 학생들 위치는 다 파악됐나요?"

"아직입니다."


반고요의 사과에 감사부장 서사하가 딱딱하게 답했다.


신믿음이 슬쩍 옆구리를 찌르더니 귓속말로 상황을 전해주었다.


"교내에 남아있는 학생은 없는지 조사하는 중이야. 비상 문자 돌렸고 학급 단위로 조사 중. 동아리 부장들에게도 더블 체크하라고 했고. 고요선배랑 네가 주도해야 되는 일인데 너는 어디 갔는지 안보이지, 선배는 너 일 있으니까 못 온다고 찾지 말라 그러지. 그래서 사하 선배 존나 빡쳐있음."


어, 그런 것 같다. 서사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나도 모르게 바닥으로 시선이 이동했다.


"근데 너 누구한테 맞았냐?"

"어? 왜? 아니? 어? 왜 그렇게 생각하지?"


반고요한테 혼나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다른 사람한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격렬하게 부정하자 신믿음이 내 입가를 콕 찔렀다.


"그럼 이건 뭔데."

"아... 이거...어, 맞았어."

"누구한테?!"

"...곧 알게 될 거야."

"뭐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게 없냐."

"넌 왜 여기 있는데."

"불 났다고 해서 왔지. 내일 방송하려면 현장 직접 봐야 될 거 아니야. 야, 근데 멀쩡하면 좀 똑바로 서봐."

"아니... 멀쩡하지 않아..."


나와 신믿음이 투닥대는 동안 소방관에게 화재는 전부 진압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알려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모두 전체 회의실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


불은 꺼졌어도 공기 중에 퍼져 있는 연기 냄새가 매캐했다. 다들 느릿느릿 건물로 들어가는데 그 주위를 보안직원들이 둘러쌌다. 아직 온가람이 습격을 당했다는 것을 모르는 학생들은 보안직원의 경호를 받으면서 어리둥절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넌 돌아가도록 해. 직원이 집까지 데려다주실 거야."


괜찮다고, 나도 남겠다고 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예."


반고요는 내 대답을 듣고서야 회의실로 이동하는 학생들의 행렬 가장 끝에서 걸어갔다.


"가시죠."


내 경호를 맡은 직원이 나를 부축했다. 그 순간,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 동아리 시간을 할애 해 직접 교내를 뛰어다니며 교체했기 때문에 몇시간 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선배님! 고요 선배님!"


반고요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검도부 포스터를 가리켰다. 포스터 끝이 찢겨 있다.



MISsION! IMPoSsIbal!

7. 학생회를 향한 경고



"오늘 민원을 통해 특정 동아리 포스터에 이상한 표시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양궁부, 검도부, 미술부, 오케부, 댄스부, 수영부 포스터에 지금처럼 왼쪽 하단부가 살짝 찢겨 있었습니다. 확인 후 부회장인 고테이 학생이 오후 5시 무렵 수거, 교체를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이렇게 또 찢겼고요. 그리고 여기, 양궁부에는 특히 X표까지 쳐져 있습니다."

"양궁,검도,미술...학생회단 소속 동아리네요. 양궁부만 빼고."

"제 전 동아리이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고테이와 온가람, 온그루, 그리고 현재 교내에 남아있는 학생들을 제외한 전교생의 위치 파악이 끝났다. 교내에 남아있던 학생들 중에서도 전체 회의에 참석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보안직원의 경호를 받으며 귀가했다. 반고요는 긴급회의를 열었고 교내에 없는 학생들과는 화상통화를 연결했다.


방송부 부장인 온그루의 부재로 그의 자리엔 차장인 신믿음이 앉아 있었다. 신믿음은 마찬가지로 공석인 고테이의 자리를 바라보다가 몰래 문자를 보냈다.


[ㄱㅊ?]

[어디임? 집에 들어 갔어?]


그러나 답장도, 읽었다는 표시도 없었다.


전체회의실과 영상 너머의 학생들은 저마다 침묵하며 상황의 심각성을 따져보았다.


"그리고... 아까 미로 정원에서 한 학생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고테이 학생이 발견했고, 바로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미친..."


신믿음은 입을 떡 벌렸다. 신믿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순간 회의실이 소란스러워졌다.


"...현장에서 흉기로 사용된 벽돌이 발견되었으니 사고는 아니고, 명백한 사건입니다."


소란위로 경악이 뒤덮여 일순 적막이 찾아왔다.


“피해 학생은 1학년, 온가람 학생입니다. 동아리는... 일단, 소속은 양궁부입니다. 포스터 훼손과 동일인의 소행인지는 아직 명확한 것이 없으니 언급은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반고요의 지시가 있었으니 포스터 사건이 학생들 사이에 퍼지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회의에 참석한 학생들은 모두 동일범의 짓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화재와 습격. 그리고 포스터에 남긴 X자까지. 우연이라고 보는 쪽이 개연성이 부족했다.


소름이 돋았다며 팔을 쓸어내리는 학생이 한두명이 아니었다.

그 한명 중엔 신믿음도 있었다.


"CCTV 확인은 아직입니까."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부터 침착을 유지하던 지천둥의 질문에 반고요는 유감이라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포스터 훼손의 경우 게시판 앞에서는 후드티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그 이후로는 사각지대 때문에 동선을 추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동관 게시판에는... 6시 30분부터 화재 발생 후 사람들이 모이기까지, 그 사이에 지나가는 수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럼..."

"양궁부 온가람을 노렸다고 밖에."


지천둥이 정리한 말에 학생들은 한 번 더 수군거렸다. 고테이가 포스터를 교체한 게 오후 5시 무렵이다. X를 그릴 수 있는 시간은 포스터 교체 이후부터 웬만한 학생들이 하교하는 6시 30분까지라는 것이고, 화재는 8시 무렵 발생했다. 온 가람이 다친 것도 그 근처일 것이고.


"네. 동일범이라면 먼저 포스터에 X를 그리고 온가람 학생을 가격했다는 것이죠."

"화재 원인은 무엇입니까."

"조사하고 있습니다."


화단 곳곳에 이런 상황을 대비해 비상 장치가 있다. 하지만 장치가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은 빠르고 크게 번졌으며 거리가 있는 화단까지 불이 옮겨간 것이다. 반고요는 언뜻 기름이 묻은 휴지 같은 것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상기했다.


"신문부, 방송부에서는 일단 사건 관련한 언급은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화재 원인이 방화든 사고든, 안전을 강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직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대입니다."


손을 들고 반대의 뜻을 표시한 신문부 부장 진사문과 반고요의 시선이 부딪혔다.


"화재까지 관련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포스터에 쳐진 X표, 그리고 온가람 학생의 습격, 게다가 노려진 동아리의 공통점. 다들 비슷한 생각들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포스터는 학생회도 민원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하니 우리끼리 입을 닫는다고 해도 학생들 사이에 금방 퍼지게 될 거고,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 텐데요."

"아직 연관성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른 피해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규칙성을 확인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럼 포스터 얘기는 빼더라도 학교 내에서 학생이 습격 당한 사건은 써야겠습니다."

"본인 동의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동의 받으면, 써도 되겠습니까?"

"학생끼리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 셈인가요?"

"학생끼리라니요. 외부인 짓일 수도 있죠? 그렇다면 교내 보안 문제가 수면위로-"


이게 뭔 일이래. 신믿음은 첨예하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목을 숨기고 눈동자를 굴렸다. 신문부와 방송부가 학생회 소속이었다면 반고요의 부탁을 가장한 명령에 고개를 숙여야 했겠지만 두 동아리는 감사부처럼 독립적이다.


다음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범인을 잡고 그 이후에 사건 경위와 대처, 재발 방지 대안을 함께 밝히자는 반고요와 범인이 언제 잡힐지도 모르는데 학생들이 각자 조심할 수 있도록 당장 일어난 사건이라도 전달해야 한다는 진사문은 꽤 오랫동안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신믿음은 의자 깊숙이 몸을 구겨 넣으며 활기를 띄는 진사문과 다르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반고요를 집중해 바라보았다. 저 선배가 오늘 정말 피곤하긴 한가보다. 대화가 은근히 감정적이다. 늘 이성적이기만 하던 반고요가 비친 감정적인 모습에 신믿음은 신기한 구경한다며 고개만 갸웃대고 넘겼으나, 신믿음보다 그를 더 잘 아는 몇몇은 각자 감상이 달랐다.


진사문은 반고요의 약점을 잡은 김에 신이 나서 몰아붙였고, 지천둥은 비웃었으며, 서사하는 혀를 찼다.


보다못해 나선 것은 문예부 부장 이하음이다.


"방송부는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엇. 어...옙! 방송부 차장 신믿음입니다."


선배들의 말싸움 속에서 눈치만 보던 신믿음이 자리에서 튕겨지듯 벌떡 일어났다.


"저는..."


본의 아니게 어떤 대답을 하든 반고요 편을 드냐 진사문 편을 드느냐 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어느 쪽 편을 들든 상대가 앙심을 품지는 않겠지만 후배 입장에선 이런 상황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회의는 부장 대리로 참석하고 있으나 사안의 결정은 부장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당장 선택해야 한다면, 지금 연락 드려 보겠습니다."


그러니 부장에게 토스했다. 이런 거 결정하는 게 부장 몫 아니겠습니까, 부장. 저는 아직 그럴 그릇이 못됩니다.


"신문부나 방송부가 의견 통일을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어차피 알려질 문제인데 하루 이틀 입 막아 봤자일 겁니다. 오늘 안에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고요. 저는 신문부 쪽 의견에 동의합니다."


서사하가 끼어들며 학생회장과 신문부장의 싸움을 지켜보던 상황이 깨져버렸다. 학생들은 결국 두사람이 했던 말을 반복하면서 제 입장을 밝혔다. 우세한 쪽은 진사문의 말대로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는 쪽이었다.


서사하가 언론이야 신문부와 방송부의 자율적인 권한인데 학생회가 부탁을 빙자해 간섭할 이유는 없다며, 그럴거면 여기 모인 전부도 간섭할 수 있게 전체 표결을 진행하자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두번째 유혈 사건은 이 순간 전체회의실에서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고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빡돌았는데'


순간 여유와 평정을 잃은 반고요는 동요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들어내며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제가 주제넘었네요. 알아서들 하십시오.


빈정상한 티가 난다. 이건 안돼.


간섭이라뇨. 말이 심하시네요.


아냐. 이것도 너무 감정적이야. 이 이상 우스워져서는 안돼.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건...인정하고 싶지 않고.


두고 보면 누구 말이 맞았는지 알게 되겠죠.


찌질 해 보여. 저주도 안 되는데.


반고요는 심호흡을 하며 생각과 감정을 가다듬었다. 가장 깔끔한 답변은 역시 성급하게 통제하려 든 것을 인정하고 숙이는 것이겠지.


"이미 간접적으로 표결이 이루어진 것 같네요. 다수의 뜻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찌질하다. 결국 서사하의 말에 완전히 반박하지도 못하고 시인하지도 않은 반고요는 회의를 마무리하며 자괴감을 느꼈다. 늦은 시간이었으니 회의가 끝났다는 말을 반긴 학생들은 회의실을 우수수 빠져나갔다. 화상으로 참석했던 학생들도 접속을 종료했고, 이내 텅 빈 전체회의실에는 반고요만 남게 되었다.


반고요는 의자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 앉아 머리를 비워냈다. 따끔거리는 눈을 감으면 속수무책으로 잠이 들것 같아서 뜬눈으로 멍을 때렸다.


***

"아오..."


집으로 돌아와 바지를 벗어보니 하반신이 처참했다. 반고요가 학생회장으로서 고생해 안타까운 것과 별개로, 과격한 후배 사랑은 신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매를 번 것도 있고, 신고하든 말든 고테이의 사정이니 이번만큼은 참아주겠지만 다음번엔 그냥 맞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즐거운 ~동아리 시간~》 미션 클리어!]

[돌발 미션 클리어!

보상: 명성+10 관심+5

집으로 23:59:06]


침대에 누운 김에 신믿음에게 늦은 답장도 보내고 상태창도 확인했다. 이놈의 상태창은 체계라곤 눈곱만큼도 없는지 어수선한 UI에 설명도 부실하다. 명성이나 관심으로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데 보상이라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나는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 ૮₍°´ᯅ`°₎ა °。]


상태창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데 눈앞이 오래된 티비가 치직 거리듯 스파크가 튀더니 우는 이모티콘이 떠올랐다.


"...뭐야"


상태창의 메시지는 그간 받아온 것과 달랐다.


[노력중인데$]

[(งಠ_ಠ)ง]

[자꾸?&욕해/]

[ಠ ɞ ಠ]

[일안할지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상태창이 지성을 갖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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