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는 눈을 의심했다. 제왕 로이드가 저리도 침울한 표정이라니. 분명 어제까지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였는데, 제왕 로이드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니 카이와 로이드가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젠장 저래서였구나. 가마돈의 아들로 항상 원하는 것은 꼭 얻어냈었는데, 정작 사랑하는 마음 하나 얻지 못하니까. 제이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제왕 로이드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저항군 기지에서 니야를 처음 봤을 때,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고백했었지. 그때 니야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어. 하루하루 어떻게 살지 고민하기 바쁘느라. 자신의 앞날조차도 판가름 할 수 없을 정도였지. 그래서 내 고백을 거절했고. 제이는 지금의 니야한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면 그녀가 들어줄지 궁금했다. 저항군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니야는 로이드와 사랑으로 이뤄진 사이는 아니니까. 굳이 결혼이 아니더라도 곁에서 머물 수 있었음 좋겠어.

카이와 로이드가 같이 다니는 모습은 계속되었고, 암자에 사는 사람들이 둘을 연인으로 인정했으나 유일하게 제왕로이드만은 둘의 사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이는 전직 상사한테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로이드의 부탁대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마음을 줬다간 분명 오해할 거라면서.

모로는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제왕로이드를 지켜보며 도무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는데엔 훈련만 한 게 없지. 그는 제왕로이드에게 자신과 함께 훈련하자고 제안했다. 열심히 훈련해서 카이를 싸고도는 그린닌자를 무너뜨려보라는 제안은 너무나 달콤했다. 만약 그가 쓰러지면 카이가 자신을 봐줄지도 몰랐다. 모로와의 훈련은 고된 편이었지만, 가마돈이 만들어낸 제왕 로이드의 육체는 한계란 없었고, 어떤 훈련도 이겨냈다. 훈련이 끝난 마지막 날 로이드를 찾아가서 카이를 건 대련을 하자고 제안하자 로이드는 잠시 망설였다. 만약 이 자를 이긴다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어. 카이는 전생의 기억을 잃겠지만. 

로이드는 고민 끝에 대련을 받아들였고, 대련은 일주일이나 걸려서 판가름 났다. 대련에서 이긴 건 로이드였다. 처음에는 제왕 로이드가 우세했지만, 카이를 잃고 수련을 게을리한 결과는 몸에 남아 있었다. 실험으로 얻어낸 강인한 육체는 어느새 한계를 맞이했고, 로이드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단 걸 눈치챘다. 예전부터 제왕로이드가 카이를 불러내기 위해 시행한 주술은 자신의 생명력을 깎아 넣은 것이었고, 지금의 카이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계속해서 다른 세계의 카이를 불러냈었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서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깎아서라도. 그동안 자신이 불러낸 카이들은 자신을 외면했었다. 사악한 가마돈의 아들이자, 무시무시한 장군인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았기에 그 존재들을 지워버렸다. 다른 세계의 카이에게 기억을 불어넣는 일은 쉬웠다. 그 기억을 안고 정신을 유지하는 존재는 많지 않았고, 남은 이도 로이드를 사랑해주지 못했다. 하루미의 말처럼 헛된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이렇게 다시 만났는걸. 나를 바라봐주고 사랑해주는 존재를. 카이는 쓰러진 제왕로이드에게 다가왔다. 그의 전생은 이 자 때문에 불행했지만, 그렇다고 고통받기를 원치 않았다. 평생 그의 죽음을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지금 그는 죽어가고 있다. 앞으로 몇시간이나 남았을까.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건. 제왕 로이드는 카이의 손을 잡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떠나지 말아줘. 그 애틋한 말에 카이는 그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모로는 로이드를 데리고 방에서 나왔다. 제왕 로이드가 약해져 가는 건 눈치채고 있었지만, 저 정도였다니. 전직 저항군의 장군으로서 그에게 좋은 감정은 남아있지 않지만, 죽어가는 사람이 부탁하는 것을 외면할 정도로 냉정한 사람은 아녔다. 그는 로이드에게 목걸이를 주며 부탁했다. 그가 죽으면 화장을 할 거야. 그 뼛가루를 가지고 가줘. 그 정도면 카이가 이 자를 추억하는데 충분할 거야. 모로가 내민 목걸이에는 작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저항군 시절에 항상 지니고 다녔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동료의 뼛가루를 지니고 다니면 영혼이 보호해준다고 믿었거든. 지금에 와서야 다 미신이지만. 카이가 저쪽 세계 가서도 그를 기억해줬음 좋겠어. 기억을 못한다 해도 말이지. 로이드는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모로를 봤지만, 모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반유령으로 살면 가끔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으니까. 세계를 넘어 다니면서 기억을 잃는 자들을 많이 봤었지. 그들 중에는 기억 나지 않는데도,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어.

제왕 로이드의 죽음 이후, 니야는 암자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제이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모로와 아이들과 같이 살기로. 카이가 건 목걸이에는 제왕로이드의 뼛가루가 남았다. 카이는 죽어서까지 자신에게 남은 제왕 로이드가 살짝 꺼림직 했지만,죽은 자의 마지막 소원이라니 들어줘야지.목걸이는 초록색으로 빛나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 안에 숨겨진 공간에다 뼛가루를 넣었다. 로이드의 손을 잡고 이쪽 세계에서 넘어갈때 카이는 이쪽 세계의 기억이 자신을 떠나는 걸 느꼈다.기억은 서서히 희미해지더니 사라졌고 카이가 깼을 때는 로이드를 비롯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는 동료들이 있었다.

지금도 카이의 목에는 아름다운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걸려있다. 그 안에 무슨 비밀이 있는지 꿈에도 채로.

+덤

로이드만 그쪽의 기억을 갖고 있어요 제로가 카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목걸이는 애뮬렛 같은거 생각하면서 썼는데...안에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제로한테 자가치유 능력 넣은것도 한계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넣은건데 어떤 능력이든 무리하게 쓰면 한계가 오겠죠

게다가 사랑하는 이를 돌리려고 생명도 갈아넣었으니....어쨌든 카이를 만났으니 해피엔딩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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