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정신건강과 진료비를 지원해준대서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항불안제 약의 효과 같은 거 하나도 안 믿었는데, 상태가 나아져서 약을 줄여 볼까요 하자마자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약과 호르몬이란 뭐길래 인간을 이토록 지배하는가. ㄱㅡ  <우울할 땐 뇌과학> 책을 다시 읽으려고 리디셀렉트를 결제했다.


불안할 땐... 잠이 안 온다. 오늘도 6시간 논스톱으로 일해야 했는데 잠을 세 시간 자서 그야말로 죽는 것 같다. 당연하지만 일터에서 큰 미스도 하나 했고. 항불안제를 줄인 것이지 잠을 잘 자게 도와주는 약은 줄인 적 없는데, 미친넘이 졸린걸 깡으로 버티고 기어코 그 새벽에 불안에 떠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이 이상 할 수 있는 것이며 해야 하는 일이 하나도 남아있지가 않은데, 그렇게 되니까 그 사실 자체에 불안해지는 이상한 굴레.

이상한 굴레.


그렇게 6일을 보내고 나니까 오늘, 퇴근길 하늘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사람이 없는 인생도 어떻게든 잘 살긴 하겠구나. 나 지금, 어떻게든 그렇게만도 괴롭지는 않구나.

지금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오후 5시, 가을이 아직 완전히 덮치지 않은 세상은 밝고 환하고 낮과 다름없으면서도 늦은 오후 특유의 서늘한 바람이 불어 반팔과 반바지 바깥의 살갗은 조금 춥기마저 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날 좋아해주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면 내 삶은 환희로 가득차 있겠지. 그런데 정작 나는 그 사람이 없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사실이 너무 너무, 당장이라도 눈물날 것처럼 슬픈데, 그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 속에서 함께 목숨을 다하는 소중한 사람간의 이야기가 그토록 부러운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함께 숨을 다하는 삶 보다는 함께 끝없이 살아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렇게 하고 싶어했다. 나랑.


그리고 그것이 더 맞는 일이며 더 성숙한 인간이 마땅히 고르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알아버렸다. 

더는 로맨틱한 공상 속에 있을 수가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그다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을 때 영원한 형태로 내 곁에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미래를 봐 버렸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세계관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운데 한 번 해보려 한다. 왜냐면 굳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없는 시간을 혼자서 맨몸으로 버티는 것은 아파서 싫기에.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면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상처주지 않을 사람을 찾는게 아니라 나 스스로 상처받지 않을 만한 사람이 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늘 생각하지만 인간은 너무 가성비가 없는 생물체다. 난 인간이 싫다. 다음엔 아메바 같은 걸로 태어났음 좋겠다. 


 

뚜루룻

사는중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