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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물기를 머금은 수풀의 향기, 혹은 짓이겨진 풀비린내. 웬만한 가뭄이 아니고선 마르지 않는 수풀 아래의 검게 젖은 흙. 한낮에도 겹겹이 우거진 나뭇잎사귀들로 강렬한 태양에게 여지를 주지 않는 검은 숲. 그곳이 터전인 생명체들에겐 안식처, 언제나 서로에게 잠재적 피의자인 인간들에겐 공포의 대상. 

숲에는 많은 향기가 있다. 

향기로운 것도, 역겨운 것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무시하고 싶은 것도. 대체적으로는 평화롭고, 보통은 내면이 치유되는 듯한 향기. 지금은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깨끗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상쾌하고 속이 후련해지는 향기가 느껴진다.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의 향기 위에 치유의 향이 덧입혀진다. 

검은 숲. 

피터의 스카프. 


숨을 크게 들이키며 눈을 떴다.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이 눈을 뜬다는 것은 정신이 든다는 것과 같아서 몇 번이고 눈을 꿈뻑이고 크게 떴다 감으며 오감으로 감지되는 주변을 살폈다. 아니, 살피려 했다. 소리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내 코끝을 괴롭혔던 향기도 희미하게만 느껴진다. 


아무런 장식도 쿠션도 없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있다. 내가 어딘가에 앉은 기억은 없는데 이런 곳에 몸을 늘어뜨리고 있다는 건 누군가 강제로 나를 여기에 앉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신을 잃은 사이. 몸의 어디에도 묶인 자리가 없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것은커녕 고개를 드는 것도, 소리를 듣는 것도 모두 마음 같지 않았다. 


"억지로 움직이면 다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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