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너를 그리는 시간 - 태연 들으며 읽으면 좋습니다.


 -그럼, 박한영 열쇠를 복사하는 건 어때요.


 결국 저번 만남의 결론은 이 한 문장이 되었다. 장난처럼 흘러갈 수도 있었던 다성이의 한마디가 우리 일의 핵심이 됐다. 박한영의 주머니 속에 있는 열쇠를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각자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말해 주는 것으로 그날 모임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이틀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마음이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연수 쌤, 여기서 뭐 해?”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며 스탠드에 앉아 있던 나에게 나은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흰색 반소매 셔츠에 샛노란 바지를 입고 계신 선생님이 오늘의 날씨와 퍽 잘 어울렸다. 덥지 않느냐는 일상적인 물음을 건네며 나은 선생님이 내 옆에 앉으셨다. 더위도 더위였지만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걱정과 고민 때문에 하루하루가 어떤 날씨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명확히 느낄 수 없었다.


 “아, 선생님. 전에 병원비 못 드렸던 거, 얼마 나왔는지 알려 주시면,”

 “됐어. 괜찮아.”


 아무리 나은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셔도 항상 마음 한구석에 빚을 진 느낌이었다. 학교에서도 매번 나를 챙겨 주시는데 밖에서까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못내 죄송했다. 나은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꾸만 웃으셨다.


 “연수 쌤. 원래 다 돕고 사는 거야. 연수 쌤이 나 도와준 게 더 많을걸?”

 “제가 뭘요….”

 “가끔은 인정해도 돼. 연수 쌤 착한 거 여기 사람들, 저기 쟤네들까지 다 알아.”


 나은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싱긋 웃어 보이셨다. 아이들이 축구공을 뻥뻥 찰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선생님께 감사했다. 나도 그냥 고개를 숙이고 웃어 버렸다. 환한 웃음을 따라서.

 그렇게 웃다 보니 다시 하루 종일 하고 있던 고민이 여유를 비집고 들어와 마음을 장악했다. 이런 마음으로는 여유롭게 웃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옆을 보았다. 나은 선생님께서 운동장 쪽을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그…, 어릴 때, 가끔 친구들이랑 주머니에 있는 물건 몰래 빼 오기, 이런 거 하고 놀기도 하잖아요. 선생님도 그런 거 하신 적 있으세요?”

 “응? 그게 뭔데? 남의 물건 쌔비는 거?”

 “아…, 네, 그렇죠…. 영화 보고 친구들이랑 그런 거 따라해 본 적, 없으세요…?”

 “그런 놀이가 있었어? 난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아, 내 동생이 어렸을 때 뭐 스파이 영화 하나 보고 심취해서 그런 거 하긴 했다. 그건 왜?”

 “아…,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앞서 나간 말을 표정이 뒤따르기 힘들었다. 올라간 것도, 내려간 것도 아닌 입 꼬리가 애매한 중간에서 떨리고 있었다. 나의 이상행동을 눈치 못 채실 나은 선생님이 아니셨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그냥….”

 “…뭔가, 일이 있구나.”


 나은 선생님이 팔짱을 끼고 턱을 손에 괸 채 유심히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허공을 쳐다보았다. 나은 선생님이 이것저것 물어 오실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영민 아주머니가 그런 거 잘하시던데.”

 “……네…?”

 “손기술이 좋으시다고 해야 하나.”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은 너무 예상 밖의 인물이어서 순간 목이 탁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 나은 선생님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담담히 대답만 해 주신 것이 의외였다.


 “선생님….”

 “쌤 계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주실 거야. 우리 다 연수 쌤 좋아해. 뭐, 법 없이도 살 연수 쌤이 그런 걸 묻는 걸 보면 엄청난 일이긴 하겠지만. 이사장님 관련된 일이야?”

 “….”

 “나한테 말해 줄 필요는 없지.”


 나은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아무 말 못하는 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나은 선생님이 격려를 해 주신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그림 같았다. 쎄-, 하고 울던 매미 소리가 점점 잦아드는 것만 같았다. 나은 선생님이 내 양쪽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잡고 나를 정면으로 돌렸다. 나은 선생님의 단단한 시선이 내 떨리는 두 눈동자에 꽂혔다.


 “연수 쌤이 생각한 계획 잘 실행해.”

 “….”

 “그게 나한테 돈 갚는 거야.”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나은 선생님이 천사처럼 미소 지으셨다. 그 미소를 믿고 나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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