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사족을 작성하였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시길.



아샤에게.


아샤, 

[내 모든 금을 녹여 만든 달비라의 아샤에게.]

당장 어제도 봤지만 왜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는지 너는 궁금해하려나. 큰 이유는 없어. 아니 네게 큰 이유가 아니겠지. 그냥, 아자젤에 대한 거야. 너는 이 주제가 나오면 어떻게 반응할까.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늘 그렇듯이 달빛처럼 웃을까?


난 평생 이 일에 대해 피해왔어. 너와 만나기 전까지. 지탄 받을 일이기도, 내가 인간을, 나를 천하게 여기는 것이기도 해. 하지만 이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고, 앞으로도 이 방법을 고수할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나를 지키기 위해 이 이야기를 네게 꺼내지 않아 왔을지도 몰라. 너는 그 일을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 이렇게 말하려면 눈치채지 못하려나? 흉은 남지 않았으나 네 얼굴에 아자젤이 상처를 낸 적 있잖아. 그 일을 말하는 거야. 하고 싶은 말들은 많아. 단지, 아직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네가 파견 나간 틈을 타, 네게 그리움을 호소하고 있는 날 봐주길 바라.


우선 첫째, 네가 아자젤의 일을 뛰어넘어서 너를 조금 더 챙겼으면 좋겠어. 너는 울지 않는 게 거의 문제니까. 언제나 밝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어. 네가, 조금 더 날을 세우고, 몸을 던져서까지 타인을 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다치면 오래 가지만, 난 금방 나으니까. .... 그냥 효율성의 문제로 봐줘.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가 아니야. 네게 날 베풀 수 있다는 뜻이 아니야.. 나는 여태껏 내가 소중하지 않아서 남을 위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어. 하지만 이 건, 그냥 네가 너무 생각나서..... 너 빼고는 날 상대해주는 기사는 없으니까. 네가 나한테 너무 신경 쓰니까 나도 신경 쓰게 됐나 봐.


둘째, 아자젤을 너무 싫어하지 않았으면 해. 너는 평소에도 아자젤 덕분에 먹지 않고, 잠들지 않는 내게 불만이 있었지 아자젤을 그리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래도 들어주면 좋겠어. 그때 네게 무슨 말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했던 짓을 두둔하는 게 아니야, 아자젤이 없었다면 난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설사 그날 살아났다고 하더라도 결국 너처럼 맑은 미소를 짓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거야.


...... 보고싶다. 네 체온이 그리워. 보통 사람보다도 높은 네 체온이면 나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저번에 실제로 잠들었지만. 편지가 매끄럽지 못해서 미안. 평생 누군가에게 글을 남겨본 적도, 그리워한 적도 없었던지라. 모든 인사, 모든 문장이 어색해 보여. 나와는 평생 닿지 못했던 걸 쥐어보려 하고 있어. 이 점은 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허, 걱정도 많지. 아니 쑥스러움이 많은 건가.


부러 달비라의 편지를 늘렸어. 나도 뒷켠에 너한테 전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거든. 읽어보니 달비라 치고는 꽤 자신을 표현하려 한 거 같은데. 그래도 영 답지 않은 말들만 했네. 네가 이해해. 가끔 감정에 못 이겨서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도, 괜히 산책도 하고 그런 모습을 근래 들어 보이거든. 이 편지도 쓴 지 7일이 지나서 붙이게 됐을 걸? 귀엽다니까. 달비라가 나를 감싼다고 실망해하지마. 그냥 그 애에겐 너 같은 사람이 이제껏 없었으니까. 죽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너처럼 사람이라고 너도 쉬어야 한다고 충분히 우린 어리다고 해준 사람은 처음이었으니까. 그 녀석에게 세상은 몇 번이고 죽을 수 있는 바다였고, 사람들은 서로 해치는데 눈이 시뻘게진 족속들이었을 거야. 사실이긴 하지만...


 너도 충분히 알고 있겠지만. 그 애는 어린 애의 심리와 같아. 명백히 알고 있는 지식도, 논리 사고도 명확하지만, 이성으로 모든 걸 이해하려 해. 철학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어쩌면 신을 오래 믿은 신도처럼 감정에 아주 무딘 면이 있어. 감정을 전부 억누르고 사는 거지. 그래서, 남이 감정을 참을 수 없을 때 이해할 수 없어 하고 자신이 감정이 차오를 때마다 전부 외면하는 거지. 나도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 면도 있어. 네가 달비라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거든. 어떻게 보면 네가 악마보다 더할지도. 어떻게 누군가를 전부 사랑할 수 있담, 나조차 내 계약자들에게 그러지 못했는데 말이야.


붉은 피를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채울 아자젤이.]


P.s 며칠이나.. 고민하다가 편지를 보내. 너무 웃지 말길 바라. 


[p.s 1 달비라가 이런 기술은 없으니까 내가 적어줄게. 악마 사이에서 자주 쓰는 구절이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내 어둠이 나쁘지 않다고 했었지?


p.s 2 다시 이 마을에 들르면 꼭 달비라를 찾아줘. 근래 다시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으니까. 나 참 이걸 왜 걱정하게 된 건지.]


오늘은 여기다가 사족을 작성하네요. 어딘가 짧고 비어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배경화면을 어두운 색으로 바꾸거나(포스타입 배경), 글자를 긁으면 숨은 부분의 편지부분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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