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님이 에이와타라 하셨으니 에이와타.

사실 성인인증 받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나는 개연성이 없으면 죽는 병이 있다.

그래서 그냥 전연령입니다. 제목과도 관련이 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피네'…,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당신하고 잘 어울리는 이름이에요."

"갑자기 무슨 말이야?"


히비키 와타루는 때론 무대 위에서 연기하듯이, 때론 노래하듯이 입을 열곤 한다. 오늘은 후자를 고른 날인 모양이었다.


"남들의 눈에는 그저 다섯 폭군이 하나의 독재자로 바뀌었을 뿐이겠지만 말이에요."

"흐음?"

"당신의 히비키 와타루는 알고 있답니다."

"선문답은 그만 두어 줘."


텐쇼인이 티팟에 우려낸 홍차를 찻잔에 내리며 옅게 웃었다. 히비키는 그런 텐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황제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그래, 그래."


그래서, 와타루는 무엇을 알고 있는데? 텐쇼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에이치는 기다리고 있죠? 종결을 내 줄 '혁명가'를."


극적인 손동작과 함께 히비키가 말을 맺었다. 텐쇼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달칵, 찻잔이 차탁에 부딪쳐 맑은 소리를 내었다.


"글쎄, 어떨까."


"'트릭스터'는 마음에 드시나요?"

"……한참 부족하지."


텐쇼인은 숨을 크게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흐린 눈으로 창밖의 푸른 하늘을 응시하고 있으니 창가에 기대어 서있던 히비키가 가까이 다가왔다.


"몸은 어때요?"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어."

"저는 항상 걱정이 많답니다."


과장된 한숨. 그 가면 아래에 저에 대한 걱정이 일말은 존재하리라고, 믿고 싶었다. 다가온 히비키는 의자 옆에 무릎을 굽혀 텐쇼인을 올려다보았다. 손을 뻗어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서져 버리는 것을 마주한 것처럼 히비키가 텐쇼인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당신은 절대로, 나를 두고 가버리면 안되는 곤란한 사람이에요. 정말로 곤란하다고요."


텐쇼인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히비키 와타루는 적재적소에서 필요한 대답을 건넨다. 히비키는 텐쇼인의 숨소리가 조금 전보다 편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데드'가 문제인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전에 텐쇼인이 히비키를 현실로 돌려 놓았다. 다시 중요한 맥락을 짚어내며 본론으로 돌아가는 텐쇼인 에이치야말로 자신의 황제 폐하.


"정확하게는 사쿠마 레이가요. 뭐어… 바람은 넣었겠지만, '언데드'들이라면 이런 일에 빠질 리가 없었을테니 의미 없는 가정일까?"

"그러는 너는 괜찮겠어?"

"무엇이 말인가요?"


히비키가 되물었다.


"그 '사쿠마 레이'잖아."

"에이치는 가끔 잊어버리는 것 같네요."


자꾸 이러면 황제 폐하의 광대가 삐뚤어져 버릴지 모른다구요? 히비키가 입술을 삐죽였다.


"자, 내가 누구죠?"


히비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텐쇼인이 앉은 의자 등받이를 제 양 손으로 붙잡았다. 코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히비키가 텐쇼인을 내려다보았다. 물을 잔뜩 머금은 비올레타의 염료처럼 선명하지만 옅은 히비키의 보라색 눈이 경이로울 정도로 예쁜 색을 하고 있어서, 텐쇼인은 그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달빛에 물든 나의 카구야 공주. 대나무에서 태어난 공주처럼 너의 세계로 도망치지는 말아줘. 홀린 것처럼 왼손을 들어 히비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나의 히비키 와타루."


정답이에요. 히비키의 눈이 곱게 휘었다. 그리고 촉촉한 것이 텐쇼인의 입술에 닿았다. 새의 부리처럼 가볍게 마주쳤다 떨어지는 행동에, 히비키의 뺨에 닿아있던 텐쇼인의 손이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어 히비키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에이ㅊ-"


예상하지 못한 텐쇼인의 행동에 히비키가 입술을 벌렸다. 그 틈을 파고 들어오는 타인의 뜨거운 것. 의자 등받이를 잡고 있는 히비키의 손가락에 꾸욱, 힘이 들어갔다. 비어있는 반대쪽 손으로 텐쇼인은 히비키의 허리를 감싸 제 쪽으로 이끌었다. 히비키가 순순히 이끌려 텐쇼인의 위에 걸터앉았다.


"하아, 하‥."


밭은 숨을 몰아쉬는 히비키를 보며 텐쇼인이 선수치듯 입을 열었다.


"AMAZING?"

"에이치,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나를 한시도 지루하지 않게 하네요. 히비키가 텐쇼인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순간적으로 사라진 온기에 몸이 떨릴 것만 같았다. 텐쇼인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어냈을까, 히비키가 텐쇼인의 자리를 정돈했다.


"그런 장식용 의자 같은 것 위는 사양하겠어요. 다시 사다 놓는 거야 에이치의 지갑이 알아서 할 일이겠지만, 의자가 넘어져 다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구요?"


겨우 복귀한 학교인데 말 못할 이유로 다시 결석할 생각은 아니겠죠? 일리있는 말에 텐쇼인이 소리내어 웃었다.


"응, 그도 그렇네."

"그러니까 이후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해요."


히비키가 재차 텐쇼인의 앞머리를 넘겨주었다. 그 순간,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회장!"


달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히비키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타인의 정체를 확인한다. 순진하고 가여운, 히메미야의 도련님.


"토리 군, 어서 오세요."


한 발 먼저 텐쇼인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고 질투하는 히메미야의 얼굴을 보니 어쩐지 우월감마저 느껴져서, 평소보다도 더 연기조로 말해버리고 만다. 히메미야의 도련님은 영영 알지 못하겠지만.


"그럼 이후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황제 폐하."


의미심장한 미소와 과장된 액션, 그리고 동선에 우연히 겹친 것처럼 스치는 손끝. 황제에게 예를 올린 히비키가 히메미야를 스쳐 밖으로 나간다. 히비키라는 선객이 불편한 것과 별개로, 그가 저와 회장 두 사람만의 공간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은 더 불편하다. 히메미야는 무심코 어디를 가느냐고, 히비키에게 묻는다. 히비키가 입술을 당겨, 입꼬리를 올렸다.


"글쎄요, 발길 닿는대로 날아가 볼까요?"


반응할 것은 텐쇼인 에이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히비키는 심술을 쉽사리 놓지 못한다.


"나니와 강의 갈대 숲 단 하루의 거짓이라도."


히비키가 도발하듯 입에 담은 구절. 텐쇼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요, 바로 그 모습이 이 히비키 와타루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랍니다.


"당신의 명이라면."


이젠 정말로 무대 뒤로 가야 할 시간이다. 제 말의 의미를 이해했을 텐쇼인과, 의문 가득한 얼굴로 그와 텐쇼인을 번갈아 바라보는 히메미야를 뒤로 한 채 히비키는 미련없이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불이 꺼지고 막이 내리는 무대, 히비키 와타루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먼저 자리를 뜬다. 커튼 콜은 없다. 또 다른 주인공 텐쇼인 에이치마저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공연장을 빠져나와 사랑을 나누고 있을 것이니까.





難波江の 葦のかりねの 一よゆゑ

나니와 강의 갈대를 베어낸 그 뿌리 마디처럼 짧은 가짜의 하룻 밤을 위해

身をつくしてや 恋ひわたるべき

내 몸을 바치고 일생 사랑할 수 있겠는가

-皇嘉門院別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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