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파 위로 쓰러졌다. 그간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유독 액션 장면의 비중이 컸던 촬영이 드디어 끝났다. 무슨 정신으로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조차 못 할 만큼 피곤했지만 홀가분함이 더 컸다.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쉴 수 있을 테니.

뒤풀이 회식도 거절하고 달려온 집은 개미 새끼 소리 하나 나지 않고 조용했다. 오늘따라 유독 집이 적막한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회식에 갈 걸 그랬나.

안 그래도 허기가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바윗덩이 같은 몸을 일으켜 자연스레 요리하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던 은영은 행동을 멈췄다.

웬 요리? 내가 요리도 할 줄 알았나?

본격적인 주방 요리 도구들을 돌아본 은영이 미간 사이를 좁혔다.

혼자 살면서 거창하게도 해놨네.

앞치마를 벗어 아무 데나 던져 놓고 적당히 배달 음식을 시켰다. 무심코 바라본 창가 너머로 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마당으로 나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은 은영이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이 꽃나무를 왜 심었더라. 꽃구경하는 취미 같은 건 없었는데. 게다가 이 넓은 벤치는 뭐란 말인가, 집에 누구를 초대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닌데. 묘한 위화감 속에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은영은 배달 음식을 받아들고 집 안으로 향했다.

혼자 먹는 밥이 어색해 은영은 생각에 빠졌다.

데뷔 이후 10년간 쭉 혼자 먹어온 밥인데, 새삼스럽게 왜 이러지.

찬물을 마시고 드러누운 침대 위에서, 위화감은 한층 더 견고해졌다.

침대가 오늘따라 너무 큰 것 같은데.

아무래도 혼자 사는 공간인데 지나치게 넓은 집을 산 것이 문제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당분간 쉬게 된 일, 내일 집이나 알아보자고 다짐한 은영은 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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