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후 귀가한 윤기는, 아기방에서 세상 모르게 잠자고 있는 쌍둥이를 확인하고 미소 지었다. 침실에 호석이 보이지 않자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그의 향을 쫓아 별채를 돌아다니다가 서재 앞에 멈췄다.

똑똑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호석이 서재 한구석 바닥에서 무언가를 펼쳐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여기 있었네? 다녀왔어, 호바.”

“아, 어서 와요. 오늘도 늦게까지 수고했어요~”

호석이 일어나 윤기를 반기며 다가가 가볍게 퇴근 키스했다. 윤기는 호석이 어질러 놓은 바닥을 보았다.

“뭐 하는 중이었어? 사진? 정리 중이었어?”

“네.”

호석은 그동안 핸드폰으로 찍어둔 쌍둥이의 사진들을 포토 프린터로 인쇄하여 두꺼운 사진첩에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꽤 오래된 듯한 사진첩도 몇 권 있었다. 지잉지잉, 계속해서 사진이 인쇄 중이었다.

“희망이랑 윤호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사진첩이 백 권이어도 모자랄 거 같아요.”

“우리 꼬물이들 사진첩 전용 서재도 만들어야 할까 봐.”

“에이~ 오버에요~”

두 사람은 사진이 깔린 곳으로 다가오더니 나란히 바닥에 앉았다.

“어? 이거. 이때 희망이 레전드였지.”

윤기는 사진 한 장을 꺼내 그날 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기억하네요? 맞아요, 그때 희망이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이건 그때잖아. 윤호가 희망이한테 처음으로 뽀뽀한 날. 나이스 타이밍이네, 진짜 잘 찍혔다.”

윤호가 희망을 꼭 끌어안고 볼에 쭈웁, 뽀뽀하는 귀여운 모습에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한 장씩 한 장씩 바라보고 그때의 일을 공유하며 즐거워했다. 

“이날은 희망이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말한 날이고요, 요건 윤호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한 날.”

“와, 나 진짜 감동해서 눈물 글썽거렸잖아.”

“맞아, 맞아. 형은 정말 감수성이 풍부한 거 같아.”

인쇄된 사진을 보며 추억을 떠올리고 정리하니 벌써 세 시간이나 훌쩍 지났다.

“이건 뭐야?”

정리를 끝내고 사진첩을 책장에 꽂으려던 윤기가 바닥에 놓인 낡은 사진첩을 발견하고 만졌다.

“그건 가족 앨범이요.”

“호비네?”

“네.”

“봐도 돼?”

윤기는 기대감으로 살짝 흥분한 얼굴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의 호석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럼요.”

윤기는 두근거리며 사진첩을 펼쳤다.

“귀여워!”

첫 장부터 큐트 꼬꼬마 호석이 등장하니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는 윤기였다.

“어릴 땐 나 엄청 귀여웠다고요.”

“호바! 지금도 귀여워! 사랑스러워! 최고야!”

“정말…… 형은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런 낯간지러운 소릴 하면.”

“전혀. 귀여운 걸 귀엽다고, 사랑스러운 걸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게 왜? 사실이잖아.”

‘이 팔불출 정말.’

진지한 어투로 말하는 윤기였고,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건 호석이었다.

“이분이 장인어른이신 거야? 와…… 호바, 아버님 혹시 연예인이셨어?”

윤기는 미남의 품에 안긴 어린 호석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쵸? 우리 아빠 넘 잘생겼죠? 소싯적에 인기 짱이셨대요.”

호석은 한껏 뿌듯해하며 우쭐거렸다. 

“그럴 만해. 호비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골고루 닮은 거 같아.”

“…….”

호석은, 감탄하며 사진을 보는 윤기의 조각 같은 옆선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신은 잘생긴 부친 얼굴을 맨날 보다 보니 면역이 생겨서 웬만한 얼굴엔 두근거리지 않는 거였다고. 

‘아빠보다 잘생긴 남자는 형이 처음이었지.’

윤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우쭐해서 키스 공격할지도 모르니까 안 해야지.

‘정말이지, 이 남자는 얼굴 하나는 끝내주는 내 취향이라니까.’

매일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래서 윤기를 닮은 윤호에게 마음이 더 가는 건가 싶었다.

“아버님이 요리도 잘하셨나 봐.”

사진 속 장소는 호석이 공작가에 오기 전에 살던 빌라의 부엌이었다. 부친과 호석이 커플 앞치마를 매고 요리하고 있었다.

“아, 이거. 아빠랑 입고 있는 거 엄마가 만드신 앞치마예요. 이날은 엄마 생신이라서 아빠랑 힘내서 만들었는데, 아빠가 타고난 요똥이라서 망했지 뭐예요.”

“요똥?”

“요리 똥손이요.”

“아아, 줄임말이었구나.”

윤기는 줄임말에 익숙하지 않은 30대였다. 호석 덕분에 줄임말을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었다.

“맞아요. 아빠는 요리를 너무 못하셔서, 그 쉽다는 미역국조차도 망치고 부엌도 엉망으로 만드는 바람에 엄마가 기겁하며 새로 요리하셨지 뭐예요. 아빠랑 난 보조했고요. ‘이번 생은 남편한테 밥 얻어먹기 글렀네. 그쵸?’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엄마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요. 내심 많이 기대하셨거든요.”

“하하하, 아버님 상상만 해도 너무 귀여우신데? 그래도 노력하신 게 어디야.”

윤기의 웃음에 호석도 쿡쿡 웃었다.

“맞아요. 아빠는 애정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하셨고, 엄마도 갸륵한 정성만 받겠다며 웃으셨어요. 이후로도 시간이 내서 아빠랑 같이 요리에 도전했는데, 성공한 게 없어요. 하나같이 다 망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면 엄마가 등장하셔서 해결사처럼 해결해주셨죠. 악순환이긴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나도 결혼하면 꼭 부엌에서 내 남편이랑 아이랑 같이 요리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사랑스러운 모습에 윤기는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호석이 무언갈 떠올렸는지 손뼉을 치며 윤기를 응시했다.

“아, 맞다! 말 나온 김에 우리도 같이 요리해볼래요?”

“응? 지금?”

“아뇨. 이번 주말에요. 이 빌라, 추억 때문에 안 팔고 그대로 있거든요. 엄마가 종종 방문하셔서 관리하고 계시는데, 여기서 같이 밥 먹는 거 어때요? 애기들은 잠시 부탁드리고요.”

“아…… 너무 좋은데, 어쩌지? 이번 주는 출근해야 해서.”

“아…….”

윤기의 대답에 기대감으로 환하던 호석의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진다.

“하지만 전날 금요일은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날 저녁은 어때?”

새 일정을 제안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호석의 표정이 환해졌다.

“좋아요! 그럼 금요일 저녁.”

그런 모습이 너무 순수하고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는 윤기였다.

“만들고 싶은 요리 있어? 같이 장 볼까? 회사로 올래? 아님 퇴근하고 태우러 갈까?”

“비밀이에요. 내가 다 준비할 테니까 형은 퇴근하면 바로 빌라로 와요.”

“비밀이라니 궁금하잖아. 음…… 애옹~ 쥬인님, 힌트 달라옹.”

호석에게 살살 애교를 피우는 윤기였다.

“네에에~!? 아, 그, 아, 안 돼요! 비밀이니까 그날 와서 확인해요.”

귀여운 반전 매력에 홀라당 넘어가 버릴 뻔했으나 겨우 외면하며 참아낸 호석이었다.

윤기는 피식 웃으며 호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마에 쪽 입 맞췄다. 

“알겠어. 혹시라도 마음 바뀌면 연락해, 알겠지?”

“넨네~”

두 사람은 눈맞춤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연인 54

written by 휴위








평소보다 3시간 일찍 퇴근하여 빌라로 온 윤기는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운전석에서 내려 빌라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오는 곳이었다.

‘괜찮은 건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기억이 극성팬들에게 테러당한 호석을 데리러 왔던 거였기에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물론 그날의 일은 호석에게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어린 시절 양친과 함께했던 행복하고 따스한 추억의 힘이 더 컸기에 악몽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윤기는 계속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뒷좌석 문을 열어 한 아름되는 꽃다발을 꺼냈다. 하얀 안개꽃으로 테두리를 만들고 그 안에는 여러 색깔의 스타치스로만 만든 꽃다발이었다. 처가댁을 방문하면서 제대로 된 꽃다발을 준비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제라도 준비한 윤기였다.

하얀 안개꽃의 꽃말은 죽음, 스타치스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오싹하면서도 절절한 연심이 담긴 꽃다발이었다. 

핸드폰으로 도착했음을 알리자, 문 열어뒀으니 들어오라는 답장이 왔다. 애인 집에 처음 방문하는 것처럼 어쩐지 두근거렸다.

빌라로 들어가 계단을 하나씩 올라갈수록 왠지 긴장되었다. 왠지 이 순간 처음으로 서로의 애칭을 지어 불렀던 날이 떠올랐다.

“…….”

윤기의 발걸음이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정확히 이 계단에서, 호석이 제 어깨를 잡고 돌려세워 처음으로 먼저 키스했었다. 도장을 찍듯이 그저 입술만 꾹 누르는 서툰 행동이었지만, 그래서 사랑스러웠다.

윤기는 시야에 들어오는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목부터 시작해 얼굴과 귓불까지 빨개져서 도망치던 호석을 붙잡고 현관문에 가두고 키스했던 것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하. 뭐야,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윤기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설레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빨리 들어가 호석의 얼굴을 보고, 품에 가득 안고 싶었다.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을 호석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만큼 호석은 윤기에게 무척이나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도어락이 아닌 열쇠 잠금장치의 현관문이었기에 손을 뻗어 손잡이를 돌렸다. 열린 문으로 보이는 실내는 다소 어두웠다. 분위기를 잡는 것처럼 캔들 조명만이 군데군데 켜져 있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느껴지는 냄새는 틀림없는 스테이크였다. 같이 요리할 줄 알았더니 이미 다 요리를 끝낸 듯했다.

‘준비하느라 힘들었겠네.’

호석의 스테이크를 기대하며 현관으로 들어왔다. 문을 자동으로 닫히자 잊지 말고 잠금장치를 걸어 잠갔다. 구두를 벗고 미리 준비된 실내화를 신고 거실로 들어와 호석을 불렀다.

“호바, 나 왔어.”

“어서 와요.”

호석은 부엌과 거실을 나누는 파티션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며 윤기를 반겼다.

“어? 꽃이다. 나 주려고 가져왔어요?”

“응. 받아줘.”

호석이 꽃다발을 보며 기뻐했다. 호석에게 다가가던 윤기가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라면 제게 달려와 퇴근 키스를 해줄 텐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파티션 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바, 거기서 뭐 해?”

“음, 그, 그게…….”

호석이 잔뜩 부끄러워하면서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파티션 뒤에서 천천히 나왔다.

“……!?”

호석의 모습을 본 윤기는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너무 놀라 꽃다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음……, 목욕부터 할래요? 밥부터 먹을래요? 아니면…… 나.부.터?”

남자들의 로망에 빠지지 않는 ‘누드 에이프런’ 차림에 ‘신혼삼택’이라 부르는 섹드립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도리어 윤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아찔하고 섹시한 이벤트에 윤기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리야리한 체구에 여리여리한 핑크빛 꽃무늬 앞치마가 너무나 찰떡처럼 잘 어울렸다. 앞치마 사이로 보이는 날렵하게 파인 쇄골과 쭉 뻗은 미끈한 다리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수줍어하며 말한 뒤 대답을 기다리는 호석의 야하고 섹시한 모습에, 가랑이 사이의 굵은 소시지가 존재감을 뽐내며 기립하기에 죽을 것 같은 윤기였다.

‘이러려고 부른 거야?’

속으론 좋아 미칠 것 같았지만, ‘너부터’라고 대답하고 덮쳐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함께 요리하고 밥 먹으러 온 거니 말이다. 설마, 아니겠지. 그렇겠지?

“……바, 밥?”

너무 뻔한 대답은 정답이 아닐 거로 착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대답을 해버린 윤기였다.

“…….”

그리고 호석의 표정은 환멸을 품으며 싸해졌다.










“정말 맛있다, 호바.”

“…….”

“나 올 때까지 기다리지…… 혼자 만드느라 고생했어.”

“…….”

“역시 우리 호비 요리가 제일 맛있는 거 같아.”

“…….”

“고기가 정말 부드럽게 잘 구워졌네.”

“…….”

“…….”

“…….”

‘큰일이다.’

윤기의 속마음이었다.

‘짜증 나.’

호석의 속마음이었다.

‘평소엔 잘만 덮치던 짐승이 왜 갑자기 눈새가 된 거야?’

윤기가 뭐라 뭐라 말해도 대꾸도 하지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스테이크를 써는 호석이었다.

‘진짜 큰맘 먹고 준비했는데.’

이벤트가 실패하는 바람에 자꾸만 속에서 울화가 울컥 올라올 것 같았다.

처음엔 정말로 부친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윤기와 요리하려 했다. 하지만 장을 보러 마트에 간 순간, 지민이 보낸 사진 한 장이 모든 계획을 수정하게 했다. 

그 사진은 지민이 알몸에 앞치마만 걸치고 찍은 셀카였다. 얘가 대체 누구에게 보내려고 이런 사진을 찍은 건가, 애인이 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기에 혼란스러웠으며, 어쩌면 커피를 좋아하는 것처럼 이런 걸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동공이 흔들렸다.

물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지민이 5초도 지나지 않아 삭제하는 바람에 다시는 사진을 볼 수 없었지만, 요염하게 상대를 유혹하는 그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걸고 말았다. 대체 이거 뭐냐고.

지민은 난감해하며 얼버무리더니 도리어 호석에게 새로운 문화(?)를 알려주었다. 그는 참으로 신문물 전도사였다. 러브 젠가에 이어 누드 에이프런과 신혼삼택이라는 질문을 친절하게 알려주니 말이다.

‘다시는 이런 거 하나 봐라.’

내심 윤기가 ‘호바! 당연히 너부터지!’라고 말하며 단정한 넥타이를 거칠게 풀며 덮쳐주기를 바랐다. 그럼 스테이크가 식을 테니 일단 배부터 채우고 하자고 말할 예정이었다. 

분위기 잡으려고 와인도 좋은 걸로 준비했는데, 갑자기 윤기가 눈치 없는 새기가 되는 바람에 기대가 와장창 무너져내려 속이 상한 호석이었다. 

그렇다고 또 옷을 입기엔 억울한 감이 있어서 앞치마만 한 상태로 식사 중이었다. 따지 못한 새 와인과 오프너, 두 개의 텅 빈 와인잔이 외면당한 채 식탁 한구석에서 야릇한 캔들 조명에 감싸여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호바.”

“…….”

찌릿.

호석은 스테이크를 양 볼에 우물우물 씹다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윤기를 흘겨보았다. 그리곤 빠르게 시선을 돌리고 먹는 데에 집중했다.

‘정말 큰일인데?’

과거에는 차려놓은 밥상을 거절하는 멍청한 남자도 있느냐며 한껏 비웃었는데, ‘네 맞습니다. 사실 그 멍청이가 저였습니다.’라는 상황에 놓일 줄이야.

스킨십하거나 유혹하는 건 늘 제 쪽이었기에, 호석이 먼저 유혹하는 그야말로 꿈 같은 상황을 겪으니 사고 기능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대답에 호석의 얼굴이 티가 나게 싸해지기에 어쩌나 싶어 초조했는데, 대꾸도 하지 않고 삐친 모습으로 밥을 먹는 걸 바라보고 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점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귀여워서야…….’

바깥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서 얼굴 붉히는, 저 보수적이고 수줍음 많은 호석이 누드 에이프런과 신혼삼택이라는 섹드립을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지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대놓고 유혹하는 분위기를 제때 파악하지 못한 자신의 멍청함을 반성했다.

미개봉한 와인이 병풍이 되어가는 걸 확인한 윤기는 소리 없이 웃으며 나이프와 포크를 놓았다. 손을 뻗어 와인과 오프너, 와인잔을 들고 제 앞으로 가져왔다.

능숙하게 오프너로 와인을 따고 와인잔에 쪼르륵 따랐다. 두 잔에 다 따르곤 한 잔을 호석의 오른편에 놓았다. 

“목 막힐 테니 마셔가면서 먹어.”

“…….”

호석의 시선이 흘끔 와인잔으로 향했지만, 손은 대지 않았다. 윤기는 호석의 행동과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와인잔을 들고, 왼손은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곤 아내를 지그시 바라보며 은근하게 웃었다.

“……호바, 미안. 내가 진짜 멍청했어. 눈치가 더럽게 없었다, 그치?”

‘이제야 알았……!’

안 들리는 척, 모르는 척하며 가니쉬를 먹던 호석이 움찔하며 포크 질을 멈췄다.

‘지, 지금 뭐…….’

식탁 아래에서 실내화를 벗은 윤기의 발가락이 호석의 발등을 간질이더니 복숭아뼈와 발목으로 이동하며 야하게 훑으면서 종아리로 올라갔다.

호석은 처음 겪는 낯선 플러팅에 얼음처럼 굳어버렸고, 윤기는 능글맞게 웃더니 손에 든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한 모금 마셨다. 붉은 와인에 비친 호석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양말 너머로 호석의 말랑한 종아리 감촉이 느껴졌다. 아래위로 쓱쓱 쓸어내렸다가 올렸다가를 반복하여 애무하며 말랑한 감촉을 느긋하게 만끽하고는 다시 위로 슬금슬금 향했다.

종아리를 지나 무릎을 넘어 허벅지로 나아갔고, 그때까지도 호석은 바들바들 떨며 어떤 방어도 하지 못했다. 종착점은 앞치마 아래에 숨겨진 소중이였다.  

“하읏!”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5개의 발가락이 앞치마 아래의 그것을 꾸욱 누르며 죔죔 하자, 호석은 반사적으로 포크를 떨어뜨리며 신음을 흘렸다.

이제야 가출했던 눈치가 돌아온 윤기가 무언갈 제대로 하는 건가 싶어 호석의 얼굴엔 기대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28. 젠가씬 끝나면 나중에 호비가 윤기 오기 전에 저녁식사 준비해놓고 윤기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깜짝이벤트로 누드 에이프런 보고싶어료,, 작정하고한거라 식사할 때도 그러고 밥먹어서 윤기 당황시키는 거로 모자라 먹다가 일어나서 와인들고와서 러브샷하고자 하는. 라는 의견을 수정하여 반영하였습니다.

누드 에이프런 이거 완죤 제 로망인데!! 이걸 또 어찌 아시고!ㅋㅋㅋㅋ 의견은 빨리 넣고 싶었으나, 공작가의 식사는 셰프들이 만들기 때문에 호석이 직접 요리하고 거기서 누드 에이프런으로 떽뜨하는 건 무리일 거 같더라고요? (나름의 현실 반영?ㅎ) 그래서 조금 늦게 넣어보았습니다. 신혼삼택 올드한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고전은 영원한 법이잖아요?ㅎㅎㅎ 

좋은 의견 넘나 감사합니다!^^

의견은 언제나 받고 있습니다. 조카나 자녀가 있으신 분들 중 재미있는 소재나 보고 싶으신 소재가 있다면 언제든지 의견 나눠주세요~^^ 댓글이든 의견 게시판이든 에스크든 뭐든 다 받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연인 쓴다고 팔자에도 없는 출산&육아 공부하고 있네요ㅠㅠㅋㅋㅋㅋ

이제 다음 편은 돌잔치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돌잡이 투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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