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이 아직 브루스에게 정체를 숨기고 제이 헤이우드로 다니는 중.



제이슨은 옷깃에 설치된 도청기를 흘긋 보았다. 


누가 붙여놓은 것일까, 의문은 들지 않는다. 그야 뻔하지. 제이슨은 우중충한 박쥐 코스튬을 떠올리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새로 생긴 젤라또 집이라 해서 와봤는데 꽤 괜찮았다.


마지막 한입까지 깔끔하게 비운 제이슨은 입맛을 쩝 다셨다.


“집 가는 길엔 마카롱이나 사갈까.”


제이슨은 발걸음을 놀리며 자연스레 옆 사람과 부딪혔다. 상대가 들고 있던 커피가 쏟아져 제이슨의 셔츠를 적셨다. 


푸른색 셔츠 위로 갈색의 얼룩이 번져갔고, 제이슨은 도청기가 확실히 젖은 것을 확인했다. 


고장난 도청기를 확인한 후에야 제이슨은 고개를 돌려 당황한 상대를 보았다. 상대 남자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뇨. 제가 앞을 못 본 걸요.“


눈꼬리를 휜 제이슨이 사람 좋게 웃었다. 우울한 기색의 남자는 제이슨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이내 입을 떡 벌렸다.


“제, 제이슨…?!”


“?”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작스레 뱉은 진명에 제이슨이 당황했다. 어라? 나 제이슨이란 이름 지금 숨기고 있는데…? 슨아 이거 어쩌지?


제이슨은 조용히 근처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지금 위치는 감시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위치였다. 부러 커피를 흘릴 때도 신경 쓴 사항이었다.


제이슨은 생긋 웃으며 남자의 멱살을 잡고 골목으로 끌고 갔다. 응, 슨이라면 분명 반정도 죽였겠지? 난 그건 못하니까 몇 대 때리고 협박만 하자!


제이슨의 악력에 남자는 휘청거리며 끌려왔다.


제이슨은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벽에 몰아붙였다. 딱딱한 벽에 부딪힌 게 아픈지 남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알지.”


그냥 착각했다면 모를까, 저 경악하는 얼굴은 분명 제이슨 토드를 아는 게 분명했다. 


지금 고담에 제이슨 토드를 알아볼 인간은 없다. 그 브루스마저도 아직 못 알아보고 있으니까. 


그러니 제이슨 토드라는 이름을 아는 건 고담에서 데미안뿐. 하지만 데미안이 눈앞의 허약해 빠진 남자에게 제 형제의 비밀을 알려줬을 리는 없었다.


“내 이름은 제이 헤이우드인데. 응?”


투페이스의 백화점테러 후 몇몇 거물 빌런들과 어쩌다 안면을 텄다. 투페이스, 블랙마스크 말고도 리들러나 펭귄 말이다. 어쩌다 보니 다들 친한 삼촌이 되었다. 왤까?


어쨌든 그 과정에서 로빈일 때 기억이 좀 돌아왔다. 기억이 돌아오며 자신감이 생긴 제이슨은 남을 붙잡고 협박하는 것쯤은 당당히 할 수 있게 됐다. 


제이슨은 눈만 동그랗게 뜨며 답하지 않는 남자에 고개를 기울였다. 자세히 보니 얼굴엔 붉게 홍조가 떠올라 있고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아, 또 인가.”


빌런들을 상대하다 보면 가끔 보는 반응이었다. 워낙 저에게 껄떡대는 인간이 많다 보니 이런 반응도 이젠 익숙했다. 익숙하다는 게 슬프지만.


요즘은 알아서 처리하기도 하지만, 길거리에서 그러면 친한 빌런쪽에서 부하를 보내 처리했다.


“제, 제이슨이라니…! 난 성덕이야!”


“응?“


성덕. 이라는 단어에 제이슨이 이번엔 반대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어라? 그냥 고담에 널리고 널린 흔한 변태는 아닌가 본데? 내 이름도 알고, 저런 반응도 하고?


”음… 날 알아?“


”알다마다요! 제가 제이님이랑 할리님이랑 당신을 엄청 팠는데…! 뱃슨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잠깐, 잠깐. 뭐요?”


“긍데, 내가…! 내가 하필 이딴 악당이 돼버려서! 크흥! 좀 봐줄 만한 놈도 아니구 완전 길가에 굴러다니는 음식물쓰레기보다 못한 놈이 되버려성…!!”


“아, 아니 울지는 말구….”


제이와 할리. 언급에 제이슨의 몸이 덜컥 멈췄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남자를 달래며 제이슨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그거 같지?


“음, 혹시 조커님?”


“훌쩍, 느엥?”


“저 ’슨이 러버 제이‘예용….“


”누웽?“


”혹시 ’미친놈을 사랑하는 미친놈: 조커’님이세요?“


제이슨은 거의 확신을 하고 남자를 내려다봤다. 눈물로 얼룩진 엉망인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제, 제, 제, 제이님?!! 우리 겸둥이 말랑콩떡 제이님?!“


”에궁, 조커님 조커 되고 맘고생 많이 하셨나 얼굴 상했네용.“


제이슨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조커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조커는 제이슨의 품에 뛰어들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펑펑 울었다. 


그간 조커가 되고 생긴 맘고생이 많았는지 웅얼거리며 한탄했다.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점은 사심이 가득한 것 같지만 넘어갔다. 고생 많이 한 것 같던데 조커님이라면 이 정도 쯤이야.


”근데 제가 지금 배트맨한테 감시받는 입장이라 조커님이랑 자주 볼 순 없구여.“


”네…? 대체 뭐하다 감시를? 우리 제이님이 무슨 짓을 한다고!“


”웅, 그르쵸. 제가 데미안이랑 좀 친해서 알굴 쪽으로 의심하나 봐요. 에효, 인생.“


로빈은 받아줬으면서 알굴일 때 친분 있던 난 의심하는 뱉. 이해는 하지만 도청기나 위치추정장치 떼는 거 넘 귀찮다. 빌런들한테 붙잡혀 있으면 갑자기 튀어나와서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느니 말하고, 거절하면 미행하고.


”제이슨 토드인 건 안 밝힐 거예요?“


”그쪽이 더 재밌잖아용?“


”헉, 그러네요!“


대략적인 이유는 그랬다. 뭐 세세한 이유가 또 있긴 하지만 그것까지 설명하기는 귀찮았다. 


조커는 뭘 생각하는 건지 두근두근한다는 얼굴로 제이슨을 보았다. 뭔가 작가답게 머릿속에서 재밌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모양이었다.


소소한 이유 설명은 생략한 제이슨이 조커에게 사건경위를 물었다.


”전 환생 쪽이에요. 조커님은 빙의 언제쯤 한 거예요?“


”한 이틀 전인가…. 배트맨이랑 붙고 있을 때 뽝! 빙의해서 죽어라 도망쳤어요.“


어두워진 조커의 안색에 제이슨은 무언가 일이 더 있었구나 짐작했다. 


이 양반이 절대로 그냥 평범하게 빙의했을 리가 없었다. 분명 사고 하나는 쳤을 것이다. 머뭇거리던 조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에 배트맨이 있길래 꿈인 줄 알고 ‘호우, 몸매 섹시하네! 울새들이 다른 건 몰라도 아빠의 섹시한 몸은 닮았지!’라고 외쳐서…! 진짜 배트맨이 죽일 듯이 쫓아왔어요!”


“그럴만하네요.”


제이슨의 눈이 짜게 식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빙의하자마자 사고를 치지? 재밌긴 하지만.


배트맨 앞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울새 언급하면서 도발하는 것도 재능이었다. 


“지금은 화장 다 지우고 머리도 검은색으로 대충 염색해서 돌아다니는 중이에요. 조커가 노숙자라니….”


자세히 보니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초록색 뿌리가 보였다. 오, 진짜 조커시군.


미묘하게 보이는 흔적에 제이슨은 그제야 조커의 얼굴을 관찰했다. 


로빈일 적 기억 속 악몽 같은 조커가 화장을 지우면 딱 이럴까? 그 끔찍하던 화장을 지우니 제법 청순한 미인이었다. 맙소사, 그 조커가 청순? 


제이슨은 본능적인 거부감에 이어지던 생각을 끊어냈다. 


조커를 다시 마주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슨이가 택한 길처럼 그를 죽여야 할까? 하지만 그럼 브루스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는 살인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여기니까. 아무리 쓰레기라도 교화시키려 하지. 


브루스의 의견에 딱히 이견은 없지만, 조커는… 예외였다. 


제이슨은 다시 조커를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의 형제 슨이 같은 경우에는 저희와 같은 사례를 만들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 달려들겠지.


나도 복수심에 불타 조커를 죽이려 달려들까? 아니면 겁에 질려 그냥 외면하게 될까. 아니면 이 모든 관계에 실증이 나 도망치려나.


혹은 조커가 다시 날 죽이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했다. 그 때는 친모였으니 이번엔 다른 가족일 지도 몰랐다. 


혹여라도 조커가 데미안을 붙잡아 인질로 쓴다면 난 다시 넋 놓고 시한폭탄을 마주 봐야 겠지. 째깍이며 흘러가는 타이머와 굳게 닫힌 철문, 아직까지 정신이 깨어있는 게 신기한 몸, 쓰러져 있는 민간인.


그렇게 죽었던 제이슨에게 보상이라도 주는 걸까.


조커가 없다. 그와 그의 형제를 죽인 조커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없어졌다. 남은 건 껍데기 안에 새로 들어온 빙의자 뿐이었다.


심지어 전생에 친했던 ‘조커’라는 인물.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조커님은 사람을 죽이지도, 그의 가족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하지도 않을 테니까.


하필이면 왜 이제야 빙의 된 걸까 생각도 들었다. 진작 조커가 사라지고 빙의자가 들어왔다면, 그는 죽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죽음도 부활도, 가족을 잃은 절망도 겪을 필요 없었다.


까끌한 무언가가 목에 턱 걸린 것 같았다. 제이슨은 눈가를 찡그리다 익숙하게 감정을 가다듬었다. 


이런 감정을 티 내선 안됐다. 눈앞의 이는 그 조커가 아니니까. 괜히 엄한 사람에게 원망을 쏟을 수는 없었다.


제이슨의 녹색 눈이 깊게 침잠한 채 조커를 응시했다.


“저런. 제 세이프하우스 중 하나 드릴 테니까 당분간 거기 사세요. 조커 몸에도 적응해보시구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조커 몸으로 착하게 살면 더 좋구요.”


“천사…! 역시 제이님은 천사예요!”


“네네. 위치랑 집 비밀번호 적어줄게요. 데미안도 모르는 세이프 하우스라 괜찮을 거예요.”


“넹!”


“고담에서 살기 힘들 테지만… 그래도 조커 몸이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 그렇겠죠?”


“네. 어차피 고담 밖으로 나가려 하면 배트맨한테 걸려서 아캄 갈 테고.”


제이슨은 바들바들 떠는 조커를 보며 잔잔히 웃었다. 이 사람 고담에 적응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제이슨의 걱정이 무색하게 조커는 이후 이틀 만에 고담에 적응한다. 


배트맨이나 슈퍼맨, 나이트윙 관련 팬픽들을 써대며 악명을 쌓아올린 조커는 부하들을 대거 거느린 채 고담에 새로운 악몽을 선사하게 된다.


힘내라 배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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