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겸겸

19.
나 진짜 이 새끼랑 뭔가 있나? 어? 어떻게 이렇게 자꾸 마주치지 소름돋게? 종현은 미간을 구기고 옆자리에 앉아있는 민현을 쳐다봤다. 뭘 봐. 종현의 시선을 느낀 민현도 종현을 쳐다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말 시키지 마. 미친놈아."
"넌 왜 자꾸 똑같은 말 하게 해? 네가 먼저 말 시켰다니까?"


존나 답답하네. 하며 가슴 치는 시늉을 하는 민현을 보며 종현은 속에서 열불이 치밀었다. 아…. 걍 꺼져 닌 제발. 내 눈앞에 나타나지 좀 마.


"니 잘난 와꾸 조짐당하기 싫으면 제발 내 눈앞에 나타나지 좀 마."
"헤엑. 무서워라."



20.
수업은 소문대로 좋았다. 학교 선생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학교 수업보다 좋았다. 들어본 어떤 인강보다 괜찮았을 뻔했다. 민현만 옆에 없었더라면.


"다음 주까지 숙제 꼭 해오고 야감쌤한테 제출해 놔. 오늘 수업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서 성의 없는 인사가 오가고 줄줄이 강의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근데 야감쌤이 뭐야.


"병신아. 야자감독 선생님."
"..알거든. 존나 오지랖이야."


별걸 다 줄여 부르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민망한 종현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어어. 너희 둘 친구냐? 수업을 마친 후 문제집을 챙기고 밖으로 나가시던 강사님이 서 있는 종현과 민현을 보고 다가왔다. 네? 방금 뭐라고요? 강의 잘한다고 칭찬해 드렸더니 돌아오는 건 욕이네요. 왜 막말하세요? 누구랑 누가 친구요? 네?
종현은 그저 웃기만 하는 민현과 강사님을 어이없다는 듯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네가 새로운 목화고 문과 1등? 1등 끼리 친구 하네?"


1등은 맞는데 친구는 아닌데요.


"너넨 친구도 얼굴 보고 사귀냐? 요즘 애들 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그니까 친구 아니라니까요. 막말 자제해주세요. 그리고 황민현 이 새끼는 아까부터 왜 처웃고만 있어 꼴 보기 싫게.


"종현이? 맞지? 공부 열심히 해라~"
"감사합니다.."


혼자 할 말만 다 하고 사라진 강사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종현은 마저 가방을 싼 후 문을 나서려고 했다.

"가자 친구야."
"꺼져!!"

진짜 미친 새끼.



21.
"집가냐? 수업 영어밖에 안 들어?"
"니알빠?"


단어 존나 수준 낮은 거 봐. 민현은 종현이 싫어하는 포인트를 자꾸만 한번씩 건드렸다.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것. 그러니까 황민현이 하는 모든 행동.


"야. 영어수업만 듣냐고."
"말 그만 시키라고 병신아."
"너 자꾸 말끝마다 욕이다? 좆같게."


니가 좆같으니까. 종현은 다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 나는 아직 수업 남았는데.


"아니 시발 어쩌라구요. 너 갈 길 가세요 얼른."
"나 여기 친구도 없는데 다른 수업도 좀 들어라."
"미쳤냐? 너랑 내가 친구? 너 진짜 사실은 대가리에 든 거 없지? 이과 1등 다 학원 빨이였지?"


종현은 너도 좀 엿 먹어보라는 듯이 평소 민현이 그런 것처럼 실실 웃으며 물었다.


"돈 안 받을 테니까 다녀달라길래 억지로 다니고 있는 건데?"


존나 재수 없어.



22.
"종현이 왔니? 학원 어땠어?"
"안가, 학원!!"


어머,어머. 저게 왜 또 오자마자 난리야?


"나한테 그 학원에 황민현 다닌다고 말 안 해줬잖아!!"
"민현이가 누군데?"


민현이라고 부르지 마!! 황민현이라고 불러!!


"아니 학원 어땠냐니까 자꾸 딴소리야 이게? 비싼 돈 들여서 보내줬더니."
"아, 안간다고오오!"



23.
-야! 가사 좀 써봤어?
"가사가 뭐 쉽게 써지냐? 애초에 그런 걸 나한테 왜 맡겨.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문과 1등이 이것도 못하냐고.
"무논리 자제 좀."
-마지막 축제 화려하게 끝내보려고 강동호 보컬까지 섭외했다!!
"쓸모없는 곳에 힘 빼지 말라고 매번 말했는데…. 머리가 그렇게 비어서 어떡해 너는?"
-말 존나 심하게 하네….
"끊는다."
-3주!! 3주 안에만 써라 가사!!
"알았다고!!"



24.
종현은 예빈을 끝으로 더는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고 있다. 솔직히 여자친구란 것에 대한 흥미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고 무엇보다 민현이 일부러 눈에 불을 켜고 여자친구를 뺏는게 기분이 더러워서였다. 내가 그 새끼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나한테 이러는 거지. 종현은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문득 생각했다. 똑똑. 누가 엎드려있는 종현의 책상을 손으로 두드렸다.


"뭐야."
"친구야. 이거 받아. 영어강사님이 너 주라고 하셨어."


티 없이 맑은 얼굴로 활짝 웃는 민현을 보며 종현은 생각했다. 이빨 다 뽑아버리고 싶어. 종현은 열은 받지만, 괜히 힘빼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답 없이 민현이 건네는 프린트물만 받았다.


"왜 시비 안 털어?"
"좀 가라."


종현의 말에도 민현은 꿈쩍 않고 이젠 종현의 앞자리 의자에 앉아 본격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종현의 반 친구들의 시선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왜 여자친구 안 만들어? 나한테 뺏길까 봐 무서워서?"
"가라 했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 열 받는 말만 골라서 하냐 시발.


"아니면 뭐. 이젠 여자는 별로야?"
"뭐?"


민현은 종현에게 시비를 걸러온 게 분명하다.


"막 남자한테 흥미가 가?"
"닌 진짜…. 너만 보면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존나 패고 싶어서.


"헉. 혹시 진짜야? 나 때문에 여자친구 안 만드는 거야? 나 좋아해?"


결국, 종현의 주먹이 나갔다. 아! 이 새끼들 또 시작이야!! 동호의 외침이 앞문 쪽에서 들려왔다.


"니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어?!"


민현은 맞고도 뭐가 좋은지 웃으면서 종현에게 말했다. 이게 내가 원하는 반응이야. 이 새끼 뭐 진짜 변태 싸이코 이런 거 아냐? 종현이 돋아오는 소름에 몸을 부르르 떠는 사이에 민현의 주먹이 종현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아 이 새끼 주먹 너무 매운데….



25.
"너네 인제 그만 싸울 때 되지 않았냐?"


종현은 대꾸하기도 싫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눈 앞에 있는 애꿎은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봤다. 이번엔 진짜 황민현 저 새끼가 시비 건 건데….


"아니~ 나는 싸우기 싫은데 종현이가 나를 너무 싫어하는데 어떡해."
"뭐, 시발?"


진짜 이 새끼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이네 진짜!! 시비란 시비는 오늘 지가 죄다 걸어놓고!! 이성애자 외길 인생 사람한테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묻지를 않나!!


"야 둘이 진짜 그만 좀 싸워라…. 내가 죽겠어 내가!"
"뭔…. 나랑 쟤가 싸우는데 네가 왜 죽어? 오바 좀 그만해."


한숨 쉬며 말하는 영민에게 종현이 말했다. 


"야."
"부르지 마. 미친."
"가사는 다 썼냐?"
"너 알바 아니잖아."


내가 쓴 곡에 들어갈 가산데 왜 내가 알바가 아니야? 민현의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에 종현은 서서히 상대하기 지쳐감을 느꼈다.


"그냥 말을 말자."
"언제 다 쓸 건데?"
"주말!! 이번 주 주말까지 쓰면 될거아냐!!"
"왜 성질을 내고 그래?"


또 싸울 기미가 보이자 영민은 몰래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종현은 민현에게 정말 궁금 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야. 나 지금 진짜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내가 막 기억 못 하는 사이에 너한테 뭐 커다란 잘못이라도 하고 그랬어? 막 유치원 때 너 여자친구를 뺏어서 네가 그때의 기억으로 추하게 나한테 시비 털거나 그러고 있는 거 아냐? 그런 거라면 너 진짜 잘못된 거야 엄청난 찌질이란 소리지."


민현은 진짜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허 하고 웃다가 대답했다.


"종현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봐. 대체 무슨 머리로 1등 중 인 거야?"


이 새끼가 아니면 아니라 하면 되지 왜 시비야? 또 존나 싸우고 싶나?


"이것 좀 봐봐."
"뭘."


민현은 모니터 옆에 있던 중간 크기의 네모난 거울을 들어 종현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어때? 어떻긴 뭘 어때. 존나 잘생겼구먼. 종현은 무슨 개수작이냐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보며 감탄하다 인상을 찌푸리고 민현을 쳐다봤다.


"너 얼굴 보고 내 얼굴 보니까 어떠냐 이거지. 유치원 때 내가 너한테 막 여자 뺏기고 그랬을 것 같아?"
"..."


아니…. 이 새끼 너무 건방진데…?


"어떻게 너는 발전이 없어 발전이! 슬슬 인정할 때 됐잖아 종현아."
"듣자 듣자 하니까 좆같네…. 너가 나보다 조오금 나은 부분은 키 달랑 그거 하나야."


민현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종현이 하는 말을 들은 척 만 척 하더니 원래 있던 곳에 거울을 두고 벗어두었던 마이를 들고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학원 같이 갈까 친구야?"


좆까.



26.
요즘 들어 민현이 이상하다. 그니까, 종현에게 시비 거는 민현의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었다. 종현이 이번 주 주말까지 가사를 써오겠다고 했던 건 월요일. 그리고 오늘은 금요일. 종현은 가사의 첫마디도 쓰지 못한 상태였다. 이걸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민현은 학원에서 만나자마자 시비를 걸어왔다. 종현아.


"가사 아직도 한마디도 못 썼다며? 애초에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나…? 미안해 말을 하지…."


어려운 건 맞지만, 막상 이렇게 저 새끼 입에서 저런 말을 들으니까 내 자존심이…. 종현은 속으로 중얼거리기만 할 뿐 차마 입 밖으로 내보낼 말은 찾지 못해서 그대로 무시하고 적당한 강의실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근데….


"왜 자꾸 졸졸 쫓아다녀 너 진짜? 돌았니?"
"친구니까 같이 앉아야지."
"너 나 말고 친구 많잖아. 그리고 시발 우리가 뭔 친구야."


종현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종현이 가방을 둔 자리 옆에 나란히 가방을 둔 민현이 얄밉게 웃었다. 종현 성격에 더는 무시는 불가능 했다.


"야."
"왜?"
"뭐 하나만 물어보자."


민현은 종현이 이렇게 호의적으로 나와 물어볼 게 있다는 경우는 드물어 조금 궁금하다는 표정을 했다.


"듣고 기분 나빠하지는 말고."


존나 나빠졌음 좋겠다 사실. 그래서 당장 자신을 한 대 후려치고 씩씩거리다가 그대로 강의실을 뛰쳐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너야말로 사실은 막 나 좋아하고 그런 거 아니야? 그니까 친구로서 말고 뭐…."



27.
"..뭐?"


종현은 나름 기분이 좋았다. 민현 얼굴에서 드물게 볼 수 없는 황당함이 어려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진심으로 나한테 물어본 건 아니지?"
"맞는데? 혹시 존나 찔리냐?"


종현은 생각보다 좋은 반응에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황민현 이 새끼가 당황한다! 야호! 민현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눈을 끔뻑거리다가 곧 장난스럽게 한숨 한 번 쉬더니 평소처럼 실실 웃으며 종현을 쳐다봤다. 뭔데 회복력이 이렇게 빠르지?


"역시…. 종현아. 사람은 자기 성향을 중심으로 주변을 보는 경우가 있대."
"뭔 헛소리야 또."
"난 항상 장난이었는데…. 넌 진심인 거 보니까…."


그니까 니새끼는 지금 내가 진짜 게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종현은 어이가 없어도 한참 없어져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가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학원에서 주먹질하기 싫으니까 앞으로 제발 말 걸지 말아줘라…. 제발."


아, 또 졌어. 시발.



28.
김종현 인생사 이렇게 당하기만 하면서 살아 본 적은 정말로 처음이다. 정말. 당했으면 갚아주는 게 특기였는데 유독 황민현한테만 그게 되질 않는다. 그 새낀 너무 고수야.


"아 가사 쓰기 싫다."


주말까지 가사를 쓰긴 무슨…. 민현에게 직접 말하기는 죽어도 싫어서 영민을 통해 다음 주까지 쓰겠다고 연락했다. 영민에게 소식을 듣자마자 비웃었을 민현을 생각을 하니 종현은 또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람이 싫어질 수가 있지? 민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대단한 새끼."


카톡_


종현이 민현에게 한방 먹이고 싶은 생각에 머리를 싸매고 침대 위를 굴러다니는 도중 평소에 조금 친하게 지내던 반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야
-야
-김종현
-야
-!
왜-
-여소 받을래?


아 뭔 여소야…. 황민현 퇴치하기도 바쁜데. 종현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흠칫했다. 지금 그 새끼 때문에 내가 연애도 마다하게 된 건가. 이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닌가?


뭔 여소야-
당분간 여자 안사귐 ㅅㄱ-
-존나 이뻐


뭐…? 존나 수준이야…? 이 새끼 눈 높은 편인데. 아, 아냐 그래도 지금은 딱히,


-황민현 전 여친이였던 앤데
-암튼 조온나 이뻐
할래-
제발-
제발 시켜줘-
내가 여소 받을래-
당장-


그래 이거거든…! 항상 날 이길 거라고 생각했냐 황민현? 아, 조까쇼. 너도 한번 당해봐라.






금방 올것처럼 트위터에 말해 놓고 이제서야 왔네요..ㅎㅎ..죄송합니다ㅠㅠㅠㅠ

마음 댓글 항상 감사합니다! 오타 지적 환영이에요!!

조금은 느리게 굴러갈것 같습니다 따흐흑...

년북 북른 최고된다. 아니 이미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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